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유슬기의 이작가야

작가 정지음 ②

젊은 ADHD 작가의 기쁨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정지음
제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을 받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는 《젊은 ADHD의 슬픔》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등이 있다.
오랜 시간 집중해 무언가를 해내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읽기와 쓰기는 오랜 시간 지속해온 습관으로 보여요.


“저는 항상 무언가를 읽고 있지만 그게 책일 때는 별로 없어요. 개인적으로 읽기보단 쓰기를 좋아해요. 읽는 것보다 쓰는 편이 더 쉽기도 하고요. ‘쓴다’는 행위는 정말 특별한 것 같아요. 말이나 대화가 가지는 시공간성을 초월해 영원한 생명력을 줄 수 있는데 그건 굉장히 낭만적인 행위잖아요. 일상에서는 편지나 쪽지, 메시지 글을 많이 쓰는 편이고 본격 글쓰기는 잘 안 해요. 예전엔 작가가 되면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글만 쓸 줄 알았는데 막상 업이 되니 일상과의 분리가 필요해지더라고요.”


본격 글쓰기를 배우던 문예창작과 대학생 시절, 캠퍼스 생활은 어땠나요.

“학교마다 ‘쟤는 학교 왜 다닐까?’ 싶은 애들 있잖아요. 제가 바로 그 ‘쟤’였어요. 수업 중에 자꾸 도망쳐서 교수님이 노여워하시고 학사 경고도 받고, 출석과 성적 때문에 졸업까지 고생을 많이 했어요. 학업엔 뜻이 없었지만 오로지 친구들과 노는 게 좋아서 다닌 것 같아요. 그땐 시키는 것만 죽지 못해 해내고 글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어요. 너무 쓰기 싫어서 오히려 이건 내 길이 아니다 싶기도 했죠.”


그런데 지금은 작가의 길에 서 있네요(웃음). 현재는 신춘문예 등을 통한 전통적인 방식 외에도, 브런치처럼 신진 작가들이 등단할 수 있는 길이 다양해졌죠.

“확실히 창구가 다양해진 것 같아요. 기업 주관 대형 공모전도 많고 1인 출판사, 텀블벅 독립출판물도 자주 보이고요. 우스갯소리로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아졌단 얘기가 나올 정도인데 맞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변화를 반갑게 여기고 있어요. 저 역시 신춘문예나 문학상만이 작가 등용문이던 시절에는 글 쓸 생각이 전혀 없었거든요.”


작가를 꿈꾼 적은요?

“작가의 꿈을 오랫동안 간직하다 마침내 이뤄낸 케이스는 아니에요. 어릴 때 훌륭해지긴 글렀단 생각이 든 후로 미래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살았어요. 주변에서 ‘너는 꼭 작가가 될 거야’라는 말을 해줄 때도 ‘애들 마음씨가 참 착하구나’ 싶고 현실감이 없었죠. 어쩌다 전업 작가가 된 지금은 너무 행복해요. 일단 프리랜서잖아요. 일도 생활도 100% 내 맘대로. 저는 이 자유가 미치도록 좋아요. 가끔 평일 낮에 늦잠 자고 일어나 빈둥거리면서 ‘행복해…’ 속삭이기도 해요. 작가란 직업에 딸려오는 삶의 양식이 너무 좋아서 이 직업이 좋고요. 결국 자기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가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돼요. 수입은 회사원 시절에 비해 불안정하지만 행복한 거지 신세에 만족해요.”


일단 ‘행복한’이 붙는 게 다행이네요.

“저는 생활력이 별로 없습니다. 풍요로운 삶을 만드는 요령이나 능력이 남들에 비해 떨어져요. 살림은 물론이고 금전 감각이나 손재주, 눈치 같은 게 빈약하달까요. 이런 부족함들은 저를 덜떨어져 보이게 만들고 사는 내내 참 스트레스였어요. 제가 못 미더우니까 주변의 애정 어린 간섭도 많았고요. 근데 글을 쓰고부터는 사람들이 저를 달리 보더라고요. 능력 없는 사람에서 능력이 한쪽으로 몰린 사람으로 재평가받고 있어요. 이젠 사람들이 충고나 조언을 자주 하지 않아서 좋아요(웃음). 그리고 저도 글쓰기를 통해 성공 경험을 쌓으면서 자의식이 많이 계발된 것 같아요. 저와 세상과 사람들 간의 거리를 글쓰기로 측정하니까요.”


그 행복에는 “자꾸 나빠지려는 나를 멋대로 좋게 만든다”는 반려묘 맷돌이의 공도 혁혁하겠죠.

“맷돌이를 처음 입양했을 때 체중이 300g이었어요. 너무 작고 여려 보여서 얘가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의심이 될 정도였어요. 그래서 강하고 튼튼하고 특별하게 살라는 의미의 한국어 이름을 주고 싶었어요. 마침 모색이 돌멩이 색깔이라 맷돌이가 됐지요. 적어도 제 필명보다는 훨씬 오래 고민한 것 같네요.”


차기작 소설 《언러키 스타트업》은 일명 ‘시궁창 컴퍼니’를 비롯한 20대의 사회와 조직에 대한 경험들이 글의 재료가 됐나요.

“매우 도움이 됐습니다. 사실 사회생활이 저를 작가로 만들어줬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직장 생활이 만족스러웠다면 영원히 직장인으로 살았을 테니까요. 저는 둔감한 성격이라 외부에서 추진력을 얻는 스타일이 아닌데, 직장에서는 언제나 공짜로 ‘분노’라는 에너지원을 공급해주더라고요. 갈 곳 없는 분노들의 주소를 정해주다 작가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도 출근이란 행위를 떠올리면 글 오래 쓸 용기가 나요. 글이 좋은 것도 있는데 출근이 너무 싫어요. 싫어하는 동력으로 사랑하는 동력을 만들 수 있다니 사람 마음은 참 재미있어요.”


스스로 ‘정지음의 팬’이라고 선언했죠. 셀프 덕질을 계속하기 위해 스타로서, 또 팬으로서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첫 번째는 스스로를 그룹화하기, 두 번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유머와 농담을 잃지 않기입니다. 애초에 밝은 성격이기도 하지만, 기회 될 때마다 좋은 기분과 긍정적인 언어들을 연습해요. 좋지 않을 때도 어떻게든 좋음을 설계하려 애쓰고요. 그러면 ‘초라한 나’와 ‘애쓰는 나’를 분리해 지지할 수 있는데, 자아를 조각 내 대우하거나 처단하는 방법을 배우고부터는 나쁜 감정에 통째로 잡아먹히는 일이 없어졌어요. 아이돌 그룹도 한 명이 사고 친다고 전부가 망하진 않잖아요. 어떤 멤버는 무능력(?)하기도 하고요. 제 안의 정지음들도 비슷한 것 같아요. 사고뭉치 정지음, 메인 작가 정지음, 리더 정지음, 무능력 정지음이 섞여 있어요.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고민도 어느새 멀어져 있어요.”


만약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아는 채로’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떨 것 같아요?
덜 억울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요.


“후회와 흑역사가 많은 인생이지만 사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절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대전제만이 현재를 값지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불문율이 깨지는 순간 제가 새로 사는 인생 또한 의심하고 우습게 볼 것 같아서, 갈 수 있어도 안 가고 싶어요.”


스물다섯에 ADHD 진단을 받은 그는 스물아홉에는 작가가 됐다. 30대에도 더할 나위 없이 ‘멋대로’ 사는 일생 무계획이 그의 계획이다. 대다수는 그를 못 미더워했고, 개구진 익살꾸러기라며 웃어줬는데 그중 누군가는 그의 꿈에 진지한 모험을 걸었다. “나는 언젠가는 네가 작가가 될 것이라 믿는다”고. 하지만 그 친구는 지금 세상에 없다.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의 대부분은 파국으로 끝난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 마지막은 자신보다 자신을 더 믿어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는 모두 일일이 허락을 받았는데 영주한텐 그럴 수가 없잖아요. 저는 지난 2년 동안 그애의 죽음을 머리로만 받아들인 것 같아요. 살면서 마음보다 머리가 빨랐던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신기한 일이에요. 풍진 세상 꿋꿋이 살며 세상 이야기 많이 모아서 나중에 영주를 만나는 날 다 풀어놓으려고요.”

작가로 대가가 되겠다는 목표보다, 영주에게 건넬 이야기를 쓰겠다는 다짐이 그를 더욱 작가로 만든다. 그가 더 나은 작가가 되고 싶다면, 그건 맷돌이에게 지금의 셋방보다 더 너른 방을 만들어주고 싶어서다. 정지음의 이야기는 모두를 향한 외침이 아니라 너를 향한 편지고, 나를 향한 화해다. 여러모로, 새로운, 작가의, 탄생이다.
  • 2022년 04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