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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슬기의 이작가야

작가 정지음 ①

새로운 작가의 탄생, 나는 나를 위해 씁니다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정지음
제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을 받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는 《젊은 ADHD의 슬픔》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등이 있다.
“스티브 잡스나 에디슨도 ADHD라지만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내가 아이폰이나 전구에 버금가는 발명을 하지 않는 이상,
그들과 동등해진 느낌에 기쁠 수는 없을 것이었다.
희망이 옅어질 때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고 싶었다.
작가가 한국의 미혼 여성 ADHD이고,
자기애로 가는 걸음마 중이라면 더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없었다.

다른 ADHD들도 나처럼 새하얀 밤과 깜깜한 낮을 보내는지 궁금했다.
친근하고 정중하게 안부를 묻기 위하여, 일단 나의 이야기를 썼다.
모자란 글들을 초대장 삼아 전송할 수 있다면,
나의 해묵은 패배감도 즐거운 파티의 호스트가 될 것이었다.”
-
《젊은 ADHD의 슬픔》 중


아무도 파티에 초대해주지 않아 스스로 호스트가 됐다. 25세 미혼 여성이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 진단을 받았을 때 그가 느낀 건 박탈감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학교에, 성인이 된 후로는 조직과 생활에 부적격하다 느꼈던 과거의 시간들을 통째로 환불받고 싶었다. 학창 시절엔 ‘쟤는 학교에 왜 다닐까’라는 이야기를 듣다가, 커서는 회의 시간에 홀로 공상에 빠지고, 중요한 미팅을 깜빡하고, 흡연과 음주 욕구에 굴복했다. 부주의하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더 부주의해지는 일은 개인의 의지 문제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그는 후회와 회한에 젖는 대신 파티를 열었다. 성인 ADHD 발병률은 약 4%, 82만 명이 겪고 있으리라 추정되지만 실제 치료를 받는 건 1% 남짓이다. 정지음 작가는 “나는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고, 이는 어릴 적의 발달장애를 바로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적는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함께 살아내보자고 한다. “모자람은 꽤 괜찮은 친구”라고 손을 내민다. 그의 손을 맞잡은 이들이 많아 그의 글 《젊은 ADHD의 슬픔》은 제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받았고, 곧 동명의 책으로 출간됐다.

문예창작과를 나왔고 작가를 꿈꾸던 시절도 있었지만 신춘문예나 문학상을 노리지는 않았다. 대신 스마트폰에 엄지 두 개로 자신의 이야기를 꾹꾹 눌러 썼고, 이 글이 첫 작품이 됐다. 이제 그를 만나는 이들은 그에게 ‘작가’라고 부른다. 초대받지 못한 문 앞에서 고개를 떨구기보다 누구나 환대받을 수 있는 파티를 열어버리는 사람, 정상 세계의 문턱이 높다면 비정상 세계를 즐기는 법을 탐구하는 이 작가는 최근 두 번째 책도 냈다.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안전거리에 미치지 못해 미쳐버린 관계에 대한 에세이다.


‘지음’이라는 이름은, 곧 글을 ‘지을’ 운명을 내포하고 있었을까요.

“‘지음’은 제가 지은 이름인데요, 컵라면 익는 시간보다 빠르게 정한 것 같아요. ‘정아무개가 지음’ 줄여서 정지음이 됐어요. 당시엔 아무 생각 없었는데 정말 어떤 운명이 작용했는지도 모르겠어요(웃음). 한자는 《젊은 ADHD의 슬픔》 대만 출간 계약 때 필요해서 덧붙였어요. 알 지(知)에 읊을 음(吟)인데, 작가라는 직업이 아는 바를 읊는 사람이니 뜻이 좋지요.”


브런치 프로젝트 대상을 받고 첫 책이 나온 뒤 “컵라면 익는 시간보다 빨리 지은” 이름 정지음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처음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스마트폰 중독에 대한 초조함 때문이었어요. 하루 종일 의미 없이 폰만 보는 제 모습이 너무 싫었어요. 그런데 폰을 놓을 수도 없더라고요. 그럼 차라리 이 나쁜 버릇을 이용해보자, 싶어 엄지 두 개로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처음 수상 소식을 접했을 땐 뭔가 행정상의 문제가 발생했나 해서, 혹여 취소되더라도 마음 상하지 말자는 다짐까지 했어요. 《젊은 ADHD의 슬픔》 출간 후로는 새로운 이름, 새로운 직업, 새로운 친구와 동료, 독자님들이 생겼고 그만큼 저의 세상도 확장됐죠. 사실 저는 오랫동안 저 자신을 한심해하고 있었는데요. 출간은 그 지겹고 견고한 프레임이 비로소 깨지는 사건이었어요. 스스로 깬 것인지, 누군가 내 껍질을 깨준 것인지 생각하면 조금 헷갈려요. 둘 다 맞을 수도요.”


첫 책은 25년에 걸친 ‘ADHD 여성의 생존기’로 읽히기도 합니다.

“7년째 같은 정신과에 다니며 같은 원장님께 진료를 보고 있어요. 솔직히 치료가 늘 순탄하지만은 않아요. 저는 질리도록 자주 원점으로 돌아오고, 저 자신이라는 걸림돌을 넘지 못해 자빠져요. 치료 초기엔 ‘나도 언젠가 일반인이 될 수 있겠지?’라는 기대에 부풀기도 했어요. 하지만 인간 개조는 의학이 아니라 판타지 영역이더라고요. 전 이제 ‘완벽한 나’보다 ‘완전한 나’를 원해요. 돌이켜보면 ‘완벽’처럼 부자연스러운 상태도 없는데 왜 그리 집착했는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긴 치료를 통해 결과보단 방향을 바꿀 줄 아는 사람이 됐고 그게 제 치료의 궁극적인 성과예요.”


그 선생님께서 두 번째 책이 잘 안 쓰이는 이유는 정지음의 실패가 아닌, ‘성급한 과몰입의 실패’라는 진단을 내려줬죠.

“첫 책도 급하게 꾸리긴 했는데 두 번째 책 일정은 더 타이트했어요. 송사리가 범고래 신경 쓰는 격이긴 하지만, 대선 시즌을 피하고 싶었거든요.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를 쓰면서 부담도 느낄 시간이 주어져야 느낄 수 있구나, 너무 바쁘면 부담조차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구나, 싶었어요.”


그럼에도 무사히 두 번째 작품이 나왔습니다.

“‘책’이 작가에겐 작품이지만 시장에선 상품이란 생각을 자주 해요. 어떤 물건이 팔리거나 팔리지 않는 데는 수많은 이유가 있고 일일이 예측할 수도 없죠. 저는 제 작품의 운명을 모른다는 것만을 알 수 있는데, 이 상태에 불안보다는 자유로움을 느껴요. 그리고 어차피 제 인생의 그래프들은 차분할 때가 없었어요. 기상부터 취침시간, 몸무게, 통장 잔고, 시험 점수 전부 널을 뛰는데 그 와중에 작품 성과만 안정될 리 있을까요(웃음). 성과란 어차피 불확실이 기본값이니 미리 걱정하지 말자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성급한 과몰입’은 글 작업과 일상뿐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너른 영향을 주고 있었다.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전혀 없음에도 사람에 대한 판단만큼은 기민했다.
특히 새로운 친구나 연인 후보 앞에서는 늘 무도회에 지각한 초보 공작새처럼 굴었다.
저 사람이 1초라도 빨리 나를 좋아할 수 있도록,
그래서 내가 그 사실에 안심할 수 있도록 속전속결 나를 펼치려 들었다.”
-
《우리 모두 가끔은 미칠 때가 있지》 중



두 번째 책에서도 격정적인 솔직함이 읽히는데요.

“출간 계기는 평범했어요. 출판사 대표님께서 ‘인간관계’에 대한 에세이 작업을 제안하셨고 제가 수락했어요. 첫 작품과의 공통점이라면 역시 ‘솔직함’이겠죠. 다 드러내도 괜찮을 만큼 훌륭한 인품은 아니지만 저를 꾸며내는 일에 서툴러서 솔직할 수밖에 없었어요. 장식에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들잖아요. 저는 성격이 너무 급해서 그 조밀한 과정들을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웃음). ‘이게 내 개성일까? 단점일까?’ 고민했는데, 조절할 수 있다면 개성이고 없다면 단점이겠죠.”

〈유슬기의 이작가야, 작가 정지음 2편으로 이어집니다.〉
  • 2022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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