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나다움을 묻다

박연준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온 삶 그리하여 원하는 대로 ‘쓰는 사람’

글 : 박연준 시인  / 사진 : 서경리 기자

박연준
시인. 이 시대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젊은 시인 중 한 명.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밤, 비, 뱀》, 산문집 《소란》 《쓰는 기분》 등을 썼다.
단골로 다니는 동네 미용실 사장님이 한 달 동안 문을 닫고 쉬겠노라 선언했다. 한 달이라면 금방이지, 고개를 끄덕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달? 문을 닫아? 동네 미용실이? 이유를 물으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20년 동안 한 번을 제대로 쉰 적이 없거든요. 도저히 못 버티겠다 생각한 게 5년 전인데, 여태까지 끌고 온 거예요. 좀 쉬고 싶어요.”

사장님은 한 달 동안 절에 머물며 몸과 마음을 돌볼 생각이라고 했다. 사실 자신은 내성적인 성격이라 손님에게 말을 걸며 응대하는 일이 쉽지 않았단다. 손질한 머리를 손님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까 봐 노심초사한 세월도 길다고 했다. 나는 미용실에 작은 텔레비전 한 대를 놓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놓으면, 내성적인 사장님이 혼자 끙끙대며 손님을 응대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만 제대로 하면 됐지, 뭘 더 바란단 말인가.


내 영혼과 몸이 하나가 되길

번아웃은 ‘나 아닌 상태’로 무언가를 이루려 오랫동안 애쓸 때 일어난다. 누군가 내게 ‘노력’을 요구할 때 뒷걸음질 치는 이유는 외부에서 요구하는 노력이 나를 상하게 할 위험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나도 온갖 것을 위해 노력했다.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얻고 갖고 넘고 오르기 위해 노력했다. 스스로 원해서 하는 노력은 사람에게 성취감을 주고(물론 좌절감도 주지만) 삶의 의욕을 갖게 한다. 반면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노력, 남들을 따라서 하는 노력은 나를 지운다. 이러한 노력은 인생을 무겁게 만든다. 의무감으로 살게 하고 삶을 버터야 할 시간으로 느끼게 한다.

나는 오랫동안 하기 싫은 일을 덜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건 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회사에 취직해도 그만두고 다시 들어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누군가는 내게 인내심이, 사회성이, 투지가 부족하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때 나는 인내심도 사회성도 투지도 부족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나’를 잃고 싶지 않았다.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에 끼어 함부로 나를 굴리다 타성에 젖은, 비루한 영혼을 갖게 될까 봐 두려웠다. (이쯤에서 웃으시라. 나는 진지했고, 지나치게 진지한 사람은 언제나 우스꽝스러운 법이니까.)

내가 바라는 건 하나였다. 내 영혼이 내 몸과 하나가 되게 해주세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간극이 지나친 나머지 정신에 때가 끼지 않게 해주세요. 부디 ‘나’로 살게 해주세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연필을 쥐고 시를 쓸 수 있을 만큼만, 딱 그만큼만 ‘살아’ 있게 해주세요. 나는 발버둥 쳤다. 계약직으로 떠돌며 늘 가난하고 불안했지만 나를 잃지 않는 데 성공했다. 결국 나는 원하는 대로 쓰는 사람이 됐다.


물푸레나무나 민들레처럼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나는 누구의 것도 아닌 ‘나’로 태어났을 것이다. 나는 젊고 미숙한 부모를 위해 태어난 게 아니고, 나무나 태양을 위해서 태어나지도 않았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는 더욱 아니고, 물푸레나무나 민들레처럼 ‘어쩌다, 그냥, 그렇게’ 태어났을 게다. 내가 태어났다고 꽹과리를 치며 즐거워하는 사람도 없었고, 키울 수 없으니 내다 버리자고 모의한 사람도 없었다. 나는 세상에 돋아났고, 자랐고, 머물렀다. 사람은 변할 수 있지만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본성이란 ‘본디부터 가진 성질’인데 갖고 태어난 걸 어떻게 버릴 수 있겠는가. 우리는 모두 스스로 ‘자연인’이었다. 자기 본성에 맞는 삶을 살도록 태어난 자였다는 얘기다.

어른들은 언제나 미래를 위해 현재의 즐거움은 희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중에 잘 살려면, 커서 돈을 많이 벌려면, 늙어서 편하게 지내려면……. 어른들은 현재의 작은 행복을 ‘미래’라는 큰 이름의 저금통에 저금하라고 가르쳤다. 지금의 행복을 쓰지 않고 저금하면, 미래에 더 큰 행복을 한꺼번에 맞이할 수 있을 거라 했다. 지금 자지 않고 공부하면, 지금 놀지 않고 일하면, 지금 하고 싶은 걸 참고 하기 싫은 것들을 해내면 더 큰 행복이 올 거라고 했다. 과연 그 커다란 행복은 우리 앞에 도착했는가?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행복할 가능성은 없다. 행복은 체험이다. 많이 겪어본 사람이 더 자주, 쉽게 겪을 수 있다. 유년에 저금해둔 행복을 한꺼번에 찾아, 즐겁게 누리는 어른을 본 적이 없다. 참고 또 참은 아이는 욕구불만과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어른으로 자랄 뿐이다. 게다가 어른이 되어서도 해야 할 저금은 끝나지 않는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스펙을 쌓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종잣돈을 모으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적금을 붓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재테크에 뛰어들며, 미래의 행복을 위해 대출 받아 집을 사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불합리한 일과 고된 노동을 참아야 한다. ‘나중’이란 시간은 도착하면 또 멀어진다. 미래는 언제나 미래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즐거움을 포기하는 게 만성이 되면 인생은 서바이벌이 된다. 살아남기. 나중을 위해 다만 살아남기.



돈이 필요한 진짜 이유는…

생각해본 적이 있다. 우리는 왜 일확천금을 꿈꾸는가? 로또를 사는 사람들, 주식이 올라 한꺼번에 큰 수익을 얻을 수 있길 바라는 사람들, 장래희망이 건물주라는 사람들은 어쩌면 한탕주의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은 다만 바라는 거다. 돈을 넘치게 가져 더 이상 ‘나 아닌 나’로 살지 않아도 되기를, 그냥 ‘나’로 살 수 있기를! 엄청난 돈을 갖게 된다면 뭘 하고 싶냐고 물었을 때 새로운 일을 도모하거나 큰 사업을 벌이겠다고 답하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대부분은 여행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사고 싶은 것을 사며 여유롭게 살고 싶다고 답한다. 그러니 우리 꿈은 엄청난 부자가 아니라 ‘나로 살기’일지 모른다. ‘나 아닌 나’로 살 위험에서 벗어나기. 싫은 일을 덜 하고 불안감에 떨지 않으며 안전한 환경에서 ‘나’로 살기. 내 생김 그대로 살기.

그런데 정말, 나로 살기 위해 일확천금이 필요한 걸까?

타인에 의해 인생을 침범당하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데 정말 필요한 건 뭘까? 물론 돈이 있어야겠지만 꼭 돈에 관련한 문제는 아니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할 정도의 용기는 아닐 게다.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자기를 잃을 수 없다. 나다움? 그건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그에 맞춰 행동할 때 몸에 배는 것이 아닐까?


‘나’라는 가장 편한 안식처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가장 눈치를 봐야 할 사람은 나다. 내 인생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우리는 흔들린다. 나는 무얼 원하지? 어디에 있고 싶지?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내 노력을 내가 결정하기. 당신이 아니라 날 위해 노력하기. 싸울 가치가 있을 땐 싸우기. 끊임없이 나로부터 떠나 다시 나로 돌아오기.

“떠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자기 자신의 현실 속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끝과 시작처럼 떠난다는 것과 되돌아온다는 것은 하나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1)

‘나’는 스스로에게 가장 편한 안식처다. 나 아닌 다른 곳에 발을 디디고 있으면서 내 삶이 안온하길 바랄 순 없다. 지금 있는 곳이 내내 불편하다고 느낀다면 우선 떠나야 한다. 나로부터, 내가 떠나야, 나에게로 돌아올 수 있다.

1) 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난다
  • 2022년 01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