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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펴낸 정지돈 작가

소설가 지돈씨의 일일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제공 : 정지돈 

1930년작 박태원의 단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구보씨가 하루 동안 도시를 거닐며 일어난 일을 적은 소설이다. 모더니즘 소설로 구분되는 이유는 특별한 기승전결 없이 새벽까지 글을 쓰다 느지막이 일어난 구보씨가 경성 거리를 거닐며 보는 풍경과 드는 상념을 적은 게 전부여서다. 구보씨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며 “대체, 그애는, 매일, 어딜, 그렇게, 나가는, 겐가” 생각한다. 동경까지 유학을 다녀오고도 직업과 아내를 갖지 않은, 스물여섯 살짜리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어디 월급자리라도 구할 생각은 없이, 밤낮으로,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고, 혹은 공연스레 밤중까지 쏘다니고 하는 아들이, 보기에 딱하고, 또 답답하였다.”

2021년 소설가 정지돈 작가는 현대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에세이 버전으로 써보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에세이는 출판사에서 주간으로 연재됐고 한데 모여 산문집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으로 나오게 됐다. 부제는 ‘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

“보스니아의 소설가 알렉산다르 헤몬의 에세이집 《나의 삶이라는 책》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나는 소설은 쓰지 않을 수 없어 쓰지만, 비소설은 누가 강요해야만 쓴다.’ 제 심정도 정확히 이와 같았습니다. 청탁과 마감이 곧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가끔은 혼자서 쓰고 싶은 글을 쓸 때보다 더 좋기도 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주도해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타의에 의해, 다른 사람의 이끌림에 의해 스스로도 생각지도 못한 곳에 다다르기도 하니까요. 이번 책이 그런 경우인 듯합니다.”

그는 지난가을 파리에 석 달간 체류했다. “서울과 파리의 모더니스트들이 가진 젠더와 인종적인 한계를 사유해 현대적 의미의 플라뇌르(도시산책자)를 재발명”하는 게 목표였다. 정지돈 작가는 책에 이렇게 썼다.

“솔직히 말하면 플라뇌르는 지겨운 개념이다. 도시 산책에 관한 대부분의 글 역시 억지스럽고 따분하다. 플라뇌르의 이중성, 상품과 여성을 소비문화로 누리면서도 산업화의 속도를 거부하고 도시의 숨겨진 가능성을 발굴하는 저항적인 태도는 의미화하기엔 너무 궁색하다. 예술을 하는 사람 중에 소비문화를 누리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으며 자본주의에 비판적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중




“걷는 행위는 빈곤한 동시에 부유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도시 전체가 커다란 몰(mall)이 되어버린 현대 사회에서 산책은 쇼핑으로 귀결되고 차를 타든 길을 걷든, “결국 쇼핑 말고는 할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그런가 하면 리베카 솔닛은 《걷기의 인문학》에서 이렇게 말한다. “걷는다는 것이 권력이 없고 지위가 낮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리고 동시에 이와 같이 말한다. “사람들이 안 걷게 된 것은 길을 걸을 만한 장소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걸을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걷는 행위는 빈곤한 동시에 부유하다.”

정지돈 작가는 동국대학교에서 문예창작과 영화를 공부했다. 그는 대구에서 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던 대학생 시절 비슷한 처지의 친구와 청담동에 놀러 갔다가 놀란 적이 있다고 했다. 거리에는 사람이 없는데 카페에는 사람이 많아서다. 차를 타고 청담동에 도착해 발레파킹을 맡긴 뒤 카페 안에 들어온 이들, ‘서울의 불쾌하고 못생긴 것과 마주치지 않고’ 카페에 도착한 이들이기도 했다. 평일 낮에 지하철을 타고 걸어서 청담동에 간 건 빈곤한 행위였지만, 평일 낮에 청담동 카페에 차를 세워두고 차를 즐길 수 있는 건 부유한 행위였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살면서 인상 깊었던 경험, 기억에 남은 산책 등을 떠올리며 글을 썼고요. 그리고 파리에서는 산책과 문학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플라뇌르라는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개념이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사유될 수 있는지 염두에 뒀던 것 같습니다. 파리의 관광객들, 쇼핑센터나 백화점, 센강이나 생마르탱운하, 공원들을 실제로 걷고 나니 20세기 초반 파리의 초현실주의자나 철학자들이 조금 더 이해가 되는 느낌이기도 했어요.”

산문집이라는 장르의 특성은 정지돈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사유도 좀 더 많이 불러낸다. 하지만 그는 소설을 쓰는 마음과 다르지 않은 마음가짐으로 글을 썼다.

“보통 작가들이 산문을 쓰기 어려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최대한 소설과 유사하게 접근하려고 했어요. 화자의 개성이라는 측면에서 소설처럼 화자로서 새로운 페르소나를 만들었다고 할까요.”

정지돈 작가의 글은 숱한 참고서적과 이 책들의 이론과 증언으로 직조된다. 그는 ‘쓰는 이’인 동시에 ‘읽는 이’다. 방대한 참고자료와 폭넓은 배경지식은 그의 이야기의 층위를 일차원에서 이차원으로, 이차원에서 다시 사차원으로 확장한다. 황예인 문학동네 문학팀장은 “정지돈 작가의 글에는 흔히 기대하는 어떤 것들이 전혀 없다고 느껴진다”고 했다. 2013년 등단 때부터 그의 문학에는 호기심과 불편함이 뒤섞여 있었다. 러시아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정말로 진지한 작품에서는 갈등이 등장인물과 인물 사이에서 일어나지 않고 독자와 작가 사이에서 일어난다”고 했다는데 정지돈 작가의 작품이 그렇다. 그의 작품은 독자의 익숙한 독법에 제동을 건다. 그의 등단작은 〈눈 먼 부엉이〉다. 다니던 출판사의 영업직을 그만두려고 사표를 쓴 날, 등단 소식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영업사원이 되기 전까지 한 번도 영업사원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심지어 출판사에 지원할 때조차. 영업사원이 된다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런 의미일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하지 않는 종류의 사람이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영업부에서 일했던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영업부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아마 문학에 대한 터무니없는 환상을 지금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매혹당했다”

전업 작가가 된 이후 그는 2015년 〈건축이냐 혁명이냐〉로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았고, 2016년 〈창백한 말〉로 문지문학상을 받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조차 거리를 두는 작가는 소설 속 인물들을 구상할 때도 빙의하지 않는다. 거리를 두고 접근한다. 당시 심사위원은 “작가의 서사적 의지는 오늘의 문학장에 새로운 도전장을 흥미롭게 제출하며, 서사적 탈주는 우리 시대 서사적 소명의 핵심을 지시한다”고 했다. 그의 글처럼 예사롭지 않은 평이다. 쉽게 말해 그의 글은 ‘잘 쓰인 글은 쉽게 읽히는 글’이라는 성급한 일반화에서 벗어난다. 어렵게 읽히고 끊어 읽힌다. 러시아 문학 연구자 김수환 교수는 정지돈 작가를 일컬어 “무의미한 것에 박식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현재 시간에 미래 시간을 살고, 미래 시간에 과거의 시간을 산다. 이번 산문의 주제인 ‘도시 산책’ 역시 과거와 미래를 걷는 일이다. 그의 벗 오한기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산책을 할 때는 현재와 연애하지 않는다. 과거나 미래와 연애한다. 그러나 과거나 미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과거는 슬프고 미래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산책은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와 그가 좋아하는 벗들의 글에는 슬픔과 유머가 있다. 유머는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 중 하나다. 그는 소설집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친밀한 사이에서 오간 실없지만 웃긴 대화 같은, 그런 글을 생각하고 쓴 건 아닌데 써놓고 보니 그렇게 됐다. 모두 성공적이지는 않다. G. K. 체스터턴은 말했다. 근엄해지기는 너무도 쉽다. 실없어지기는 너무도 어렵다.”
-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중


그의 작품은 종종 전시에 비유된다. 각각의 이야기가 여러 개 층위를 가지고 있고 늘 오해의 여지가 있으나 의도를 애써 해석해주기보다 독자에게 맡긴다는 점에서다. 독자는 그의 책을 읽는 동시에 스스로 행간을 채워 넣어야 한다. 실제로 정지돈 작가는 2018년 〈베니스건축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참여한 바 있다.

“스무 살 때부터 4, 5년 정도 친구들과 같이 자취를 했는데요, 친구들 모두 건축과 학생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흥미가 생긴 듯합니다. 알수록 흥미로웠던 건 건축이 예술과 공학 사이에 있으며 자율성을 추구하면서도 시장과 건축주, 국가의 통제나 직접적인 요구 아래에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가능하거나 불가능했던 지점들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그와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울과 파리의 어느 골목을 걷는 사이, 책은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 간다. 책의 뼈대는 농담이지만 그 속살은 도시와 건축과 역사와 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관찰로 빽빽하다. 오르막길과 계단을 포함해 꽉 찬 만 보를 걸은 기분이다. 정지돈 작가는 “글은 작가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알고자 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을 한 바 있다.

“알고자 하는 과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계, 타인, 사물 등등 무언가에 대한 호기심이 없다면 글을 쓰지 않을 것 같아요. 제 글이 정확한 통찰이나 대단한 감동, 깨달음을 주진 못할 수도 있지만, 알아가고자 노력하는 과정에 함께 참여하고픈 마음이 들게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에게는 그런 과정이 행복한 꿈을 꾸는 것과 같은 가장 큰 기쁨입니다.”

1930년대 모던보이 박태원의 구보씨는 당대에는 제대로 읽히지 못했다. 의식의 흐름으로 쓴, 단어마다 분절된 당시로서는 생경한 소설은 훗날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작’으로 분류된다. 현재 문학의 틀은 어쩌면 정지돈 작가의 글을 다 담지 못할지도 모른다. 훗날 그의 글은 어떻게 분류될까. 후대의 독자는 지돈씨의 일일에서 2021년 ‘포스트모더니즘’의 거리를 읽게 될 것이다.

“나는 언제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매혹당했다… 누구를 위해서 글을 쓰지? 진정한 작가는 자기 자신을 위해 글을 써야 한다. 그러나 그건 더 이상 이유나 동력이 되지 않는데 갑자기 열차 안에서 떠오른 것이다. 새로운 독자가. 다른 곳에 있지만 나와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고 하지만 내가 아닌 그런 사람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고 나는 어쩌면 처음부터 그런 사람들을 위해 글을 써왔는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 《모든 것은 영원했다》 중
  • 202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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