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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농부

문승환 제주오라 대표

메밀꽃 피는 ‘제주로 오라’

글 : 서경리 기자  / 사진제공 : 제주오라 

농업이 뻗어나갈 수 있는 산업군은 무궁무진하다. 잘 키운 메밀, 잘 가꾼 메밀밭으로 원물 판매와 더불어 가공품, 체험농장까지. 농부의 아이디어 하나만 있으면 보리 농장은 1차 산업에서 6차 산업까지 확장된다. 제주 메밀을 가공해 파는 브랜드 ‘제주오라’ 문승환 대표는 농업의 확장성에 주목한다. 그는 유채와 청보리, 메밀을 이용해 생산자에서 판매자로, 체험농장 대표로, 축제지기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제주도 한라산 중산간의 오라동. 제주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너른 들판에는 매년 봄가을이면 희뿌연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한라산을 등지고 펼쳐진 99만 1700여㎡(약 30만 평)의 메밀밭은 농업회사법인 오라의 농장이다. 해발 500m 지점 얕은 돌담과 나무로 둘러싸인 농장은 누구나 드나듦이 자유롭다. 이곳에서 문승환 대표는 메밀을 비롯해 유채, 청보리, 귀리, 콩, 도라지 등 다양한 작물을 키워내며 제주 자연 경관을 함께 나누고 있다.

“처음부터 농장을 개방하려 한 건 아니에요. 사진작가나 도보 여행객들이 농장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며 입소문을 탔고 몇 해 전부터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농산물 피해도 컸어요. 관광객들이 흔하게 구경하는 코스모스나 유채밭처럼 관광농원으로 여긴 거죠. 자연스러운 심리예요. 이왕 이렇게 된 바 모두와 제주 경관을 나누자, 그러면 제주 메밀을 알리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바꿨죠.”

농산물 가공 브랜드 제주오라의 모체인 농업회사법인 오라는 문승환 대표의 아버지, 1세대 농업인 문성욱 대표가 오랜 영농 경험을 기반으로 다진 터전이다. 지역 농협에서 근무하던 문승환 대표는 2016년 본격적으로 가업을 이어받으며 농장에 뛰어들었고 이듬해 브랜드 제주오라를 냈다.

청년 농부로 그가 주목한 건 농업의 확장 가능성이다. 경험과 기억에만 의지해 농사지어온 부모 세대의 농업이 아닌 철저한 데이터에 기반해 농장을 운영하고, 다양한 산업군과 연계해 가공품을 만들거나 농장을 관광 상품으로 확장해나갔다. 이를 통해 평균 연매출 7억 5000만 원의 수익을 올리며 오라의 농업 경영 전반을 책임지는 전무로, 브랜드 대표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서른, 메밀밭에 뛰어든 청년

유채꽃이 활짝 핀 오라농장. 한라산을 등지고 펼쳐진 너른 들판에는 철마다 유채와 청보리, 메밀이 번갈아 꽃을 피운다.
농사는 자연이 짓는다는 말이 있다. 적절한 볕(온도)과 비(습도)가 내려야 싹도 잘 트고 농작물도 야무지게 열매 맺는다. 하지만 자연은 농부에게 늘 너그럽지만은 않다. 제주오라 농장에도 역시나 여름 불청객 태풍이 메밀밭을 휩쓸고 갔다. 속이 쓰릴 법도 한데, “연간 농사짓는 체계를 다양화해서 농장 운영에는 어려움이 없다”며 “속상할 틈 없이 지금은 콩 수확으로 바쁘다”고 답하는 문 대표의 목소리는 오히려 기운차다.

“부모님이 평생 힘들게 농업을 일궈왔는데, 갑작스러운 호우나 가뭄, 이상기온 같은 기후 변화로 농업 상황이 더욱 힘들어졌어요. 농업을 유지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모작 등을 통해 작곡 체계를 다양화하고 다른 산업과 연관시키게 됐어요. 작물로 가공품을 만들어 저장성과 부가가치를 높이고 농장을 관광지로 만드는 거죠. 농업을 새로운 창업의 기회로 봤어요. 청년 농업인으로서 세련된 농업, 강한 농업, 안정된 농업을 추구하면 가능성이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론을 이용해 30만 평 밭의 방제 작업을 하는 문승환 대표. 그는 농장의 기계화, 현대화 작업으로 인건비를 절약하고 농사에 들이는 시간을 줄여 효율을 높이고 있다.
서른 무렵 가업을 이어받은 그는 “부모님이 평생 땀으로 일궈온 농장에서 어느 하나 허투루 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청년 농부로서 꿈을 키우기 시작한 그는 1차 산업에 집중된 영농구조의 다양화를 꾀하고 각종 산업군과 연계해 지속 가능하고 안정된 농업의 발판을 만들어갔다. 이를 위해 체계적인 영농 경영이 필요하겠다 싶어 제일 먼저 ‘영농 경영일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일군 농업, 농작물 생산은 누구보다 잘해오셨다고 생각해요. 선도 농업인들처럼 대한민국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 세대의 농사는 경험이 알려준 정보를 전적으로 의지해요. 작물 파종이나 비료 주는 시기에 실수가 있기 마련이죠. 이러한 실수를 줄이기 위해 매일 영농 경영일지를 통해 농사 데이터를 기록하고 운용하는 데 신경 쓰고 있습니다. 비료대나 종자 구매 비용부터 농작물 수확 후 결산을 통해 수익률을 파악하고 다음 농사를 준비하는 식이죠.”


농업의 무궁무진한 확장성

메밀 수확철. 곡물로 가득 찬 공장.
농장 경영 체계를 다지며 다양한 산업군과 연계도 꾀했다. 그는 지역 농협에서 일할 때 농산물 수매와 판매 등 유통 과정을 지켜보며 지금의 유통 구조에 기대어서는 농장 운영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봤다. 지속 가능한 농업을 고심하던 그는 가공과 판로 확장으로 사업을 넓혀갔다.

“농업은 우리 식생활과 관련한 가장 중요한 산업이에요. 농업을 다양한 산업과 연계해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보리를 재배한다면, 원물로만 팔 수도 있지만 이를 튀겨내면 보리튀밥이 되어 가공품으로 내보낼 수 있고, 튀밥을 이용해 농장을 관광지화할 수도 있어요. 또 튀밥 만들기 체험을 하며 방문객과 소통할 수 있고요. 농업은 다양한 산업과 연계하면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죠.”

가공은 농산물 저장성에서도 유리할뿐더러 원물 그대로 판매할 때보다 가치가 더 올라간다. 문 대표는 메밀싹을 이용한 기능성 분말 제조 관련 특허를 내며 가공품 생산을 이어갔고, 자연재해를 입더라도 독자적인 기술을 이용해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제주 관광 명소로 거듭난 제주오라의 메밀밭. 문승환 대표는 청정 제주의 자연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농장을 개방해 메밀꽃 축제를 열고 있다.
판로도 확장했다. 잡곡류는 ‘제주오라’라는 브랜드로 각종 오픈마켓에 입점했다. 시중 유통가격에 맞춰 대량 출하 납품만 해온 부분을 소포장으로 가치를 올렸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요즘, 소포장은 소비자가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 판매 수익도 올랐다.

농장 운영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인건비다. 농업회사법인 오라의 직원은 단 두 명. 문 대표와 그의 아버지다. 농번기에만 잠시 일손을 빌리는데, 농촌의 고령화가 이어지며 이마저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는 농장의 자동화 설비로 눈길을 돌렸다. 초경량비행장치 운용 자격증을 취득해 드론으로 방제하고 최신형 트랙터로 생산 효율을 높였다. 4차 산업혁명에 발맞춰 농업도 변화한다면 더 잘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런 문승환 대표의 노력으로 오라는 ‘6차 산업 인증’과 ‘한국인기브랜드대상 곡물가공 부문 대상 수상’ ‘기술평가 우수기업 인증’ ‘무농약농산물 인증’ 등을 받으며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다. 또 문 대표는 ‘농협중앙회제주지역본부장 표창’ ‘2020년 우수농업인 청년농업인 부문 대상’ ‘차세대농어업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표창’ 등을 받았다.


제주 메밀의 세계화를 꿈꾸다

메밀꽃이 만발한 제주 한라산 중산간의 오라농장.
문승환 대표의 요즘 고민은 제주 메밀 알리기다. 메밀로 유명한 지역은 평창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청정 자연에서 자라 맛 좋은 제주 메밀이 덜 알려졌다는 아쉬움이 크다. 그의 노력으로 최근 미국에서 제주 메밀 수입 요청을 해와 수출용 메밀 제품 현지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농업회사법인 오라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진행하는 ‘식량작물공동경영체육성사업’에 선정돼 메밀 공동 경영체 육성사업을 진행 중이다. 25개 농가와 협업해 메밀 단지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업의 전반적인 기획은 오라가 맡고 있다. 유채꽃이 아닌 메밀꽃 보러 제주 가자는 말이 유행처럼 번질 날을 기대해본다.

오라농장에서는 2015년부터 매년 ‘제주오라 메밀꽃축제’를 열고 있다. 영농보다 큰 수익을 얻진 못하지만, 제주의 풍광을 공유하고 지역 관광도 살리기 위한 결정이었다. 위드코로나로 전환되면서 서서히 방문객이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브랜드 제주오라는 원물의 대량 납품 외에도 1인 가구에 맞춘 소포장과 원물 가공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매일 보는 자연이지만, 농사지으며 숨이 턱 막히게 풍광에 취할 때가 있어요. 시간에 따라 보이는 풍경도 다르고요. 맑았다가 한순간에 먹구름이 몰려와 소나기를 쏟기도 하죠. 우리 삶도 그래요. 2년 동안 우리 힘들었잖아요. 이제 위드코로나 시대가 왔으니, 서서히 메밀밭을 방문하는 사람들과 소통을 이어가려고 해요. 제주 자연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도록 다양한 메밀 체험을 만들고 소통하며 축제를 이어가고 싶어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다. 문승환 대표는 한 해 농사가 잘될수록 자연이 주는 감사함에, 또 농장을 찾아주는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겸손하고 정직하게 농업을 이어가려 한다.

“브랜드 제주오라는 제주시 오라동에 있는 오라농장의 이름을 따서 지은 거지만 ‘제주로 오라’는 의미로 자연스럽게 연결돼요. 제주에 오는 모든 분들을 모시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 202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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