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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슬기의 이작가야

김숨 작가

숨죽인 이들에게 숨 불어넣기

일제에 강제 동원된 위안부 20만 명,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 17만 명… 그들은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숫자로 기록될 뿐이나 각자의 인생은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살았을 것이다. 그 각각의 삶이 얼마나 핍진했을지, 급작스레 뿌리가 뽑힌 채 부유해야 하는 여정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살아보지 않은 우리는 감히 짐작할 수 없다. ‘뿌리 뽑힌 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침묵 속에 담긴 말을 찾아내는 건 남은 자의 몫이다.

김숨 작가는 그 몫을 사력을 다해 해내고 있다. 그는 위안부에 대한 책을 여러 편 썼다. 소설집 《한 명》 《흐르는 편지》 《듣기 시간》, 증언집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등이다. 극동 연해주에서 화물열차에 태워져 중앙아시아로 이주당한 고려인에 대한 이야기는 4년간의 집필 끝에 《떠도는 땅》으로 발간됐다.


김형중 문학평론가는 “결코 완전하게 재현될 수 없는 고통의 자리, 그래서 결함적으로만 재현 가능한 그 영역을 문학 말고는 다른 걸로 해낼 수 없는데 김숨이 소설로 그 지평을 열고 있다”고 했다. 작가는 여러 번 말을 고르며 신중하게 말했다.

“힘든 이야기 그리고 끔찍한 이야기… 어떤 피해자들의 이야기일수록 더 정제된 문장으로 남기고 처절함도 문학적으로 풀어내는 게 그들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을 어느 순간 하게 됐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히 문학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또 다른 가해나 폭력이 되지 않기 위해서 절제되고 승화된 표현을 하고 싶은데 그게 고민이에요. 그게 잘 됐는지 아닌지는 제가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요.”

“피해자 중 한 분인 훈 할머니 말씀처럼 ‘개나 고양이만도 못한’ 시절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 기품과 위엄, 용기를 잃지 않은 피해자들을 볼 때마다 나는 감탄하고는 한다. 내 할머니이기도 한 피해자들이 행복하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부족한 소설을 세상에 내보낸다.”
- 《한 명》 작가의 말


김숨 작가는 고통을 마주 보면서도 눈을 피하지 않는다. 도리어 자신의 눈이 놓치는 부분이 문장의 부족으로 남을까 봐 우려한다. 문학이 문학의 할 일을 하는 것이 피해자이자 생존자, 그의 녹음기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한참을 먹먹히 앉아 있던 이에 대한 예의라 믿는다. 그의 소설이 완결됐어도 끝나지 않은 이유는, 작가가 작품을 아직 보내지 못해서다.


“저에게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씁니다”


책을 내고 나서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보이고 들린다. 그의 책이 연재할 때와 달라지고, 개정판을 낼 때 달라지는 이유다. 그럼에도 또 나오는 이야기는 다음 책에 담긴다.

“쓰고 싶어졌고, 쓰였고, 쓰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 허락받은 느낌이 있어요. 쓰고 싶지만 쓸 수 없는 이야기도 있거든요. 쓸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도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쓰는데 어느 정도의 힘듦은 감당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것으로 인해 제가 받는 고통이나 스트레스가 있다면 그건 저 스스로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게 쓰는 사람으로서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 쓰기는 인간에 대한, 세상에 대한 이해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과정을 좀 더 깊고 진하게 해온 거라 시간이 지나면 깊은 통찰이 저에게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 같은 게 있고요. 그런 걸로 보상이 되는 거 같아요. 쓰는 행위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면서 고통이니까요.”

그는 2015년 단편 〈뿌리 이야기〉로 “인간을 나무에 비유해 산업화와 개발로 인한 현대사회의 황폐함과 현대인의 뿌리 뽑힘 그리고 다른 곳으로의 이주가 초래하는 고통을 문학적으로 승화하는 데 성공한 수작”이라는 평을 받으며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이로써 김숨은 2010년대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을 모두 수상한 유일한 작가’가 됐다.

“책이 나오고 나면 부끄러움이 있어요. 그때가 가장 괴로워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숨어 있고 싶죠. 저는 스스로 문학적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제대로 문장을 배운 것도 아니고 습작하다 등단한 거라, 늘 습작하는 기분이기도 해요. 그런 과정에서 받는 상은 저에게 계속 써도 된다는 위로이자 격려로 느껴지죠.”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들 중 가장 풍부하고 절묘한 표정을 짓는 것은 인간의 얼굴이 아니라 나무뿌리가 아닐까.”
- 〈뿌리 이야기〉 중


2021년 신간 《제비심장》은 2008년에 냈던 조선소 이야기 〈철〉의 후속작이다. 1960~80년대만 해도 조선소는 산업화, 개발의 상징이었다. 육중한 철배는 차세대 먹거리였고, 자본주의 심장이었다. 철인이 된다는 건 노동자에게 자부심이자 자긍심이기도 했다.

지금도 조선업이 상징하는 바는 다르지 않다. 다만 이 커다란 고철 덩어리를 바다에 띄우는 이들은 달라졌다. 이 배에 페인트를 칠하고 용접하고 포설을 하고 발판을 짓는 이들은 하청의 하청을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이며 그중에는 외국인도, 나이 든 여성도 있다. 조선소 주인은 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몰라도 배의 주인이 되고, 조선소에서 배를 만들며 고열의 녹과 먼지와 유리가루를 흡입한 이들은 ‘조선소 노동자’라는 정식 명칭도 받지 못한다. 그 사이 용광로에서 산업 수칙이 지켜지지 않는 일을 하다 목숨을 잃은 이들은 뉴스에 단신으로 스쳐간다.

“수년 전부터 머릿속에 있던 소설이에요. 〈철〉이라는 단편을 냈던 그때와는 다르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늘고 조선소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끔찍한 사고들이 있었고요. 우리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고, 우리 가까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고 결국 우리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마치 우리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무관심 속에 방치돼 있죠. 그걸 좀 알리자, 고발하자 그런 의도를 가진 건 아니었고요. 저에게 있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써보고 싶었고, 조사하다 보니까 그걸 담아내게 됐어요.”

조선소 사람들은 그에게 ‘있는’ 사람들이다. 그건 김숨 작가의 뿌리와도 연관이 있다.

“저는 울산 현대조선소 앞에 방어진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다섯 살에 울산을 떠난 걸로 알고 있고요. 제가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너무 어릴 때라 조선소 마을이 기억에는 없지만) 저에게는 의미 있는 공간이었어요.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저에게 있었고요. 소설가가 되기 전부터요. 그건 저절로 발생하는 인연이겠죠? 제가 억지로 만든 것도, 찾은 것도 아니니까요.”

작가는 해질녘 조선소 앞 건널목에서 키가 무척 큰 백인을 본 게 잊히지가 않는다. 더위가 심한 날이었고 그는 어딘가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 횡단보도 신호등 옆에 서 있었는데 극심한 노동을 한 뒤 영혼이 날아가버린 것 같은, 뺨은 붉고 몸은 땀에 찌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작가와 이야기를 나눌 새도 없이 고된 노동이 끝나고 다시 종종걸음으로 가사와 살림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던 노쇠한 여인도 있었다. 그 모습들이 그에게 들어왔다. 가혹한 현실에 뿌리가 뽑혀 몸이나 영혼이 사라진 이들은 그가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온 사람들이니까.


“어떤 흐름이 있는데 제가 만든 것은 아니에요”


그의 소설 속에서 이들은 특정 지역의 방언을 쓰거나 욕지거리처럼 험한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철학자의 방백처럼 은유적 말을 나눈다. 해고된 뒤 크레인 위로 올라간 용접공은 “그곳에 바람이 심하지 않느냐”는 염려에 이렇게 답한다. “여보, 바람이 불지 않으면 죽은 거야.”

“이미지가 오면서 글이 써지는 경우가 있어요. 제가 습작을 시 쓰기로 해서, 그런 표현을 쓰는 것 같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독자일 때 제가 서사나 기승전결이 분명한 이야기는 좀 재미없어 하더라고요. 서사를 멀리하고 싶어 하는 저항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저항을 제대로 하지 못한 소설이 제게는 만족스럽지 못한 소설이라면 나름대로 분투하면서 했다 싶은 소설은 제게 개인적으로 만족을 줍니다.”

“‘우리가 삶을 믿으면 삶은 보다 높은 삶으로 보답한다.’
그 문장을 나는 어디서 읽었을까요. 삶도 계단처럼 단계가 있는 걸까요. 그런데 높다는 건 뭘까요. 높은 삶은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낮은 삶 또한. 오직 삶만이 있는 게 아닐까요.”
- 《너는 너로 살고 있니》 중


김숨 작가는 자신의 책을 많이 읽어달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이야기가 너무 힘들지 않을까 머뭇거린다. 차라리 “읽을 준비가 됐을 때 읽어달라”고 한다. 많은 관심과 성원보다 적고 좁더라도 꾸준하고 진실된 관심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가 써온 소설이 그렇다.

“제가 처음 쓴 소설로 등단을 했어요. 등단한 지는 20년이 넘었고요. 지금에야 드는 생각인데 이게 제 길이니까 이렇게 오게 된 것 같아요.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 발버둥을 치진 않았어요. 등단도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했고요. 지금도 글 쓰면서 살고 있잖아요. 그건 이게 내 길이니까 살고 있겠지 싶어요. 흐름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어떤 흐름이 있는데 그 흐름이 제가 만든 것 같지는 않아요. 그렇지 않나요? 인생에 어떤 흐름이 있잖아요. 나의 계획이나 바람과는 다르게 흘러가잖아요. 그 흐름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이 있고요. 지금은 누리고 있는 중이에요. 글을 쓰며 사는 것에 대해 굉장히 감사하고 있어요. 물론 힘들 때는 어떻게 글을 쓰며 살게 됐을까 싶지만. 글과 인연도 있는 것 같아요.”


어릴 적 울산을 떠나 대전에서 자란 그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서울에 가면 문예창작이라는 걸 할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엄두를 내지 않았다. 대신 선생님이 추천해준 사회복지학과를 갔고, 그 공부를 하게 된 결정과 선택은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고등학교 시절 교정 나무 그늘에 앉아 ‘글을 쓰면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이미지는 남아 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습작을 해온 그는 자신의 첫 소설로 《대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고, 등단 후에는 스무 권이 넘는 책을 낸 꾸준하고도 성실한, 치열하면서도 윤리적인 작가가 됐다.

‘김숨’이라는 필명은 많이들 ‘호흡’으로 생각하지만 그는 ‘숨어 있다’는 의미로 지었다. 사실 둘은 맞닿아 있다. 그의 글은 숨어 있는 이들, 숨겨진 이들, 숨죽인 이들에게 숨을 불어넣는다. 철이 빛을 내려면 누군가는 피를 흘려야 한다는 걸, 그는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철배에서는 피 냄새가 나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참았던 숨을 내쉬듯 이야기한다.

“철배는 없다. 우리 중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했으니 우리에게 철배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중략) 우리는 철배가 없다는 생각을 못 하는데 우리는 그것의 심장이 될 철상자 속에서 종일 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종일 철을 망치질로 때리고 페인트를 칠하고 철을 자르고 붙이고 다듬기 때문이다. (중략) 가장 가난했던 사람은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는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망치질을 하지만 여전히 가난하다.”
- 《제비심장》 중
  •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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