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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슬의 커피코피해피 #22

무스를 찾아라

글 : 강이슬 

‘할머니는 왜 전 부치다 말고 갑자기 무스가 필요한 걸까. 곧 집에 올 고모네 식구들한테 잘 보이려고 단장을 하시려나? 하긴 명절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할머니 집 근처의 구멍가게를 여러 개 돌았다. 시골 작은 구멍가게에서 무스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동네에서 공치고 옆 마을의 옆 마을까지 건너가서 규모가 있어 보이는 가게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무스 팔아요?”

주인 할아버지가 “있을랑가 모르겄네” 혼잣말을 하며 느릿느릿 일어나 찬장 깊숙한 곳을 더듬었다. 뽀얗게 먼지 앉은 무스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드디어 찾았구나 싶은 뿌듯함과 안도감에 가슴속에서 핑크색 솜사탕이 만들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빵빵하게 볼을 부풀리며 싱긋거리는 나를 보고 할아버지는 무심한 표정으로 무스 위에 앉은 먼지를 후후 불었다.

“이거는 뭐에다 쓰려고 그러냐?”

“몰라요. 할머니가 사오래요. 안녕히 계세요.”


국 끓일 때 필요한 무수?

땀 뻘뻘 흘리며 할머니 집에 도착해서 검은 비닐봉지를 내밀며 생색을 냈다.

“할머니, 무스 파는 데가 없어서 옆, 옆 마을 구멍가게까지 다녀왔어요.”

“요 앞에 할먼네 구멍가게 가지 그랬냐, 거그는 항시 파는데.”

“할먼네 안 팔던데.”

“워야, 암튼간에 고생했니라.”

비닐봉투를 건네받은 할머니가 의외의 무게감에 갸웃하더니 봉투에서 무스를 꺼내고는 “이게 뭐냐”고 물었다. 나는 “할머니가 무스 사오라매요. 무스 사왔는데…” 하고 말끝을 흐렸다. 별안간 할머니와 가족들이 와하하 웃기 시작했다. 나는 웃음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어리둥절한 채로 멀뚱히 서 있었다.

“야가 무수 사오랑게 무스를 사왔네잉.”

가슴속에서 끝도 없이 부풀던 커다란 핑크색 솜사탕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무수’는 무의 전라도 사투리다. 국 끓일 때 필요한 무를 사오라고 했더니 무스를 사온 어린애가 얼마나 우습고 귀여웠을까. 웃음소리는 한참을 기다려도 잦아들지 않았다. 어른들의 마음을 알 도리 없었던 나는 서럽고 부끄러워서 그 자리에 선 채로 엉엉 한참을 울었다.


빨랫비누 ‘엔간치’는 얼마만큼일까

할머니의 만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매번 알아듣기 어렵게 말했다. 가령 이런 식이었다.

“아가, 저짝에 있는 거시기 좀 갖고 온나.”

그러면 나는 쭈뼛쭈뼛 일어나 할머니가 손짓했던 곳에 놓인 물건 여러 개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이거요?” 하고 몇 번이나 물어봐야 했다. 질문이 두 개 넘게 이어지면 성미 급한 할머니는 버럭 호통을 쳤다.

“왜 이렇게 말을 못 알아듣냐. 그 짝 말고 저 짝에 있는 거 갖고 오랑게!”

할머니의 애매한 화법은 심부름을 시킬 때 그야말로 빛을 발했다.

“아가, 거시기 가서 빨랫비누 서너 개 사오니라.”

구멍가게에 가서 빨랫비누를 사려고 보니 세 개를 사야 할지 네 개를 사야 할지 헷갈렸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할머니에게 정확히 몇 개를 사와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간 김에 엔간치 사올 일이지 다시 올 것은 뭐냐고 타박하며 나처럼 말귀 못 알아듣는 애는 처음 본다고 혀를 쯧쯧 찼다. 그런 할머니를 보며 ‘엔간치’란 또 얼마만큼일까 궁금했다.

“말귀 못 알아듣는 손녀”라는 오명은 다 자라서야 벗을 수 있었다. 이제는 척 하면 척인 나를 보고 할머니는 “야가 어릴 때는 영 맹해서 사람 속 터지게 하드망 언제 이렇게 똑 부러지게 컸을꼬” 극찬하며 신통해한다.

그러게 말이다. 이제는 할머니가 “사나흘 전부터 맴이 영 싱숭생숭혀서 어디에서 거시기 좀 함서 애지간히 있다 와야겄다” 하면 그게 노인정에서 고스톱 치겠다는 뜻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들을 수가 있다.

글쓴이 강이슬은 〈SNL 코리아〉 〈인생술집〉 〈놀라운 토요일〉 등 TV 프로그램에서 근면하게 일하며 소소하게 버는 방송작가다.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안 느끼한 산문집》으로 대상을 받고 출판 계약을 하며 난생처음 갑이 된 데 이어 《새드엔딩은 없다》까지 출간했다.
술과 개와 밤을 좋아하고 욕을 잘하지만 착하다. 어제도 오늘도 가난했고 내일도 가난하겠지만 가난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가지고 있다.
  •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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