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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

‘도저히’ 그러나 ‘마침내’ 사이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열대우림 속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면 뜻밖에 유리로 된 연구실이 있다. 바깥 세계와 단절된 채 연구와 실험에만 몰두한 이. 그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김초엽의 소설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지구 끝에 온실이 있고, 누군가 자신의 생을 걸고 실험한다. 하지만 ‘인류를 구하겠다’거나 ‘지구를 바꾸겠다’는 다짐 같은 건 함부로 않는다. 그런 섣부른 의협심, ‘영웅이 나타나 위기를 타개해주리라’는 낙관은 서로를 숙주 삼아 피차를 파괴한다. 김초엽은 자신이 짓는 세상에서 그런 싹은 애초에 자른다. 그게 설령 멸망 직전의 지구라도 과학은 과학의 일을, 문학은 문학의 일을 할 뿐이다. ‘적어도 나쁜 일을 하지 않겠다’ 정도의 마음가짐이야말로 세상이 더 나빠지지 않는 데 필요한 태도다.


‘쓰겠다’는 다짐과 ‘썼다’는 사실


과학과 문학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분야지만 김초엽 안에서는 충돌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글을 써온 습관은 과학의 난해한 부분을 설명하는 데 좋은 도구였고, 과학도로서 연구실에서 보낸 시간은 세상을 분자 단위로, 나노 단위로 나누어 해석하는 데 유용한 경험이었다.

김초엽 작가는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생화학으로 석사과정을 거쳤고,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대상과 가작을 받았다.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20만 부 이상 판매됐다. “김초엽 작가는 한국 문학의 감수성을 SF에 담으면서 기존 마니아층에서만 소비되던 SF소설을 일반 대중에까지 확장하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그는 2019년 오늘의 작가상, 2020년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신인작가’가 ‘첫 작품’으로 ‘국내 SF 사상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는 기록은 뉴스로는 좋았지만 작가에게는 부담이기도 했다. 그는 무려 ‘한국 소설의 미래를 이끌 작가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애초에 과학을 직업으로, 글을 부업으로 생각했던 김초엽 작가는 달라진 인생의 행보에 스스로 갸웃했다. 이 혼란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 그는 자기만의 온실로 들어갔다. 글과 나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곳. ‘쓰겠다’는 다짐과 ‘썼다’는 사실만 존재하는 곳.

“글을 쓸 때는 외부 평가와 완전히 멀어져야 소설을 완성할 수 있거든요. 소설을 쓰는 것은 다른 이들의 평가에서 완전히 떨어져서 다른 세계에 몰입하는 경험이에요. 이전의 저는 소설은 엄청난 재능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글을 꾸준히 써왔지만 대부분 논픽션이었죠. 원래 잘하지 못하면 시작도 안 하는 스타일인데, ‘잘하지 못하더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게 소설이었고요.”

글로 직업인이 되어보자는 목표가 아닌 1년 정도만 글을 쓰며 살아보자는 계획이었고 그 1년이 지금의 김초엽을 만들었다.

“처음에 너무 큰 관심을 받아서 부담도 있었지만, 그 부담도 글을 쓰면서 정리가 됐어요. 첫 책을 출간하기 전에는 독자들의 마음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생각보다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도 되겠구나 믿게 됐어요. 내 이야기가 많이 읽힌다는 게 힘이 됐고요. 글을 1년, 2년 써가다 보니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글을 쓸 수는 없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쓰다 보면 누군가는 좋아해준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첫 장편 소설 《지구 끝의 온실》을 펴냈다. 단편은 아이디어로 끌고 갈 수 있다면, 장편에는 인물이 중요했다. 온 세상이 더스트(먼지)로 뒤덮인 2058년의 지구, 오늘 살아남았대도 내일도 살아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세상. 그럼에도 작가는 함부로 초능력자를 소환하거나 빌런을 설정해 드라마틱한 갈등을 만들지 않는다. 평범한 우리가 겪을 암담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떤 기묘하고 아름다운 현상을 발견하고, 그 현상의 근거를 끈질기게 쫓아가보는 것 역시 하나의 유효한 과학적 방법론일지 모른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대부분은 실패하겠지만, 그래도 일단 가보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할 놀라운 진실을 그 길에서 찾게 될지도 모른다고, 아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 《지구 끝의 온실》 中


더스트가 전 지구에 퍼져 모든 종이 멸종을 향해 갈 때 어떤 공동체는 살아남아 서로를 보듬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어떤 신념 없이 그저 내일을 준비했고, 이 마을의 끝을 상상하지 않았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대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건 구호가 아닌 실천이었다. 나무를 심을 수 있는 땅, 그 땅을 개간하는 이들의 땀…. 다름 아닌 그런 게 희망이었다.

“전 지구적 재난은 공동으로 대응하고 협력해야 하는데 그게 정말 쉽지 않거든요. 2021년의 지구에서도 보잖아요. 추상적인 희망이 세계에 분포해 있는 게 아니라 세계에서 행동하는 사람들 각자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애초 그는 추상적인 삶의 속성들을 구체적인 과학 언어로 포착해 또 다른 질문을 발굴해내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가 좋아하는 이야기의 결은 ‘도저히’와 ‘마침내’로 설명된다. 《지구 끝의 온실》을 쓰면서 작가는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지구’를 생각했다. 그리고 다 쓴 후에 알았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아마도,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는 걸. 황예인 문학평론가는 “김초엽은 세상을 구해내고야 마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탁월한 개인, 위대한 발견, 숭고한 희생이 아니라 서로를 기억하며 지킨 작은 약속, 매일을 함께하는 동안 다져진 우정, 시간에 깎여 나가지 않고 살아남은 사랑을 말한다”고 했다.


인간 바깥으로 밀려난 존재들의 이야기


김초엽 작가가 쓴 소설이 처음으로 공식 지면에 실린 건 한 과학 웹진이었다. SF 중편이었는데 사이보그 남자가 나오는 이야기였다. 사고를 당해 신체 절반을 기계로 대체한 인물이 주인공이었다. 작가의 표현대로 “SF는 태생부터 인간 바깥으로 밀려난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왔다.

학창 시절 김초엽은 두 가지가 이상했다. ‘왜 자꾸 친구들이 부르는데 안 돌아보냐고 할까’ ‘영어 점수 전체가 나쁜 건 아닌데 듣기평가 점수는 왜 잘 나오지 않을까’, 대부분의 난청은 이렇게 발견된다. 주변인이 “왜 대답을 안 하느냐”고 묻는다. 원인도 알 수 없다. 이후 그는 청각장애 판정을 받았고 보청기를 착용하게 됐다. 기계와 결합한 인간, 사이보그에 대한 감각은 그에게 추상이 아닌 실재였다.

“먼 미래에 도래할 완벽한 보청기나 청력 치료제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의사소통과 그런 소통 환경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내 삶을 실제로 개선했다. 기술은 해방일까, 혹은 억압일까. 사이보그는 현실일까, 아니면 비유일까. 장애인을 위한 ‘따뜻한 기술’은 정말로 장애인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할까. 기술의 발전 속에서 장애는 언젠가 사라지고 말 제거의 대상일까. 최후의 미래에도 여전히 누군가는 장애인으로 살아갈까. 장애인 사이보그의 삶은 현재에 관한 이야기이자 미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 《사이보그가 되다》 中


《지구 끝의 온실》에서 끝없이 연구에 몰두하는 존재 역시 사이보그인 레이첼이다. 레이첼은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인식하지만 사람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그가 개량해낸 식물 모스바나는 더스트 속에서도 무럭무럭 자라 마을을 지켜준다. 일부 사람들은 그를 종교처럼 신성시한다. 하지만 이내 알게 된다. 식물에도 양면성이 있다는 걸. 모스바나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작물을 모두 파괴한다. 애써 일군 작물이 모스바나에 의해 황폐화된다. 모스바나는 더스트를 막아주지만, 생존 터전은 파괴한다. ‘식물이 이타적이다’라는 것 역시 인간 중심의 착각일 수 있다.

“식물에 대한 이미지가 단면적이에요. 지구 멸망과 식물이라고 하면, 그 식물 때문에 지구가 회복될 거라 생각하기 쉽죠. 제가 식물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식물의 양면성이에요. 투쟁하면서 살아가는 존재고, 이타적이기만 한 존재는 아니에요. 식물이 이타적이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투쟁하기 때문에 인간과 생성되는 공생 관계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번 소설을 쓰면서 온실을 일구는 아버지에게 식물의 이러저러한 면들을 물었다. 이런 일이 가능한지, 저렇게도 될 수 있는지. 아버지는 답했다. “식물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모스바나의 양면성 덕분에 레이첼도 영웅신화에 휩쓸리지 않는다. 사이보그라 기계에 의존해야 했지만 그 덕분에 그는 가장 오래 살아남는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사라진 후에도 살아남아 변화된 세상을 본다. 그의 소설 중 가장 SF스러운 장면이다.

“현실에서는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 변화를 목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변화는 속도가 느리고 천천히 오니까요. 지켜보는 동안은 변화가 오지 않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면 세계 풍경이 변해 있는 거예요. 그걸 목격하게 해주고 싶었어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SF소설에는 으레 디스토피아가 도래하고, 유토피아를 찾아 나서는 순례자들이 등장한다. 순례 여정은 여지없이 험난하다. 그럼에도 김초엽의 소설 속 인물들은 떠난다. 어렵게 찾은 이곳이 안온하고 안전해도, 안주하지 않는다. 그렇게 행동한 이들은 어떻게든 세상을 변하게 만든다. 변하게 만들려고 해서가 아니라, 유토피아를 믿어서가 아니라, 진실을 검증하기 위해 용기를 냈기 때문에. 유토피아가 정말 유지될 수 있는지, 금서를 열어보듯 자신의 삶을 걸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기 때문에. 그래서 김초엽의 소설 속 순례자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실패하더라도 다만 전진한다.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진실을 알기 위해서.

2058년은 어떤 풍경일까. 소설의 예언처럼 우리는 먼지 혹은 그보다 더 작은 입자의 바이러스로 뒤덮인 지구에 살면서 인간종의 멸종을 보거나 겪게 될까. 생존이라는 민낯 앞에서 인류는 여전히 존엄을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가 지금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미래의 방향을 바꿀 거라 생각해요. 2021년도 그렇잖아요. (코로나) 백신을 개발했다고 해서 그 회사가 선한 게 아니고, 정치 공학에 따라 백신이 공평하게 나누어지지도 않고요. 앞으로 몇 년간 기후위기나 전염병에 대한 세계적 합의가 어떻게 맺어지느냐에 따라 미래가 바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가 소설을 쓰는 이유는 지구 위기를 경고하거나 행동하라고 선동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쓰는 행위로 뭔가를 바꾸겠다는 생각은 안 하는 편이다. 오히려 좋은 작가가 아니라 좋은 시민으로서 바꿀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소설가의 일은 소설마다 달라요. 저는 독자의 마음에 여러 가지 휘몰아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싶다는 충동을 가지고 써요. 현실에서 느끼지 못하는 극적인 감정이죠. 어떤 문장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 자체가 아름답기를 바라요. 이 모든 게 지나가고 뭔가가 남아 있다면, 제가 느낀 것을 독자도 느낄 수 있다면 아마도 좋은 이야기겠죠.”

김초엽 작가는 고착된 이미지나 문구에 반기를 들기보다 질문한다. 현미경 보듯이 세세히 살피고 나면 여지없이 다른 면이 드러난다.

“어려서부터 혼자서 질문을 많이 하는 타입이었어요. 질문에 질문을 꼬리 무는 타입이요. 사람의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호르몬의 문제일까. 우리가 맺는 관계에도 그런 속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부모님을, 혹은 어떤 존재를 좋아하는 게 학습된 걸 수도 있어요.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여요. 하지만 그 감정이 진실하지 않은 건 아니죠.”

보고 싶은 모습만 보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 대신 보이지 않는 곳을 보려 하고 들리지 않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하는 동안 그의 눈앞에는 생의 이면이 드러난다. 그는 그 풍경에 눈살을 찌푸리거나 호들갑 떨지 않고 지켜본다. 그리고 실험한다. 그때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자신이 만든 인물들의 여정을 가만히 따라간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종은 다면성을 갖고 있다. 작가는 그 모든 면을 켜켜이 드러내고, 인물들은 때로 100년이 넘는 긴 시간 행성과 행성을 떠돌며 남김없이 경험한다. 그러고 난 후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순간이 오더라도 ‘마침내’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이를 실험실 계량기에 넣고 측정해보면 그제야 ‘순도 100% 사랑’이라고 찍힐지도 모를 일이다.

“떠나겠다고 대답할 때 그는 내가 보았던 그의 수많은 불행의 얼굴들 중 가장 나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 단편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中
  •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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