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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의 속 깊은 인터뷰

신지영 교수

언어 감수성이 높아진다는 건, 사회가 진보한다는 것!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사장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

“자리에 앉으실게요.”

이 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맞다.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사물 존대’의 예다. 발화자는 사람을 높이려는 의도였지만, 그 의도와는 달리 사물을 높임으로써 오히려 사람을 낮추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최근 《언어의 높이뛰기》를 펴낸 신지영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공손성이 문법을 이긴 사례”라고 말한다. 문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직원의 심리가 반영됐다는 것. 다시 말해 틀린 문법으로 비난을 받는 것과 왜 자신을 충분히 높이지 않느냐고 비난받는 것 사이에서 직원이 전자를 택한 결과다. 공손성의 요구 뒤에 숨은 일상성의 갑질이 드러나는 언어다.

신지영 교수는 무려 20년간 언어 감수성 향상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학계 울타리 안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는 점점 그 범위가 넓어져 지인으로, 일반인에게로 확대되고 있다. MBC 〈탐나는 TV〉의 ‘우리말 새로고침’ 코너를 지난 8월까지 맡았고, YTN 〈슬기로운 라디오생활〉의 ‘슬기로운 언어생활’ 코너에 고정 출연해 언어 사용자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의 맨살을 다시 보게 했다. 그는 옥스퍼드 영어사전 한국어 자문위원, 대검찰청 과학수사 음성분석 자문위원, 서울시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 위원장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

신지영 교수가 대학 강의실을 넘어 외연을 확장해나가는 이유는 하나로 수렴된다. 더 나은 세상 만들기. 언어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지만 그는 “언어 감수성을 높여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 길”이라고 힘줘 말한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뿌리부터 흔들어댄다. ‘우리, 이렇게 말해도 진짜 괜찮은가요?’를 끊임없이 묻는다. 그리고 더 나은 표현은 없는지 함께 고민하자고 한다.

그의 말을 듣고 글을 읽고 나면 세상 모든 언어가 새롭게 보인다.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권력과 권위의 두꺼운 옷을 입은 비둔한 언어가 불편하게 느껴지고, 아무렇지 않게 써오던 차별 언어에 차단막을 치게 된다. 무엇보다 말하기 전에 잠깐 멈추고 생각하게 된다.

‘이 말이 누군가를 소외시키거나 상처 주진 않을까?’

‘내 말을 상대에게 잘 전달하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최근 출간한 《언어의 높이뛰기》, 언어학자의 책이라 긴장하고 읽었는데 술술 읽혀 놀랐습니다.

“하하, 그런가요? 그렇다면 성공입니다. 현대경제연구원에서 한 강연을 기반으로 쓴 내용이라 입말이 살아 있어서 그럴 거예요. 공감대가 넓은 에피소드로 시작해서 뒤로 갈수록 전문적인 콘텐츠로 구성했고요.”


이 책이 어떤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히길 바라나요.

“언어는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니 질문을 안 던지게 되잖아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과연 우리 생각을 잘 담고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지고 함께 탐험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어요. 일상 언어에 질문을 던지자는 건 세상을 새로 보자는 제안과 같아요.”


신조어가 쏟아지고 있으니 탐험 대상이 많아지겠군요. 온라인 커뮤니티마다 문체가 달라 혼란스럽기도 합니다만.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정체성으로 언어생활을 하는 건 나쁜 게 아니에요. 다만 TPO에 맞춰서 옷을 입듯, 커뮤니티에 어울리는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을 기르는 건 중요해요. 그게 바로 국어 능력이고요. 이건 오(O), 저건 엑스(X) 식으로 재단해서 생각하거나 가르치지 않으면 좋겠어요. 어떤 상황에서는 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왜 안 되는지를 맥락까지 고려해서 사용할 줄 아는 노력이 필요해요.”


‘무슨 말을 못 하겠네’라는 말이 여기저기 들립니다. 단군 이래 우리가 이렇게 언어 감수성이 민감한 적이 또 있었나 싶을 정도예요. 이유가 뭘까요?

“그만큼 우리 사회 수준이 높아졌다는 증거예요. 묻혀 있던 다양한 목소리가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을 만큼 수평 사회가 됐다는 증거이기도 하고요. 권위주의 사회에서는 일방향으로 말하지만, 사회가 진전될수록 쌍방향 소통이 원활해집니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채널이 늘고,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그렇게 돼가고 있어요. 민주주의 사회는 모두가 주인인 사회잖아요. 사공이 많다고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사공들의 서로 다른 목소리가 합의를 이뤄서 한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죠. 지금은 충돌 단계라서 시끄러워 보여요. 하지만 이 또한 과정입니다. 다양한 목소리를 낼 뿐 아니라, 내 목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고민하면서 말하는 단계까지 왔어요.”


내 말이 다른 사람에게 잘 전달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 경청해야 해요. 상대가 내 의도와는 다르게 들었다면, ‘왜 그렇게 들었을까?’를 고민해야 하고요. ‘말은 상대에게 들리기 위한 것’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찾는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이런 성찰을 하는 개인이 많아지면 사회 수준이 높아지면서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질 거예요. 그 단계가 되면 자정능력이 생기면서 쓸데없는 논쟁이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민감해진 언어 감수성으로 인해 세대 갈등이 첨예합니다. 특히 2030세대와 5060세대 사이.

“세대 소통의 열쇠는 5060세대가 쥐고 있어요. 개구리는 올챙이 시절이 있었지만, 반대는 없었잖아요. 개구리가 자신의 올챙이 시절을 반추하면서 이해하려는 게 어른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5060세대가 2030과 소통하고 싶다면 우선 내 말이 그들에게 어떻게 들릴까를 고민하면서 말해야 합니다. 영국에 가서 소통하려면 영국말로 해야지, ‘왜 당신들은 한국어를 못합니까’ 하면 안 되잖아요.”


두 세대가 진정한 언어 소통을 이루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직접 소통해야 해요. 구체적인 존재를 앞에 두고 ‘나는 당신 말이 이렇게 들렸어요. 만약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말했어야죠’ 이런 종류의 소통을 할 수 있으면 이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잖아요. 이쪽에서는 무조건 꼰대로, 저쪽에서는 무조건 애송이로 생각하고,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죠.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들의 문제 제기를 귀담아들으려 하기보다 노여워하고요.”


한국에서는 나이가 곧 권력이죠.

“맞아요. 한국어가 가진 언어의 위계가 곧 사람의 위계로 설정돼요. 윗사람, 아랫사람으로 나눠 말하는 우리 언어가 사람을 평등하게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닐까, 라는 질문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이 부분은 근본적이면서 중요한 문제 제기예요. 그래서 책 맨 앞부분에 썼어요.”


책 내용 중 박승빈이라는 언어학자가 1921년에 펼친 ‘언어개혁운동’이 인상적이었어요. 아동 경어의 중요성을 알리면서 모든 아동에게 존댓말을 쓰자는 운동을 폈다죠. 무려 100년이 지났는데도 우리 사회는 왜 이 부분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을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어요. 일제강점기가 직접적인 원인이고, 문제의식 부족이 본질적인 원인이에요. 나이가 많으면 무조건 높은 사람, 나이가 어리면 낮은 사람으로 인식하고, 지위가 낮은 사람은 높은 사람에게 공손해야 한다는 대전제에 큰 질문을 품지 않아왔어요. 하지만 공손함이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존재에게 요구되는 덕목이죠.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존엄하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언어생활에서는 아니었다는 거예요.”


‘미성년’ ‘-린이’ 표현도 떠오릅니다.

“그렇죠. 둘 다 비하 의미가 담긴 표현이에요. 미성년(未成年)이라는 단어가 있는 이상, 성년은 달성해야 하는 존재이고 미성년은 아직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 존재라는 말이니까요. ‘린이’도 같은 맥락이에요. ‘주린이(주식 초보자)’ ‘산린이(등산 초보자)’ ‘요린이(요리 초보자)’는 어린이 자체를 부족한 존재로 보는 비하 표현이죠.”


저도 처음에는 재밌어서 따라 썼습니다만.

“신조어가 생기면 쓰고 싶고, 신조어를 써야 트렌드를 따라가는 느낌도 들죠. 저 역시 요린이, 주린이를 처음 들었을 땐 재밌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다른 관점이 보이더라고요. 무조건 이런 단어를 쓰지 말라는 건 아니에요. 이런 맥락의 의미가 있다는 걸 알고도 쓰는 건 괜찮아요. 단순히 재밌다는 이유로 따라 쓰는 건 경계해야죠.”


이름을 짓는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사건을 바라보는 틀 자체를 만드는.


“틀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따라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각도 자체가 달라요. 틀이 생기는 순간, 그 틀을 통해 바라보게 되죠. 이름은 그 틀을 딱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시각장애인’ 대신 ‘시각에 불편함이 있는 사람’으로 표현하자는 거예요. 전자는 ‘장애인’이라는 틀로 보이지만, 후자는 그 사람의 여러 속성 중 하나가 장애로 보여요. ‘이대남(20대 남성)’도 그렇죠. 이름을 부여하는 순간,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하나의 틀로 보이게 되죠. 이름을 부여한다는 건 통찰의 결과예요. 그 결과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위험할 수도 있어요. 우리가 하나의 명칭으로 부를 때, ‘그 틀 밖의 무언가를 보지 못한 부분은 없을까’를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말이란 문제의식을 갖기 어려운 존재이고, 문제의식을 갖는다고 해도 지속적인 사용을 통해 익숙해져서 입에 붙어버리면 문제의식이 희석된다”는 구절에 밑줄을 그었어요. 교수님은 문제의식을 놓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합니까.

“질문이요.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걸까?’라는 질문을 계속해요. 또 타인의 질문을 경청하려 노력합니다. 누군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않아요?’ 하면 ‘아, 그런가? 내가 안 되는 말을 쓰는 건가?’ 진지하게 들어요.”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걸까’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품는 게 왜 중요합니까.

“우리가 말을 하는 이유는 상대에게 들리기 위한 것이잖아요. 말이란 관계 속에서만 존재해요. 말을 잘하기 위한 욕망은 행복해지기 위한 욕망이라고 생각해요.”


행복해지기 위한 욕망이요?

“행복하다는 건 내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는 거잖아요. 좋은 인간관계가 행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에요. 좋은 관계란 의사소통을 잘해야 유지되죠. 그런데 이게 참 어려워요.”


왜 이토록 소통이 어려운 건가요.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내가 이해한 사회적 맥락과 개인 상황에서 말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의 맥락에서 듣거든요. 나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말이 상대에겐 엄청 민감한 말이 될 수 있어요. 소통을 위해 노력한다는 건, 상대가 그것에 민감한지를 조금씩 헤아리면서 그 거리를 좁혀가는 거예요. 소통을 완벽하게 하는 건 불가능해요. 상대방을 완벽하게 이해하긴 어려우니까요.”


한국어가 고맥락 언어이기 때문에 소통이 특히 어렵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언어학적으로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어요. 한국어가 고맥락 언어이고, 맥락 없이는 해석이 어렵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어 글쓰기 역사가 짧다는 데 있어요. 한글이 만들어진 건 15세기이고, 그 이후에 구어가 문어로 전환됐어요. 한글로 된 공식 문서를 인정한 건 갑오개혁 이후입니다. 그리고 경술국치, 일제강점기, 6·25가 이어졌죠. 우리말과 글로 진지하게 의사소통을 한 역사는 60~70년에 불과해요. 앞으로 갈고닦을 부분이 많다는 얘기죠. 다만 한국어가 고맥락 언어이기 때문에, 라는 이유로 소통을 위한 노력을 피하는 건 경계해야 합니다. 특히 권력자의 고맥락 언어는 한국어 특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에요. 모든 언어는 맥락 안에서만 존재하거든요.”


권력자는 왜 고맥락 언어를 구사할까요.

“권력자는 대체로 친절하지 않아요. 소통할수록 권력을 빼앗기니까요. 신비주의 전략이 가장 유리해요. 하지만 권력자의 언어를 친절하게 만드는 사람이 민주주의 사회의 유권자들입니다. 권력자의 권력은 유권자에게서 나오니까요. 이전에는 말을 가진 사람, 글을 가진 사람이 권력자이면서, 소통 의무가 없었어요. 하지만 달라졌죠. 많은 유권자들이 각자의 말과 글을 가지게 됐어요.”


소통을 잘하기 위한 딱 하나의 팁을 권한다면요.

“틀을 가지지 않고, 설정하지 않고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잘 들어야 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미 답을 가지고 듣죠.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안 들리는 거예요. 잘 들리게 하려면 자세를 잘 설정해야 해요. 제발 들어주세요, 하는 마음자세가 중요합니다.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 입장을 고려하고,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면 어떨까 싶어요.”


과거 권력자들의 말하기는 그와 반대였죠.
권력자의 암호문 같은 말을 해석하는 참모가 필요했어요.


“내 말이 상대방에게 들릴까, 안 들릴까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면 노력할 필요가 없죠. 그게 권위주의 사회에서 권력자들이 말하는 방식이에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권력 차이가 많이 날수록 듣는 사람을 고려한 말하기는 존재할 수 없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듣는 사람의 권력이 세졌잖아요. 권력차가 좁혀지면서 수평 사회, 민주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어요.”


그 권력차를 좁힌 주체는 누구일까요?

“권력자는 제자리인데, 청자의 수준이 높아졌다고 보는 게 맞아요. 정치에서 보면 2030이 청자이고, 5060이 권력자죠. 2030의 수준은 높아졌는데, 윗세대는 그대로이니 격차가 좁혀질 수밖에요.”


그야말로 말에 정치·사회·문화·세대 등 모든 분야가 담기는군요.

“그래서 저는 ‘언어란 인간의 모든 것에 대한 모든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적 약속이 언어이니, 언어가 고스란히 그 사회를 비추죠. ‘언어는 모든 것에 대한 모든 것인데, 사람들은 왜 언어학자, 국어학자에 한정해서 생각할까?’ 이 질문이 《언어의 줄다리기》를 쓰게 된 계기예요.”


3년 전에 쓴 《언어의 줄다리기》와 신간 《언어의 높이뛰기》의 차별점은 뭔가요.

“전자는 언어를 관전하는 입장이었다면, 후자는 한발 더 나아가서 언어 사용자, 참여자 입장을 담았어요. 언어의 줄다리기가 왜 일어나는지 맥락을 살펴보면서 이 표현과 저 표현이 서로 힘겨루기를 한다면 우리가 어떤 쪽에 힘을 실어줘야 할까를 고민해보자는 게 전자의 집필 이유였어요. 다음 단계는 행위자로서 한 단계 더 들어가야죠. 언어의 목표 수준을 누가 정했는지, 그 목표 수준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그걸 다 같이 뛰어넘을 건지 아닌지를 생각해보자는 거죠. 언어의 높이뛰기는 대단히 어려운 과정이에요. 보통은 높이뛰기 막대가 올라갈수록 ‘와~’ 하면서 열광해요. 하지만 언어의 높이뛰기는 그렇지 않아요. 막대가 올라갈수록 사람들은 ‘왜 높여야 돼?’ 하고 반문하게 되죠. 관전자가 아니라 행위자가 되어 직접 뛰어넘어야 하니까요.”


다음 책은 《언어의 멀리뛰기》인가요?

“하하.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그러면서 다다음 책은 《언어의 올림픽》인지 농담처럼 묻는 분도 있고요. 저는 뭘 하든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우리 언어 감수성은 계속 높아질 것이고,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이룬 사회적 성취는 언어 사용자가 다 같이 이룬 결과라는 겁니다.”


언어 감수성을 높이는 건, 결국 더 나은 사회가 되는 길이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개인의 언어 감수성이 진보하면 사회 진보를 이룰 수 있다고요.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제 꿈이고, 이를 위해 시민들의 소통 능력을 높여주는 게 제 역할이에요. 그래서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소통 능력을 구비한 시민이 많아지도록 돕는 것. 너무 거창한가요(웃음)?”


세상을 바꾸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모두가 각자 위치에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이 있다는 것. 신지영 교수는 언어학자로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굳어버린 입말을 계속 흔들면서 질문을 던진다. “우리, 이렇게 말해도 진짜 괜찮은가요?”라고. 이 질문을 품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언어의 높이뛰기 막대를 뛰어넘을 수 있다. 그 순간 우리 사회는 한 단계 진일보하고, 그 성취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된다.
  •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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