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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슬기의 이작가야

작가 윤고은

재난을 파는 시대의 호기로운 상상력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지하철에 앉은 우리는 어떤 사람이 어느 역에서 타고 어느 역에서 내리는지는 알 수 있지만 그가 무슨 일을 하며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짐작할 뿐이다. 내가 탄 지하철에 소설가가 있다면 그는 이 한 량을 자신의 작업실로 만들 수 있다. 긴 의자에 각각 떨어져 앉은 두 사람을 헤어진 연인이라고 상상할 수도 있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는 동안 소설가의 세상 속에서는 숱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신분당선과 3호선의 환승 구간, 3호선 구파발역에서 지축역을 지나 주엽역까지 가는 어느 지하철에서 당신은 어쩌면, 어떤 소설의 주인공이었을지도 모른다.

윤고은 작가는 분당에 살고 일산에서 라디오를 진행한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두 신도시를 오가며 그는 매일 네 시간씩 지하철을 탄다. 이 시간은 버려지지 않고 차곡차곡 쌓였다가 2년이 지나자 책 한 권이 됐다. 윤고은 작가의 첫 산문집 《빈틈의 온기》다.

지하철 손잡이를 잡을 수도,
케이크 촛불을 불 수도 없는 시대의 이야기


“우리는 조금씩 이 상황에 익숙해진다. 지치지만 노련해진다. 마스크를 하나 더 챙기고(열차에 타자마자 마스크 줄이 끊어져 옆면을 붙잡은 채로 한 시간 이동한 기억이 있다), 손으로 허공을 흔들어 생일 촛불 끄는 법을 익히고(위생적으로 코로나 종식 이후에도 이게 나은 것도 같고, 그러나 내 여섯 살 조카에게 이런 설명을 하긴 힘들다. 슬프기도 하고), 악수 대신 주먹 인사를 하면서(처음엔 양손으로 상대의 주먹을 감쌌다. 쌀보리게임인 줄…) 상황을 최대한 통제하길 원한다.”
- 《빈틈의 온기》 中


제목이 ‘빈틈’의 ‘온기’인 이유는 작가가 빈틈이 좀 있어서다. 지하철 시간에 맞추려고 자전거 페달을 힘주어 밟다가 카디건이 체인에 걸려 올이 풀려나간 적도 있고, 지하철을 한참 타고 가다가 느낌이 싸해 돌아보면 반대 방향 열차에 몸을 싣고 있을 때도 있으며, 가방 속에서 출입증을 찾다 보면 살림살이가 실타래처럼 얽혀 나온다. 하지만 작가의 빈틈에는 한숨이나 자학이 아닌 웃음과 해학이, 온기가 배어 있다. 승강장과 열차 사이의 빈틈에 휴대폰을 떨어뜨리면 어떡하나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것도, 졸다가 내릴 역을 지나쳐 망연해하는 이들을 애잔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그래서다. 그는 인생의 경로가 짧을수록 행복하다거나 길수록 불행하다고 믿지 않는다. 돌아가는 만큼 얻는 것도 있다. 이를테면, 이야기 같은.

“실수도 우연이 빚어낸 장식이라고 생각해요. 레이스나 케이크 데코의 일부처럼요. 원래 궤도에서는 조금 벗어났지만, 이유나 의미를 알 수 없는 그 시간이 사실은 진짜 자유로운 시간인 거죠.”

윤고은 작가를 만난 건 서울 명동의 한 호텔이었다. 작가는 현재 호텔을 작업실 삼아 글을 쓰고 있었다. 이 역시 우연이었다. 윤고은 작가가 한 매거진에 “대학 때 호텔의 한 방을 잡아 합숙하며 동기들과 함께 신춘문예를 준비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썼는데, 우연히 호텔 직원이 치과에 갔다가 그 글을 보게 됐고, 회의 때 그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호텔에서는 작가에게 작업실이 필요하면 이용하라는 제안을 보냈다. 마침 작가의 모교가 명동에서 가까웠고, 마침 호텔 직원이 그 글을 보게 됐고, 이런 우연이 레이스처럼 겹쳐져 선물 같은 시간이 찾아왔다.

윤고은 작가는 명동에서 가까운 동국대 문예창작과를 나왔다. 졸업 전인 2004년, 제2회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았다. 우편 소인이 유효한 마감 날 접수한 작품이었다. 1회 수상자는 소설가 김애란이었다. 하지만 2008년까지 윤고은의 후속작은 나오지 않았다.

“대산대학문학상을 받고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봤어요. 당시 부상이 유럽문학기행이었거든요. 젊은 창작자를 위해 문화연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숙식을 제공해줬어요. 꿈같은 시간이었죠.”

여행을 마치고, 꿈에서 돌아오니 스스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신문 기자로 일하고, 사보에 글을 쓰기도 하고, 학생들에게 글쓰기 과외 등을 하며 4년을 보냈다. 무엇보다 많이 읽었다. 프랑스 문학작품도, 남미에서 쓰인 소설도 몰아 읽었다. 그리고 2008년 장편 소설 《무중력 증후군》으로 13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달이 하나에서 두 개, 두 개에서 여섯 개가 되면서 일어난 소동을 담았다. 지구인은 기어이 달나라에서도 분양권을 사고, 또 금세 동이 난다. 작가의 부모는 소설 첫 문장인 “외로움은 최고의 비아그라다”에서 충격을 받아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로써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군중의 소외감을 은유와 농담으로 표현하며 소외의 무거움은 가볍게, 상처의 잔혹함은 경쾌하게 그렸다”는 평을 받으며 단단한 작가의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재개발되는 땅만 있다면, 신도시만 있다면 우리는 무궁무진한 땅을 팔 수 있을 것이다. 재개발이란 용어는 몇 년이 지나도 낡지 않으니까. 어느 세기에 가서도 재활용이 가능한 단어다. 개발된 땅들은 한 바퀴 돌아 유행에 맞춰 다시 재단하고 갈아엎고, 지구는 둥그니까 한 바퀴를 모두 돌아오면 십 년이 지난다. 또 재개발에 들어가야 한다. 아마 의식하지 못할 뿐, 지구의 피부는 점점 얇아지고 있을 것이다.”
- 《무중력 증후군》 中



2013년 작, 《밤의 여행자들》
영국추리작가협회 주관 대거상 수상


문학평론가 김경수의 말대로 윤고은 작가의 상상력은 “근거 없는 공상이 아니라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삶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절박한 인식의 방법”이다. 작가의 상상의 나래는 이번엔 ‘재난을 파는 관광여행사’로 뻗어갔다. 지구의 안위가 위태로워질수록, 스펙터클한 재난으로 들려오는 지구의 비명이 잦아질수록, ‘그럼에도 나는 안전하다’는 위안을 줄 상품이 필요하다.

그가 2013년 작 《밤의 여행자들》로 그려낸 ‘재난 여행 프로그램’이 그렇다. 지구 곳곳의 쓰나미, 지진, 싱크홀을 찾아내 재난관광을 디자인하고 설계해온 여행사의 수석프로그래머 ‘고요나’는 직장 안에서 자신의 위치가 내몰리는 생존 위협을 겪는다. 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사막의 싱크홀 무이를 찾아간 요나는 재난관광지는 재난이 일어난 곳이 아니라 재난이 ‘일어나야 하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된다.


“웬만해서는 이제 큰 이슈도 못 돼요.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바쁜 사람들이 시간을 내서 동정하고 주목해 준다 그겁니다. 관심이란 정직한 거니까요. (중략) 연민에도 권태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색다른 세계가 그렇게 처참한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나면, 지금까지 자극받지 않았던 새로운 세포가 마구 자극을 받으면서 사람들은 신선한 아픔을 느끼겠죠.”
- 《밤의 여행자들》 中


2021년 지구의 재난은 그야말로 ‘전지구적’이다. 코로나에서 자유로운 지구인은 없다. 다른 나라에 재난을 구경하러 갈 이유도 없지만, 국경이 막힌 지금은 갈 수도 없다. 전혀 달라진 풍경인데, 뜻밖에 세상은 윤고은 작가의 《밤의 여행자들》을 호출했다. 그의 책은 2020년 영어로 번역됐고, 2021년 영국추리작가협회가 주관하는 65회 대거상 번역추리소설상을 받았다. 영어권에서 가장 오래된, 가장 권위 있는 상에 아시아 작가로는 유일한 후보였고, 한국 작가로는 최초 수상이다. ‘재난이 일상화된’ ‘그래서 상품이 된 시대’에 대한 예언이 새삼스레 국경을 넘어 숱한 이들의 소름을 돋게 한 모양이다.

시상식은 한국 시간으로 새벽에 진행됐고, 온라인으로 시상식을 보던 그는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누구보다 놀랐다. 영국 《가디언》은 “이 소설은 재치 있고 터무니없지만 긴장감 넘치고 공포스럽다. 이 에코 스릴러는 기후변화가 글로벌 자본주의와 어떻게 뗄 수 없는 관계인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고 했다.

“마치 오래전에 사귄 애인을 다시 만난 느낌이랄까요(웃음). 이야기는 책으로 나온 뒤 제 손을 떠나면 저도 그 이야기의 운명에 휘말리는 것 같아요. 2013년에 발간되고 나서 안부를 전혀 몰랐던 책은 아니지만, 7년이 지난 후에 번역이 되고 또 올해 상까지 받으면서 이야기의 생명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2013년만 해도 ‘싱크홀’이라는 단어가 흔하지 않을 때였어요. 지금은 흔해졌지만요. 2005년 미국 남부에 허리케인이 지나갔는데 사람들이 그 폐허를 보기 위해 간다는 소식이 이야기의 시작이었어요. 2011년 동일본대지진에 불어온 쓰나미도 오랫동안 잊히지가 않았고요.”

소설을 구체화하게 된 건 여행매거진 글을 쓰기 위해 베트남 무이네로 떠나면서다. 매거진 담당자에게 사정이 생겨 윤고은 작가가 팸투어에 참여하게 됐다. 베트남에 간 건 우연이었는데 당시 본 풍경은 잔상이 길었다. 일행이 묵은 신축 리조트와는 전혀 다른 현지 풍경. 관광이 이들의 생계를 책임지지만, 관광지가 개발될수록 현지인의 생존은 더 어려워지는 아이러니.

“몇 년에 걸친 출발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베트남에 가지 않았다면 다른 풍경이 펼쳐졌을지도 모르죠. 7년 전에 쓴 소설이 시차를 두고 읽힌다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에요. 덕분에 뉴스에도 출연하고요(웃음). 현실에 오히려 거대한 장난 같은 장치가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가 지금 받는 질문은 시공을 초월한다. 외국 독자들과 매체는 “만약 코로나를 재난여행 상품으로 판다면 어떨 것 같은지” “현재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뉴스로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등을 묻는다.

“《밤의 여행자들》이 독자들에게 걸어 들어가 어떻게 읽혔는지 모르겠어요. 책을 읽는다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잖아요. 시간이 흐를수록 이게 ‘내가 만든 세계’라는 생각은 흐릿해져요. 오히려 작가는 ‘먼지 같은 존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죠.”

작가에게 가장 아픈 손가락은 늘 현재 쓰는 작품이다.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은 더 이상 그의 손을 타지 않는다.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열기가 식은 뒤의 사랑처럼 때로는 낯설게 바라볼 뿐이다.


당신 곁을 스쳐간
그 책의 이름은



한때는 라디오작가가 되고 싶었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면 곧잘 소개되기도 했다. 학창 시절에는 당시 유행하던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의 대본을 써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이대로 찍기만 하며 되겠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정교하게 썼다. 처음 소설을 쓴 건 우연이었다. 로빈 윌리엄스를 닮은 문학선생님이 “내 제자 중에도 소설이나 시를 쓰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한 말을 듣고, “사실 제가 쓴 소설이 있는데 봐주시겠어요?”라고 물었다. “그러마” 대답을 듣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선주문 후제작’ 방식이었죠(일동 웃음). ‘아니, 내가 요즘 시간이 없어서’ 하셨으면 안 썼을 거예요. 선생님에게 보여드리기로 한 날이 3일 정도 남았고, 그때부터 밤을 새워 썼어요. 완성한 이야기를 읽어보더니 ‘시작 부분이 시 같더구나’ 하셨는데, 그 말이 잊히지가 않았어요. 나중에 다시 읽어보니 그렇게 시 같지는 않더라고요(웃음).”

당시 윤고은이 쓴 소설의 주인공은 중년 남성이다. 그는 현재 식물인간 상태다. 몸을 움직일 수는 없지만 의식은 살아 있다. 그가 식물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은 그 앞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만다.

“10대 여학생이 너무 먼 이야기를 쓴 것 같아요. 자기와 가까운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거리 조절을 못 한 거죠.”

그럼에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건 윤고은 작가의 상상력이다. 우주까지 뻗어나가는 상상력과 현실에 뿌리내린 감각이 공존하면서 그의 작품은 무지개떡처럼 새로운 결을 만들어낸다. 혼자 식사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학원, 꿈을 대신 꿔주는 철학관, 북한 개성신도시에 아파트 분양권을 사는 신혼부부 등이 그렇다. 그의 상상이 몽상이나 공상에 머무르지 않는 이유는 그 상상의 거울에 비친 현실의 모습이 실제보다 더 명징해서다.

“수많은 퍼즐 중에 하나를 선택해요. 이야기를 쓰다 보면 ‘이건 잘못된 만남이었어’ 싶을 정도로 잘 풀리지 않는 순간이 꼭 와요. 모든 작품이 한 번씩은 난관을 겪습니다. 그러다 이야기를 마치고 ‘작가의 말’을 쓸 때면 이야기에 가장 만취한 상태가 돼요. 이 책에 포장지가 생기면 정말 내 곁을 떠나게 되니까요.”

소설가 정세랑은 “윤고은의 의아해하는 인물들을 사랑한다. 다른 작가라면 애잔하게 그릴 순간을 의아하게 그리는 윤고은을 사랑한다”며 사랑 고백을 남기기도 했다. 그의 말대로 복잡하고 명확한 선으로 나뉘지 않는 세계를 끝없이 해석해내려는 이만이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다.

윤고은 작가는 책이란 산책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펴는 일은 문을 여는 일이다. 그 여정에서 누구를 만날지, 선택할 수 없다. 다만 책갈피를 따라 걸을 뿐이다. 인파로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도, 책에 빠져드는 순간만큼은 그는 ‘책을 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윤고은이라는 책을 타고 있는 이들은 알게 될 것이다. 살다 보면 우리에게는 상상력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는 걸. 그 상상력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나서야 현실로 돌아올 용기가 생기기도 한다는 걸. 어쩌면 그 현실에는 미처 보지 못한 어떤 빈틈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그 빈틈에서 찾아낸 한 줌의 온기 덕분에 또 오늘을 살아낼 수도 있을지 모른다.


“마주치는 모두에게 내일의 산책을 잊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은 밤이기도 하다. 산책을 권할 때 그 안에 담고 싶은 건 산들거리는 바람, 따갑지 않은 햇볕, 적당히 편안한 신발 같은 것이지만, 모든 산책로가 나긋하지만은 않다. 그걸 기대하는 순진한 산책자도 아니다. 다만 내일 산책로에서 가장 나긋하고 살랑한 존재가 되어보리라는 호기는 좀 부리고 싶은 밤이다.”
- 《빈틈의 온기》 작가의 말 中
  • 202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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