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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의 속 깊은 인터뷰

고교 궁사 김제덕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

2020 도쿄올림픽 해설위원들이 가장 많이 한 대사가 있다. 종목도, 노하우도 제각각 다르지만 해설위원들은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놀라울 정도로 같은 주문을 했다. “집중해야 됩니다!”

이 주문은 비단 선수들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우리 삶 곳곳의 이정표 같은 지점마다 무언가를 이루게 해주는 단 하나의 주문처럼 박혀 있다. 누군가는 “집중해야 했어”라는 뼈아픈 과거로, 또 누군가는 “집중해야 해!”라며 지금 이 순간 스스로를 다독이는 현재형으로, 다른 누군가는 “집중하세요!”라는 미래형 주문으로.

집중력은 힘이 세다. 승자와 패자, 1등과 2등을 가르는 건 실력이라기보다 집중력의 차이라고 보는 게 옳다. 프로 세계에서 실력은 사실 별반 차이가 없다. 그들 누구나 98점까지는 간다. 문제는 누가 99점, 100점이 되는가인데, 이건 마인드컨트롤 영역이다.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한곳에 집중해 후회 없을 경기를 치르는 것.

양궁 국가대표 최연소로 올림픽에 출전한 김제덕 선수를 2관왕에 올려놓은 비결 역시 놀라운 집중력이었다. 17년 3개월. 1988 서울올림픽 때 그 앳된 김수녕 선수보다도 2개월 빠른 출전이고, 이번 양궁 대표팀 최연장자인 오진혁 선수보다는 무려 23년이나 어려 “(안 닮은) 아버지와 아들 같다”는 우스갯소리도 회자됐다. 고등학교 2학년생인 이 고교 궁사는 기라성 같은 프로들을 제치고 혼성 및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국가대표선발전에는 김우진, 오진혁에 이어 3위로 진출했고, 랭킹 라운드에서는 1위를 차지하며 안산과 함께 혼성단체전 출전권을 따냈다.

‘무서운 신예’라는 표현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김제덕. 그는 떡잎부터 달랐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친구 따라 우연히 양궁을 접한 후 예천초등학교 지도교사한테 본격적으로 양궁을 배운 그는 1년 만에 전국청소년대회를 휩쓸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 한창이던 2016년 〈영재발굴단〉에 출연한 영상은 전설처럼 공유된다. 2019년 마드리드 주니어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2관왕(혼성단체전 및 단체전 금)에 올랐고, 2021년 광주아시안컵에서도 2관왕(개인전 및 단체전 금)을 거머쥐었다.

그는 이제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몰이를 하는 스타가 됐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25만 명에 달하고, 일거수일투족이 소위 ‘짤’로 만들어져 공유된다. 뭐든 놀이로 진화시키는 Z세대에게는 김제덕 덕질도 놀이다. 김제덕의 별명을 함께 짓고 확대 재생산한다. 게임 캐릭터 ‘주먹밥 쿵야’와 닮았다고 ‘제덕쿵야’, 양안 시력이 2.0이라고 ‘몽골쿵야’, 신을 닮은 아기라는 뜻에서 ‘갓기(God+아기)’, 어리지만 매서운 눈빛을 지녔다고 ‘아기호랑이’로 불린다. 이게 다가 아니다. 고교생으로 군 면제를 받아서 ‘면제덕’ ‘군필남고생’이라 부르는가 하면, 그의 트레이트마크가 된 ‘코리아 파이팅’에서 따와 ‘파이팅좌’로도 부른다.

도쿄올림픽을 치르고 귀국해 자가격리 중인 김제덕 선수와 전화로 단독 인터뷰를 했다. 그는 예의 바르고 정중했으며, 모든 문장을 ‘~했습니다’의 합쇼체로 말해 더 다부져 보였다.



김제덕 선수, 하면 ‘코리아 파이팅’이 먼저 떠올라요.
원래 시합 때마다 파이팅을 외칩니까?


“이번 올림픽에서 파이팅은 양궁 대표팀의 전략이었습니다. 한국 대표팀의 긴장감과 부담감은 감소시키고, 상대의 긴장감과 부담감은 증폭시키는 전략이죠.”


김 선수만의 전략이었나요, 아니면 한국 양궁 대표팀 전체가 공유한 전략이었나요.

“일단 감독님들에게 파이팅을 크게 외쳐도 되는지 여쭤봤어요. 박채순 총감독님과 남자대표팀 홍승진 감독님께요. 왜냐하면 경기를 하면서 일단 제가 긴장이 많이 되고, 그 긴장을 떨쳐내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됐거든요. 파이팅을 외치면 긴장이 좀 사라지면서 자신감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파이팅은 큰 시합 때마다 종종 외치지만 이렇게 지속적으로, 많이 한 건 처음입니다.”

‘파이팅’은 말하자면, 김제덕 선수가 스스로에게 거는 일종의 주문이자 최면이었다. 크게 소리 질러 몸 안에 쌓인 긴장감을 풀고 ‘나는 할 수 있어’라고 되뇌는. 자신의 실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한 작은 세리머니였지만 파장은 컸다. 오진혁 선수가 활을 쏘기 전 김제덕 선수가 크게 외친 “오진혁 텐!”은 주문대로 현실이 되기도 했다.

온몸의 기를 담아 입을 최대치로 벌리고 목청껏 외친 ‘코리아 파이팅’은 확성기를 댄 듯 경기장 전체를 가득 채웠다. 우리 팀은 그의 파이팅 주문에 힘을 얻었고, 상대 팀의 집중력은 흔들렸다. “시끄럽다”며 대놓고 불만 섞인 반응을 보이는 팀도 있었다. 일본팀은 신기하게도 ‘파이팅’을 외치면서부터 지지부진하던 성적이 기적처럼 좋아졌는데, “한국팀의 파이팅을 따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활을 쏘는 순간 무슨 생각을 합니까?

“(0.5초의 망설임 없이) 욕심부리지 말고 자신 있게 쏘자.”


이 또한 주문처럼 들리는군요.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이런 면은 좀 특출 난 것 같아’라는 부분이 있다면요.


“(이 역시 망설임 없이) 자신감과 꾸준한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감은 타고난 것 같아요?

“활을 쏠 때 말고도 다른 운동을 할 때도 자신감 있게 합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장난도 치면서.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습니다. ‘노력만 하면 나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어’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또 끈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제가 뭘 하나를 하면 해낼 때까지 끝까지 하는 성격이라고 합니다.”


꾸준한 노력이라. 연습량이 얼마나 되는지요.

“평균적으로 하루 300~400발 정도 쏩니다. 이 연습량은 꼭 지키려 합니다.”


하기 싫을 때는 없어요?

“저도 사람이다 보니 하기 싫은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스케줄이 많아서 지칠 때, 비가 오는데 밖에서 훈련해야 할 때는 하기 싫은 마음도 생깁니다. 하지만 저는 선수니까요. 최악의 상황에서도 활을 쏴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꾸준한 경기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고 쏴야 한다는 생각에 꾹 참고 연습합니다. 하기 싫은 마음을 참고 그냥 하는 것도 그 상황에 맞부닥뜨렸을 때 하나의 경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기 싫은 마음을 꾹 누르고 하다 보면 하기 싫은 마음이 없어지나요.

“하기 싫어도 하다 보면 하기 싫은 마음을 잊어버리게 되고, 연습이 끝나면 그 마음이 없어집니다. 끝나고 나면 쾌감이 남고요. 하기 싫은 마음을 극복해서 연습을 다 마치면 쾌감과 즐거움이 훨씬 더 큰 것 같습니다.”


하다 보면 자신감이 떨어질 때도 있을 텐데요.

“맞습니다. 제가 자신감이 많은 편이고, 또 그 자신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감이 떨어질 때가 분명히 찾아옵니다. 그럴 때는 다시 회복하기 위해 더 큰 노력을 합니다. 저만의 두 가지 노하우를 찾았는데요, 기분 자체를 업시키기 위해 노력하거나 즐거웠던 순간의 마음을 불러옵니다.”


그 순간이 언제였어요?

“2년 전, 국가대표라는 명칭을 처음 달았을 때요. 그때의 쾌감과 기분을 생각합니다.”



하루 평균 연습량 300~400발. 양궁 한 발의 제한시간은 30초니(이번 올림픽부터 40초에서 30초로 짧아짐) 9000초~1만 2000초에 해당하는 연습량이다. 이걸 채우려면 두 시간 반~세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연습해야 가능하다. 중간 중간 물도 마시고, 어깨 근육도 풀어주고, 때때로 다른 스케줄이 끼어드는 시간을 감안하면 사실상 하루 종일 연습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연습량은 소년 궁사에게 일취월장의 실력을 안겼지만 한편으로는 부상도 따랐다. 지나친 반복훈련으로 어깨관절끼리 충돌하면서 염증이 생겼다. 국가대표 타이틀을 얻으며 정상을 향해 달려가던 2019년, 그는 ‘어깨충돌증후군’을 얻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멈추고 쉬어야 하는 상황. 그는 2개월간 활을 놓고 재활훈련에만 매달렸다. 그 시간은 오히려 그를 더 단단하게 했다.


김제덕 선수가 18세이고, 만 9세부터 양궁을 시작했으니 인생의 절반을 활시위를 잡고 살았어요.
그만두고 싶을 땐 없었어요?


“없었습니다. 한 번도.”


어깨를 다쳤을 때도요?

“그때도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다만 몸이 아프니까 연습을 하기 싫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근력과 코어 강화운동을 하면서 회복했고, 지금도 꾸준히 운동하면서 유지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천재형과 노력형 중 어디에 가까운 것 같아요?

“노력형 같습니다. 꾸준하게 노력하려 합니다. 노력을 이기는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물론 매 순간 긍정적인 마음이 드는 건 아니지만, 마음이 안 좋을 때도 모든 상황을 하나의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양궁을 처음 시작한 순간의 기억이 궁금합니다.

“양궁을 접하기 전에는 양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친구가 장난으로 ‘너도 한번 양궁 해봐’ 해서 하게 됐는데, 해보니까 너무 재밌었습니다. 그때의 쾌감이 상당했습니다. ‘내가 잘 쏘는구나’ 하는 생각보다 엑스텐(X텐, 과녁 정중앙에 있는 까만 점)을 맞혔을 때 쾌감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 쾌감, 어떤 마음이에요?

“일단 굉장히 신기합니다. 다음에 쏘면 또 엑스텐을 맞힐 것 같은 자신감과 믿음도 생깁니다.”


아쉽게도 개인전에서는 32강에서 탈락했지요.
이미 2관왕을 달성한 후라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어요. 스스로 생각하기에 패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나요.


“올림픽에 출전하면서 애초에 단체전 무대만 보고 나갔습니다. 영광된 모습으로 단체전에 최선을 다하자는 각오였죠. 혼성단체전이나 개인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둘 다 ‘지더라도 편하게 즐기면서 쏘고 오자’고만 생각했습니다. 혼성단체전은 운이 좋아서 나가게 됐고 금메달까지 땄지만, 개인전은 너무 일찍 탈락했죠. 물론 아쉬움도 많이 남긴 하지만 배운 것도 많았고, 이 기회를 통해 더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인스타그램을 보니 “욕심부리지 말자, 늘 감사하자, 즐기면서 하자”는 말을 주문처럼 하더군요.

“그게 제 신조예요. 주변 분들이 모두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걸 잘 받아들이는 편입니다. 실천하려 노력하고요.”


인스타 팔로워가 무려 25만 명이나 되던데요, 인기를 실감해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습니다. 저도 깜짝 놀랐죠. 올림픽 출전 전에는 1200명 정도였는데, 혼성단체전이 끝나고 나서 갑자기 팔로워 수가 확 늘어서 20만 명이 됐고, 며칠마다 만 명씩 늘고 있어서 참 신기합니다.”



김제덕 선수는 200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면서 할머니가 사는 경북 예천으로 내려와 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됐다. 이름의 ‘덕’은 돌림자다. 보수적인 가풍이 강한 경상도에서는 2000년대 들어서도 돌림자를 꽤 많이 썼는데, 김 선수 집안 역시 그랬다. 사촌 형 두 명도 같은 돌림자를 쓴다.

지난해 그의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올림픽 출전을 앞둔 김제덕은 그 와중에도 아버지를 살뜰히 챙겨 ‘효자덕’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국밥을 유독 맛나게 끓여주던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


아버지 건강은 좀 어떠신지요.

“뇌경색에 뇌출혈이 와서 많이 안 좋습니다. 흡연만 덜 하시면 회복에 도움이 될 텐데 걱정이 많이 됩니다. 전화 드릴 때마다 ‘아버지, 담배 좀 끊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얘기합니다. 꼭 끊으시면 좋겠습니다.”


올림픽 출전 전, 직접 병간호도 많이 갔다죠?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틈틈이 갔습니다. 연습할 시간을 쪼개면 갈 수 있습니다. 당시는 코로나가 심하지 않을 때여서 병문안이 자유로워 종종 챙겼습니다.”


금메달 특전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을 연결해주겠다고 하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요?

“처음 양궁을 하게 해주신 초등학교 코치님, 꾸준하게 봐주신 중학교 코치님, 고등학교 코치님, 할머니, 아버지, 양궁 국가대표 총감독님, 감독님과 코치님들 그리고 우리 선수들 다 너무너무 보고 싶습니다.”


한 명만 꼽아달라는 질문이었는데, 보고 싶은 분들이 많군요(웃음).
김제덕 선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단 한 명만 꼽자면요.


“친구의 권유로 양궁을 시작하긴 했지만, 꾸준하게 양궁을 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신 예천초등학교 양궁 코치선생님을 꼽고 싶습니다.”


김제덕 선수에게 양궁이란 뭔가요.

“(망설임 없이) 제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즐기는 스포츠.”


다음 목표는.

“다음 목표라기보다 처음부터 목표로 삼았던 게 있습니다.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 금메달,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입니다. 하나는 이뤘으니 나머지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좌우명이 있습니까?

“자신 있게 즐기면서 좋아하는 걸 하자. 양궁을 할 때의 각오이자, 평소 제 성격 같습니다. 양궁 할 때 따로, 평소 좌우명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마인드가 그렇습니다. 자신 있게, 즐기면서, 좋아하는 걸 하자!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17세 3개월의 고교 궁사는 이미 완성형이었다. 자신에게 양궁이란 뭔지, 활을 쏘는 순간의 마음가짐은 어땠는지, 올림픽 출전 당시 마인드는 어땠는지 등의 질문에 쏜살같은 속도로 답을 내놨다. 자신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과 통찰이 없으면 불가능한 답변이었다. 우리는 자신의 일과 관련해 아주 기본적인 질문에도 답을 찾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황효진 경북일고 코치는 김제덕 선수에 대해 “보통 (화살이 잘) 안 맞으면 조정해서 쏘는데 제덕이는 너무 대담하게 쏴서 섬뜩할 때도 있었다”고 했다. 스스로 다짐하는 좌우명 ‘자신감 있게! 즐기면서!’를 장착하지 못하면 가질 수 없는 태도다.

도쿄올림픽을 마치고 귀국행 비행기에서 그는 안산 선수에게 《두려움 속으로》를 빌려 읽었다. 미국 대학 스포츠 사상 가장 많은 승리를 이끈 전설의 코치 폴 아시안테가 쓴 책으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추천한 책이기도 하다. 책은 말한다. 두려움을 극복하려 하지 말고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두려움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는 용자(勇者)만이 승리할 수 있다고. 김제덕 선수는 결정적인 순간에 피하지 않는다. 두렵기도 하고 긴장감이 가득하지만, 스스로를 믿고 맹수 같은 눈으로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완성형 승부사 김제덕의 내일을 믿는다.
  • 202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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