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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슬의 커피코피해피 #21

이름의 무게

글 : 강이슬 

언젠가 고양이에겐 창밖을 바라보는 게 산책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 집 고양이 강짱을 위해 거실과 방에 있는 창문을 자주 열어놓는다. 짱은 창문이 열리자마자 가볍게 뛰어올라 창틀에 배를 깔고 식빵을 굽는 자세로 창밖을 주시한다. 나는 그가 따끈한 햇볕을 쬐며 노곤하게 멍을 때리는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 날 자세히 관찰하고 나서야 무언가를 집중해 응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동공을 확장하고, 어깨를 움찔거리며, 귀를 으쓱하며, 때때로 털을 세우기도 하는 고요하지만 역동적인 산책을 그는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짱이 창문 너머로 주시하는 대상은 매번 다르다. 때로는 마당을 구르는 낙엽이고 때로는 휘청휘청 날아다니는 날벌레, 때로는 길고양이 먹으라고 둔 밥을 훔쳐 먹는 비둘기다. 짱의 집중력이 가장 높아지는 순간은 군식구가 찾아올 때다.


창문 안팎의 고양이 모두
상대를 부러워하지 않길


군식구, 우리 집에 찾아오는 네 마리의 길고양이들. 그중 덩치가 제일 커다란 수컷 치즈 고양이가 넉살이 좋다. 가끔 밥그릇이 비어 있을 땐 이 집에 사는 누군가가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넉넉히 밥그릇을 채워놓을 때까지 마당에 배를 까고 드러누워 햇볕을 쬐는데 그 뻔뻔함이 가히 사랑스럽다. 언젠가, 혹시 다가올까 싶어 고양이 간식을 들고 나가본 적이 있는데 어떤 경계심도 없이, 그러나 고양이 특유의 우아함을 잃지 않은 자태로 츄릅츄릅 잘 받아먹었다. 치즈 고양이는 기분이 좋았는지 내 무릎에 머리를 비볐다. 나는 궁둥이를 툭툭 쳐주며 “아이고 아이고 그랬어? 그랬구나~” 말했다. 고양이는 낮게 그르렁거리며 기분 좋은 티를 냈다.

그날, 치즈 고양이를 가까이에서 처음 보았다. 창문 너머로 볼 때는 모양새 좋게 둥글둥글 살이 찐 것 같았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얼굴과 몸에서 생활의 풍파가 느껴졌다. 다른 고양이와 싸울 때 생긴 걸까, 눈 밑에 난 상처와 숨 쉴 때마다 드러나는 갈비뼈, 손바닥에 느껴지는 아이의 마른 궁둥이, 말려 있는 짧은 꼬리, 얼룩덜룩 떡 진 털과 치석이 잔뜩 끼어 있는 송곳니가 안쓰러웠다.

창문 밖으로 우리 모습을 가만 내다보던 짱이 길게 ‘우---옹’ 하고 울었다. 치즈 고양이가 우리 집 낮은 창틀에 앞발을 올리고 몸을 길게 늘였다. 방묘창을 사이에 두고 둘은 한참 서로의 냄새를 맡았다. 창문 밖의 고양이와 창문 안의 고양이는 서로에게서 나는 낯선 체취를 맡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둘 중 어느 쪽도 상대방을 부러워하지 않기를 바랐다.

‘도로로록’ 밥그릇에 사료 채우는 소리를 들은 치즈 고양이가 강짱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느릿느릿 밥그릇 앞으로 다가와 밥을 먹었다. 눈까지 감은 걸 보니 제법 음미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곁에 쪼그리고 앉아 그가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한참 동안의 식사를 마친 치즈 고양이는 사료 한 톨만큼의 미련도 없는 표정으로 뒤돌아 마당을 빠져나갔다.



사랑에 필연적인 염려는 두렵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앞으로 쟤를 노랑이라고 부를까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름을 붙여준다는 건 작지 않은 결심이니까. 네 마리의 고양이를 위해 매일 밥그릇을 채워주면서도, 그들이 밥 먹는 모습을 흘끔거리며 흐뭇해했어도 이름을 붙이지 않은 이유는 내가 붙여준 이름을 타고 사랑이 옮아갈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사랑은 두렵지 않지만 사랑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염려는 두려웠다. 그러니까 이름을 지어준다는 건 곧 그 아이를 염려하기로 결정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비가 많이 내리거나, 햇볕이 지나치게 뜨겁거나, 살을 에는 찬바람이 불 때마다 창문 밖을 내다보며 마음 졸일 일이 뻔했다. 사흘 넘게 보이지 않는다면, 영역을 옮겨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는다면 뾰족한 방도 없이 그저 발만 동동 구를 것이다. 차라리 사료 한 톨의 미련도 남기지 않고 떠나는 치즈 고양이의 뒷모습을 보며 어디에서든 굳세게, 탈 없이 살아갈 거라고 믿는 쪽이 적어도 나를 위해서는 더 좋을 것이라고 치사한 자위를 했다.

집으로 들어가니 강짱은 아직도 창문 밖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담벼락 너머로 사라진 노랑이를 찾는 건지 두 눈동자가 바빴다. 길에서 떨고 있던 병 걸린 아기 고양이 시절의 짱이 겹쳐 보였다. 임시 보호를 목적으로 데려왔지만 그를 “고양아~” 하고 부르기 미안해 이름을 지어줬다. 그 이름을 타고 사랑이 옮아간 바람에 나는 그에게 더 좋은 주인을 찾아주지 못했고 다만 평생을 염려하고 사랑할 책임을 얻었음을 기억했다.

글쓴이 강이슬은 〈SNL 코리아〉 〈인생술집〉 〈놀라운 토요일〉 등 TV 프로그램에서 근면하게 일하며 소소하게 버는 방송작가다.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안 느끼한 산문집》으로 대상을 받고 출판 계약을 하며 난생처음 갑이 된 데 이어 《새드엔딩은 없다》까지 출간했다.
술과 개와 밤을 좋아하고 욕을 잘하지만 착하다. 어제도 오늘도 가난했고 내일도 가난하겠지만 가난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가지고 있다.
  • 202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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