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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의 응시(凝視) ①

고양이 발톱 깎기

“어려움의 실체를 들여다봐야 한다. 고양이 발톱 깎는 일 자체가 어려운가? 혈관을 피해 발톱 부분만 톡톡, 깎아내면 그뿐인데? 어려운 건 겁먹은 나와 그런 나를 못 믿는 고양이, 내 두려움과 고양이의 두려움이다. 우리의 부정적인 마음과 서로에 대한 불신이 어렵지, 발톱을 자르는 일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었다. 이 사실을 깨닫는 데 며칠이 걸렸다. (중략) 두려움은 알지 못함에서 기이한다. 두려움은 안개와 같다. 쉽게 퍼지고 덩치가 크며 사람을 아득하게 만든다.”
© 셔터스톡
오랫동안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싶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묘연(猫緣)’이란 게 정말 있을까? 단골 카페 사장님이 길에서 구조한 고양이가 여러 곳(버려짐, 파양, 임시보호)을 거쳐 내게 왔다. 당주는 내 삶에 들어온 첫 고양이다.

당주를 입양한 뒤 가족과 친구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너 좀 지나치다”란 말이다. 고양이에 대한 내 사랑과 관심, 애착 정도가 과하다는 말이다. 내가 그 말에 아랑곳할 줄 알고? 그때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토니 모리슨의 소설 문장을 인용해 대꾸한다.

“사랑이 그런 거야. 그렇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지. 옅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1)

“네 사랑은 너무 짙다”고 비난하는 남자에게 주인공 여자가 하는 말이다. 백 번 옳은 말이다. 세상은 온갖 것에 ‘사랑’을 갖다 붙이지만 진짜 사랑은 드물고, 어렵고, 지나친 법이다. 그게 무엇이든 도를 벗어난 것, 선을 넘는 것, 마음 편할 날이 없는 게 사랑의 속성 아니던가. 내 고양이 당주는 하필 ‘지나침’이 전공인 집사를 만나, 지극한 애정과 부담스러운 관심을 받으며 잘 지내고 있다.(100일이 채 안 됐다.)

당주가 오고 일상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야금야금 찐 살 3kg 중 2kg이 첫 주에 빠졌다. 당시엔 내가 살이 빠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배가 고프지도, 부르지도 않았다. 무언가를 먹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침잠이 많아 늦게 일어나던 내가 새벽 다섯 시만 되면 눈이 떠졌다. 고양이가 잘 잤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밤새 화장실은 잘 다녀왔는지 체크하느라 바빴다. 일이 산적해 있었지만 일을 하면서도 정신은 내내 고양이에게 가 있었다.

나는 고양이가 우리 집에서 부디 잘 적응해주기만을 바라는 초보 집사였다. 고양이에 대해 아는 게 없었으므로 책을 사서 읽고, 유튜브를 찾아보며 공부했다. 돌아보니 나는 그때 ‘사랑에 빠진 자’의 전형을 하고 있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아무리 마음을 주어도 더 주고 싶은 상태, 사랑이여!


두려움은 안개와 같다

사랑에 빠진 어리석은 자가 책으로 ‘고양이 기르기’를 배우던 무렵, 내게 가장 난이도 높은 일은 ‘고양이 발톱 깎기’였다. 고양이는 산책을 하지 않으므로 발톱을 깎아줘야 하는데, 제때 하지 않으면 발톱이 발바닥을 찔러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사랑에 빠진 나는 당주가 조금이라도 발이 불편해 보이면 무릎을 꿇고 앉아 안절부절못했다. 아프니? 어때? 괜찮은 거니? 대답이 돌아올 리 없는 질문을 해대는 내게 당주는 앞발과 뒷발을 내(보여)주지 않았다. 고양이들이 대개 그렇듯 당주 역시 발 만지는 걸 싫어했다.

물론 어려울 줄은 알았다. 그러나 어려움의 실체를 들여다봐야 한다. 고양이 발톱 깎는 일 자체가 어려운가? 혈관을 피해 발톱 부분만 톡톡, 깎아내면 그뿐인데? 어려운 건 겁먹은 나와 그런 나를 못 믿는 고양이, 내 두려움과 고양이의 두려움이다. 우리의 부정적인 마음과 서로에 대한 불신이 어렵지, 발톱을 자르는 일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었다.

이 사실을 깨닫는 데 며칠이 걸렸다. 당주의 발을 한번 잡아보고, 고양이용 발톱가위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두려움 속을 헤맸다. 두려움은 알지 못함에서 기이한다. 두려움은 안개와 같다. 쉽게 퍼지고 덩치가 크며 사람을 아득하게 만든다. 내가 자신 없는 태도로 가위를 발톱에 가져다대니 (떨면서!) 당주가 소스라치며 발을 뺐다. 싫다는 뜻이 분명한 소리를 냈다. ‘이러지 마. 네가 뭘 한다고 야단이니. 날 다치게 할 셈이야?’ 고양이는 다양한 음조로 마음을 표현하는 소리를 낸다. 마치 노래처럼, 오페라처럼 들리기도 한다.

나는 고양이 발톱 깎는 영상을 검색해서 반복해 보았다. SNS를 통해 선배 집사들의 조언을 모았다. 고양이를 무릎에 앉히거나 뒤에서 끌어안듯 다가가 재빨리 깎으라는 이야기, 2인 1조로 한 사람은 고양이를 잡고 다른 한 사람이 재빨리 깎으라는 이야기, ‘개난리’가 날 것을 미리 각오하라는 이야기, 집사가 겁을 먹으면 귀신같이 알아채므로 담대하게 자르라는 이야기 등이 있었다. 이 중에서 마지막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다. 내 속을 들켰기 때문이다. 발톱을 깎다가 당주의 혈관을 다치게 할까 봐 겁이 났다. 발톱을 자른다고 통증이 생기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지만 당주는 사람이 아닌 고양이 아닌가! 게다가 나는 태어나 동물의 발톱을 깎아본 일이 없다. 당주가 싫은 나머지 나를 할퀴거나 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 겁이 났다.


느긋하고 단호한 마음

남편에게 당주의 목을 (너무 세지는 않게) 잡고 있으라고 한 다음 발톱가위를 들어보았다. 여러 번 실패한 끝에 왼쪽 발톱 두 개를 깨알만큼 자르는 데 성공했다. 당주는 아파하지도, 물거나 할퀴지도 않았다. 그저 싫다고 야옹거릴 뿐이었다. 당주는 순했다. 용기가 생겼다. 나는 두 번의 (깨알만큼 크기지만) 성공을 맛보지 않았는가.

며칠이 지났다. 내 1인용 소파를 당주와 반씩 나눠 앉은 채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당주는 내 곁에서 골골송을 부르다 잠들었고 나는 그 사이 원고를 쓰고 메일을 보냈다. 틈틈이 당주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줬다. 어느 순간 당주는 완전히 이완한 상태로 사지를 늘어뜨린 채 잠들어 있었다. 이때를 놓치면 안 된다! 남편에게 내 방으로 발톱가위를 ‘조용히’ 가져다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당주가 깰까 봐 움직일 수 없었다.

결심했다. 나는 당주 엄마이자 집사다. 고양이의 건강을 돌봐야 한다. 당주가 나를 할퀴거나 물면? 그게 뭐 얼마나 아프겠는가. 당주가 내 결연한 의지를 눈치 챘는지 자다 깨서 그루밍을 하고 있었다. 당주가 오른발을 그루밍 할 때 왼발을 살짝 들어올린 뒤, 자연스럽게 발톱을 깎았다. 순식간에 왼쪽 앞발 성공! 당주는 나를 한 번 바라보더니 왼쪽 앞발을 거둬가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그루밍을 했다. 나는 태연하게 오른쪽 앞발을 잡았다. 조금 낑낑거리며 싫은 티를 내는 당주, 그렇지만 나는 최대한 느긋한 목소리로 “잠깐만, 기다려봐” 말하며 발톱을 마저 깎았다. 심장은 뛰었지만 태연한 척했다. 이런 식으로 뒤 뒷발도 하나씩 잡고 톡톡톡, 발톱 깎기에 성공했다.


마음을 억지로 잡을 수 있을까?

내가 담대하고 여유를 가진 척하자 당주는 순순히 참아줬다. 결국 태도인가? 겁을 먹지 않아야 하는 일인가? 당주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선 스스로 나를 믿고, 느긋하고 단호한 ‘집사 마음’을 갖고 다가가야 한다. 당주는 조금 어리둥절한 얼굴을 할 뿐 착하게 받아들였다.

마음이 마음을 안다. 내 자신감 없음을 저쪽에서 알게 되면 같이 불안해진다. 내가 고양이를 믿으면 고양이도 나를 믿는다. 사람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고양이를 제압해서 억지로 붙들고 깎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우리 방식은 아닌 것 같다. 당주는 제압하려 할수록 온몸을 비틀며 필사적으로 빠져나가려 하니까. 둘 다 이완한 상태일 때 톡톡, 태연하게 움직이기. 요새도 당주의 발톱은 잠이 들었거나 비몽사몽일 때 깎는다. 무리하지 않는다. 오늘 다 못 하면 내일 하면 된다. 자연스러운 것만큼 안전한 건 없다.

통제와 억지를 싫어하는 고양이를 보며 생각한다. 내가 힘으로 널 잡는다 해도 네가 잡히겠니. 너는 바람처럼 잡을 수 없는 고양이인걸. 누군들 ‘마음’을 억지로 잡을 수 있을까? 당주가 온 뒤로 나는 매일 자란다. 당주의 발톱이 자라는 속도만큼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박연준
파주에 살며, 일주일에 세 번 발레를 배운다. 창문, 숲, 기러기를 좋아한다. 시집으로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이 있고, 산문집 《소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쓰는 기분》 등을 썼다.

1) 토니 모리슨, 《빌러비드》, 문학동네, 272쪽.
  • 202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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