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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슬기의 이작가야

소설가 정유정

자기애의 늪은 타인을 어떻게 옭아매는가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정유정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천 길 낭떠러지라도 함께 내딛을 준비. 소설을 여는 순간 지옥행 급행열차가 출발하더라도 함께 완주할 준비. 그의 소설을 읽어본 이들은 안다. 이 열차의 유일한 안전바는 정유정이라는 인장이다. 그의 손을 잡으면 결국 생의 진실이라는 지점에 다다른다. 그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 소설이 해야 할 이야기를 적는다. 작가가 해야 할 바를 에둘러 가거나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곁눈질하느라 곁길로 새지 않는다. 그 이야기에 설령 선한 사람이 도륙되고, 약한 존재가 희생되더라도 그는 묵묵히 간다.

소설이 닿아야 할 곳은 진실이며, 우리가 외면하지 않고 마주해야 하는 것은 삶의 맨얼굴이기에.

그의 신작 《완전한 행복》을 읽는 동안 자주 가위에 눌렸다. 꿈속의 늪은 깊고 눅진했다. 소설의 인물들도 자주 꿈과 현실의 경계선에서 버둥거리다 깨어난다. 작가는 인물과 함께 진흙탕 같은 현실을 뒤집어쓰고 그 깊은 늪의 심연을 향해 돌진한다. 천국처럼 시작된 두 사람의 만남은 어떻게 파국으로 치닫는가. 한 사람의 뒤틀린 자아는 어떻게 한 사람의 육신과 정신을 옭아매, 그의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가. 그가 이번에 캐낸 진실은 자기애라는 늪이다.


“사람들이 좋아할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로서 해야 할 이야기를 해야 해요.”


작가에게는 언제부턴가 사회와 시대로부터 읽히는 수상쩍은 징후가 있었다. 자기애와 자존감, 행복에 대한 강박이었다. 저마다 ‘나르시시스트’가 되기를 강권하는 사회는 자기 자신의 일상다반사에 찬란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대신, 타인에 대해서는 검고 짙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타인의 일상을 검열하고 ‘나만 불편해?’라고 딴지를 거는 일,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누군가를 견디지 못하고 그를 망가뜨리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일 등이 그렇다. 유명의 은총을 입은 자는 악플의 도마 위에 오른다. 찬사를 받다가도 하루아침에 대중의 눈 밖에 나면 삶은 난도질당한다.

정유정 작가는 악의 3부작이라 불리는 전작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에서 사이코패스를 다뤘다. 악은 어떻게 태어나고 점화되는지 밝히기 위해 종래에는 그 스스로 악인이 되어 극 중에 뛰어들었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본성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어두운 숲’을 안으로부터 뒤집어 보여줄 수 있으려면, 악이 어떤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가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가는지 그리려면 나 스스로 악인이 되어야 했다”고. 사이코패스가 된 아내를 피해 남편은 방을 따로 쓰고,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들도 숨을 죽인 시절이었다.

이번 작품은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나르시시스트가 사이코패스는 아니지만 모든 사이코패스는 기본적으로 나르시시스트다. 나르시시스트, 즉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지닌 《완전한 행복》의 유나는 ‘사이코패스보다 흔하다는 점에서 두렵고,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지만 정작 자아는 텅 비어 있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며, 매우 매혹적이라는 점에서 위험한 존재’다. 작가 역시 그런 인물을 만나 조종당하고 통제되다가 황폐화된 경험이 있다.

“나르시시스트가 타인의 자아를 멋대로 통제할 수 있는 건, 이들 자신이 자아가 없기 때문이에요. 자존심은 센데 자존감은 없죠. 타인의 자아를 가져다 쓰면서도 일말의 죄책감이 없어요. 이게 다 너를 위해서 하는 행동이며 너만 잘했다면 내가 이러진 않았을 거라며 오히려 상대를 탓하죠. 학창 시절에도 그런 경우 있잖아요. 잠시 가방만 들어달라고 해서 들어줬는데 어느새 그의 모든 짐을 다 지고 바보처럼 서 있게 된 경험이요.”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주에 사는 사람은 자기가 지불해야 할 감정도 타인의 통장에서 끌어다 쓴다. 타인을 통제하고 지배하며 착취하는 게 당연하다는 태도는 묘한 긴장감과 매력으로 상대를 끌어당긴다.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줄 알면서도 연인, 배우자, 친구, 스승과의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이들과의 관계는 늪 같다. 발을 들이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작품을 시작하기 전 바이칼 호수에 갔어요. 이유는 하나예요. 검색창에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를 찾았어요. 그 호수를 보기 위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러시아에 다녀왔죠. 소설 속에서 유나와 은호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났던 장면, 유심칩을 잃어버려 허둥대던 모습은 모두 경험에서 나왔어요. 눈물이 바로 얼어서 속눈썹에 고드름처럼 맺혔던 일,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 때문에 동네 개들에게 쫓긴 이야기도 제가 겪은 일이에요.”

고생 끝에 마주한 바이칼 호수는 표면적은 북아메리카 오대호의 13%밖에 안 되지만 물은 세 배나 많다. ‘시베리아의 푸른 눈’ ‘시베리아의 진주’라고 불린다. 하지만 빠지면 죽는다. 바이칼 호수에서 유나에게 매혹된 은호는 수렁에 빠진다. 가스라이팅의 비극 중 하나는 피해자가 제 발로 자기 죽을 길로 걸어 들어간다는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반달늪은 이 비극의 은유다. 유나는 항상 보름달처럼 완전한 행복을 꿈꾼다. 그 완전함에 위배되는 것은 제거한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완전함은 결코 성취되지 않는다. 반은 항상 비어 있고, 유나는 그걸 견디지 못한다. 반달늪은 악취와 악몽으로 채워진다.

현실에서도 뉴스와 신문의 사회면은 이런 끔찍한 사건을 대서특필한다. 범인이 어떤 방식으로 살인을 저질렀으며, 어떻게 사체를 유기했는지. 당시 범인은 어떤 옷을 입었고, 어떤 차를 탔는지. 소설은 다르다. 인물의 내면에 집중한다. 그의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기어이 이런 일을 저질렀는가. 그를 만난 이들의 삶은 어떻게 파괴되었는가를 샅샅이 살핀다. 사람이 아닌 사건을 이슈로 소비하거나, 범인을 희대의 살인마로 치부하면 사회에 흩뿌려진 병리적 현상에 대한 진단과 치료도 요원해진다.

“이번 소설을 읽으며 어떤 사건, 어떤 인물을 떠올릴 수도 있어요. 물론 그 사건이 제가 고민하던 바와 맞아떨어져 제 소설의 배아가 되긴 했지만 유나와 그 인물을 동일시하는 건 제가 바라는 바가 아니에요. 이야기의 목적은 자신의 행복만 추구한 한 인간이 타인의 행복을 어떻게 짓밟는지, 인간의 삶을 어떻게 황폐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었으니까요.”


“인물이 울면 저도 함께 울어요.
엉엉 울면서 마지막을 향해 가죠.”



납득되지 않는 인물을 조명하면서 몇 번이나 막다른 골목을 만났다. 극중 인물들도 묻는다.

“도대체, 당신 누구야.” 특히 이번 작품은 유나가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유나의 딸 지유, 유나의 남편 은호, 유나의 언니 재인의 시점으로 구성된다. 주변인의 증언을 통해 유나의 형체가 직조된다. 살인의 과정도 세세히 묘사하지 않았다. 작가 스스로의 약속이었다. 작가에게는 모험이었고, 독자에게는 꽤나 섬뜩한 경험이다. 공포영화에서도 무서운 일 그 자체보다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는 예감이 더 심장을 옥죄기 마련이니까.

유나의 딸 지유는 일곱 살이다. 일곱 살 인생은 참으로 참담했다. 자기애가 강한 부모는 아이를 클론, 자신의 분신으로 만든다. 어릴 적부터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도록 길들이고, 응하지 않을 경우 혹독하게 대한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무관심, 멸시, 학대의 반응을 보이는 것도 가스라이팅의 전형이다.

“일곱 살 아이가 겪는 일이 너무 가슴 아프잖아요. 보지 않아도 될 것을 너무 많이 보고요.

이 아이한테 너무 많은 짐을 지운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어요. 그나마 성장기에 이모나 할머니에게 맡겨지면서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아이를 지켜준 거죠.”

지유의 시점으로 본 엄마 유나를 그리는 일은 작가에게도 난도가 높은 것이었다. 너무 유아적이어서도, 너무 가혹해서도 안 됐다. 그럼에도 아이는 영민하고 단단했다. 정유정 작가의 이야기에서 인간은 악의 화신인 동시에 구원자다. 전자가 유나라면 후자는 그의 언니 재인이다.

두 사람은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나 다르게 자랐다. 운명의 갈림길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존엄함이 경로를 바꾼다. 이 작은 아이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세상 전부였으나 지옥이었던 엄마와의 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 작가도, 아이도, 독자도 눈물이 범벅이 되어 이 퍼런 서슬이 끊기기를 바라게 된다.

“소설의 시작과 끝을 정해두고 이야기를 써요. 완성된 작품은 그 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달라져요. 초고와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죠. 《완전한 행복》도 7~8번을 고쳤어요. 한 장면을 인물의 시점을 바꾸어가며 여러 시점으로 쓰기도 했고요. 에필로그는 원래 재인의 시점으로 썼는데, 막판에 은호로 바꾸었어요. 재인은 어디서든 씩씩하게 살아낼 것 같아서요.”

에필로그 속 인물은 제주 애월에 내려와 온종일 바닷가를 걷는다. 작품을 마친 뒤 정유정 작가도 그랬다. 아무 일도 못 하고 그저 제주의 바닷가를 걷기만 했다. 발이 부르트도록 걸으면서 자기 안에 깃든 인물들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숙소에 돌아오면 자양강장제를 마셔가며 밤새 사인을 했다. 작가의 친필 사인본을 받으며 기뻐할 이들을 생각하며 2박 3일 동안 5000부의 책에 일일이 이름을 적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혹사하고 나니까 좀 정신이 차려지더라고요. 코로나 이전이었다면 독자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북콘서트도 했을 텐데 지금은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니까요. 아쉬운 마음을 담아서 밤을 새워 사인을 했죠.”


“스스로가 하찮게 여겨질 때마다
내 이야기를 기다릴 사람을 생각해요.”



2007년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등단한 뒤 그의 삶은 같은 사이클로 흐른다. 2~3년 동안 광주에 칩거하며 글을 쓴다. 그리고 두세 달 동안은 서울에 머물며 독자를 만난다. 인터뷰, 홍보, 북콘서트, 강연 등이 이때 이뤄진다. 그에게는 글을 쓸 에너지를 비축하는 시간이다. 글을 쓰며 날카롭게 벼려진 자아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독자들의 반짝이는 눈, 감격스러운 반응을 보며 다정하고 다감한 자아로 바뀐다. 세상 어딘가에 자신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는 확인은 그가 글을 쓰다 한없이 바닥으로 가라앉을 때 다시 끌어올려주는 구명조끼다.

“모든 작품마다 막히는 순간이 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안 풀려요. 그게 계속되면 불안해요.

이 이야기를 끝낼 수 있을까. 끝낸들 사람들이 읽어줄까. 나는 사실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이러고 있는 게 아닐까. 스스로가 너무 하찮고 보잘것없어지죠. 그럴 때는 독자들이 보낸 편지를 읽어요. 중·고등학생이 보낸 편지도 있고, 제 글을 읽고 힘든 시절을 버텼다는 글도 있어요.

그럼 거짓말처럼 용기가 생겨요. ‘단 한 사람이라도 내 글을 기다린다면 써보자’고 마음을 다잡죠.”

어떤 독자가 “나는 작가님이 백 살까지 창작욕을 불태웠으면 좋겠다”고 쓴 글에는 혼자 “네!” 하고 크게 대답하기도 했다. 다행히 그는 여전히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 이야기를 다 쓸 수 있을까. 이제는 시간과 체력이 조바심 난다. 작품 하나를 끝내고 나면 나이가 두세 살씩 늘어 있다. 전보다 더 웨이트트레이닝 시간을 늘리고, 킥복싱에 요가를 더해 매일 체육관에서만 세 시간을 보낸다.

그의 소설은 때로 한 장의 사진, 한 곡의 노래에서 시작된다. 《내 심장을 쏴라》는 대학 때 실습 나간 정신병원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한 남자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모자람 없이 평탄하게 살아온 이 남자의 삶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답을 찾기까지 20년이 걸렸다. 《7년의 밤》은 아파트 게시판에 붙은 실종 전단지가 모티프가 됐다.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그 사건의 전말이 그는 석연치가 않았다. 《28》은 구제역 살처분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을 보고 쓰게 됐다. 작가에게도 동물권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기던 참이었다. 《종의 기원》은 친부모를 살해한 악인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인간이라는 종 속에는 무엇이 살고 있으며, 그것을 튀어나오게 만든 방아쇠는 무엇일까.

그의 소설에 중요한 건 사건이나 범인, 반전이 아니다. 이 일들이 품고 있는 진실이다. 악의 3부작에 이어 정유정 작가는 욕망 3부작을 구상 중이다. 《완전한 행복》은 그 첫 번째 작품이다.

“이번 작품이 욕망으로 황폐해진 인간의 내면을 그렸다면, 다음번에는 욕망에 저당잡힌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제가 쓴 글 중 가장 스케일이 큰 이야기가 될 것 같고요.”

하지만 모른다. 그 사이 또 무언가가 작가의 계획을 새치기해 이야기의 경로를 바꾸게 될지. 다음 작품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이건 확실하다. 그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이들, 생의 진흙탕을 뒹굴더라도 기꺼이 그의 진실의 여정에 동행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는 한 정유정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
  • 2021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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