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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농부

농업법인 화성마을여행사 이수정 대표

과수농가 맏며느리 된 도시녀, 다재다능 ‘찐농부’ 되기까지

글·사진 : 서경리 기자

스물한 살. 농사에 ‘농’자도 모르는 도시 새침데기가 한번 맛본 포도 맛에 반해 농부가 됐다. 4대째 농사짓는 과수원집 맏며느리이자 아이 셋의 엄마, 15년 차 농부. 농업법인 화성마을여행사 이수정 대표에게 붙는 수식어다. 과수원집 며느리로 농사에 발을 디딘 그는 포도·블루베리 농사는 물론 체험농장 운영과 교육, 치유농업의 문을 두드리면서 ‘농사 엔터테이너’로 거듭나는 중이다. 어느덧 삼십 대 중반. 뙤약볕 아래 붉게 그을린 얼굴에는 여전히 새침함이 묻어나는데 손톱 밑은 흙으로 까맣다.
안개가 내려앉은 경기도 화성의 과수농원. 7월의 햇살에 탱글탱글 익은 블루베리가 오묘하게 검붉은 빛깔을 뿜어냈다. 새벽부터 블루베리를 수확하고 왔다는 이수정 대표가 잠시 땀을 식히려 그늘 밑에 앉자 조르르 두 딸이 엉겨붙는다. 덥다며 손부채를 까닥이는 이 대표는 그제야 바구니에 담긴 블루베리를 딸들 입에 한 줌, 자기 입에 한 줌 넣는다. 새콤한 맛에 코를 찡긋하며 세 식구가 웃는데 입안이 보라색 과즙으로 가득하다.

“과수원집 아들이던 남편을 만나 연애 시절 데이트 겸 아르바이트로 주말마다 농장 일을 도왔어요. 대학 등록금도 여기서 일해 벌었죠. 뭣 모를 때 시집 와서 농부가 됐네요. 결혼도 농사일도 어려서 몰랐으니 했지. 아휴~.”

허허, 웃는 그의 얼굴에 여유가 묻어난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이 대표는 LG 계열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다 결혼과 동시에 경기도 화성으로 와 농부가 됐다. 시골 생활은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 흙 한 번 묻혀본 적 없던 고운 손이 10여 년의 농사일에 까칠해졌다. 그는 “처음엔 힘들었는데, 십 수 년 세월이 흐르니 강산 바뀌듯 마음도 달라지더라”며 말을 이었다.

“농사일이라는 게 참 신기하고 재밌어요. 나무들은 농부가 보살피면 보살핀 대로 쑥쑥 자라죠. 지난해 폭우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모습이 얼마나 대견한지요. 무엇보다 제가 수확한 맛난 과실을 아이들이나 농장을 찾는 손님들이 맛있다고 먹을 때면 이보다 더 뿌듯할 수 없어요.”


그가 촘촘하게 짜인 거미줄을 피해 블루베리 두어 방울을 따서 입에 톡 털어넣었다.

“무농약으로 재배해서 이래요. 거미가 해충을 다 잡아주니 고마운 존재죠. 블루베리의 천적은 새예요. 새가 다 따먹으니까 그물망으로 덮었죠.”

후덥지근한 여름 열기에 더해 흙의 습한 기운이 올라와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흘렀다. 검붉게 물든 손으로 블루베리를 따던 그가 잠시 불어온 실바람에 허리를 폈다.

“농장 근처에 시화호가 있어요. 바닷바람이 불어서 낮엔 습하게 덥고 밤엔 춥죠. 대신 일교차가 커서 포도나 블루베리 같은 과실이 잘 자라요. 이곳 송산면은 지역명을 딴 송산포도로 유명해요. 캠벨 얼리 품종인데, 향이 진하고 당도가 높죠. 시부모님은 포도를 키우고 저는 블루베리를 맡고 있어요.”


화성시에 1호 교육농장 열어


이수정 대표의 시댁은 집안 대대로 복숭아·배·포도를 재배해온 과수농가다. 그가 들어오면서 블루베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10년 전부터 심기 시작했어요. 블루베리는 날씨와 지역에 따라 키우는 품종이 다른데, 북쪽 지역에서 자라는 30여 종 가운데 10종을 들여왔어요. 가지를 꺾어 땅에 심는 삽목법으로 뿌리내리게 했죠. 지금 키우는 건 알이 굵고 단맛도 있지만 새콤한 맛이 일품이에요. 블루베리 생과는 달기만 하면 금방 물려요. 새콤달콤한 맛에 넋 놓고 먹다간 한 통 금방 비운다니까요.”

그의 시아버지가 대표로 있는 은성관광농원은 2만㎡(약 6000평) 규모다. 유통 상인을 거치지 않고 대부분 직거래하거나 체험농장을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직접 판매한다. 중간 상인이 이익의 절반을 가져가는 구조에 문제의식을 느낀 시부모가 ‘앉아서 파는 농업’으로 바꿨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시아버님은 농사일뿐만 아니라 배움에도 뜻이 깊은 분이에요. 연중 300일은 배우러 다니시죠. ‘농사는 몸이 아닌 머리로 하는 일’이라는 게 아버님 철학이에요. 아버님은 고용노동부 지정 훈련기관인 ‘한국마이스터’에서 검증한 포도 마이스터장으로 현장에서 농업인 교육도 하고 계세요.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농업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현장 교육을 하시죠. 농림수산식품부에서 과수 부문 신지식농업인에 선정되기도 했어요. 저도 아버님 따라 농업기술센터를 다니며 농업 관련 홍보와 마케팅을 공부했어요. 벤처농업대학도 수료했고요.”

이 대표가 농원에 합류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초창기엔 과실 따기 체험 위주로 진행하다가 점점 과실나무 재배, 과실청 만들기, 포도 효소 만들기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넓혀갔다. 이를 위해 체험강사와 기후강사, 시티투어 안내자 같은 자격증을 땄다. 2004년에는 화성시 1호 교육농장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후 이수정 대표는 농장과 인근 학교 등지에서 농업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나무에게 배운 것들


모든 일엔 슬럼프가 있다. 20대 그 좋은 나이에 시골로 시집 온 그의 삶에 꽃길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는 딱 한 번 “농장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인건비가 너무 올라 농장 경영도 어렵고 친구 하나 없이 동떨어져 지내야 하는 농원 생활이 외롭게 느껴진 농부 6년 차 때다.

“그만둘까 어쩔까 한참 고민하던 어느 새벽, 홀로 농장에 나와 나무에게 하소연했어요. 남편한테 화난 일, 아이들을 혼내놓고 속상했던 일 모두 털어놨죠. 제가 낯가림이 있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데, 나무는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제 얘기를 다 들어주잖아요. 털어놓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어요. 그날 블루베리가 유독 새벽이슬에 영롱하게 빛났어요. 저는 속상한 이야기만 하는데도 나무는 늘 고운 열매를 맺어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저를 다 이해해주는 것 같아서 위로가 됐죠.”


슬럼프를 이겨내고 ‘치유농업’으로

그날의 경험으로 이 대표는 ‘치유농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생명의 성장을 지켜보기만 해도 에너지를 받을 수 있어요. 마음이 건강해야 몸이 건강하다는 말도 있잖아요. 내가 먹고 건강해지는 게 전부가 아니라, 식물을 키우는 과정을 통해서도 마음을 치유하고 몸이 건강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죠.”

그 무렵 그의 삶에 또 다른 물꼬가 트였다. 농림부에서 사업자 교육을 받은 후 농업회사법인 ‘화성마을여행사’를 세운 것. 이름 뒤에 붙은 여행사는 지역 농작물을 맛보며 마을을 여행하듯 농촌을 느껴보자는 의미다. 치유농업에 관심을 가진 여섯 명의 농부가 힘을 보탰다. 각각 커피와 블루베리, 포도, 떡, 조롱박, 콩, 쌀 등 저마다의 농작물을 가지고 온라인 마켓도 열었다. 이 대표는 농장에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춘 교육장 겸 카페를 열고 치유농업을 차근차근 준비해갈 계획이다.

“요즘 학교에 교육을 갈 때마다 저를 ‘농사 엔터테이너’라고 소개해요. 학생들에게 ‘내가 뭐 하는 사람 같아요?’라고 물으면 아이들은 농부나 요리사, 과일청 만드는 사람, 선생님 등 각기 다른 대답을 해요. 농부가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교육도 하고 문화체험도 진행한다면 이게 바로 엔터테인먼트 아닌가요? 농사에 접목할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한 거죠. 저는 내일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요. 할 때는 뭐든 열심히 해요.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행운이 찾아올 거라 생각해요. 그걸 믿으며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오늘을 사는 거죠.”
  • 2021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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