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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의 속 깊은 인터뷰

최진석 (사)새말새몸짓기본학교 이사장

나는 생각한다, 고로 건너간다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시대의 반항아가 되십시오.”

6년 전이었다. 새 시대를 여는 인재양성소 ‘건명원(建明苑)’ 오픈식 강단에 선 그의 눈빛은 고독하지만 확신에 차 있었다. 사회 통념에 길들여진 모범생이 되지 말고 자신을 마구 흔들어대라고, 점잖은 합리주의자가 되지 말고 저돌적인 혁신가가 되라고 자신만의 명징한 언어로 힘주어 말했다. ‘세상에 없던 학교’에서 ‘세상에 없던 강의’를 듣는 신입생 30명의 이글거리던 눈빛이 지금껏 선하다.

최진석 (사)새말새몸짓기본학교 이사장(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 그는 ‘행동하는 철학자’다. 2015년 건명원 설립의 주역이었던 그는 2017년 섬진강인문학교 교장을 맡고, 정년퇴직을 7년 앞둔 시점에 스스로 대학을 박차고 나왔다. 이후 행보는 더 거침없다. 고향인 전남 함평에 ‘새말새몸짓기본학교’를 열어 생각하는 시민 양성에 팔을 걷어붙였다. 이 강의의 터전으로 지은 ‘호접몽가’는 세계건축협회가 수여하는 제35회 세계건축상(World Architecture Award 2020)을 수상했다.

노장 철학의 대가인 그는 노자와 장자의 철학을 답습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지금 여기로 불러내 삶에 녹여낸다. 봄을 보는 법을 말하고, 교육의 방향성을 비추고, 2021년의 정치 현실을 논한다. 그의 산문집 《경계에 흐르다》를 읽다가 머릿속이 쩍쩍 갈라지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가령 이런 구절.

“해안가를 달리다 보면 저 멀리 섬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이 그 섬을 ‘본다’고 하지만 진짜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개는 이미 자신의 의식 속에 들어 있는 섬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토대로 해서 판단해버리고 만다. (중략) 정치든 학문이든 예술이든 산업이든 새로워지는 일을 감행하려면 우선 보아야 한다. 보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지배하고 있는 구태의연한 의식으로 채워진 자신이 허물어질 필요가 있다. 이것을 수양론에서는 허심(虛心) 혹은 무심(無心)이라고 한다.”

그의 도끼질이 향하는 지점의 질문은 분명하다. “너는 너 자신으로 살고 있는가” “지금 너의 생각은 진짜 너의 생각인가”. 이 질문은 한 개인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지금 이 시대 대한민국을 향한 거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그것도 아주 절박한. 그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지 않으면 우리는 중진국의 문턱을 넘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시대의 길잡이를 자처한 자, 남들보다 반보 앞서 걸어가는 자, 드높은 포부를 품고 새말과 새몸짓을 쉬지 않고 시도하는 최진석 이사장을 봄의 길목에서 만났다.


봄입니다. 봄을 논한 글에서 “가변적 구체성이 진실인데, 추상적 보편성을 진실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는 구절에 밑줄을 그었어요.
선생이 느끼는 올해 봄은 어떻습니까.


“봄의 실체는 없어요. 땅이 온기를 품어 느슨해지고, 얼음이 풀리고 새싹이 돋는 ‘사건’들의 묶음이 봄이에요. 올해의 봄은 제게 더 도전적인 봄으로 느껴집니다. 새말새몸짓기본학교 1기를 진행 중이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넘어 실천적인 일을 더 적극적으로 시작하게 될 테니까.”


사회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봄은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입니다. 봄은 새로운 시작의 의미가 강하지만, 새로운 시작이 일어나지 않고 있어요. 제게 새로운 시작이란 생각하지 않던 삶, 즉 다른 사람의 생각을 수용하던 삶에서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삶을 여는 겁니다. 그게 제가 기대하는 봄이고요. 이 봄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으니 답답한 봄으로 느껴져요.”


건명원을 열 때도 답답함과 갑갑함을 느껴서 새 행보를 시작했지요. 그새 6년 동안 일말의 변화를 느낍니까?

“전체적으로 생각하는 삶에 대한 인식은 증가했지만, 생각하는 삶을 시작하는 일은 아직 일어나고 있지 않아요.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오히려 뒤로 간 느낌입니다.”


어떤 면에서요?

“사회 전체를 평가할 때 정치적인 영역을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 문제가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치를 통해야 하니까.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는 대부분 정치로 드러나죠. 기대가 컸잖아요. 그래서 ‘혁명’이라고 했고. 혁명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야만성과 새로운 시작. 기존의 질서가 효율성이 없어져서 야만에 빠진 ‘혁’이 일어났으면 그다음은 ‘명’이 달라져야 해요. 의미와 방향성, 태도와 가치 등. 우리는 야만은 경험했지만 새로운 시작은 이뤄내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 사회는 혁명에 빠지기 전에 일어났던 일들이 혁명 후에도 다시 다 일어나고 있거든요.”


그 시작을 이뤄내는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합니까.

“이 사회 구성원들 누구나. 그렇지만 그걸 하려면 힘이 있어야 돼요. 힘의 형태는 세력입니다. 정치적 변화는 세력이 없으면 할 수 없죠. 저는 촛불혁명은 실패했다고 보는데, 이 실패는 혁명주도세력의 실패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 촛불혁명이 실패했을까요.

“자신이 혁명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혁명주도세력 자신은 혁명되지 않은 채 혁명의 이념이나 학습된 혁명을 실천한 것이죠.”


자주 인용하는 함석헌 선생의 말씀이군요. 선생은 스스로 혁명하기 위해 행동가의 면모를 이어오고 있는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건 뭔가요.

“우리 모두를 더 독립적이고 더 자유롭고 더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해주는 것이에요.”


독립적인 삶이란.

“정치적 독립, 국제관계에서 독립도 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유의 독립입니다. 집단적 사유는 믿음으로 변질되거든요. 집단이 공유하는 이념을 대행하는 자에서 독립적으로 사유하는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는 삶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생각의 결과로 탄생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은 모두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만든 것들을 사 온 것들이잖아요. 우리는 이제까지 생각하지 않아왔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생각한 결과를 받아서 쓴 거예요. 이건 자유롭지 않은 것이고, 독립적이지 않은 겁니다. 우리는 지금 생각하지 않는 삶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에 와 있어요. 더 풍요롭고 독립적으로 살려면 익숙한 방식, 즉 생각의 결과를 받아서 사는 삶에서 생각하는 삶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인간은 건너가는 존재예요. 건너가는 존재는 흥하고, 건너가지 않는 존재는 망합니다. 건너가는 길은 생명의 길이고, 건너가지 않고 멈추는 길은 죽음의 길입니다.”


매달 ‘책 읽고 건너가기’를 진행하고 있지요. 3월 도서로는 《아Q정전》을 선정했고요.
건너가기 위해서 왜 책을 읽어야 합니까.


“건너가려면 지식과 힘, 즉 내공이 필요해요. 이 둘을 동시에 기르는 일은 독서밖에 없습니다. 독서는 지식의 수집이 아니라 수련이에요. 책 한 권의 스토리 라인을 따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완수하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읽기 시작했다가 끝까지 안 읽고 내버려둔 책이 얼마나 많고, 읽으려 샀다가 안 읽는 책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책 읽는 행위 자체가 고도의 지적 대화예요. 여기에는 인내심, 집중력, 소통능력도 필요하고, 의식을 개방하고 지식을 축적하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이 안에서 힘이 길러지는 거죠.”


자기 머리로 생각하라, 그래야 창의력이 발휘된다고 했습니다.

“그 길이 가장 효율적인 길일 수도, 혹은 유일한 길일 수도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도 자기에게 가는 길이 가장 어렵다고 했잖아요. 인간은 자기를 향해 걸어야 성장을 하거든요. 헤세는 또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 이상이다’라고도 했어요.”


뵐 때마다 점점 눈빛이 편안해지는 걸 느낍니다. 분투하고 행동하는 철학자의 눈빛이 어떻게 이렇게 편안할 수 있지요?

“이 말을 겸손 없이 사실로 믿고 말씀드릴게요. 김 편집장이 나를 그렇게 봤다면, 나는 내가 가진 포부에 대한 확신이 강해서 그럴 겁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괴롭히지 않아요. 나를 즐겁게 만들어요. 하루하루 신이 납니다.”


교수의 삶보다 더 신납니까?

“훨씬. 5만 배 더 신이 나죠. 교수로 지낼 때가 신이 안 났다는 게 아니에요. 처음엔 신나고 행복했어요. 열심히 했고 잘했어요. 그런데 모든 물고기마다 비린내가 있잖아요. 어느 순간 나에게서 내 비린내가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우리’로 느껴졌습니다. 교수 생활이 나에게 우리였다는 게 아니라, 더 큰 발전을 원했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거였죠.”


그래서 새말새몸짓기본학교를 열었군요.

“우리 사회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온 게 확실해요. 미래를 열고, 혁신해야 합니다. 그런 일은 인재만이 할 수 있어요. 우리는 흔히 영국의 산업혁명이 어떻게 어떻게 하다가 된 것처럼 보지만 그렇지 않아요. 조세제도 만들고, 법을 만들어서 산업혁명으로 끌고 간 거예요. 정책적으로. 우리나라를 새롭게 만드는 인재라면 새로운 역사를 쓰는 것에 대한 각성이 철저해야 합니다. 그런 인재를 기르는 데 소홀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거죠.”



어떤 학생들이 옵니까.

“15~49세의 젊은이 누구나. 1기 28명이 곧 졸업합니다. 최연소는 16세, 최연장자는 42세이고요. 광주·전라지역에서 주로 올 줄 알았는데, 60%가 서울에서 옵니다. 소액 기부자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학비는 없어요.”


학생을 뽑을 때 기준은요.

“이 사람의 언어가 자기 자신과 얼마 정도의 거리에 있는가, 하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어느 정도로 궁금해하는가, 자신을 얼마나 섬길 수 있는가를 많이 보고요. 이곳에서 배움의 기본은 자신을 아는 것이에요.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 어떤 소명을 가지고 있느냐, 이런 것이 포부가 되어야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야망과 포부를 강하게 갖는 젊은이들로 길러지지 않는 것 같아요. 그때그때 프로젝트를 잘 수행해서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일은 잘하지만. 착실한 인재는 많은데 황당한 포부나 야망을 갖는 게 습관이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세상을 정해진 틀로 보기 때문이에요. 내가 나로 살지 않았다는 말이죠.”


스스로 깨닫기 전에는 내가 나로 살지 않았다는 걸 잘 모릅니다. 내가 나로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감별법이 있을까요?

“그것이 그토록 어려운 거죠. 그 감별법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대답만 잘하냐, 혹은 궁금한 것도 있느냐 하는 건 중요한 가늠자예요. 궁금한 것이 있을 때 그 사람은 오로지 자기로 드러나거든요.”


선생은 자기로 사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감별이 됩니까.

“100%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는 알죠. 자기만 고집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가 견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아요. 그런데 질문하는 사람이어야 변화를 야기할 수 있고,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질문하는 사람은 자기로 사는 사람이고, 대답만 하는 사람은 우리 가운데 한 명으로 사는 거예요. 내가 나로 되어 있느냐, 우리 중의 한 명으로 되어 있느냐를 낭만적인 경향의 차이, 혹은 선택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자유롭고 주체적이고 창의적이고 풍요롭게 살려면 자기로 살아야 그 가능성이 훨씬 커집니다.”


자기로 사는 삶과 이기적인 삶 사이에는 헷갈리는 지점이 있습니다.

“자연스럽고 마음 편하게 이타적이 되기 전에는 차라리 이기적으로 살길 권합니다.”


차라리 이기적으로 살라니요.

“자기가 이타적으로 살 준비가 안 됐는데, 이타적인 삶이 좋은 것이라 믿고 그냥 이타적으로 살면 자기를 단단히 하는 시간과 노력을 확보할 수 없어요. 그래서 이타적인 일을 하면서도 자기는 계속 허허로워져요. 저는 이타적이기 전에 이기적으로 살라고 합니다. 이기적인 사람들끼리 쿨한 게임을 하는 것으로 세상을 만들라고 해요.”


이기적인 사람들의 천국이 되면 세상이 무법천지가 되지 않을까요?

“여기에서 이기적이라는 개념은 자기를 이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를 단단하게 하고, 개방적으로 하고, 덕을 키우는 것.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뇌물을 받는다고 쳐요. 우리 가운데 한 명인 사람이라면 여러 변명이 생길 수 있어요. 당을 위해서, 조직을 위해서라는 식으로. 그런데 뇌물이 잠깐의 이익을 줄지라도 나의 자존감을 무너뜨린다고 느끼는 사람은 굉장히 이기적인 거죠. 자기의 더 중요한 자존을 지키는 것이거든요.”


이기주의자의 개념이 사회의 통념과는 다르군요.

“무엇이 나를 이롭게 하느냐의 차원이죠. 돈이냐, 명예냐, 아니면 내면이냐, 꿈이냐. 이걸 정해서 자기를 단단히 하는 거예요. 자기를 향해 걷는 사람은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이 사람은 선해요. 그런데 우리 중 한 명으로 살면서 우리가 만들어놓은 이념을 자기 생각으로 여기고 사는 사람은 생각하는 능력이 없어요. 그러면 사람이 악해져요.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입니다. 누가 악인인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악인입니다.”


책에서 예일대학생의 예를 든 부분이 흥미로웠어요. 예일대학생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알지만 그것도 교수가 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뿐이다.
똑똑한 학생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법조차 학습해버린다고요. 훈련에 의해 갖게 된 자신만의 생각은 스스로의 생각이 될 수 없습니까?


“스스로의 생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봐요. 어떤 사람은 스스로의 생각으로 바뀌고, 어떤 사람은 바뀌지 않아요. 둘을 가르는 차이는 포부가 있는가의 여부입니다. 생각과 질문, 내면을 성장시키는 건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도록 자신을 만들어가야 해요.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포부입니다. 야망과 포부, 꿈과 비전이 분명하면 이걸 이루려 발버둥 칠 거 아니에요.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되고, 질문하게 되고, 자기만의 방법을 찾게 됩니다.”


지금 선생의 포부는 뭡니까.

“대한민국이 한 단계 도약하는 국가로 되게 하는 것. 생각의 결과를 수용하는 삶에서 생각하는 삶으로, 전술국가에서 전략국가로, 1등을 추구하는 습관에서 일류를 추구하는 습관으로,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되게 하는 겁니다.”


그걸 빨리 이루기 위한 방편은 아무래도 정치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사회를 작동시키는 두 톱니바퀴가 있어요. 정치와 교육입니다. 국방과 조세(경제)라는 두 기둥이 나라의 근간이고, 이걸 돌리는 톱니바퀴가 정치와 교육이에요. 그래서 교육은 고도의 정치 행위입니다. 저는 교육 활동을 통해 고도의 정치 행위를 하는 거죠.”


교육을 통한 간접정치가 아니라, 정치인이 되어서 현실정치를 할 생각은 없습니까?

“할 수 있죠. 대한민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일에 필요하다면 어떤 일이든 해요. 현실정치가 아니라 비현실적인 정치라도 할 겁니다. 저는 철학자로 살기 위해, 교육자로 살기 위해, 정치인이 되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라, 나의 행복과 공동체의 행복을 일치시켜서 이것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포부입니다.”


그런 면에서 용감한 행보를 이어왔어요.
최근엔 호남 출신으로서 ‘나는 5·18을 왜곡한다’는 시를 써서 화제가 됐고요. 진보와 보수 어느 쪽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을 것 같습니다.


“제가 5·18을 비판했다고 하는데, 내 시는 5·18의 정신을 살리자는 내용입니다. 제가 비판하는 건 5·18을 법으로 족쇄 채우려는 행위예요. 그렇더라도 어느 한쪽에서는 좋아하고 다른 진영에서는 싫어하죠. 어제는 전남 나주·화순지역 더불어민주당 정치학교에 가서 특강을 했어요. 저는 한 진영에 속해 있지도 않고, 속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않으면 불편하거나 외롭지는 않나요?

“그것을 불편하거나 외롭다고 생각하면 그러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나는 내 자유로운 삶에 관심이 있지, 누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양쪽에서 미움받아도 상관없다는 말로 들립니다.

“상관없어요. 왜? 미움받는 불편함보다 미움받는 걸 감수하더라도 해야 하는 걸 하지 않았을 때 스스로 겪는 불편함이 훨씬 크거든요.”


새말새몸짓기본학교와 건명원은 지향점이 어떻게 다른가요.

“건명원은 안정된 사람을 데려다가 흔드는 곳이었다면, 새말새몸짓기본학교는 착실한 사람을 데려다가 황당무계하게 만드는 겁니다.”


황당무계한 사고가 왜 중요합니까.

“얼마나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느냐, 시선의 높이가 얼마나 고도화돼 있느냐가 삶의 힘을 결정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아직도 그리스 로마시대 사고의 스케일로 살아요. 동양 신화는 그리스 로마 신화보다 덜 황당합니다. 특히 한국은 신화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상상력이 빈약해요. 학문을 봐도 그렇습니다. 동양 수학은 연산과 대수까지만 발전했어요. 기하학이 없었어요. 기하학은 굉장히 황당한 학문입니다.”


황당무계한 사고, 드높은 시선과 포부 같은
선생의 언어들이 소확행을 추구하는 이 시대를 역행하는 얘기로 들리기도 합니다.


“소확행이란 작은 것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낀다는 뜻인데,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 말입니다. 하루키는 삶을 대하는 포부나 스케일이 굉장히 큰 사람이에요. 우주적인 범위까지 확장된 사람이죠. 그런 사람이 어느 날 서랍을 열어보니 셔츠가 깨끗하게 정리된 데서 사소한 행복을 느끼는 차원이 바로 소확행입니다. 큰 포부를 펼치는 과정에서 얻는 작은 행복들이죠. 그런데 우리는 하루키의 큰 포부는 추구하지 않고 자잘한 만족만 추구하고 있어요. 자본주의의 부스러기를 존재적 행복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최진석 이사장은 몇 가지 계획이 있다며 눈을 반짝였다. 그중 하나는 ‘황당 도서관’을 짓는 것. 황당한 사고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도서관으로, 무협지·시집·동화·SF소설·게임 관련 책 몇 가지의 장르로 꽉 채우고 싶다고 했다. 벌써 상표등록까지 마친 단계다. ‘호접몽가’를 지은 함평에 황당 도서관을 세워 이곳을 ‘생각이 시작되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의 황당한 말과 몸짓이 새말새몸짓이 아닌, 언젠가 현실이 될 그날을 기대한다.

  • 202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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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안중찬   ( 2021-03-28 )    수정   삭제 찬성 : 10 반대 : 1
최진석 선생님의 말씀은 언제나 즐거운 위안을 줍니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마인드로 더 이기적인 행복을 추구하고 싶어집니다. 봄 같지 않은 봄날 휴일 아침에 막노동 일터로 나가며 읽은 글이라 더 좋네요. 좋은 인터뷰이에 멋진 인터뷰어 감사합니다.김민희 기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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