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topp

저기요,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신지영의 언어탐험×탐험대원 하릅
일상을 탐험으로 만드는 언어 탐험가이자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문학자.
베이스캠프는 고려대학교.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며 발견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 셔터스톡
학과 비평 세미나에서의 일이다. 그곳에는 학부생부터 석·박사 학위 준비생까지 있었기에 연령대가 다양했다. 세미나 참가자들은 단체 톡방에서 나이를 불문하고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 광경이 너무도 신기하고 생소해서 세미나에서 활동했던 후배에게 서로 선생님이라 부르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관습적으로 그렇게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세미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왜 서로를 부르는 호칭을 따로 정했을까? 몇 가지 다른 사례를 가져와서 생각해보면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여러분이 식당이나 카페 등을 갔을 때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을 뭐라고 부르는가? ‘직원’ ‘알바생’ ‘일하는 분’ 등 다양한 호칭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상황과 편의에 따라 그들을 다양하게 부르며, 때로는 ‘저기…’ 등과 같이 호칭을 사용하지 않을 때도 있다.

파리바게뜨-파리지앵
스타벅스-파트너
CGV-미소지기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유명 제빵 프랜차이즈 ‘파리바게뜨’는 판매 사원을 ‘파리지앵’이라고 칭한다. 이는 내부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호칭으로 ‘파리바게뜨의 사람’이라는 의미다. “슈크림빵처럼 상냥하고 바게뜨처럼 근면한 파리지앵을 모집합니다”라는 구인 문구는 왠지 모르게 미소를 자아낸다.

또 카페 프랜차이즈 ‘스타벅스’에서는 판매 사원을 ‘파트너’라고 칭한다. 이는 ‘동업자’라는 의미로 ‘종업원(employee)’을 대신하는 말이다.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은 수평적인 조직 문화 속에서 서로가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호칭이라고 한다.

영화관 체인 ‘CGV’에서는 영화관에서 티켓 발권 및 스낵 판매를 돕고 상영관을 청소하는 직원을 ‘미소지기’라고 칭한다. ‘항상 밝은 미소로 고객에게 다가가는 친구 같은 존재’라는 의미를 지닌 호칭이다.

새로운 호칭을 만들고 이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특별한 의미를 담은 호칭을 사용하면 우리는 상대가 하는 일과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빵을 사러 갔다가 ‘파리지앵’이라는 명찰을 마주하고, 그 이름에 대한 설명을 읽게 된다면 우리는 그 뜻을 음미하며 판매 사원을 바라보게 된다.


이름이 가진 힘

앞에서 언급한 ‘비평 세미나’의 호칭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여기서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종업원을 ‘파리지앵’ ‘파트너’ ‘미소지기’ 등으로 부르는 이유와 맥락이 비슷할 것이다. 나이와 서열을 배제한 채, 서로를 존중하며 진정한 비평과 토론을 진행하기 위함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의 한 구절을 되새겨보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 이 시의 ‘이름’과 같은 기능을 한다. 앞서 예시로 든 호칭들은 부르는 것만으로도 존중의 태도를 갖게 하고, 상대방이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타인에게 구체적 의미를 부여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호칭이 있다. 우리는 호칭을 통해 그 사람의 특징을 되새긴다. 영화관에서 ‘미소지기’라는 호칭을 보면 그가 미소로 상냥하게 사람을 대하는 존재임을 기억하게 된다. 또 세미나에서 동기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그를 멋진 토론의 상대자로 바라볼 수 있다. 오늘 무의식적으로 사용했던 호칭이 있다면, 그 호칭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해보자. 그 말은 어떤 특징을 내포하고 있으며,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가?
  • 202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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