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통의 보통 사람들 #12

매년 첫눈 오기 전, 우리 엄마는…

글 : 김보통 

작년 여름, 《톱클래스》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때의 인연으로 기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글을 써야 할까 고민하다 문득 평범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톱스타들에겐 이미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고 있으니,
그 빛이 닿지 않는 사람을 비추는 작은 불빛도 하나쯤은 있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게다가 당대 최고의 유명인들의 인터뷰를 모은 잡지에 평범한 사람들을 김보통이 인터뷰하다니,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보통 사람들’ 연재를 잠시 쉬어 갑니다.
코로나 시국에 누군가를 만나서 인터뷰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큽니다.
커다란 반향은 없었지만, 읽고 나면 가슴이 따스해진다는 후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마지막 인터뷰는 누구를 할까 고민하다 저의 어머니로 정했습니다.
역시나 그럴싸한 뭔가는 없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보통의 사람들처럼 말이죠.
인터뷰 내용을 엄마의 시점으로 풀어봤습니다.



나는 네가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너무 걱정이었어.

매달 월급이 나오는 게 얼마나 고마운 건지 모르는 것 같았거든. 네 아빠는 평생 나한테 월급을 가져다준 적이 없잖아. 아빠가 원래는 대학을 졸업하고 제약회사에 들어가려고 했었어. 그런데 떨어진 거야. 아무래도 전문대고, 그것도 야간대학생이라 쉽지가 않았겠지. 그래도 1년을 더 준비하면 반드시 합격할 수 있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또 떨어져버렸네. 그때 외할머니가 선을 보라고 했어. 아무리 봐도 합격할 것 같지 않았던 거지. 불안해진 아빠는 덜컥 결혼해버리자고 했어. 취업할 자신은 없었나 봐.

그렇게 결혼을 하고 아빠가 취업 삼수를 하던 중에 너를 임신하게 됐어. 애는 키워야 하는데 아직도 저러고 있는 게 속 터져서 엄마가 과일 노점을 시작하자고 했어. 그렇게 과일을 팔며 돈을 모아 방앗간을 했는데 매달 버는 돈이 들쭉날쭉했지.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친구랑 동업으로 간판 가게를 시작했는데 뭐가 잘 안 맞았는지 1년 하다 그만뒀어. 애당초 다른 사람한테 아쉬운 소리를 못 하니 결국 다시 방앗간을 할 수밖에. 그런데 이런저런 걸 떠나서 네 아빠는 돈 버는 재주가 별로 없었어.

한번은 가게에 도둑이 들었거든. 장사 마치고 모아둔 돈을 도둑놈이 뒤져서 들고 도망친 거야.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네 아빠가 쫓아가서 잡았어. 아빠가 덩치가 크잖아. 도둑을 길에 엎어놓고 깔고 앉았는데 그제야 보니까 그 사람이 너무 왜소한 거야. 애처럼 작았어. 그 사람이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빌더라고. 부모도, 가족도, 돈도 없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 도둑질을 했다고. 그래서 네 아빠가 어떻게 했는 줄 아니? 그 얘기를 곧이곧대로 믿고는 그 사람이 훔친 돈 중 얼마를 다시 줬어.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나쁜 짓은 하지 말라고 하면서 말이야. 우리도 못살았지만 더 못사는 사람이 많았던 때야. 네 아빠는 그런 사람들을 다 도와줬어. 그러니 돈이 모일 리가 있나. 덕분에 우리는 계속 못살았어. 생각해보면 바보 같아.

사는 게 힘든 줄은 몰랐어. 다들 그렇게 사는 줄로만 알았으니까. 나중에 오십이 넘어 어릴 적 친구들 만나 살아온 이야기를 해보니 나보고 어떻게 살았냐고 하더라. 그제야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만 이렇게 힘들게 살았구나 싶어서 말이야. 그래도 지나온 걸 어쩌겠어.

그래서, 나는 그렇게 평생을 불안정하게 살아서 그런지, 네가 안정된 회사를 그만둔다고 할 때 정말이지 아찔했어. 나처럼 고생하면 안 되는데, 내가 겪었던 일을 네가 다시 겪으면 안 되는데 하고 말이야. 다행히 네가 하는 일이 잘돼 자리를 잡아서 이제는 안심이야. 네가 일이 많다고 매일 잠도 못 자고 시달리는 걸 보면 그게 안쓰러울 뿐이지. 게다가 올해는 코로나까지 겹쳐서 사람들이 죄다 살기 힘들다고 하는데도 큰 탈 없이 지나가고 있으니 더 다행이고.

사실 엄마는 올해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거든. 코로나 때문에 돌아다니지 못하는 건 답답하지만, 그래도 영웅이(임영웅)가 있어서 너무 좋았어. 내가 살면서 연예인 팬이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우리 영웅이 때문에 엄마가 팬카페도 가입하고, 스트리밍도 돌리고 있잖아. 덕분에 행복한 1년이었지. 내년에도 가족 모두 건강하고, 하는 일 잘되고, 영웅이가 더 유명해지면 좋겠어.

엄마가 매년 첫눈이 내리기 전에 아빠 구두를 닦아놓거든. 네 아빠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래봤자 아무 쓸모없지만, 왠지 닦아놓으면 그 구두를 신고 짠 나타날 것 같아서. 어제는 구두약을 새로 샀어. 물파스처럼 생겨서 슥슥 칠하기만 하면 되는 거더라. 그걸로 아빠 구두를 닦으면서 말했어.

“미안해. 살아 있을 때는 그렇게 고생만 시켜서 밉기도 했는데, 이제는 쉬다가 놀다가만 하면 되는데 먼저 죽는 바람에 나만 누리고 있는 것 같아서 미안해” 하고 말이야.
  • 202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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