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농부

김재훈 ‘식탁이 있는 삶’ 대표

초당옥수수, 스낵토마토, 사과 맛 파프리카 맛보실래요?

글 : 이선주 객원기자  / 사진제공 : 식탁이 있는 삶 

이 회사를 어떻게 설명할까? 전자레인지에서 2분만 익히거나 과일처럼 생으로 먹을 수도 있는 초당옥수수를 우리 시장에 소개해 열풍을 일으킨 곳. 동굴에서 숙성시킨 고구마, 과일처럼 달고 아삭한 스낵토마토, 국립축산과학원이 복원한 토종 흑돼지같이 새로운 농축산물을 꾸준히 발굴하거나 개발해 시장에 소개하는 곳. 농부들이 마음껏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도록 농자금을 미리 대주는 농부들의 벤처캐피털. 우직하게 일하는 농부와 그들이 생산한 농산물에 이야기를 입혀 도시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식재료 보관법과 맛있고 색다르게 먹는 방법까지 자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콘텐츠 기업. 식품 전문 전자상거래 기업 ‘식탁이 있는 삶’을 한마디로 소개하기란 쉽지 않다.
서울 마포구 양화로 ‘식탁이 있는 삶’ 본사에서 만난 김재훈 대표는 “우리 농업의 미래를 개척하고 싶다”는 포부를 반복해서 밝혔다. 식탁이 있는 삶을 통해 농수축산물을 판매하는 농가는 300곳 정도. 이 중 100여 곳은 식탁이 있는 삶이 직접 계약 재배를 한다. 어떤 농산물을 어떻게 재배하며, 어떤 콘텐츠를 입혀 어떻게 판매할지까지 모두 책임진다.

심지어 필요한 자금도 지원한다. 엄격한 기준을 거쳐 선별한 다른 농가 역시 브랜딩과 홍보, 마케팅, 포장 디자인 등 지원 영역이 넓다. 김재훈 대표의 투자 농가 선별 기준은 이렇다.

“유기농 여부만 보는 게 아니라, 그 땅에 양분이 얼마나 풍부한지까지 따집니다. 여러 요소를 꼼꼼하게 살피지만, 무엇보다 생각하는 방향, 가치관이 우리와 맞는지를 보죠. 우직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마다하지 않는 진취적인 농가를 찾아요.”

김재훈 대표가 우리 농업에 애착을 느끼는 이유는 부모의 영향이 크다. 그의 부모는 경북 의성에서 평생 농사를 지어온 농부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데도 항상 쪼들리는 부모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 농업이 발전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일찌감치 품었다. 동국대 행정학과에 진학하면서 서울에 올라온 그는 도시에서 풍족하게 살아온 친구들을 보며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고민했다. 자신이 제일 잘 아는 분야에서 승부를 걸어보기로 했다. 바로 농업이었다. 결단도 행동도 빨랐다. 대학교 1학년 때 의성에서 제조한 흑마늘을 수출했다.

“처음에는 국내에서 마트 등에 납품해보려고 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이럴 바에야 해외에 팔아보자고 결심했죠. 양화대교 보수공사 현장에서 막노동하면서 비용을 마련했고, 무작정 싱가포르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미용식품박람회에서 전단을 나눠주며 우리 흑마늘을 홍보했습니다. 정식 참가가 아니어서 제품을 보여줄 부스도 없었죠. 그런데 마지막 날, 화교 한 분이 20만 달러(약 2억 2500만 원)어치를 한꺼번에 주문했습니다.”


과일처럼 생으로 먹을 수 있는 ‘초당옥수수’. ‘식탁이 있는 삶’이 우리나라 시장에 소개하면서 열풍이 일었다.

막노동으로 비용 마련, 의성 흑마늘 수출

군대에 다녀온 후에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대학생을 선발해 운영하는 ‘글로벌무역전문가양성사업단’에 들어가 일하면서 공부했다. 우리나라 농가공업체들이 경쟁력을 높이고 판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이었다. 덕분에 한국무역협회 워싱턴 지부에서 파견근무를 하고, 해외 박람회에 참여하면서 세계 농산물 시장에 관한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성과도 좋았다. 대학 졸업 즈음에 그동안 지원해왔던 농가공업체 열두 군데가 유통을 맡아달라고 부탁했고, 농산물 유통업에 바로 뛰어들었다.

사업은 순조로웠다. 그즈음 지인에게서 케냐의 대게가 러시아산에 비해 엄청나게 저렴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장 아프리카로 날아가 시장성이 좋다는 걸 확인했다. 러시아산의 반값 가까이에 팔아도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었다. 그는 통 크게 투자했다. 현지에 수산물처리센터를 짓고, 배를 빌려 선장과 선원들을 채용했다. 그의 예상대로 시장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사건이 터졌다. 그의 어선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나포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든 것. 어선과 어부들은 몇 달 후 풀려났지만, 대게는 모두 썩고 배와 어구도 못 쓰게 됐다. 설상가상, 한 중견기업이 자색 당근 납품 계약을 취소하면서 손실이 더 커졌고, 빚더미에 앉게 됐다.


1. ‘배포큰농장’ 샤인머스켓 2. ‘유진목장’ 수제 요거트&치즈 3. 이장호 농부의 장성 딸기
4. 고시랑 부부의 장, 발효식초 5. ‘덕유농장’ 토종 우리 흑돈 6. ‘향율농원’ 공주 유기농 밤

빚 독촉에 극단적인 생각까지

“바닥으로 추락하니 주변 사람들도 다 떠나더군요. 끊임없이 빚 독촉에 시달리면서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부모님 덕분에 겨우 신용불량자 신세는 면했지만, 남은 빚을 갚으려고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체리를 따고, 마카오 식당에서 일하고, 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하기도 했어요.”

그의 나이 27~28세 때였다. 돈은 쉽게 벌었지만, 자금이나 조직 관리 면에서 치밀하지 못했다는 뒤늦은 반성도 했다. 절박했던 그 순간, 그의 손을 잡아준 사람들이 농부였다. 큰 규모의 농가와 농가공업체 여섯 곳이 선뜻 농산물을 맡기면서 “이것을 팔아 다시 일어서봐라”고 격려했다.

초당옥수수로 활로를 찾은 것도 이때였다. 초당옥수수(super sweet corn)는 당도가 높고 생으로도 먹을 수 있어 외국에서는 인기가 많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다. 그는 미국, 일본 등에서 여러 초당옥수수 종자를 들여와 시험 재배를 시작했다. 부모가 내준 농토에서 어느 종자가 우리 환경에 맞는지, 어떻게 재배하는 게 가장 효율적인지 시험 재배로 확인했다. 그다음 초당옥수수 먹는 법을 소비자에게 적극적으로 알렸다. 찰옥수수처럼 삶으면 당도가 높고 식감이 독특한 초당옥수수만의 매력이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대성공. 간편하게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당도는 높지만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에 좋은 식품’으로 소문이 나면서 초당옥수수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졌다. 2014년에는 우수한 품질의 농산물을 산지 직거래로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하는 스타트업 ‘식탁이 있는 삶’을 설립했다. 올해 초당옥수수 판매액은 40억 원으로, 지난해의 두 배다. 여러 농가에 종자를 주고 재배법을 알려주면서 계약 재배해 전량 수매한다. 이런 식으로 계약 재배를 하는 농산물이 30여 가지에 이른다.


DIY 곶감 키트.
상주 둥시감과 곶감걸이가 함께 들어 있어 집에서 직접 곶감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이색 상품이다.

강레오 셰프 합류, 3040세대 고객 사로잡아

“달콤하고 바삭해서 간식이나 디저트처럼 먹는 크런치 스낵토마토, 사과 맛이 나는 파프리카, 전통 재배법을 복원해 알싸한 감칠맛을 되살린 의성 토종마늘, 팝콘처럼 고소한 맛이 나는 토종 흑돼지 등 새로운 식자재를 계속 발굴해 시장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온도와 습도가 최적 상태인 자연동굴 안에서 100일 이상 숙성시켜 당도를 높인 ‘동굴 속 호박고구마’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죠. 이렇게 고부가가치 농산물을 계속 개발해 농가 소득을 높이면서 우리 농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비전을 제시하고, 도시 소비자에게는 새로운 식재료를 맛보는 즐거움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2018년에는 요리전문가 강레오 셰프가 사내 이사로 합류했다. 강레오 셰프는 산지를 다니면서 찾아낸 독특하고 맛있는 농산물과 요리법을 소개한다.

식탁이 있는 삶의 소비자는 30~40대 젊은 층이 많다. 색다른 경험과 가치 있는 소비, 콘텐츠를 중시하는 3040세대의 욕구가 식탁이 있는 삶이 추구하는 방향과 잘 맞기 때문이다. 상주 둥시감으로 곶감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키트, 선주문으로 농부를 후원하면서 엽서와 배지 같은 한정판 디자인 제품을 받는 펀딩 등 젊은 층의 취향에 맞춘 프로그램도 계속 내놓고 있다. 식탁이 있는 삶의 지난해 매출액은 120억 원. 시장성을 높게 본 하이트 진로가 최근 지분 투자를 하는 등 투자 유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농업, 축산, 마케팅 전문가들을 영입해 탄탄한 구조를 갖춰가고 있습니다. 덕분에 신품종을 연구·개발하거나 발굴해 생산한 후 콘텐츠를 입혀 시장에 내놓는 과정까지 순조롭게 이뤄지죠. 1·2·3차 산업을 융합한 6차 산업으로서 농업의 미래를 개척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지난해 말에는 경북 영양군 농민들과 농업회사법인을 만든 후 첨단수확센터를 세웠습니다. 기계화로 생산비용을 낮추고 세계 시장에 맞설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죠.”

20대에 겪은 좌절은 삶의 방향을 탄탄하게 다지는 데 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식탁이 있는 삶 사무실 곳곳에는 “이 땅 농민의 해맑은 웃음, 우리 농촌의 살맛 나는 세상, 희망 농업의 미래 핵심 산업을 추구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우리 농업의 미래를 개척하려는 김재훈 대표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했다.

  •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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