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부부가 예술가에게 보내는 편지 (11)

고독의 정점을 빚은 조각가 권진규 선생에게 下

‘아무도’와 ‘누구도’ 사이

외로움이 말라 죽으면 고독이 되는 것 같아요.
외로움은 액체에 가까워 출렁이고 넘치지만 고독은 고체에 가깝습니다.
외로움은 흐르지만 고독은 정체된 채 고요히 단단해지니까요. 외로움엔 몇 방울의 갈망이 있지만 고독엔 갈망이 없습니다.
당신은 안팎으로 고독했던 사람이라 생각해요.
서울 성북구 동선동 아틀리에에서 작업 중이던 조각가 고 권진규. © 권진규기념사업회
일찍 죽은 시인 둘의 추도제가 있어 어제 중흥사에 다녀왔습니다. 가파른 북한산을 오르느라 발아래만 보았습니다. 돌, 바위, 흙, 낙엽. 가까이에서 겪는 자연은 아름답지도 인자하지도 않더군요. 그저 뾰족하고 거칠고 위험해 보였습니다. 그게 ‘자연’이겠지만요.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멈춰설 때, 떨어져 바라볼 때야 나타나는 건가 봐요. 목적을 갖고 절로 향하는 걸음엔 여유가 없었습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며 올라갔습니다.

죽은 이들의 영정이 놓인 불당에 앉아 염불 외는 소리를 들으니, 영혼이 붕 떠오르는 기분이 들더군요. 영혼이 몸 밖으로 나와서 제 안쪽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누군가는 가고 누군가는 남아, 먼 곳에서 서로를 부르는 듯한 느낌이었지요. 사람을 몽롱하게 만드는 목탁 소리와 스님의 불경 외는 소리 때문이었을까요? 당신도 한 번은 그런 적 있으셨겠지요. 불상 앞에 앉아, 혹은 불상을 두 손으로 빚다가, 죽음이 삶과 이토록 바투 앉아 있다는 걸 감지하는 일 말이에요.

기억하려는 자와 잊히려는 자 사이엔 죽음이 들어앉아 있더군요. 흔히 사람들은 삶과 죽음을 대척 관계에 놓고 보지만 아닌 것 같아요. 삶의 반대가 죽음이 아니라, 죽음까지도 삶인 듯 보였습니다. 도처에 이렇게 죽음이 많은데, 어떻게 죽음이 홀로 떨어져 있을 수 있겠어요? 죽음은 삶이라는 집에 있는 어두운 방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그 어두운 방의 문을 스스로 열고 들어간 사람. ‘아무도’와 ‘누구도’란 말 사이에서 야윈 채 작품을 만들던 사람이었지요. 당시 한국 화단은 당신을 배척했다고 하지요. 누가 당신의 심정을 다 알 수 있을까요. 그저 생각만 할 뿐이에요. 외로움이란 말도 당신의 심정을 표하기엔 가난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 외로움이 말라 죽으면 고독이 되는 것 같아요. 외로움은 액체에 가까워 출렁이고 넘치지만 고독은 고체에 가깝습니다. 외로움은 흐르지만 고독은 정체된 채 고요히 단단해지니까요. 외로움은 불안정하게 만들고, 고독은 (때로) 위험하지요. 외로움엔 몇 방울의 갈망이 있지만 고독엔 갈망이 없습니다. 당신은 안팎으로 고독했던 사람이라 생각해요.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혼자 작업에 몰두하는 것뿐이었겠지요. 침묵 속에서 당신의 손이 움직이고 눈이 따라갈 때, 주변에 고이는 적요 같은 것. 다른 세계로 침잠하느라 얼굴 곳곳에 파였을 주름, 다문 입술, 형형한 눈, 집중하는 이마 같은 것. 떠올리면 폐로 어둠이 밀려오는 듯 스산해집니다.

당신은 여동생 권경숙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내 마음이 평화롭고 편할 때는 불상이 웃고 있고, 내 마음이 울적할 때는 불상도 울고 있는 것 같다.”

불상에 시간이 깃들면, 불상에게도 표정이 생기는 걸까요. 그 표정이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는 거울 같은 걸까요. 선생님의 작품은 꼭 거울 같습니다. 보고 있자면 무언가가 떠오릅니다. 시인 김종삼의 얼굴, 걸어본 적 없는 일제강점기의 골목들, 비 오는 날 담배를 사러 가는 자코메티의 사진(브레송이 찍은), 먼지 쌓인 폐가의 창틀, 아흐레 동안 술 이외에는 입에 대지 않고 옆으로 누워 잠만 자던 누군가의 등, 어둑하고 쓸쓸하게 야윈 것들의 형상이 떠올라요.

예술가들은 텅 빈 광장에 홀로 서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에 서서 곡식 낱알을 한 톨 한 톨, 늘어놓는 사람이요. 자기만의 미적 기준에 알맞은 형태로 말이지요. 누군가 본다면, 바보 같아 보인다고 말하겠지요. ‘하염없이, 또 속절없이’ 그 짓을 하는 사람. 끝난 뒤, 자기가 만든 작품과 그것에 오래 매달려 있던 자기 영혼으로부터 손을 떼고 나가떨어지는 사람. 나뒹구는 사람. 밀려나는 사람.

떨어져나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자기가 속해 있던 세계(작품)에 대한 ‘인정과 기억’이겠지요. 그게 다예요. 당신은 그걸 받아야 하는데, 받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받아도 충분치 못한데 받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당신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당신이 홀로 머물던 아틀리에(차가운 무덤 같던!)에서 쓸쓸히 목을 맨 풍경이 떠올라 고통스럽습니다. 당신은 받았어야 했어요. 작품에 대한 인정과 인정과 인정을요. 뛰어난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온 예술가를 혼자 죽게 만든 사회는 반성과 후회, 온당한 재평가를 해야 해요. 죽은 예술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태어날 예술가를 위해서요.

웬일인지 한 번은 본 적 있는 것 같아요. 손에 흙을 묻히고, 한 곳에 서서 먼 곳으로 나아가는 당신 얼굴이요. 천장이 높고, 차갑고, 조금 습하고, 아무도 없는 작업실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데 여념이 없었을 당신. 당신은 ‘고요’가 ‘형상’을 주도면밀하게 드러내는 작업에 성공했습니다. 목이 길고 이마가 반듯한 작품 속 인물들, 직시하기 위해 떠 있는 눈, 혹은 안을 살피기 위해 감겨 있는 눈.

1972년 3월 3일, 《조선일보》 ‘예술적 산보’에 당신은 이런 구절을 썼습니다. 백거이의 시구를 차용한 문장이지요.

“절지(切紙)여도 포절(抱節)하리라. 포절 끝에 고사(枯死)하리라.”

가지가 꺾여도 절개를 지키겠다는, 절개를 지키다 말라 죽겠다는 의지. 예술에 대한 당신의 의지를 보여주는 글의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어느 해 봄, 이국의 하늘 아래서 다시 만날 때까지를 기약하던 그 사람이 어느 해 가을 바보소리와 함께 흐느껴 사라져갔고 이제 오늘은 필부고자(匹夫孤子)로 진흙 속에 묻혀 있다. (중략)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건칠을 되풀이하면서 오늘도 봄을 기다린다. 까막까치가 꿈의 청조를 닮아 하늘로 날아보내겠다는 것이다.”

말라 죽겠다던 당신은 결국 사회의 냉대 속에 말라 죽었지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건칠을 되풀이”하다가요.

당신의 얼굴과 삶을 도포 한 장으로 덮어놓고, 눈을 감습니다. 본 것도, 보지 않은 것도, 볼 수 없는 것도 떠오릅니다. 너무 추워지기 전에 동선동에 있는 당신의 아틀리에에 다녀와야겠어요. 오래전 당신이 서 있던 자리에서, 좀 서성이고 싶네요.

평안하시길.

박연준
파주에 살며, 일주일에 세 번 발레를 배운다. 창문, 숲, 기러기를 좋아한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이 있고, 산문집 《소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등을 썼다.
  •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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