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통의 보통 사람들 #11

가려진 얼굴, 나의 이야기

글 : 김보통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래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그와 별개로 코로나 바이러스 덕에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선 사람을 만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불편하진 않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욕구가 애당초 없어 내심 잘됐다 싶기도 합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피하던 만남을 공식적으로 회피할 구실이 생겨
다행이라고 생각할 지경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니 인터뷰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저 자신을 인터뷰하게 됐습니다.
인터뷰라기보단 넋두리에 가깝겠지만요.



그간 적잖게 인터뷰를 해왔습니다.
처음 했던 인터뷰는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고 얼마 뒤, 어느 트렌디한 잡지와의 인터뷰였습니다.
인터뷰란 으레 사진 촬영이 있기 마련인데 얼굴에 오랜 콤플렉스가 있는 저는
그닥 제 얼굴을 공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촬영 현장인 카페에서 A4 용지를 빌려
쓱쓱 눈 코 입을 그린 뒤 가면처럼 얼굴을 가리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기자님은 처음엔 이게 무슨 짓인가 싶은 얼굴이었으나, 막상 촬영해보니
제 표정이 어색하다거나 하는 이유로 다시 찍을 일이 없어 일이 빨리 끝났다며 대만족했습니다.

그 뒤로 많은 것들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한동안은 매번 즉석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것도 귀찮아 종이봉투를 뒤집어쓴 적도 있습니다. 그러던 중 트위터에서 제 캐릭터로 만든 인형탈을
선물해줘 내내 요긴하게 써먹었습니다. 몇 번인가 방송에도 출연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줄창 썼더니 이제는 인터뷰를 요청하며 으레 “탈도 쓰고 오실 거죠?”라고 묻습니다.
저라는 개인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쓴 탈이 김보통의 얼굴이 된 것입니다.

불편하지 않느냐고 묻는 경우가 있는데, 편리한 점이 훨씬 많습니다. 우선 길을 걸으며 코를 풀 수 있습니다.
그게 뭐가 편리하냐 싶겠지만, 만성비염으로 고생하는 저로서는 (유명하지도 않은 주제에)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것은 아닐까 싶은 불안감 없이 코를 풀 수 있음에 큰 해방감을 느낍니다.
또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항의하는 것도 편합니다. 종종 유명인들이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 싫어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이 있어도 피하거나, 불리를 감당했다는 소식을 듣지만 저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동네를 산책하다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여기서 담배 피우면 안 돼요”라고
큰소리로 말할 때면 아주 짜릿짜릿합니다.

당연히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제 책이 꽂혀 있는 카페에서 “제가 사실 김보통입니다” 하고 말하고 싶지만,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 매번 망설이다가 돌아섭니다.
사인회를 하기 위해 찾아간 행사장에서 제가 진행요원인 줄 알고 “김보통 작가 사인회 언제 시작하나요?”라고
묻는 사람을 만났을 때도 조금 아쉬웠습니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을 때
‘네가 여길 떠나서 해봤자 뭘 하겠느냐’며 비아냥거렸던 사람들에게
싱글벙글 웃고 있는 제 얼굴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찌 됐든, 저는 지금의 상황에 만족합니다. 작가 김보통이 필요할 때는 편리하게 인형탈을 쓰면 되고,
개인인 ‘나’로 돌아오고 싶을 때면 인형탈을 벗기만 하면 되니까요. 의도하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저를 공적인 부분과 사적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아주 좋은 도구가 생긴 셈입니다.

저뿐이 아닌 모두에게 가면이 있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가면을 쓴 시간만큼은
어느 누구의 의도나 요구에 맞춰 내 감정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면 삶이 덜 고달프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눈과 눈을 바라봐야지만 나눌 수 있는 교감이 있지요.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의 눈도 신경 쓰지 않아야
누릴 수 있는 휴식이 있을 겁니다.

그게 무슨 사회부적응자 같은 소리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난 1년간 줄곧 마스크를 쓰면서
왠지 마음 편한 순간이 있었다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겁니다. 없으면 뭐, 어쩔 수 없고요.

그림은 특별히 그간 한 번도 공개한 적 없던 제 얼굴을 그려보았습니다.
혹시라도 이런 얼굴의 아저씨가 길에서 코를 풀고 있는 것을 보시면 모른 척해주세요.
  •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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