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부부가 예술가에게 보내는 편지 (10)

어둠의 왕, 시인 실비아 플라스에게

모든 것을 병들게 하는 죽음의 사랑!

불안과 우울증에 빠진 당신은 런던의 메마른 추위가 극성을 부리던 1963년 2월 한 아파트에서 생을 마감했지요.
그건 불행을 낳은 야만의 신을 향한 복수극이었어요.
무의식의 내러티브로 투신하기, 자아가 겪는 수난, 원초적인 죄의식과 백일몽, 엘렉트라 콤플렉스, 분노와 광기, 자기 파멸에의 유혹, 사랑의 파괴성에 대한 압도적인 이미지들로 뒤덮인 시든 사후에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았지요.
장석주

사실 저는 당신에게 불만이 많았답니다.
양가감정 때문이겠지요.
일기에 털어놓은 당신의 고통을 읽을 때 질려서,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었거든요. …
당신을 노려보면서 껴안았습니다.
아무튼 그 두꺼운 일기장을 다 읽어치웠어요.
박연준
facebook@SylviaPlathItaly
장석주 | ‘피의 분출’로서의 시

가을이 왔습니다. 가을은 도처에서 이루어지는 수확과 조락(凋落) 속에서 예감과 기미로 발견되겠지요. 포도를 다 수확한 포도원은 주인도 떠나버렸습니다. 포도원은 봄이 오기 전까지는 폐원같이 텅 비고, 밤이 와서 달빛으로 가득 찬 그 빈자리에는 초록이 다하여 떨어진 갈색 잎들을 몰고 다니는 바람이 주인 노릇을 하겠지요. 달콤하게 익은 과일과 속이 꽉 찬 곡식을 거둔 뒤 가을은 오직 가을의 ‘텅 빈 충만’이라는 모순 형용으로만 충만할 테고요. 어쩌면 찬 서리 내린 뒤 가을이 펼쳐내는 떨어지고 바스러지는 쇠락과 작별의 풍경 속에서 뜻밖에도 약간의 우수와 멜랑콜리를, 약간의 피로와 무형의 사랑을 가슴에 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절반 남은 술병과 치사량의 고독은 사양하고, 깊은 침잠과 침묵에 몰두하게 될 때, ‘시 없는 삶’을 견디는 일은 고통스럽습니다.

가을의 날들은 평온합니다. 그 평온 속에서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 1932-1963), 바로 당신의 시집을 읽습니다. 1980년대 중반, 당신은 한국에 알려진 시인이 아니었지요. 당신의 시집 《거상(巨像)》이 처음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된 건 1986년인데, 나는 시집 번역과 출간에 깊이 관여했어요. 당신은 1950년 스미스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플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영국캠브리지대학교로 유학 가서 청년 시인 테드 휴즈와 만나 결혼을 하지요. 7년 뒤 두 아이의 엄마, 남편의 외도로 인한 별거, 불안과 우울증에 빠진 당신은 런던의 메마른 추위가 극성을 부리던 1963년 2월, 어느 아파트에서 가스오븐을 켠 채로 생을 마감했어요. 그건 불행을 낳은 야만의 신을 향한 복수극이었지요. 무의식의 내러티브로 투신하기, 자아가 겪는 수난, 원초적인 죄의식과 백일몽, 엘렉트라 콤플렉스, 분노와 광기, 자기 파멸에의 유혹, 사랑의 파괴성에 대한 압도적인 이미지들로 뒤덮인 시든 사후에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았지요. 시인들은 어떤 상징 속에 자기 드러내기를 좋아합니다. 〈은유〉도 그런 류의 시이지요.

난 아홉 음절도 된 수수께끼,
코끼리, 육중한 집,
두 개의 덩굴손 위에서 거니는 멜론,
오 붉은 과일, 상아, 좋은 재목들!
발효되느라 크게 부풀어 오른 이 빵 덩어리,
이 두둑한 지갑에서 새로 주조된 돈,
난 수단이고, 무대이며, 새끼 밴 암소,
난 녹색 사과 한 부대를 먹고는,
내릴 수 없는 열차에 올라탔어.
-
〈은유〉


“난 수단이고, 무대이며, 새끼 밴 암소” 속에 드러난 것은 고결함도, 의미도 없는, “죽음 주식회사”의 대주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잿빛 비하의 이미지입니다. 죽음의 압도적인 부정 속에서 자기 비하의 감정이 만들어지겠지요. 죽음의 불안에 삼켜진 자아는 아주 하찮은 것으로 규정됩니다. 죽음의 선험(先驗)을 품은 당신에게 “녹색 사과 한 부대를 먹고” 올라탄 “내릴 수 없는 열차”란 죽음의 불가피함에 대한 은유였겠지요.

당신의 시는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 금지된 여성의 문자로, 월경의 피로 쓴 여성주의의 시가 가닿은 아스라한 경지였어요. “아아 도대체 나는 누구란 말인가,/이 때늦은 입들이/서리 내린 숲속에서 팔랑개비국화들이 맞이하는 새벽녘에 크게 입을 벌린 채 울부짖어야 한다니”(〈10월의 양귀비꽃〉), “난 그것을 다시 했지요./십 년마다 한번씩/그것을 해낸다구요…”(〈라자로 부인〉). 자기 생의 불운과 모순을 응시하며 자기가 누구냐고 물으며 울부짖는 입, 삶에 대한 회의와 불안을 주체하지 못한 채 주기적인 자살 기도, 죽음의 극화 그리고 출현 빈도가 높은 죽음의 이미지들로 교직된 시를 쓴 당신! 당신은 일찍이 직관과 감각으로 야만의 세계에 태어나는 일의 고통을 알아채고, 공기 속에 떠도는 죽음의 방향(芳香)을 기막히게 냄새 맡는 여성 사제였지요. “죽는 것은 하나의 기술(技術)” “난 그걸 특히 잘 해내요”, 죽는 게 “내 천직이라 해도 좋을 거예요”(〈라자로 부인〉)라고 고백하고, “이곳은 따분한 학교/난 어떤 꿈도 갖지 않은/뿌리이고, 돌이고, 올빼미 똥이에요”(〈생일을 위한 시〉)라고 폭로합니다. 당신은 시가 “피의 분출”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명하며 세상과 작별했지요.

우리 안에 삶을 향한 충동과 죽음을 향한 충동이 함께 내장되었다는 게 프로이트류의 정신분석학이 내세우는 가설이지요. 프로이트 학설에 따르자면 자기가 아닌 다른 생명의 탈취, 즉 다른 생명의 죽임은 제 안의 죽음 공포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에요. 당신이 십 년 주기로 반복해서 시도한 자살, 기어코 성공한 자살은 그 죽음 본능의 실현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 죽음 본능의 기원은 어디일까요? 어린 시절에 겪은 아버지의 죽음은 당신의 실존에 새겨진 원체험이었지요. 아버지가 죽었을 때 당신은 겨우 여덟 살 아이였어요. 그것은 한 소녀가 감당하기 힘든 죽음의 공포와 더불어 분리불안을 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당신은 이 무의식의 원체험과 평생을 싸우다가 결국 32세라는 짧은 생을 마감했지요.

‘아빠’는 당신에게 찬미의 대상인 “남성 뮤즈”이자 숭배해야 할 “신”이지요. ‘아빠’는 장엄한 거상, 가부장제의 질서와 억압적 힘의 실체지요. 혈육이자 양육자인 동시에 혐오의 대상인 ‘아빠’는 당신의 무의식 안에서 ‘거상’이었어요. “양(羊)의 뿔 모양을 한 당신의 왼쪽 귀 속에 쭈그리고 앉아” “붉은 별들과 자줏빛 별들을 헤아”리는 구절은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 아버지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무의식을 무심코 드러내지요. 당신은 이 복합 감정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자기 살해라는 방식으로 ‘엘렉트라 콤플렉스’라는 감옥에서 풀려나고자 했습니다.

세 번째 자살 기도에서 자기 자신을 파괴하면서 당신의 자아와 포개지는 ‘아빠’, 그 남성 뮤즈, 악마, 파시스트, 흡혈귀, 나치의 하수인, 개자식도 상징적 죽임을 당한 것이지요. 당신이 “아빠, 아빠, 이 개자식, 나는 다 끝났어”(〈아빠〉)라고 부권(父權) 숭배 신화의 몰락을 선언했을 때 당신의 시는 반권위주의에 대한 봉기이자 곧 다가올 미국 페미니즘의 불꽃을 위한 작은 밑불로 타올랐지요. 모성 신화에 얽매인 여성들이 자기 일을 찾아 가정의 울타리를 뛰어넘었을 때, 여성들은 새로운 젠더 규칙과 질서 안에서 자기 언어로 자기를 발명하기 시작했어요.

낮은 따뜻하고 밤은 공기가 차가워지는 계절이 깊어갑니다. 활엽수 잎들은 조용히 지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흘러가는 가을의 날들. 당신이 있는 그곳도 밤에는 숲에서 풀벌레들이 쓸쓸하게 울고, 해류(海流) 같은 바람이 휘젓는 공중에 흰 달이 뜨나요? 당신은 이 가을의 고요와 평온 속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나요?

당신에게도 가을의 평화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안녕.

장석주
전업 작가. 파주에 살며, 음악과 산책을 좋아한다. 주로 글을 쓰거나 인문학 강연을 한다.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철학자의 사물들》 《이상과 모던뽀이들》 《마흔의 서재》 《일상의 인문학》 《호젓한 시간의 만에서》 등과, 아내인 박연준 시인과 함께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 보오》를 썼다.



박연준 | 사랑을 위해, 사랑의 목을 조른다는 것

오늘 아침, 창밖을 바라보다 깨달음 하나가 왔습니다. 2020년에 사는 우리는 ‘사는 삶’이 아니라 ‘보는 삶’을 살고 있구나. 1963년에 생을 마친 당신은 무슨 얘기인가, 의아하게 생각하겠군요.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지금 이곳은 숨을 쉬고, 밖에 나가고,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는 일이 위험한 일이 되었거든요. 전염력이 강한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우리나라는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고, 국내 여행이나 시내 외출도 편안하지만은 않아요. 사람들이 많은 곳엔 되도록 가지 말아야 하고, 호흡기를 보호하기 위한 마스크 쓰기는 필수지요.

실비아.

이상한 세상이 왔어요. 이상한 세상이 아니라, 30년 전 우리가 (가벼운 마음으로) 예상하던 ‘미래사회’가 도래했다고 할까요? 이상기후로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50일 동안 비가 내리기도 하고, 여름은 덥지 않고 겨울은 춥지 않습니다. 여기저기서 산불이 꺼지지 않아 숲이 사라져가고, 빙하는 녹고 있습니다. 바다생물들은 인간들이 버린 플라스틱을 삼키고 죽어가요.

소, 돼지, 닭 등 인류가 먹어온 가축들은 전염병이 퍼지면 무더기로 살처분되지요. 세계 곳곳에서 파시스트보다 나을 게 없는 지도자들이 정권을 잡고, 인종차별은 더 심해지고 있어요. 누군가는 지구의 역습이라고 하고, ‘살기 좋은 지구’는 더 이상 없을 거라 합니다.

두렵습니다. 늘 있어온 각종 혐오와 차별의 극단에, ‘인간 혐오’가 있을까 봐서요. 인간이 인간을 혐오하는 일, 있어왔던 일 아니냐고요? 네. 그렇지만 저는 인간 자체가 ‘바이러스’ 취급을 받고, (서로에게 존재 자체로) 위험인자로 인식되는 날이 올 것 같아 두렵다는 말입니다. 미안해요. 당신에게 다짜고짜 두려움을 털어놓기만 했네요. 어둡고 두려운 감정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당신이 제일 잘 알고 있으리란 믿음 때문인가 봐요. 당신은 이런 시를 썼지요.

이곳은 사람들이 수선되는 도시입니다.
난 커다란 모루 위에 누워 있어요.
내가 빛 바깥으로 떨어졌을 때

단조롭고 푸른 하늘의 원(圓)은
인형의 모자처럼 날아가버렸습니다.
말 없는 찬장 같은
무관심의 위(胃) 속으로 난 들어갔었죠.1)


당신의 시는 어둡고, 휘몰아치고, 죽음을 열망합니다. 사랑의 목을 비틀어 쥔 채 비명을 지르지요. 사랑을 위해 당신은, 사랑의 목을 조르지요. 그걸 슬퍼하면서. “죽은 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눈을 남겨놓지요./사랑은 내 대머리 유모의 제복이랍니다”라고 당신은 사랑을 조롱하며, 동시에 사랑을 원합니다. 어둠과 죽음, 부정적인 감정에 당신보다 능통한 시인을 찾는 일은 쉽지 않을 거예요. (물론 얼마든지 있겠지만) 당신은 어둠의 왕이에요. 어둠을 지배하는 죽음이 당신의 장난감이지요. 당신은 끝내, 자력으로, 죽음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20대 때는 당신의 죽음과 죽음에 도달한 방식에 미혹되었습니다. 20대는 그런 나이잖아요. 저 역시 시를 쓰면서 늘 죽음 가까이에 몸을 밀착하려고 애를 썼어요. 그건 삶이라는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죽음에 몸이 ‘흡착’될 수 있도록 애쓰려는 에너지였지요.

제가 진정으로 죽음을 바랐냐고요? 저는 ‘죽음의 성공’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삶의 실패라면 모를까. 그저 죽음을 향해 몸이 기울어지는 속도, 위험한 밀착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게 마치 살길이라도 되는 것처럼요. 당신의 시들과 두꺼운 일기장을 들여다보던 시절이었어요.

사실 저는 당신에게 불만이 많았답니다. 양가감정 때문이겠지요. 일기에 털어놓은 당신의 고통을 읽을 때 질려서,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었거든요. 무엇보다 문학에 대한 당신의 야망, 높은 곳에 올라서고 싶어 하는 치열한 마음이 불편했어요. 글쎄요. 제게 없는 걸 당신이 바라서였을까요, 아니면 제게 있는 욕망을 당신이 적나라하게 써놓아서일까요? 저는 당신이 한시도 평안할 수 없는 사람이란 점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저 역시, 당시에는 그랬거든요. 당신을 노려보면서 껴안았습니다. 아무튼 그 두꺼운 일기장을 다 읽어치웠어요. 용서하세요. 일기장을 출간하는 일은 당신의 뜻이 아니었겠지만. 당신은 너무 유명해졌답니다.

실비아, 어떤 사람은 ‘비극’에 특히 민감한 것 같아요. 피의 기질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피, 기질, 시. 이 셋이 뒤엉켜 놀면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요. 1962년에서 1963년 당신이 자살하기 전, 일 년 동안 쓴 시들은 에너지가 무시무시합니다. 그때 당신은 애를 쓸 필요가 없었을 거예요. ‘시적 살기’가 너무 강렬해 종이가 겁에 질렸을 테니까요. 자연스럽고, 뛰어나며,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말들이 뛰어노는 시.

누구 하나, 무엇 하나 개입할 수 없이 완벽한! 당신과 종이와 시 그리고 죽음이 합작해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읽고 있자면 기가 질리지요. 당신의 능력 밖의 일이, 일어난 거예요. 시가 당신을 부리는 일! 시가 태어나려고, 당신을 타고 달리며, 당신을 부리는 일. 그리고 당신은 팽개쳐지듯, 죽어버렸어요. 그 시를 제가 여기, 어둑한 시절의 축축한 언덕에서 읽습니다.

나는 비난 받는다. 나는 대학살을 꿈꾼다.
나는 까맣고 붉은 고통의 정원이다. 나는 고통을 마시고,
나 자신을 증오하고, 증오하고 두려워한다. 그리고 이제 세상은
종말을 이해하고 종말을 향해 달린다. 사랑 안에서 손을 꼭 잡는다.
모든 것을 병들게 하는 죽음의 사랑이다.2)


“모든 것을 병들게 하는 죽음의 사랑”을 누가 말릴 수 있을까요?

실비아, 저는 온 힘을 다해, 제 어둠의 뼈를 똑똑 부러뜨리며, 그곳에서 빠져나왔어요. 제 가시를 다 뽑았어요. 순해졌을까요? 그렇지만 우습게도, 가시들은 계속 자라요. 심지어 저 모르는 곳에서도 자라지요. 그걸 말릴 순 없어요.

저는 당신의 어둠을 사랑하지만 어둠을 통제하고 싶은 사람. 그러나 정말 어두운 시절이 오면, 당신의 시를 이불처럼 덮고 흐느껴 울고 싶은 사람. 실비아, 피는 맑아질까요? 과연?

이 말을 하고 싶어요. 당신이 그토록 원하던 것들, 다 이루었어요. 다요.

부디 그곳에선 평안하기를.

박연준
파주에 살며, 일주일에 세 번 발레를 배운다. 창문, 숲, 기러기를 좋아한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이 있고, 산문집 《소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등을 썼다.

1) 실비아 플라스, 《거상》, 〈돌들〉 중에서, 88쪽, 청하.
2) 실비아 플라스,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 <세 여인> 중에서, 370쪽, 마음산책
  •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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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oljeto   ( 2020-10-15 )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0
이번에도 두 분의 편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topclass 편집자(?)님께 부탁 하나만 드리자면, 한 회씩 돌아가며 박연준 시인님 편지가 먼저 게재되게 편집을 바꿔보시는 건 어떨까요? 장석주 시인께서 시인으로서 더 오랜 경력을 지니셔서 먼저 올린다고 하실 수도 있겠으나, 이 지면에서는 '부부 '시인으로 올리는 글이고, 부부는 동등한 지위에 있는 관계이니까요. 부부 인터뷰가 실리는 글 등 부부가 등장할 경우 대부분의 매체에서 늘 남편의 이름을 먼저 호명하거나, 남편의 언설을 먼저 인용하는데 이제 그런 관행이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기획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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