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희의 속 깊은 인터뷰

소설가 김탁환

소멸해가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 김탁환 작가는 어딘가 이질감이 들었다. 다른 도시인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한 이질감이었다. 문명의 산물을 어색하게 걸친 자연인 같다고 할까.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마스크를 벗은 후에야 ‘그래, 이거지’ 싶었다. 반백 살이 넘어 어느덧 백발이 점령해버린 머리카락만큼, 콧수염과 턱수염에도 구불구불한 백발 수염이 수북했다. 9년 전 《밀림무정》 출간 직후와는 또 다른 야성미가 느껴졌다. 당시는 동물적 야성미였다면, 이날은 식물적 야성미가 풍겼다. 2년째 채식을 한다고 했다.



김탁환 작가가 에세이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를 냈다. 말이 에세이지, 장르를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농부과학자 이동현의 삶과 도시소설가 김탁환의 삶을 교차로 들려준다는 점에서 소설 같기도 하고, 섬진강을 낀 작은 마을들을 거닐면서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을 교차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행문처럼 읽히기도 한다.

책은 한없이 아름답다. 마음을 잡아끄는 문장들이 많아서 곱씹어 읽게 된다. 가령 이런 문장들.

“다르다고 물리치지 않고 느리다고 타박하지 않고 어리다고 얕보지 않고 늙었다고 무시하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 저마다 걸어온 삶의 무늬를 본다. 듣는다. 어루만진다. 거대해지기를 꿈꾸지 않는다. 결실을 꿈꾸되 봄부터 가을까지 땀 흘려 일한 만큼만 갖는다….”

작가가 반해버린, 이동현 농부과학자가 운영하는 농업법인 미실란(美實蘭)의 철학이다.

김탁환 작가의 곡성 기행은 우연히 시작됐다. 도시소설가로서 턱밑까지 차오른 그는 “이렇게 살다가 죽기 싫었다”고 했다. 일 년간 쉬기로 한 후 쉰 곳이 넘는 마을을 돌아다녔다. 그중 그의 발길을 잡은 건 곡성이었다. 서울 면적과 엇비슷한 크기의 곡성. 같은 규모의 땅덩어리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섬진강변을 느릿하게 걷다 보면 노루와 삵을 만나고, 인구가 적어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는 곡성과 달리, 서울은 터질 것만 같았다.

곡성과 서울을 수시로 오가며 작가는 묻는다. 우리가 정녕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이며, 코로나라는 역대급 전파력을 지닌 바이러스와 공존해야 하는 이 시대,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쓴 건 아닐 텐데, 신기하게도 코로나 시국에 착 맞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요.

“허허. 그러니까요. 10년 전부터 생각한 것들이 흐르고 흘러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어떤 생각들이죠?

“10년 전쯤 《밀림무정》을 쓰면서 한 번 크게 충격 받았어요. 실제 정글에 들어가서 대나무 숲이 우거진 대자연을 봤잖아요. (소설을 실감 나게 쓰기 위해 그는 야생 호랑이가 사는 러시아 라조 자연보호구역에 다녀왔다.) 이렇게 위대하고 엄청난 스케일의 대자연을 인간들이 작살내고 있는 현장을 본 거죠. 호랑이부터 시작해서 육식동물을 죽여나가는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충격받았어요. 그때부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한라산 둘레길에서 노루를 만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어요. 갈 때마다 만났는데, 나중에 노루가 5m까지 다가왔을 땐 먼저 물러났죠.

“야생동물이 야생동물답게 살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적정한 거리 두기가 필요해요. 야생동물을 우연히 만나더라도 함부로 다가가거나 만지지 말아야 하는 거죠. 산림과 습지를 노는 땅 취급하면서 거기에 도로를 만들고 인간을 위한 주거공간을 짓지 말아야 해요. 이동현 선생도 ‘최소한 여기에서 멈추자’고 했지요. 인류의 자리를 차츰 줄여나가자고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어떤 거리 두기가 필요할까요.

“‘유연함’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전 세상에서는 소통과 접촉의 가치를 말하다가, 코로나 시국이니까 접촉하지 말자 식으로 완전히 반대쪽으로 가고 있어요. 쏠림 현상이자 자유가 없는 상황이죠. 콘택트가 없는 삶은 불가능하잖아요. 접속이냐 접촉이냐, 콘택트냐 언콘택트냐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적당히 접속하고, 적당히 접촉해야 하며, 적당히 콘택트하고 적당히 언콘택트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결국 ‘적정함’이 중요해요.”


적정함이라.

“코로나 시국뿐 아니라 삶에 두루 필요한 태도가 ‘적정’ 같아요. 가령 소설가인 제 삶에서도 그래요. 30대에는 문장을 지나치게 갈고닦아서 그 자체로 완결성 있는 글을 꿈꿨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글이 갑갑해져요. 그 자체로는 비문이 없고 아름답지만 힘은 오히려 더 떨어지고 자족적인 문장이 돼버려요. 그렇게 할 수는 있지만 일부러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양쪽 세계를 다 할 수 있어야 그런 차원이 가능할 듯싶습니다.

“그렇죠. 회사를 더 크게 키울 수 있는데 일부러 안 키우고, 빨리 갈 수 있는데 일부러 빨리 가지 않고, 많이 가질 수 있는데 일부러 적게 가져가는 태도가 필요해요. 크게 키우고 빨리 가고 많이 가지려다 보면 내가 무리할 수밖에 없어요. 무리하는 사람은 사람의 폭이 좁아지고, 다른 사람과 경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돼요. 욕망을 아예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욕망을 하다가 어느 지점에서 멈춰야 되는 것이죠. 멈추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 내 옆에 있는 존재들과 균형을 맞춰야 해요. 그래야만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코로나 같은 감염병을 해결할 수 있어요. 지금의 코로나는 결국, 그렇게 못 하고 인간이 자기 욕망껏 질주해왔기 때문에 닥친 거예요.”


그런 차원에서 채식주의자가 된 건가요?

“‘적정’이 가장 안 되는 것이 공장식 축산이에요. 인간은 원래 배고프면 바다나 강이나 숲에서 각종 동물을 사냥해 먹으면서 살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배고파서 소를 잡아먹는 게 아니라, 소고기가 있으니까 먹는 거예요. 주객이 전도된 형태죠. 예전에는 소나 돼지를 잡기 전에 그 존재의 눈동자를 봤어요. 생명과 생명으로 만나는 것이죠. 지금은 동물을 식자재로 생각하기 때문에 도축해서 고기를 얻는 과정으로만 간주하죠.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습니다. 그런 것들에 회의가 생겼어요.”


2년째 채식을 해보니 어떤가요.

“살도 많이 빠지고 몸도 좋아졌어요.”


심적으로는요?

“훨씬 더 예민해졌다고 할까요? 뭔가를 먹을 때 맛을 상상하고 생각하면서 먹게 돼요. 과거 고기 먹고 그럴 땐 무슨 맛인지 모른 채로 먹었어요. 미각이 예민해지니까 다른 감각도 다 열려요. 음식을 보면 ‘저게 어떤 색이고, 어떻게 생겨먹었기에 저런 맛이 날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미각이 확 퍼져나가니까 다른 감각도 다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글을 훨씬 더 그 대상의 다양한 면모를 느끼며 다가가서 쓰게 된 것 같아요.”


농부과학자 이동현 선생과의 인연 이야기를 해볼까요. 생판 모르는 타인과 타인이 만나서 서로의 영혼을 알아보고, 스미고 교감하는 과정이 아름답고 신기하더군요.

“처음엔 잘 몰랐어요. (이동현 선생이 운영하는 ‘밥cafe 飯하다’에서 밥을 먹고) ‘아, 밥이 되게 맛있네?’ 하는 차원이었고요. 자꾸 만나다 보니 ‘아, 저 사람 고민이 깊으면서도 다양한 일을 열심히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스쳐지나갔어요. 우리는 대부분 스쳐지나가잖아요. 밥을 먹은 이후로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됐어요. 기록을 소중히 여기는 이동현 선생이 올린 사진과 글을 보면서 점점 흥미가 갔죠. 한 달쯤 지나니까 ‘아, 참 흥미로운 문제적 인간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이란 ‘문제적 인간’을 주인공으로 삼아 서사를 펼쳐나가는 예술이니까요.”


글을 보고 반했나 봅니다.

“내가 만난 어떤 농부와도, 내가 만난 어떤 과학자와도 달랐어요. 독특했어요. 소설가는 그런 문제적 인간한테 끌려요. 가서 계속 만났어요. 한 열일곱 번쯤. 내일도 만나러 갑니다.”


농부과학자 이동현은 걸어온 길이 특이하다. 1969년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벽계마을에서 태어난 이동현은 박사학위 소지자다. 순천대를 나와 서울대대학원 농생물학과에서 석사를, 문부성 장학생이 되어서 규슈대에서 농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길로 연구를 계속해 학자의 길을 걸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곡성으로 내려와 농부사업가가 되었다. 2004년 ㈜픽슨바이오를 창업해 미생물로 병충해를 방제하는 신약을 출시했으나 성과는 미미했고, 2005년 농업회사법인 ㈜미실란을 설립해 발아현미를 연구하고 사업화하면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발아현미 품종 및 친환경 농법을 꾸준히 개발해 2015년 대산농촌문화상을, 2019년엔 유엔식량농업기구 모범농민상을 받았다. 김탁환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이동현은 “만물에 뜨겁게 반응하는 사람”이다.


두 번째 만남은 어떻게 이뤄졌습니까.

“그분이 보기엔 제가 유명한 소설가니까, 곡성으로 내려와서 강연을 해줄 수 있느냐고 요청했어요. 책읽기와 글쓰기에 관한 강연이요. 강연 이후로 독서모임을 하면서 제 책도 많이 읽으셨습니다. 《이토록 고고한 연예》 《대소설의 시대》 《거짓말이다》 《살아야겠다》를 다 읽으셨어요. 제가 《불멸의 이순신》 같은 역사소설뿐 아니라 사회파 소설도 많이 썼다는 걸 알게 되고, 그러면서 서로 교감이 된 것 같아요.”




이동현 선생을 모델로 글을 써야겠다는 확신이 든 순간은요?

“한 1년 전쯤인가요. 곡성과 이동현, 미실란 이야기에 내 삶과 고민들을 함께 붙여 써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소설가는 이야기에 매혹되는 사람이고, 농부는 땅에 매혹되는 사람이잖아요. 둘 사이에는 번역기가 필요하지 않냐는 농담을 건넬 만큼 다른 조건에서 다른 학문과 삶을 꾸려왔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니 통하는 구석이 많았어요. 이동현 선생이 제 책을 많이 읽었듯, 저도 이동현 선생이 쓴 논문을 다 읽었어요. 이해가 되든 안 되든.(웃음) 이동현 선생이 아주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데요. 낮은 차원에서 보면 그 일들이 따로따로 보여요. 처음엔 ‘산만함의 끝판왕이다’ ‘저걸 어떻게 다 하지’ 싶었죠. 그런데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지니까 그 일들이 다 연결되는 게 보였어요. 그게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걸 안 순간 ‘아, 이건 내 문장으로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쌍둥이’라는 표현까지 썼더군요.

“완전히 똑같은 거울은 아닌, 트위스트되면서 겹쳐지는 부분이 재밌었어요. 이동현 선생이 278종의 볍씨를 손 모내기 했어요. 발아현미에 가장 적합한 품종을 고르기 위해 전수조사를 한 거죠. 벼 품종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덤비는 이동현 선생의 욕망과 장편소설을 쓰려고 지독한 경험주의자의 길을 걷는 제 욕망이 쌍둥이처럼 닮았다고 느꼈어요.”


소멸해가는 곡성의 상황이 두 분의 인연을 한층 더 아름답게 합니다.

“서울과 곡성은 크기가 비슷해요. 서울이 100이라면, 곡성은 95 정도? 그런데 곡성엔 2만 8000명, 서울에는 970만 명이 삽니다. 같은 면적인데 서울은 완전히 과밀, 곡성은 완전히 과소지역이죠. 사회학적으로 비교하면 재밌겠구나 싶었어요. 과밀한 지역이 갖는 각종 문제들을 과소한 지역과 대비해가면서 해결책을 찾아보는 방식도 가능할 듯싶었고요. 그런 관점으로 죽 흐르다가 코로나가 터지면서 서울과 곡성의 차이가 더욱 확실해진 거죠.”


서울과 곡성을 오가면서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코로나 상황에서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더 비교됐어요. 서울에 갈 때는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잔뜩 긴장해서 가는데, 곡성역에 내리면 분위기가 확 바뀌어요. 곡성역에 내려서 미실란까지 한 30분 걸립니다. 강길 따라 걸어서요. 마스크 쓰고 걷다가 보면 앞뒤에 아무도 없는 거예요. 30분 내내 한 명도 없을 때가 많아요. 마스크 쓸 이유가 없는 거죠. 지방은 점점 과소지역이 되면서 사람들이 안 사는데, 코로나가 터지고 보니까 오히려 그런 곳이 더 안전하고, 서울이 더 위험한 곳이 됐죠. 생존의 위기가 닥치면서 공간의 가치가 역전됐다고나 할까요.”


소멸을 말해왔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을 돌아보게 만들더군요.

“10년 전부터 가지고 있던 화두가 소멸이었어요. 발전의 속도를 못 따라가는 건 소멸해갑니다. 지방, 농촌, 벼농사, 공동체, 이 네 가지가 소멸해가고 있어요. 지방 소멸의 경우, 흩어져 있는 작은 마을을 다 없애고 한곳에 모으자는 황당한 논의가 있어요. 효율성을 위해서요. 그동안 살아온 역사나 이런 걸 다 무시하는 거죠. 군에서 지방도시로, 지방도시에서 대도시로 욕망을 키워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타까웠어요.”


코로나 이후로는 그 욕망이 역전돼서 분산사회가 될까요?

“의지의 문제 같아요. ‘의지 미래’라는 표현을 쓰는 학자도 있죠. 미래는 어떻게든 오지만, 가만히 있으면 우리가 바라는 미래는 오지 않아요. 곡성과 고흥이 대표적인 지방 소멸 위기 지역으로 꼽혀왔습니다. 지금까지 인구 감소 추세라면 30여 년 후에는 인구가 0이 된다는 거죠. 그렇게 안 되도록 해야죠.”


농민은 혁명가가 될 수 없다는 표현을 책에서 썼지만, 이동현 선생을 보면서 혁명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민들을 불러 모아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었으니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얽혀 있어요. 돌아가신 김종철 선생님도 그렇게 하셨지만, 작은 단위의 마을을 만들고, 뜻있는 사람을 모아서 친환경 농사를 짓고, 공동체에서 학교를 만들어야 잘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일본의 경우처럼 가까이에서 핵 발전소 같은 게 터져버리면 마을이 한번에 없어질 수 있어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국가 단위에서 뒷받침해줘야지, 마을 단위에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한계가 있다는 거죠.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갈 수 있는 사례가 많아요. ‘단순히 지방에 가서 우리 동네만 잘 살면 돼’ 이게 안 된다는 거죠.”


소설가로서 선생은요?

“마을 소설가가 되고 싶어요. 대한민국 마을을 다 쓸 순 없겠지만, 인연이 닿는 마을에 깊게 들어가서 글을 써보고 싶어요.”


마을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건가요?

“아름다움도 있고, 고통도 있고요. 소멸해가는 것들을 쓰고 싶어요. 이동현 선생과 저의 공통점은 실향민이라는 거예요. 근대화 과정에서 어린 시절 뛰놀던 마을이 수몰되거나 매몰돼버렸어요. 실향이라는 게 고향이 북한인 사람뿐 아니라, 살던 곳의 흔적이 아예 사라지는 것도 실향이지요. 실향민들이 반복적으로 생기는 걸 끊고 싶었어요. 소멸에 맞서는 것이지요.”


소멸에 맞선다고 하지만, 두 분이 고향의 흔적을 밟으며 이야기 나누는 걸 보면서 기억을 줍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게 되게 중요한 거예요. 유년 시절의 감성은 굉장히 귀하거든요. 바쁘게 살면서 꺼내볼 시간이 없잖아요. 이동현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대화를 나눴다고 하잖아요. 그런 감성이 평생의 자양분이 되는 거죠.”


이동현 선생이 모의 잎귀, 물뱀, 왕우렁이와 대화 나누는 대목에서 웃음이 났어요. 어찌나 자상하던지 동화 같더군요.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가공이 얼마나 들어간 건가요?

“가공은 없어요. 진짜 이동현 선생은 자연과 그런 식으로 대화를 나눈다니까요. 우리 할머니들도 꽃과 대화하고 그러잖아요. 인간과 동식물과의 관계가 원래 그랬다는 거죠. 근대과학에 와서 그게 깨졌어요. 《향모를 땋으며》라는 책이 있어요. 북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여자 과학자가 쓴 책인데, 부족들이 나무에 정령이 깃들여 있다고 생각하면서 대화를 해요. 그런데 대학원에 가서 식물학을 배우면서 분열증이 옵니다. ‘이 나무가 얼마나 착한 줄 아십니까, 얼마나 아름다운 줄 아십니까’ 하면 교수가 야단을 쳐요. 과학은 객관적인 학문이어야 한다는 거죠.”


이동현 선생도 그런 분열증이 있겠어요.

“물론입니다. 이동현 선생에게도 양쪽이 다 들어있어요. 그런데 분열을 겪다가 다시 넓은 품 안에서 뒤섞인 특별한 상태예요. 식물과 막 대화하다가 과학적으로 물으면 바로 과학적 지식으로 답해요. 품종의 특징과 병충해에 강한 정도를 설명하는 식으로요.”


이 선생은 어떻게 분열증을 덜 겪었을까요.

“다시 농부가 되어서지요. 학교로 돌아가서 교수가 됐으면 분열증을 겪을 텐데, 곡성에 와서 농사를 지으면서 통합이 된 것 같아요.”


독자들이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길 바라나요?

“일단 미실란 쌀을 주문해야겠다는 생각? 하하.”


그렇게 맛있어요?

“다르죠.”


밥맛이 달라봐야….

“아니라니까요. 원래 쌀은 씨앗이 잠자고 있는 상태예요. 발아는 깨어나서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고요. 흙에 심으면 흙 양분을 빨아들이는데, 이건 그 전 단계죠. 자기 안의 성분을 지닌 채 일정 기간 깨어난 상태예요. 씨앗이 자고 있을 때에는 품고만 있던 것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하는 겁니다. 그 증폭이 한 배 두 배가 아니라, 열 배 백 배가 되는 거예요. 쌀의 생애에서 발아의 시기는 단 한 번 뿐이니까요. 맛과 영양가가 확 달라요.”


성공하셨습니다.
미실란 쌀을 꼭 주문해야겠다는 생각이.(웃음) 독자들이 또 어떤 생각을 하길 바라나요?


“모든 건 다 연결돼 있어요. 어떻게 연결돼 있는가를 계속 생각하는 게 중요해요. ‘나만 잘나면 모든 게 정리될 거야’라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죠. 가령 온라인 택배를 봐도 그래요. 오전 11시에 주문한 책이 오후 4시에 옵니다. 노동자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겠어요. 나의 편안함은 누군가의 피곤함으로 연결돼 있다는 거죠. 내가 기쁠 때 이 기쁨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맛있을 때 이 맛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생각하면 좋겠어요. 장일순 선생님도 말씀하셨듯이,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어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이런 생각을 계속하면 자기중심적이 안 될 수 있어요.”


묵직하군요.

“이 책은 편한 책이 아니에요. 특히 도시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아주 쉽고 불편한 책.”


저는 책을 덮으면셔 섬진강의 뿅뿅다리 풍경이 묻는 것 같았어요.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지.


“그렇게 쓰시면 되겠어요. 그게 핵심이에요. 허허.”
  • 202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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