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취향 (27) 도넛

내 맘대로 고른 도넛 맛집 best 4

© 셔터스톡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 부르던 시절, 내가 살던 집 작은 베란다에는 엉덩이 닿는 부분이 반들반들해진 1인용 소파가 놓여 있었다. 평범한 어느 날, 작은 테이블과 소파 하나 두면 꽉 차는 그 공간에 틀어박혀서 책장 가득 꽂힌 책 중 한 권을 꺼내 읽기 시작하면 엄마의 시간이 분주해지곤 했다. 가끔은 식빵을 달콤한 달걀물에 듬뿍 적셔 구워내는 달걀빵(어른이 돼서야 그것이 프렌치토스트라는 걸 알았다)에 설탕을 솔솔 뿌려주기도 하고, 외할머니집 옥수수밭에서 자란 옥수수를 모조리 해치워버릴 기세로 먹어대는 딸 때문에 쉴 새 없이 옥수수를 쪄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만들어주던, 가장 기억에 남는 간식은 ‘꽈배기’였다.

주방에서 달걀을 넣어 밀가루 반죽하는 냄새는 오늘 간식이 ‘꽈배기’라는 걸 알려주는 신호였다. 가만히 책장을 넘기다 보면 노릇하게 튀겨 설탕가루까지 솔솔 뿌린 꽈배기가 작은 소파 앞 테이블에 선물같이 올라왔다. 한 손으로는 꽈배기를 집고 다른 한 손으로 책장을 넘기며 읽어낸 책들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유독 좋아했던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나 《해저 2만리》,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 같은 책을 읽으며 맛보았던 꽈배기만 한 간식은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

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입맛’ 혹은 ‘취향’은 결국 어릴 때의 기억을 원형으로 한다. 그 음식이 행복했던 기억과 연관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요즘도 책을 읽을 때면 꼭 간식을 곁에 두는 버릇이 있는데, 그건 어릴 적 추억이 영향을 줬다고밖에 할 수 없다. 한동안은 새로운 간식거리를 찾아 헤맬 때도 있었다. 대학교 2학년 때 전공 수업에서 ‘읽어라’고 강제한 700페이지 넘는 두꺼운 책을 읽다가 처음 맛본 ‘티라미수’를 시작으로 ‘밀푀유’며 ‘마카롱’ 같은 디저트들은 다 책과 함께 접한 간식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책을 읽을 때 곁에 두는 간식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동네 주민센터 근처 만둣집에서 파는 ‘술빵’이나 날이 더워지자마자 찜통에 올려 쪄낸 찰옥수수에, 지하철역 너머 크지 않은 재래시장에서 검은 봉지에 싸서 들고 온 꽈배기까지 테이블 위에 오른다. 투박한 모양의 간식거리에 이끌리게 된 게 언제인지 곰곰이 돌이켜보니 유독 엄마와 통화 횟수가 잦아진 뒤부터였다.

요즘 엄마는 마흔에 가까워진 딸의 건강을 걱정하느라 주말마다 산을 오른다. 산속의 불상 앞에서 절을 하고, 또 다른 산속 사찰을 찾아 공양을 하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암자까지 올라 고개를 숙인다. 몇 십 년 전에 달걀빵이며 꽈배기를 먹여 키운 딸이 변함없이 건강하게 살도록. 오늘도 어디론가 “놀러 다녀왔다”고 무심히 이야기하는 엄마와 통화하면서 테이블 위의 꽈배기를 집어들었다. 취향이란 돌고 돌아 다시 원형을 닮기 마련이다.



빠우
옛날 ‘도나스’ 그 맛 그대로
서울 중구 을지로 157 / 02-2268-9285

© 네이버블로그 - jjypink81
세운상가로 잘 알려진 서울 중구 청계천 인근의 세운·대림상가 건물은 요즘 도시재생의 모범 사례로 언급되곤 한다. ‘빠우’는 ‘힙스터’들이 즐겨 찾는 이곳에서 최근 주목받는 도넛 가게다. 미국식 도넛이 아니라 한국식으로 변용한 ‘도나스’를 판다. 보통 재래시장에서 파는 도나스는 미리 튀겨놓고 느긋하게 손님을 기다리는데, 이곳은 주문 즉시 튀겨낸다. 반죽도 치대기만 한 밀가루 반죽이 아니라 찹쌀 반죽을 숙성·발효시켜 더욱 쫄깃하게 만든다. 기본 도나스 외에도 팥앙금이 들어간 호두단팥 도나스도 있는데, 둘 다 식감과 맛은 추억 그대로다. 유자앙금과 모차렐라 도나스는 좀 다르다. 상큼한 맛의 유자앙금은 튀긴 반죽과 꽤 잘 어울린다. 도나스만큼이나 핫도그도 인기인데, 케첩과 설탕을 함께 뿌려 먹으면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사 먹던 바로 그 맛이 난다. 도나스 한 개에 1000원이니 넉넉하게 구입해도 부담이 없다.



플러피도넛
폭신, 포슬, 쫄깃, 달달, 때론 단짠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 163 / 02-336-7065

© 네이버블로그 - juvely96
‘힙’한 카페들이 많다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도 눈에 띄는 도넛 가게다.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지만 크기와 맛 때문에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이 많다. 알록달록한 도넛들이 눈길을 끈다. 아홉 가지 맛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붉은색의 라즈베리 도넛은 꼭 선택을 받는다. 가게 이름 ‘플러피(fluffy)’는 폭신하다는 뜻인데, 이곳 도넛은 폭신하지만은 않다. 포슬포슬하면서 쫄깃한 식감인데, 위에 얹는 재료에 따라 도넛 맛이 완전히 달라진다. 라즈베리 글레이즈드 도넛은 상큼한 맛이 강하고, 손님들의 호평을 받는 도넛은 좀 더 단맛이 난다. 초코 글레이즈드 바닐라 커스터드 도넛은 초콜릿과 커스터드크림이 어우러져 단맛이 극대화된다. 메이플 글레이즈드 베이컨은 단맛과 짠맛이 조화로워 인기가 많다. 음료를 시키면 작은 도넛이 올려져 나오는데 원래 도넛보다 단맛이 적어 음료에 적셔 먹기에 좋다.



노티드 도넛
기름에 튀긴 흔적 없는 담백함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53길 15 / 070-8860-9377

© 네이버블로그 - ines011
서울 시내 곳곳에 분점이 있어 꼭 압구정 도산공원 본점을 찾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어디를 가든 오픈 시간인 12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인기 있는 도넛은 다 팔려버리고 없다. 주말에는 긴 줄을 감수해야 한다. 속재료가 약간 보이는 형태로 만들어낸 도넛은 생김새가 비슷비슷하지만 속재료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맛을 낸다. 가장 기본인 클래식 바닐라 도넛은 커스터드크림과 쫄깃한 반죽이 어우러진 맛이다. 기름에 튀긴 흔적이 없는 쫄깃하고 가벼운 반죽이 인기 비결. 상큼한 맛을 좋아한다면 레몬슈가 도넛을 추천한다. 단맛이 거의 없는 대신 레몬 향이 가득하다. 싱가포르의 명물 카야잼의 맛을 그대로 살린 카야버터 도넛은 마니아들에게 인기가 높다. 지점이나 시기에 따라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기 때문에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앙버터나 우유 생크림 도넛도 많이 찾는 메뉴다.



올드페리도넛
미국식 도넛을 맛보고 싶다면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27길 66 / 02-6015-2022

© 네이버블로그 - mochihotel
커다란 도넛 안에 필링(속재료)이 잔뜩 들어가 있다. 자르기만 해도 묵직하게 흘러내리는 속재료를 보고 싶다면 올드페리도넛을 추천한다. 가장 미국적이고, 재료의 맛을 한껏 살린 도넛을 접할 수 있다. 크림브륄레 도넛이 가장 인기가 많다. 프랑스식 디저트인 크림브륄레는 커스터드크림 위에 설탕을 올려 불에 그을린 후 고체화된 부분을 깨어 먹는 음식. 크림브륄레 도넛 역시 도넛 표면을 불에 그을려 굳어진 설탕이 감싸고 있어 탁 소리가 나도록 깨어서 잘라보면 속에 든 커스터드크림이 흘러내린다. 라즈베리 도넛은 상큼한 맛이 특징이다. 가격이 꽤 비싼 편이지만, 주말 오후엔 인기 도넛 대부분이 팔리고 없다. 도넛만큼이나 많이 찾는 것은 미니사이즈 도넛이 앙증맞게 올라가 있는 튜브라떼다. 도넛을 커피에 살짝 적셔 먹는 맛이 궁금하다면 튜브라떼를 같이 먹을 것을 권한다.
  • 2020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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