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통의 보통 사람들 #9

동네 깡패였던 내 친구

글 : 김보통 

글을 쓰기 위해 키보드 위에 손을 얹어놓고 앉아 있는데
문득 이게 무슨 일인가 싶습니다.
왜, 어떤 연유로 글을 쓰며 먹고살고 있는 것일까요?
학창 시절 장래희망으로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작가’가 지금의 직업이라는 것이 아직도 어색하기만 할 뿐입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닌가 봅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역시 비슷한 심정이라고 했습니다.
“나도 내가 칼을 드는 이유가 사람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는 게 어색해.”
이십 몇 년 전 우리가 아직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적,
친구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깡패였습니다.
그 친구를 인터뷰해 1인칭 시점으로 구성해봤습니다.

어느 날 교무실로 나를 부른 선생님은 말했지.
한 번만 더 사고 치면 퇴학이라고. 신경 쓰지 않았어. 어차피 자퇴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부모님이 반대해서 못 하고 있던 터라 내심 일부러 사고를 칠까 싶기도 했어.
특별히 불만이 있던 건 아니야. 학교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었어.
어차피 학교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냥 안 가는 게 낫지 않을까 했던 거지.
정말 학교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애당초 학교는 공부하라고 만든 곳이고, 그곳에 모인 애들은 공부를 해야 하는데, 나는 공부가 싫었으니까. 그냥 잠만 잤어. 생각해보면 공부보다 싫었던 건 시험이었을 거야.
평소에는 다 비슷비슷해 보이던 애들이 시험을 보고 나면 등수가 정해져. 아무도 입 밖으로 말은 안 꺼내지만 그 등수라는 게 또 사람 신경을 긁잖아. 그러면 공부를 해서 등수를 올리면 될 거 아니냐 하겠지만
공부는 나만 하냐.

우리 부모님은 내가 어릴 때부터 밤늦게까지 가게에서 일했어. 지금처럼 놀 게 많을 때도 아니어서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며 지내는 건 너무 지루했고, 가지고 놀라고 사준 게임기만 붙들고 있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지. 결국 비슷한 처지의 애들끼리 모여 형 동생하면서 놀다 보니 주변에서 일진이라고 부르면서 슬슬 피하잖아. 그게 나쁘지 않았어. 어른들이 정해준 등수는 내가 낮지만, 또래끼리 정한 등수에선 내가 꽤나 높았으니까.
왜 그렇게 싸우고 돌아다녔느냐고 묻는다면 이유는 없어. 굳이 따지자면 재밌었지.
싸우기 전의 흥분도, 상대방을 쥐어 패는 쾌감도, 이기고 났을 때의 성취감도 학교에서는 얻을 수 없는 거였고.
그럴수록 점점 공부랑은 멀어져갔지만, 이제는 따라잡기도 늦었다는 걸 나도 알았어.
그러면 뭐, 어쩔 수 없는 거야. 사람은 인정받는 쪽으로 집중하는 법이잖아.
누가 날 인정해주는 분야가 싸움뿐이었으니까 싸울 수밖에.


제대하기까지는 나쁘지 않았어. 오히려 군대에서 가장 빛을 발했지. 사람 갈구는 것도 해본 놈이 하는 거잖아.
나랑 눈만 마주치면 후임들은 벌벌 떨었어. 고참뿐 아니라 간부들까지도 인정해주는 쓰레기였지.
알겠지만 군대에서는 누군가가 총대를 메야 해. 그래야 생활이 편해져. 내가 바로 그 방면에서는 전문가였고, 내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후임들을 보며 고참과 간부들은 흡족해했지.
그런데 딱 거기까지더라고. 남자들 사이에서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어.
입마개를 한 개처럼 살았어. 밤마다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고 생각하기도 했지. 시도 때도 없이 전쟁이 일어나던 시대나, 짐승을 사냥해 오는 걸로 인정받던 선사시대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진지하게 생각했어.
지금은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거야. 물론 말하지도 않지만. 작은 식당의 월급 주방장으로 일하는 거라 사실 사람을 만날 일도 거의 없어. 하루 온종일 주방에서 음식 만들고, 시간 나면 재료 준비하고, 끝나면 집에 들어와 술 한잔하는 게 일상이야. 별것 없는 하루하루지. 이 시국에 손님도 없는데 용케 자르지 않는 주인이 대단해.

어쩌다 여기로 흘러오게 된 걸까.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도로시가 된 기분이야. 웃기지만. 그거랑은 별개로 일 자체가 싫지는 않아. 큰 불만도 없어. 오히려 학생 때보다 나은 것도 같고. 지금 애가 벌써 초등학생인데, 난 걔한테 공부하라고 안 해. 대신 가능한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려고 해.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게 공부를 안 해서일 수도 있지만, 한 꺼풀 더 들여다보면 결국 누군가한테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서. 그리고 어렴풋하게 그 누군가가 우리 부모님이었던 건 아닐까, 하고 짐작하거든.
그렇다고 부모님을 탓하려는 건 아니야. 그땐 그럴 만했으니까. 그저 내 애가 나랑 똑같은 길을 걸어서,
아니 굴러서 먼 미래에 나처럼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거지. 다행히 교도소를 안 갔다는 것에 안도하지 않고,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이 산다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갔으면 하는 게 내 마음이야.
뭐, 그게 어디 내 뜻대로 되겠느냐만, 그래도 부모 마음이 또 그런 거잖아.
  • 2020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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