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부부가 예술가에게 보내는 편지 (8)

천재 건축가 알바 알토(Alvar Aalto)! 어느 여름, 헬싱키에서

당신은 직선이나 기하학적인 형태보다 곡선이 자연 그대로인 것에서 더 이끌렸어요.
그건 당신이 인류와 자연의 연관성에서 영감을 구한 탓이지요.
당신이 한사코 기하학적 형태와 금속 재료를 거부한 것도 그런 맥락을 반영합니다.
장석주

단언컨대 저는 행복했습니다.
장식적이거나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아도 오롯이 빛날 수 있다는 것, 물질은 물질 본연의 성질을 간직한 채 아름다울 권리가 있다는 것을 당신이 설계한 장소에서 깨달았어요.
아름다움은 기능과 형태의 균형이다”라는 당신의 말에 동의 합니다.
박연준
장석주 | 건축의 목소리

다시 여름의 한가운데로 들어섰습니다. 해는 온종일 공중에서 불타고, 토마토 열매는 땅이 기르는 작은 태양들처럼 녹색 가지에 매달려 불타지요. 한여름 정오, 정수리로 불볕처럼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걸어갈 때 먼 이국의 도시, 지평선, 바다 등지를 자주 상상합니다. 백사장의 흰빛과 바다의 푸른색이 대비를 이루는 먼 이국의 바다를 동경합니다. 여름마다 여행가방을 챙겨 우리만의 작은 세계를 벗어나 먼 곳으로, 낯선 곳으로 떠났지만, 올해는 사정상 그럴 수가 없게 됐습니다.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 기분을 침울하게 만들지만 어쩔 수 없지요.

몇 해 전 여름 헬싱키로 떠난 것은 단지 혹서를 피하려는 목적만은 아니었어요. 우리는 모스크바를 경유하는 핀란드 국적기를 타고 8월 중순 헬싱키에 도착했습니다. 핀란드는 초행이었어요. ‘핀란디아’를 작곡한 시벨리우스의 조국, 침엽수림과 호수가 많고, 노키아를 생산한 나라, 사우나가 많다는 피상적 지식 말고는 우리가 핀란드에 대해 아는 바는 별로 없었지요. 헬싱키로 여행을 간다 하니 대학에서 건축학을 가르치는 박철수 교수가 핀란드 출신의 천재 건축가 알바 알토(Alvar Aalto, 1898~1976) 기념관을 꼭 들러보라고 했습니다.

헬싱키는 인구가 적고 도심에 차가 많지 않아 대기가 깨끗했습니다. 정말이지 산책하기에 쾌적한 도시였어요. 숙소를 나와 몇 걸음 걸어가면 식품과 잡화를 파는 마켓 광장 카우파토리가 나오는데, 바다와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바닷가를 산책하고, 오후에는 걸어서 한국 식당을 찾아가 점심을 먹고 벼룩시장을 돌아보았지요. 헬싱키 중심 만헤르임 거리로 나가는 길에 알바 알토가 설계한 아카데미아 서점을 찾은 건 헬싱키에 도착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알바 알토 선생님, 당신이 살았던 시대는 어떠했나요? 당신은 불행했던 적이 없었나요? 무엇이 당신을 건축가의 길을 가도록 부추겼을까요? 당신은 두 번의 세계 전쟁을 겪으며 혁신적 변화로 요동치는 20세기를 건너왔지요. 죄 없는 이들이 살육당하고, 집과 고향을 잃고 난민으로 떠돌며, 이유 없는 증오와 굶주림에 시달린 시대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건너야/흰 비둘기는 모래밭에서 쉴 수 있을까?/얼마나 많은 포탄이 더 날아다녀야/영원히 포탄이 금지될까?/(중략)/얼마나 많이 귀 기울여야/사람들이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될까?”
_밥 딜런, ‘바람에 실려서’


이 노래는 20세기 음유 시인이 부른 비가(悲歌)지요. 우리 손에는 가해자의 피가 묻어 있습니다. 우리에겐 상처받은 이들의 슬픔과 모욕을 씻어주기 위한 의무가 있지요. 그래서 시인은 시를 쓰고, 가수는 노래합니다. 아마도 당신 역시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그들의 마음에서 슬픔을 씻어내고 그 자리에 희망과 용기의 씨앗을 심기 위해 건축의 아름다움에 헌신했겠지요.

알바 알토, 당신은 건축가, 디자이너, 유기적인 모더니즘 선구자로 일컬어집니다. 헬싱키의 산업예술대학(Institute of Industrial Arts)을 나와 첨단 기능의 건물 투룬 사노마트(Turun Sanomat, 1927) 설계를 시작으로 도시 디자인, 오페라하우스, 극장, 박물관, 도서관, 대학교, 시청 청사, 묘지 예배당, 결핵 요양소, 개인 주택 등을 설계하고, 적층 목재, 합판 본딩, 몰딩 합판을 재료로 삼아 혁신적인 수직 의자를 디자인했지요. 의자, 조명기구, 인테리어 소품을 포함한 북유럽 가구 디자인을 대표하는 아르텍(Artek) 가구는 당신의 유산 중 하나로 꼽힙니다. 북유럽의 정서를 체화한 당신에게 핀란드에서 가장 큰 아카데미아 서점 설계를 맡긴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아카데미아 서점을 돌아보며 그 규모보다도 쾌적함과 아름다움에 놀랐어요. 서점을 둘러보는 내내 우리 마음을 기쁘게 하는 공간의 관현학적 편성에 감탄했습니다. 묵직한 무게감을 주는 문과 주물(鑄物)로 된 문손잡이, 화장실의 도기(陶器) 변기, 아카데미아 서점 구석구석에서 당신의 뛰어난 미감과 꼼꼼함을 엿보았지요. 심플한 구조와 동선, 그 모든 게 견고하고 아름다웠으니까요. 서점 2층 한쪽엔 카페가 있었는데, 그곳도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리는 헬싱키에 머무르는 내내 일부러 그 카페를 찾아가서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다 돌아오곤 했어요.

건축은 인간의 물리적 필요에 부응하고, 우리가 정서적으로 더 풍요한 삶을 누리는 데 기여해야 합니다. 건축가는 대지의 생김새와 바람의 흐름을 살피며 그 자연 조건과 어울리는 건축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요. 알바 알토, 당신은 직선이나 기하학적인 형태보다 곡선이 자연 그대로인 것에서 더 이끌렸어요. 그건 당신이 인류와 자연의 연관성에서 영감을 구한 탓이지요. 당신이 한사코 기하학적 형태와 금속 재료를 거부한 것도 그런 맥락을 반영합니다. 당신이 핀란드의 풍토, 해안선과 지형의 윤곽, 침엽수림과 호수, 북유럽의 부족한 일조량과 추운 겨울 날씨 등 자연 조건에서 건축의 최상의 표준화를 모색한 것은 당연했어요. 당신이 만든 건축물에서 벽은 두껍게, 외부로 난 창은 작게, 빛을 더 많이 내부로 끌어오기 위해 천창이나 측창을 많이 둔 것도 그 때문이었겠지요.

건축가 지오 폰티는 건축을 문명 생활의 다섯 가지 조건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그는 《건축예찬》에서 “삶의 무대이며 기반인 건축을 사랑하라”고 했지요.

“건축은 낮과 밤, 해와 달, 청명한 하늘과 구름 낀 하늘, 바람과 비, 그리고 폭풍과 눈이 차례로 연출되는 실재의 극장이다. 거기서 삶과 죽음, 부귀와 빈곤, 선과 악, 평화와 전쟁, 창조와 파괴, 젊음과 늙음이 동시에 나타난다. 건축은 역사의 무대를 인생의 축소판으로 연출한다.”

좋은 건축은 동화와 시, 고전 음악만큼이나 아름다움에 헌신합니다. 괴테는 건축을 “얼어붙은 음악”이라고 했지요. 제가 르 코르뷔지에와 가우디, 안도 다다오나 이타미 준, 김수근과 김중업 같은 건축가를 존경하는 것은 그런 까닭에서입니다. 극장,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성당, 서점 같은 공공 건축물은 우리 삶의 질을 드높인다고 믿어요. 첫눈에 반한 아카데미아 서점은 우리 취향에 딱 맞는 공간이었지요. 우리 주변에 아카데미아 서점같이 “건축의 목소리와 은밀함과 강한 노래가 감춰진 침묵”을 느낄 공공 건축물이 많아질수록 삶은 더 나아지겠지요.

다시 헬싱키에 간다면 알바 알토 기념관을 꼭 가보겠습니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충만하기를!

장석주
전업 작가. 파주에 살며, 음악과 산책을 좋아한다. 주로 글을 쓰거나 인문학 강연을 한다.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철학자의 사물들》 《이상과 모던뽀이들》 《마흔의 서재》 《일상의 인문학》 《호젓한 시간의 만에서》 등과, 아내인 박연준 시인과 함께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 보오》를 썼다.



박연준 | ‘멋’을 생각하는 일

당신을 알게 된 건 몇 해 전 헬싱키로 여름휴가를 떠나기로 했을 때입니다. 왜 하필 헬싱키였을까요? 헬싱키에 대해 아는 거라곤 토베 얀손의 ‘무민’ 캐릭터, 노키아 브랜드, 디자인 강국, 겨울 추위가 혹독하다는 점 정도였는데 말예요. 어쩌면 제가 좋아하는 영화 〈카모메 식당〉의 배경이 된 도시이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나온 적 있다는 점이 제 무의식을 자극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2016년 여름, 저는 남편에게 헬싱키에 가고 싶다고 했고, 그도 흔쾌히 동의했지요.

우리는 한 해에 한 번, 대개 여름을 골라 외국 여행을 했습니다. 한 번에 여러 나라를 둘러본 적도 있지만 우리 여행 스타일과는 맞지 않았어요. 둘 다 도시 하나를 선택해, 그곳에서 여러 날을 머무는 걸 좋아했습니다. 시드니에서 한 달, 베를린에서 보름, 오키나와에서 나흘, 헬싱키에서 여드레, 이런 식으로 한 도시에 머물며 그곳을 온전히 느껴보는 일이 좋더라고요.

이왕 먼 곳에 갔으니 여기저기 다녀보는 게 좋지 않느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첫날의 생경함, 이삼 일 뒤의 새로운 느낌, 며칠 더 지난 뒤 차츰 도시에 익숙해지는 경험이 좋았습니다. 낯선 곳에 도착해, 비로소 일상을 누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느낄 때 즈음 떠나는 일! 기분이 묘하지요. 집으로 돌아오면 그리움이 마침표처럼 따라붙어요. 모른 채로 익숙해져버린 곳을 향해 정을 품을 수 있거든요. 향수를 더해주는 건 여행지에서 좋았던 장소와 분위기, 가져온 물건들이죠.

알바. 좋았던 여행지가 많지만 제가 가장 사랑한 곳은 헬싱키랍니다. 헬싱키에선 나쁜 기억이 하나도 없었어요.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곳 특유의 자연 친화적인 환경, 느리게 흐르는 듯한 시간과 오가는 사람들의 편안한 표정, 튼튼한 물건을 파는 상점들, 도시를 둘러싼 미적 감각(좀 놀라운 데가 있었어요), 매일 광장에서 열리는 플리마켓, 나무, 호수 그리고 당신이 설계한 아카데미아 서점까지! 모든 게 좋았습니다. 헬싱키에서 우리는 매일, 아주 오랫동안 걷고 또 걸었습니다. 성당 앞을 지나고, 트램을 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바다를 봤어요. 우리는 특히 아카데미아 서점을 좋아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그곳에 갔지요. 당신이 설계한 서점, 조명과 가구까지 꼼꼼히 신경 써서 만들었다는 그곳에 머물며 깨달았어요.

“헬싱키에서 나는 ‘멋’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멋이란 자연스럽고 견고하고 건강한 것이다. 자신이 자신임을 좋아하는 것, 자기다움으로 충만한 것! 타자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때, 멋 내지 않을 때 멋이 난다. 그곳에서 나는 난생처음으로, 내 안에도 ‘자연스러운 당당함’이 있음을 느꼈다. 움츠려 있던 자아가 제대로 숨을 쉬었다. 아마도 타인의 시선이라는 통제 아래 있던, 보이지 않는 사슬이 풀어진 것이리라. 그때 나는 스스로 멋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왜 헬싱키에서 유독 그랬는지, 모르겠다).” 1)

지금 생각해보니 알바, 당신이 가르쳐준 것 같아요. 멋이란 자연스럽고 견고하고 건강한 것을 뜻한다는 사실이요. 무겁고 튼튼한 문, 문손잡이, 천장에서 빛이 들어오도록 설계한 창문, 심플한 선을 강조한 테이블과 의자, 은은한 조명들, 무엇도 튀지 않고 조화로워 아름다움을 끌어올린 인테리어까지. 서점 2층에 자리한 ‘카페 알토’에 앉아 글을 쓰고 책을 읽다 보면, 몸과 마음이 제대로 포개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단언컨대 저는 행복했습니다. 장식적이거나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아도 오롯이 빛날 수 있다는 것, 물질은 물질 본연의 성질을 간직한 채 아름다울 권리가 있다는 것을 당신이 설계한 장소에서 깨달았어요. “아름다움은 기능과 형태의 균형이다”라고 한 당신의 말에 동의합니다. 기능과 형태, 둘 중 어느 쪽으로도 더 기울어지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사람도 몸과 마음이 균형을 이룰 때 아름다워지는 거겠지요?

알바. 고양이처럼 강해지고 싶어요. 작고 튼튼한 집처럼 충만하고 싶어요. 말없이 그득해지고 싶어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만의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싹트는 고독을 새싹 기르듯 돌보며, 책을 읽고 안에서부터 차오르는 생각을 노트에 적고, 창문으로 저녁이 내려앉는 것을 바라보는 삶을 추구해야 할까요? 먼 곳에서 소식이 오면 기뻐하고, 보고 싶은 친구를 점심 식탁에 초대하고, 몸 어느 곳도 긴장하지 않은 채 잠드는 생활을 하면 될까요?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상상 속에서 꿈꾸는 작업실 풍경이 있어요. 그곳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나무책상이 있습니다. 당신이 디자인한 단순하고 우아한 의자와 어울리는 책상이라면 더 좋겠지요. 책상 앞엔 커다란 창이 있고 창문 가득 나무들이 서 있는 풍경이 보여야 해요. 나무의 초록 너머로 멀리, 바다가 보인다면 정말 좋겠어요. 책상을 비추는 작은 스탠드 아래엔 글을 쓰기 위한 손목 두 개와 흰 노트, 그 옆엔 두 권의 책이 놓여 있어요. 한 권은 여러 번 읽어서 귀퉁이가 닳은 것, 한 권은 처음 읽는 새 책입니다. 벽 쪽으로 2인용 소파와 작은 테이블이 놓여 있고 맞은편 벽엔 책이 잘 정리돼 있는 책장이 있어요. 밝은색 카펫 위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지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방, 너무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방, 상상 속에서 저는 이런 방을 꿈꾼답니다. 중요한 건 창문 안과 밖의 풍경. 창문 안과 밖을 나누는 사람의 풍경이겠지요.

세상의 모든 방은 내밀해요. 그렇지 않나요? 아주 내밀하죠. 옛사람들은 모두 자기 방에서 태어나고 사랑하고 죽었다는데, 나중에 저도 집에서 죽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사랑하는 공간,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슬퍼하고 기뻐하던 가장 내밀한 공간에서 끝을 맞이하면 좋겠어요. 그때 저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이 아름답고 튼튼하기를.

남편은 다시 태어나면 건축가로 태어나고 싶대요. 여러 번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진심인가 봐요. 혹시 당신처럼 근사한 건축가가 될까요? 두고 봐야겠네요. 헬싱키를 한 번 더 가보고 싶은데, 그때는 당신이 살던 ‘알바 알토 하우스’를 꼭 가보겠습니다. 핀란드식 사우나도 해볼 거예요.

알바.
제게 ‘멋’이 무엇인지 가르쳐줘서 감사해요.
제게 ‘멋지다’란 단어는 당신 이름과 동의어랍니다.

박연준
파주에 살며, 일주일에 세 번 발레를 배운다. 창문, 숲, 기러기를 좋아한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이 있고, 산문집 《소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등을 썼다.

1) 졸저,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달, 30쪽.
  • 2020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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