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취향 (26) 수제 맥주

내 맘대로 고른 수제 맥주 맛집 best 4

© 셔터스톡
6년 전 6월의 어느 날, 영국 런던을 가로지르는 템스강은 초여름 내리쬐는 햇살에 젖어 있었다. 돌변하기 쉬운 게 런던의 날씨라지만 하루 종일 유독 맑고 쾌청한 날이었다. 오전에는 런던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버로우마켓에 들렀다가 슬금슬금 걸어 템스강변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

햇볕 따사로운 날이면 으레 웃통을 벗고 드러눕곤 하는 런더너(Londoner)들이 강변 풀밭을 빼곡히 메운 기분 좋은 날, 굳이 목적지를 정해 움직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관광객이라면 한번은 들러본다는 런던탑과 타워브리지, 런던아이와 테이트모던 같은 명소도 뒷전. 마음 닿는 대로 시간을 보내자며 제일 먼저 한 일이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어느 펍(pub)에 들어가 맥주 한 잔을 들이켠 것이었다. 맑은 날씨, 쌉싸래한 맥주 한 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기분 좋은 소음. 남편과 손잡고 걷다가 펍이 보이면 들어가 맥주 한 잔 마시고, 다시 나와 걷다가 또 맥주 한 잔 마시고, 그렇게 6월 여름 해가 저물어갈 때까지 걸었다. 겨우 3km를 걷는 데 한나절을 족히 보낸 셈이다.

긴 산책이 끝난 곳도 펍이었다. 영국의 극작가 아서 코난 도일의 대표작 《명탐정 셜록 홈스》의 이름을 딴 펍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그날 맥주를 몇 잔 마셨는지 셈해봤다. 여섯 잔, 일곱 잔 세어보다가 펍에서 꼭 먹곤 하는 안주 ‘피시 앤 칩스’를 한 입 먹곤 다시 맥주 한 잔. 약간은 알딸딸해진 머리를 흔들며 런던 골목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맥주의 다양한 맛을 경험하기 어려웠다. ‘생맥주’라고 하면 으레 대형 주류 회사의 브랜드 맥주만을 의미했고, 대형 마트 주류 코너에 가서야 보다 더 다양한 수입 맥주를 볼 수 있었다. 며칠을 느긋하게 런던을 걸으면서 펍마다 다른 맥주를 종류별로 맛보고 에일 맥주가 뭔지, 라거는 어떤 맛을 내는지 비로소 깨닫기 시작한 참이었다. 처음 경험한 맥주의 다양한 맛만큼 그곳의 추억도 다채롭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펍 안에서 들려오던 축구 경기 하나에 울고 웃는 소리, 호탕하게 웃으며 ‘서비스’로 한 잔 더 주겠노라며 어깨를 두드리던 펍 주인의 목소리, 독일에서 마셨던 맥주만큼이나 맛있다던 말에 발끈하며 ‘맥주는 영국’을 외치던 무섭게 생긴 아저씨들, 여름 런던 골목길의 비릿한 냄새 등 모든 감각이 맥주의 감각에 뒤섞여 있다.

한국에 수제 맥주 붐이 일면서 이제는 우리도 맥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종류마다 어떤 맛을 내는지 많이 안다. 나름 맛을 분석해가며 마시기도 한다. 그런데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다른 맥주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일일이 분석하다 보면 더 이상 맥주를 그때와 같이 감각적으로 마시는 일이 없어졌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런던에서는 아무것도 몰라도 그저 맛있다는 느낌만으로 즐길 수 있었다. 그런 것들이 많다. 알면 알수록 조금씩 사라지는 첫 기억들 말이다.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마이크로 브루어리계의 형님
서울 성동구 성수일로4길 4 / 02-465-5208

©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인스타그램
2016년 처음 문을 연 후 대표적인 마이크로 브루어리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경기도 이천 공장에서 대량 생산도 하지만, 서울 성동구 성수동, 마포구 합정동, 광진구 자양동에서 신선한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이곳의 대표 맥주는 ‘첫사랑’이다. IPA 맥주인데 보통 IPA보다는 색이 탁하다. 홉을 많이 넣어서 그렇다는데 그다지 쓰지는 않다. 누구에게나 ‘맛있다’는 얘기를 들을 만한 맥주다. ‘어메이징IPA’는 전형적인 IPA에 가까운 맛으로, ‘첫사랑’보다는 쓴맛이 더하다. ‘쇼킹스타우트’는 달고 쓴 묵직한 흑맥주로, 단독으로 마시기에 좋다. 이곳에서는 조금씩 맛볼 수 있는 샘플러 메뉴를 시켜도 되고, 재료를 봐가며 한 잔씩 도전해봐도 좋다. 지점마다 메뉴 구성이 조금씩 다른데, 성수동과 자양동에서는 맥주를 원하는 만큼 직접 따라 마실 수 있는 셀프탭이 마련돼 있다.



아트몬스터
피넛버터 포터, 이태원프리덤… 개성 끝판왕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1길 28-3 / 02-6448-6110

© 아트몬스터 인스타그램
경기도 군포에 1,983㎡(약 600평) 규모의 양조장부터 차려놓고 시작한 브루어리다. 아트몬스터의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은 서울에만 여섯 군데 있다. 그중 종로구 익선동과 성동구 성수동, 강남구 역삼동, 중구 을지로3가 매장은 언제나 손님들로 붐빈다. 매장마다 분위기가 다른데, 역삼동 매장은 홍콩의 어느 골목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다. 맥주를 원하는 만큼 마실 수 있는 셀프탭이 있다. ‘사랑범벅’은 다른 브루어리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피넛버터 포터 맥주다. 스타우트와 마찬가지로 흑맥주 계열인데 첫맛부터 땅콩 향이 진하게 풍긴다. 쓴맛과 고소함이 어우러져 흑맥주를 즐기지 않는 사람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태원프리덤’은 독일식 밀맥주인 헤페바이젠으로, 바나나 향이 은근히 풍겨 가볍게 마시기에 좋다. 맛있게 만들기 어렵다는 라거 맥주도 인기가 많아 ‘청담동며느리’나 ‘레드사무라이’ 같은 메뉴도 추천한다.



서울 브루어리
몰트 본연의 진한 맥주
서울 마포구 토정로3안길 10 / 070-7756-0915

© 서울 브루어리 인스타그램
진한 맥주를 마시고 싶다면 강추. 첨가물을 넣지 않고, 몰트(보리) 본연의 맛과 향으로 만들어낸 맥주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대표 메뉴는 ‘골드러시’다. 원래 미국식 라거 맥주는 낮은 온도에서 발효하는데, 이 맥주는 라거 효모를 높은 온도에서 발효했다. 그래서 에일 같은 향을 내면서 라거처럼 톡 쏘는 맛도 있다. ‘페일블루닷’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IPA 맥주다. 가볍게 마시기에 좋지만 막상 목으로 넘기다 보면 풍부한 향에 깜짝 놀라게 된다. 다섯 가지 홉을 사용해 만든 맥주답다. 같은 IPA 계열이지만 ‘샐린저 호밀 IPA’는 시트러스 향이 좀 더 강하다. 합정동 매장은 주택가 한복판에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어 알아채기 쉽지 않지만,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맥주 맛을 깊이 즐길 수 있어 이곳을 최고의 브루어리로 꼽는 단골도 많다.



맥파이 브루어리
수제 맥주의 선구자, 브루어리 투어도 유명
제주 제주시 동회천1길 23 / 064-721-0227

© 맥파이 브루어리 인스타그램
2011년 문을 연, 현대 수제 맥주의 선구자 같은 브루어리다. 처음에는 레시피를 맥주 공장에 위탁해 만들었지만, 2016년 제주도에 대규모 브루어리를 열면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맥파이 브루어리는 오래된 시간만큼이나 제주도 브루어리 투어로도 유명하다.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관찰하고 여러 종류의 맥주를 시음할 수 있는 코스다. 양조장과 펍이 맞붙어 있다 보니 투어를 마치고 나와 취향에 맞는 맥주를 한 잔 더 시켜 마시는 맥주 덕후들도 많다. 이곳에서는 사워맥주에 도전해봐도 좋다. ‘고스트’는 고제라고 불리는 독일식 사워맥주인데 오래 발효한 에일맥주에 소금을 곁들여 시큼 짭짤한 맛을 낸다. 수제 맥주의 진폭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면 시켜볼 만하다. 감귤 향이 풍부한 ‘맥파이 페일 에일’이나 흑맥주 ‘맥파이 포터’는 언제 즐겨도 좋은 맥주다.
  • 2020년 07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2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miooo   ( 2020-07-05 )    수정   삭제 찬성 : 반대 :
기자님의 찐덕후 생활을 응원합니다!! 덕후의 취향 계속 기고해주세요오오~
  Dadadada   ( 2020-07-05 )    수정   삭제 찬성 : 반대 :
정말 기자님의 추천에 초공감!!기사에 댓글써보기는 처음이네요.
 진짜 남들이 추천하는게 아니라 가보신 곳을 추천하신듯 해서 덕후 인정입니다.
 와... 추천해주는 리스트 중 1~2곳은 제가 인정하는 맛집들!
 추천하신 맛집들 믿고 가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