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슬의 커피코피해피 #7

제 이름은 ‘참이슬’의 이슬입니다만

글 : 강이슬 

누군가 살면서 절대로 끊지 못할 것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난 주저 없이 술을 꼽을 것이다. 술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때로는 육체적 거리까지) 순식간에 좁혀버리면서 미미했던 흥을 빠르게 증폭시킨다. 어디 그뿐인가. 마음에 담아둔 얘기를 꺼내는 어색한 자리의 무게를 반으로 줄여버리고, 사랑을 고백할 용기는 몇 배로 끌어올려준다. 물론 술의 부작용이 적지 않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 술도 잘만 쓰면 요물도 이런 요물이 없다. 처음부터 술을 몰랐다면 그런대로 잘 살아가겠지만 술의 효능(?)을 알아버린 이상 술 없는 내 인생은 상상만으로도 재미없다.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술의 힘!

그러한 이유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 이후부터 10년 가까이 삶의 상당 부분을 술에 의지하며 살고 있다. 애인과의 데이트에서 분위기 좋은 술집은 필수 코스다. 룸메이트와 집에서 시간을 보낼 때는 대낮부터 안주를 만들고 막걸리를 마신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소주 한잔 곁들이지 않으면 왠지 서운하고, 누군가를 처음 소개받는 자리에서 술이 빠진다면 초면의 어색함을 견디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느라 진이 빠진다. 상사와 함께하는 회식 자리에서 취하지 않는다면 1분을 10분처럼 느끼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물며 이름을 소개할 때도 나는 술의 힘을 빌린다.

“안녕하세요, 강이슬이에요. ‘참이슬’ 할 때 그 이슬이요.”

사람들은 ‘강이슬’은 쉽게 잊지만 ‘참이슬 할 때 이슬이요’는 쉽게 잊지 않는다. 역시 술은 대단하다.

얼마 전 인터뷰를 하러 간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술 얘기가 나왔다.

“작가님은 술을 잘하시나요?”

기자의 질문에 능청스럽게 웃으며 이름이 괜히 이슬이겠느냐고 대답했다.

“부러워요. 저는 체질적으로 안 맞아서 단 한 잔도 못 마셔요.”

“맥주도요?”

질문을 하자마자 스스로 뱉은 말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맥주는 술 아닌가. 옆에서 카메라를 점검하던 감독님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술 못 마시면 재미없어서 어떻게 살아요?”

“안 그래도 친구들이 재미없는 놈이라고 항상 놀려요.”

예전 같으면 진심을 담아 술 못 마시는 체질을 안타까워하며 위로했을 텐데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대신 술 못하는 사람들이 술 대신 가졌을 것들을 떠올려봤다. 맨정신에도 사랑을 고백할 줄 아는 용기, 어려운 이야기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는 정신력, 술 없이 긴 밤을 지새워 이야기할 친구들, 전날의 기억이 명확한 매일 아침, 술 없이도 하루를 꽉 채워 누릴 수 있는….


술에 희석된 내 삶은 흐리멍덩한 색감?

삶에도 채도가 있다면, 명확하게 그릴 수 있는 그림이라면, 술 못하는 사람들의 삶은 채도가 높은 명랑한 그림일지도 모르겠다.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술에 상당 부분을 기대는 나의 삶은 형광색으로 어지러운 포인트를 넣은, 술에 희석되어 비교적 흐리멍덩한 색감의 그림이지 않을까. 어떤 삶이 더 좋고 재미있는 건지 모르겠다.

글쓴이 강이슬은 〈SNL 코리아〉 〈인생술집〉 〈놀라운 토요일〉 등 TV 프로그램에서 근면하게 일하며 소소하게 버는 방송작가다.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안 느끼한 산문집》으로 대상을 받고 출판 계약을 하며 난생처음 갑이 됐다. 술과 개와 밤을 좋아하고 욕을 잘하지만 착하다.
어제도 오늘도 가난했고 내일도 가난하겠지만 가난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가지고 있다.
  • 2020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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