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취향 (25) 파운드케이크

내 맘대로 고른 파운드케이크 맛집 best 4

© 셔터스톡
사랑스러운 만화 《요츠바랑》(아즈마 키요히코 저)에는 주인공인 다섯 살 요츠바가 옆집 언니 후카의 고등학교 축제에 놀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생크림을 잔뜩 올린 과일 박힌 케이크를 좋아하는 요츠바는 후카네 학급이 축제를 맞아 카페를 연다는 걸 알고 기대에 부풀어 있다. 자기네 반에 놀러 오라는 언니, 오빠들의 손길을 물리치고 도착한 후카네 카페에서 요츠바는 호기롭게 “케이크 주세요”라고 외친다. 그런데 요츠바 앞에 놓인 건 장식이 하나도 없는 투박한 모습의 파운드케이크였다. 말도 없이 시무룩해진 요츠바. “딸기도 크림도 없다”며 표정을 굳히는 요츠바를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 언니들이 화급히 그럴듯한 음식을 찾아내는 에피소드다.

사실 파운드케이크는 ‘케이크’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투박하기 그지없다. 원래 파운드케이크는 밀가루, 달걀, 설탕, 버터를 1파운드(453g)씩 배합해 만든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꼭 1파운드씩 넣어 커다란 케이크를 만들 필요는 없지만 각 재료가 1 : 1 : 1 : 1의 비율로 들어가야 파운드케이크 특유의 투박하지만 진한 맛을 낼 수 있다. 어떤 첨가물을 넣는지, 장식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파운드케이크의 모습도 가지각색이다. 대개는 사각형의 파운드케이크 틀에 넣어 만드는 게 기본이다.

화려한 기교도, 대단한 장식도 필요 없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케이크지만, 파운드케이크만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이는 드물다. 보통 디저트라고 하면 다채로운 맛을 내는 제과류를 떠올리기 때문일지 모른다. 또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는 제과도 아니어서 만드는 사람 특유의 손맛을 잘 살리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


그러나 여유로운 오후 시간, 홍차나 커피 한 잔과 함께 묵직한 파운드케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면 파운드케이크만이 주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값비싼 식사 끝의 화려한 디저트나 특별한 날에 맛보는 기교 넘치는 디저트가 아니라 일상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여유 같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파운드케이크가 담고 있는 여유는, 다섯 살 아이 요츠바가 알기에는 다소 조숙한 감각일지 모른다. 딸기와 생크림을 잔뜩 올린 케이크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단맛이지만 파운드케이크는 그렇지 않다. 파운드케이크만의 투박한 묵직함은 바쁜 일상을 겪고 나서야 느끼는 평범함에 대한 소망이다.



부암동스코프
묵직한 영국식 전통의 맛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 149 / 070-8801-1739

© 네이버블로그_mintmintchocochoco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스코프보다는 분점 격인 서촌스코프가 찾아가기 더 쉽다. 두 곳 모두 진열된 음식만 봐도 이곳만의 정체성이 확연하다. 화려하진 않지만 묵직하게 알찬 영국식 디저트가 열을 맞춰 쌓여 있다. 스콘이나 빅토리아 스펀지케이크도 눈에 띄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파운드케이크다. 이곳 파운드케이트는 영국인이 직접 만들어내 전통적인 맛이 난다. 가장 유명한 메뉴는 ‘오렌지바닐라케이크’라고 이름 붙인 파운드케이크. 바닐라 향이 나는 포슬포슬한 반죽 위에 달콤한 오렌지 조각을 진득하게 올려 홍차나 커피와 같이 먹으면 기막히게 잘 어울린다. 생강을 좋아한다면 생강케이크를 강추. 당근케이크는 ‘소보로’라고 불리는 버터크럼블을 수북하게 올려 단맛이 더 좋다. 커피와 함께 즐기고 싶다면 좌석이 여유로운 서촌 매장을 권한다.



렁트멍
파운드케이크야, 치즈케이크야?
서울 동작구 장승배기로 26 / 02-825-0404

© 네이버블로그_orionbt
묵직하고 진한 파운드케이크를 찾는다면 렁트멍을 추천한다. 이미 방송에 여러 차례 등장해 전국적으로 인기가 많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택배 주문도 받는데, 수량이 제한돼 있어 새 글이 올라오면 얼른 가서 주문 댓글을 달아야 한다. 최근에는 인근에 2호점도 생겨 직접 가면 비교적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대표 메뉴는 마롱 단호박파운드케이크. 밤이 콕콕 박힌 진한 노란색 케이크다. 밀도가 워낙 높아서 한 조각만 집어봐도 묵직한데, 촉촉한 식감 덕에 여러 조각을 먹어도 부담이 없다. 파운드케이크 특유의 버터나 설탕 맛보다 단호박 맛이 더 강한 것이 특징. 크림치즈파운드케이크도 인기인데, 치즈케이크에 가까울 정도로 묵직한 크림 맛을 자랑한다. 얼그레이파운드케이크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이곳 파운드케이크는 전통적인 방법에 변주를 넣어 케이크의 맛과 향을 끌어올렸다. 차갑게 냉장 보관해 잘라 먹으면 좋다.



스퀘어이미
이름도, 맛도 상큼하네
서울 마포구 양화로19길 22-13 / 070-4136-5228

© 네이버블로그_limhj42
원래는 한 사람당 구입 가능한 파운드케이크의 수량이 한정돼 있었다. 워낙 인기가 많아 정오에 문을 열기도 전에 줄이 생길 정도였기 때문. 요즘은 좀 한산해져 원하는 만큼 구입할 수 있지만 늦은 오후에 가면 빈손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이곳에서는 파운드케이크를 한 조각씩 판다. 이름도 예쁘다. 가장 많이 사가는 ‘오후 2시에 먹어요’는 레몬파운드케이크다. 레몬청이 들어간 반죽을 구워 레몬즙을 넣은 크림치즈를 듬뿍 올렸다. 레몬 향이 진하지만 시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상큼해 말 그대로 오후 2시의 나른함을 깨울 만하다. ‘검은 밤, 붉은 별’은 생초콜릿을 넣어 만든 묵직한 케이크 반죽에 산딸기 잼을 올렸다. ‘우리 동네 임자씨’는 흑임자파운드케이크로, 흑임자를 넣어 만든 생초콜릿을 반죽에 섞고 절인 무화과를 넣었다. 공간이 좁다 보니 포장해서 인근 카페 ‘이미’에서 즐기는 이들이 많다.



호라이즌16
한 달에 16일만 열어요!
서울 마포구 성미산로29길 46

© 네이버블로그_billjang9
가게 전화도 없고, 한 달에 16일만 운영한다. 작은 제과점 카페지만 맛있는 파운드케이크를 소개해달라는 글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파운드케이크뿐 아니라 마카롱, 케이크, 휘낭시에도 판다. 매일 판매 품목이 달라지는데, 인스타그램에 그날의 품목을 고지한다. 카페 공간은 소박하지만 개성 있게 꾸며져 있다. 고동색 가구에 LP판도 진열된 독특한 감성에 손님들마다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운영 방식부터 공간 감성까지, 전형적인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한 카페다. 가장 많이 찾는 것은 레몬파운드케이크. 포장을 열자마자 레몬 향이 진하게 풍기는데, 식감은 묵직하지도 포슬포슬하지도 않다. 딱 적당히 부드러운 식감이다. 케이크 위에 올린 글레이즈는 레몬을 잔뜩 품어 달달 상큼하다. 마블파운드케이크도 인기인데, 초코와 말차가 섞여 다채로운 모양이다. 진한 초콜릿이 약간 씁쓸한 말차 맛에 조화롭게 녹아들어 이 메뉴만 찾는 사람도 많다.
  • 2020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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