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슬의 커피코피해피 #6

아니, 벌써 6월이라고?

글 : 강이슬 

달이 바뀔 때마다 거르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아니, 벌써 ○월이라고?’

새삼스러움과 놀람, 걱정과 미련을 담아 이 한마디를 굳이 하는 이유는 지난달, 더 열심히 살지 못하고 나태했던 스스로를 반성하고 복기하며, 다가오는 새로운 달을 더 알차게 살고자 파이팅을 외치기 위해서라고 하면 정말 새빨간 거짓말이다. 따지자면 정신없이 사느라 이렇다 할 추억거리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한 과거를 짧고 굵게 애도하는 의식에 가깝다. 내년까지 남은 달을 헤아리며 ‘아, 이렇게 속절없이 또 한 해가 가는구나’ 혹은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간담’ 따위의 의미 없는 말을 맥없이 덧붙인 뒤, 이른 아침 환한 태양이 새로운 달을 밝히는 해라는 사실을 금세 잊고 지난달과 딱히 다를 것 없는 마음가짐으로 한 달을 산다. 그러다 보면 한 달 뒤에 데자뷰가 펼쳐진다. ‘아니, 벌써 ○월이라고?’


1년의 절반이 훌쩍, 당혹감과 허탈함에 패배감까지

그런데 6월은 조금 다르다. ‘아니, 벌써 6월이라고?’라는 문장에는 군더더기라곤 한 점 없이 오직 진심만 담겨 있다. 진심으로 벌써 6월임에 놀라 육성으로 튀어나오는 문장인 것이다. ‘당최 뭘 했다고 벌써 1년의 절반이 지나갔지?’의 당혹감과 ‘분명 바쁘게 살았건만 왜 뭔가 부족한 것 같지?’의 알 수 없는 허탈함. 누가 대신 살아준 인생도 아닌데 지난 시간들이 괜히 아깝고 억울해서 조바심이 나기까지 한다. 올해는 정말 뜻깊게 살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지난 5개월 동안 깊어진 것이라곤 후회와 미련, 피로도밖에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살다간 올해의 마지막 날에 후회로 가득 채운 술잔만 기울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싶어 중간 점검 겸 1월에 작성한 계획표를 확인해봤다. 역시나 지킨 계획보다 지키지 못한 계획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새삼 충격적인 점은 올해의 내가 결코 지킬 수 없을 것 같은 계획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는 것이다. 가령 ‘서른 번째 내 생일날 동생에게 100만 원 용돈 주기’ 같은. 도대체 왜…?

과거의 내가 꼭 이뤄내리라 결심하며 정성스럽게 적어둔, 그러나 현재의 나에겐 지나치게 이상적인 계획들 위에 과감하게 삭선을 긋고 현실적인, 그러니까 본래의 것보다 하향 조정된 새로운 목표를 적으며 궁금해했다. 5개월 전의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거지? 잠시 영혼을 빼앗겼던 것은 아닐까. 한편으론 그때 넘치게 뜨거웠던 열정을 고작 5개월 동안도 끌고 오지 못했다는 패배감에 가슴 한쪽이 허했다.


아니, 아직 6월이잖아!

계획표를 수정한 뒤엔 오랫동안 뜯지 않아 아직도 4월 중순에 머물러 있는 일력을 일부러 한 장 한 장 최대한 느리게 뜯었다. 이렇게라도 흘러간 지난날을 곱씹어야지 그나마 덜 속상할 것 같았다. 손에 들린 두둑한 종이뭉치를 보니, 이렇게 많은 날들을 일력 한 장 제때 뜯지 않는 무심함으로 살아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6월부터는 일력 뜯는 일부터 제대로 해야겠다고 다짐하는데 문득 6월은 아직 지나가지 않았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찢겨지지 않은 6월 일력을 보며 뜻밖의 한 달을 번 것 같아 횡재 맞은 기분마저 들었다. 2020년이 아직 7개월이나 남았다니. 1월도, 2월도, 3월도, 4월 그리고 5월도 ‘아니, 벌써 ○월이라고?’ 하며 약간 속상해했는데 이상하게 6월의 달력 앞에서 나는 달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 아직 6월이잖아!’

잠깐이었지만 미래의 나를 만나 교훈을 얻어 온 기분이었다.

‘봐라 이슬아, 나처럼 후회하기 싫으면 해야만 하는 일 말고 하고자 하는 일들도 하면서 살아라. 오늘 새로 세운 목표는 틈틈이 확인하며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해라. 그리고 일력 좀 매일매일 뜯어라. 반성하는 것 같으니 한 달을 더 선물해주마.’

글쓴이 강이슬은 〈SNL 코리아〉 〈인생술집〉 〈놀라운 토요일〉 등 TV 프로그램에서 근면하게 일하며 소소하게 버는 방송작가다.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안 느끼한 산문집》으로 대상을 받고 출판 계약을 하며 난생처음 갑이 됐다. 술과 개와 밤을 좋아하고 욕을 잘하지만 착하다.
어제도 오늘도 가난했고 내일도 가난하겠지만 가난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가지고 있다.
  • 2020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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