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농부

조재원 허브다섯메 대표

100여 종 허브 생잎으로 연매출 10억 원

글·사진 : 서경리 기자

이 봄, 왁자지껄한 가락시장 한편. 바람을 타고 솔솔 로즈메리 향이 난다.
청년 농부 조재원 씨가 운영하는 허브 생잎 판매장 허브다섯메. 이곳에서는 바질이나 각종 민트류뿐 아니라 레몬버베나, 재스민, 유칼립투스 등 시중에서 보기 힘든 갖가지 허브와 식용 꽃을 구입할 수 있다.
조재원 대표는 아버지 조강희 씨와 함께 서울 방이동에서 허브농원을 운영하며 건강한 허브를 정직하게 키워내고 있다.
허브다섯메의 시작은 자그마한 화훼농원이었다. 서울 끝 송파, 시골이나 다름없던 장지동에 1000평(3,305㎡) 남짓한 비닐하우스가 조 씨 가족의 집이자 농장이었다. 조재원 대표가 태어난 1984년, 그의 아버지는 ‘다섯메 꽃동산’을 시작했다. 허브로 작목을 바꾼 건 1997년. 건강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허브가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할 때였다.

고소득 작물이 될 허브의 미래를 내다본 선견지명이었을까. 금융위기(IMF)에 오히려 값싸고 좋은 향이 나는 식물로 붐이 일며 허브 매출이 급격하게 올랐다. 허브 덕에 네 가족은 비닐하우스 생활을 벗어나 아파트로 집을 옮겼고, 농장도 방이동으로 확장 이전했다. 이후 100여 종의 허브와 특이식물을 키우며 우리나라 1세대 허브농장으로 탄탄하게 자리 잡았다.


조재원 대표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일을 배웠다. 고교 시절 헤어디자이너를 하겠다고 기웃거린 것 빼고는 줄곧 농장을 지켰다. 군대를 다녀와 일자리를 알아보던 아들에게 아버지는 농장에서 함께 일하길 권했다. 대신 그전에 다양한 경험을 쌓으라며 2년의 방학을 선물했다.

“아버지는 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어요. 2년 동안 원 없이 돌아다니며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행복과 기쁨, 아픔과 고통 등 모든 감정을 느껴보라고 하셨죠. 한국은 치열한 나라니까 내 분야를 지키려면 경험이 풍부해야 한다고요. 여행도 많이 다니고 다양한 종목의 운동도 체득했어요. 경험이 많아지니 생각도 깊어졌고요.”


2년간의 ‘인생 방학’에서 배운 것들


인생 방학을 끝내고 그는 약속대로 농장에 들어갔다. 스물넷, 제대로 된 농부로 서기 위해 한국농수산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생활은 또 다른 경험이었다. 일본 농원에 견학 가서 순환농법을 배우고, 제주허브동산과 허브아일랜드에서 실무를 익혔다. 졸업만 하면 농장에 들어가 해보고 싶은 사업 아이템도 많았다. 생산 시스템부터 직원 관리 체계, 퇴비까지 바꾸고 싶은 것도 많았다. 매출을 30% 이상 올릴 자신이 있었다. 부푼 꿈을 안고 농원에 들어갔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경험치가 남다른 아버지와 종종 부딪혔다.

“제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 아버지는 ‘젊은 사람들은 그저 이상적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며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하셨어요. 답답했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혈기 왕성한 나이라 아버지와 계속 부딪혔어요. 아버지 눈엔 제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해 보였겠죠. 잔심부름과 잡일만 하다 보니 의지가 꺾였어요.”

아버지는 아들에게 농장 경험 쌓기를 권했다. 새로 주어진 미션은 다육식물 판매였다. 마침 중국으로 다육식물 수출이 꿈틀대던 때였다. 당시 허브다섯메는 서울 방이동에 이어 경기도 광주, 강원도 평창으로 농장을 확장한 시점이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광주 농원의 판매를 맡겼다.


다육식물로 첫 밥벌이


광주 농원은 1000평이 안 되는 규모지만, 아버지의 따가운 눈총 없이 홀로 사업을 벌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농장 관리를 맡기면서 300만 원의 월급을 줬다. 애초 농장 일을 시작하면 대기업 초봉 수준에 맞춰 주겠다고 약속한 터였다.

조 대표도 다육식물 농사에는 자신 있었다. 어깨너머로 배운 덕에 200여 종이 넘는 다육식물 이름도 술술 읊어댈 수준이었다. 그는 전국의 다육식물 단지를 돌며 신품종을 찾아다녔고, 직접 발로 뛰어 새로운 판로를 개척했다. 얼마 안 가 직원에게 월급을 줄 수 있을 만큼 수익도 냈다. 제대로 된 첫 밥벌이였다.

그사이 틈틈이 요리도 배웠다. 갖가지 허브를 요리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로즈메리나 타임은 고기 구울 때 넣으면 잡내를 없애줘요. 기름에 담그기보다 ‘톡톡’ 고기에 두들겨주면 더 향긋하죠. 허브 활용법을 속속들이 알면 판매에 도움이 됩니다. 또 요리사들과 친분을 쌓으면 새로운 유통 경로도 넓힐 수 있고요.”


그즈음 지인으로부터 가락시장 입점 제안을 받았다. 아버지는 그에게 새로운 유통망을 열어보자며 힘을 실어줬다.

“생산자는 언젠가 유통에 치이게 돼 있어요. 유통의 힘이 강해지면 생산을 넘볼 테고, 농산물이 제값을 못 받게 되는 날이 올 거라 생각했죠. 을이 아닌 갑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생산자도 유통자로서 자립할 수 있어야 해요. 아들이 유통을 맡아 허브 시장을 장악한다면 승산이 있을 거라 확신했습니다.”(조강희)

2016년 조재원 대표는 가락시장에 허브 생잎 판매장 ‘허브다섯메’를 열고 본격적으로 허브 유통에 발을 내딛었다.


점점 커지는 허브 시장


농장의 온실 안에서 허브만 키워본 조 대표에게 냉혹한 시장 바닥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틈만 보여도 피해를 입기 일쑤였다. 다량으로 허브를 납품했다가 1년간 수금을 못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해 질 무렵 장을 열었다가 다음 날 낮에 닫는 밤낮 없는 시장 생활은 그에게 쉽지 않은 일상이었다.

시장 바닥에서 몸으로 익힌 2년. 알음알음 아는 거래처가 생겨나고,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서 납품 의뢰가 들어왔다. 그는 기세를 몰아 온라인 쇼핑몰도 오픈했다. 시장에서는 킬로그램(kg) 단위 대량 소매지만, 인터넷에서는 소규모 그램(g) 단위 판매가 가능해 일반 소비자가 늘었다. 한 달 단위로 매출이 두 배씩 늘어 인터넷 판매로만 3억 원의 수익이 났다. 농장 판매까지 합치면 1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한창 잘 팔릴 땐 물건이 부족해 못 팔 정도였다.

“식문화가 10년 사이 많이 달라졌어요. 이젠 로즈메리나 바질이 요리에 흔하게 쓰이죠. 모히토가 뜨면서 애플민트 시장이 커졌듯, 식재료로서 허브 시장이 새로 생긴 거예요.”

조 대표 부자는 식용 꽃 시장도 긍정적으로 내다본다.

“식용 꽃 시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어요. 어떤 음식에 어떻게 곁들여야 할지 몰라서죠. 이제 우리 식탁도 눈으로 보는 음식으로 바뀌고 있어요. 아직은 초기 단계니 색이나 형태를 다양하게 공급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농장과 함께 가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조강희 씨는 농장을 운영하면서 꾸준히 아들의 사업을 지켜보고 있다. 자신의 높은 기준에 맞춰 잘 따라와주는 아들이 대견하다. 그러면서도 항상 “소비자가 만족해야 한다, 누가 뭘 필요로 하는지 먼저 파악해라, 사회에 쓰임이 있는 삶을 살라”며 따끔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물건이 안 좋을 때일수록 철저하게 자가 검열해요. 제가 보기에 가장 좋은 상품을 팔아야 소비자가 찾고, 소비자가 찾아야 저희 농장이 살죠. 당장은 손해 같겠지만, 궁극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길입니다. ‘진정성을 가지고 정직하게 살자’가 제 인생 모토입니다.”

허브다섯메는 ‘허브향 가득한 다섯 개의 산’이라는 의미다. 아버지가 올곧게 농사지은 허브를 아들이 정직하게 팔아 세상이 좀 더 향기로워지길 바라는 부자의 마음이다.
  • 2020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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