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인테리어디자이너 - 양태오 태오양스튜디오 대표

디자인, 전통을 품다

글 : 선수현 기자  / 사진제공 : 태오양스튜디오 

세계적인 디자인 매거진 《월페이퍼》 2018년 10월호에 “서울이 다시 살아났다(seoul revival)”란 기사가 게재됐다. 기사는 서울 북촌의 한옥 리노베이션을 다루며 “전통 방식으로 재건축된 현대식 한옥이 한국 건축 유산을 기렸다”고 소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월페이퍼》는 한방 화장품 브랜드 이스 라이브러리(EATH Library)를 베스트 라인업에 선정하기도 했다. 모두 한국의 전통과 현대의 균형을 추구하는 철학이 돋보인 양태오 디자이너의 프로젝트다.

망향휴게소 화장실은 2019년 ‘고객 추천 휴게소 화장실’ 1위에 선정됐다.
천안의 문화유산인 향교를 시각화한 공간으로 호텔 수준의 멋을 더해 ‘화장실은 지저분한 곳’이란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했다.




한국도로공사는 지난해 ‘고객 추천 휴게소 화장실’ 1위에 망향휴게소 화장실이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이곳은 천안의 전통문화유산인 향교를 시각화한 공간으로, 한옥 디자인을 녹여낸 호텔급 수준의 시설을 자랑한다. 고속도로 이용 도중 들러 잠시 볼일을 보는 이곳을 두고, “화장실에서 셀카를 찍게 되다니” “화장실이 내 집이길 바라는 건 처음이다” 등의 반응이 등장했다. 이용자 행동에도 변화가 생겼다. 화장실 바닥에 휴지를 버리거나 침을 뱉는 행동이 거의 사라진 것. 공간이 가져온 힘이었다. 망향휴게소 화장실을 디자인한 양태오 태오양스튜디오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천안 향교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휴게소 화장실에 잠시 들러도 ‘천안이 이런 곳이구나’를 한 번쯤 생각했으면 해서요. 망향의 지역성과 이야기를 담아내면 사람들도 공간을 존중해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후 망향휴게소 화장실과 비슷한 화장실이 속속 등장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 장소들이 망향휴게소 화장실에 담긴 스토리와 본질까진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해서다. 스토리가 있는 공간은 존중받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고 만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양태오 대표는 런던디자인위크 top 10에 선정된 바 있는 실력파 인테리어디자이너다. 그동안 망향휴게소 화장실을 비롯해 베이징 주중한국문화원, 영국 왕실 침대로 유명한 사보이어 침대와 협업, 롯데월드타워 123라운지 등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올 하반기에 열리는 ‘2020 아트부산’에서는 디자인 기획 총괄을 맡게 됐다. 인테리어디자이너지만 그가 다루는 영역은 비단 공간만이 아니다. 가구, 조명, 향 등 경계가 없다. 양 대표는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공간 안을 이루는 구성 요소까지 사람들에게 감정을 전하기 때문에 공간에는 선이 없다”고 설명한다.


265년 전통의 브랜드 바쉐론 콘스탄틴이 2019년 6월 홍콩에서 진행한 캠페인 ‘ONE OF NOT MANY’에서는 석탑 모형에 시계를 전시했다. 기획을 맡은 양태오 디자이너는 한국의 석탑에서 시간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했다.

정신이 담긴 디자인 ‘과거의 미래’

양 대표는 7년째 북촌 ‘청송재’란 한옥에 거주하고 있다. 푸른 소나무가 어우러진 고택에 살기 시작하면서 그의 디자인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그전에는 잘 느끼지 못했던 햇빛의 질감, 눈과 비가 내릴 때 한옥에서 맛보는 감성은 삶을 한결 풍요롭게 만들어줬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어떻게 공간에 활용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가 한옥은 과거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는 21세기 서울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예요. 제가 있는 곳에서 뭘 더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그런 질문이 없다면 디자이너가 성립되지 않아요. 태오양스튜디오는 ‘과거의 미래’란 모토를 갖고 있어요. 우리가 지닌 유산이 미래에 녹아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 그는 미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암스테르담, 베를린에서 일했다. 해외 활동의 영향을 받아 그의 디자인도 서양적으로 그려가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한옥으로 이사 온 뒤 해외에 머물던 시절 고민한 지점이 떠올랐다. 우리가 사랑하는 예술가, 작가, 감독, 디자이너들은 모두 ‘정신’을 자신의 영역에서 풀어내고 있었다. 정신이 담긴 결과물은 사람을 움직이고 세상을 바꿔놓았다. 반면 외형만 아름다운 건 시간이 지나면 외면받았다. 디자이너로서 그는 어떤 정신을 반영할지, 오랜 기간 고민했다. 그가 찾은 답은 ‘과거의 미래’였다.

태오양스튜디오의 프로젝트에는 한결같이 ‘과거의 미래’가 반영돼 있다. 지난해 6월에는 스위스 시계 브랜드 ‘바쉐론 콘스탄틴’과 함께 진행한 이벤트 현장을 석탑으로 꾸몄다. 1755년 설립된 바쉐론 콘스탄틴은 265년 동안 기술과 예술을 결합하며 시간의 의미를 고찰해온 브랜드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맡으며 시간을 대표하는 오브제에 대해 고민하다 석탑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의 석탑 이미지를 더해 3D 프린트로 구현했다. 업체 측에서는 “왜 하필 석탑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은 시간이란 단위를 통해 살아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합니다. 화강암으로 만든 석탑은 수백 년간 원형이 변하지 않은 채 우리 곁에 남아 있죠. 한국 석탑의 원형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점이 바쉐론 콘스탄틴 브랜드 정신과도 부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00년 세월이 어린 북촌 한옥 청송재에 거주하는 양태오 디자이너는 “현대인의 삶에 맞춰 함께 살아가는 한옥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의 공간은 전통양식을 살리면서도 최신식 가전제품과 가구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서재 망묘당

소나무가 자라는 중정

거실

세상을 더 이롭게, 아름답게

양태오 대표는 “디자인은 문제 해결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인테리어 디자인이 공간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풀어내고 더 넓게는 공간을 도구로 사회적 의의를 담아내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인테리어 공간으로 세상을 더 이롭게, 아름답게 만들길 바라면서. 다만 “아름다움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재평가될 수 있으므로 디자인에는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과거의 미래’를 지향하는 그는 디자인뿐 아니라 건축, 문화, 역사 등 다방면에 걸쳐 공부한다. 인테리어디자이너는 고객에게 제안하는 직업. 공간의 기능과 미적 조화를 함께 담아내기 위해서는 더 많이 알아야 한다.

“디자이너로서 책임감 때문에 전통과 역사를 공부해요. 정확한 사실과 트렌드, 역사적 지식이 없으면 거짓말을 바탕으로 말하게 되잖아요. 공간이 품고 있는 역사를 알아야 앞으로 어떻게 만들어갈지 고민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서 찾아낸 이야기를 현대 감각에 맞게 재해석한 양태오 디자이너. 취향에 따라 만족도는 다르겠지만, 그가 만든 공간에서는 하나같이 편안한 표정을 짓게 된다. 디자인을 관통하는 그의 진심이 공간에 머무르는 사람에게 조금은 전달된 듯하다. 그에 의해 서울이, 공간이 새롭게 살아나고 있다.



공간 이상의 공간 스토리텔러

참고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직업정보망 커리어넷

양태오 디자이너의 북촌 한옥에 있는 와인룸. ⓒ태오양스튜디오

공간은 공간 이상의 의미를 담는다. 용도와 쓰임새를 넘어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된 곳이자 사람과 사람을 잇는 친교의 장이 되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공간은 사람을 향한다. 때문에 공간 디자인을 할 때는 반드시 사람을 대입하고 기능과 미적 요소를 고려한다.

미(美)나 유행에만 맞춰 공간을 디자인한다면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 공간의 역할과 수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스토리’다. 스토리는 공간에 힘을 실어주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에 어떤 스토리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공간에 머무는 삶의 가치가 한결 높아진다.


인테리어디자이너가 하는 일?

공간의 기능과 용도에 맞게 설계, 장식하는 일을 한다. 공간의 구조부터 공간을 이루는 모든 요소를 다룬다고 봐도 무방하다. 실내장식건축가, 실내디자이너 등과 유사한 개념이다. 대개 고객의 발주로 움직이는데, 공간의 목적과 기능, 고객의 기호, 예산 등을 고객과 상의하고 전체적인 콘셉트를 결정한다. 색채, 구조, 가구, 장식품, 조명 등을 선정한 디자인이 완성되면 시공업자에게 전달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시공 작업을 감독하기도 한다. 일단 일을 맡으면 근무 시간이 길고 근무 형태도 불규칙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인테리어디자이너가 되려면?

세상의 변화상이나 삶의 방식에 늘 눈뜨고 있어야 한다. 예술과 건축에 대한 관심과 지식은 기본, 전시회를 다니며 트렌드를 파악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인테리어디자이너의 다수가 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인테리어 업체에서 경력을 쌓은 후 전문가로 활동한다. 실내디자인과, 실내건축학과, 산업디자인학과, 건축공학과, 시각디자인학과, 공예학과 등 디자인이나 건축 관련 학과 전공이 우대되며, 직업전문학교, 사설학원 등에서도 교육받을 수 있다. 실내건축기능사, 실내건축산업기사, 실내건축기사 등의 자격증이 있지만 필수는 아니다.


인테리어디자이너의 연봉 및 전망

인테리어 업체는 제일기획, 한샘, 이랜드 같은 대기업도 있지만 3~5명 정도의 소규모 업체가 대부분이다. 워크넷 직업정보에 따르면 인테리어디자이너의 평균 연봉은 3377만 원. 상위 25%는 4625만 원, 하위 25%는 2887만 원이다. 대기업의 경우 기본급은 낮으나 성과급이 높은 편이라 20~30대 억대 연봉자도 종종 있다. 공간에 대한 수요가 다양화·세분화되면서 인테리어디자이너의 역할은 점점 커지는 추세다. 다만 건설 경기에 크게 영향을 받는 분야인 만큼 지속적으로 트렌드를 추적하고 틈새시장을 노리는 게 중요하다.
  • 2020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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