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취향 (23) 팬케이크

내 맘대로 고른 팬케이크 맛집 best 4

© 셔터스톡
지난해 3주간 미국 서부 여행을 떠나 2100마일(약 3380km)을 달리면서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을 꼽아봤다. 가기 전에는 햄버거가 되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막상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은 팬케이크였다.

팬케이크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팬케이크의 원형은 밀가루 반죽으로, 음식을 해 먹는 문화권마다 이름도 형태도 조금씩 다르다. 프랑스에서는 크레페(crepe)라고 부르고, 라틴아메리카 문화권 곳곳에도 팬케이크를 닮은 음식이 많다. 미국에서는 한 요리사가 1930년대 프랑스의 크레페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어냈다는 얘기가 있다. 기원이야 어떻든 가장 미국적인 아침식사를 떠올릴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팬케이크다.

미국 도착 첫날 공항에서 곧바로 차를 달려 향한 곳은 한 다이너(diner)였다. 격식 없이 편한 분위기에서 미국식 요리를 만들어 파는 음식점을 통칭하는 다이너를 떠올리면 특유의 인테리어도 함께 그려진다. 미국의 대표적인 화가 에드워드 호퍼가 그린 ‘나이트호크(Night Hawk)’를 떠올려도 좋다. 네온사인이 조용히 번쩍이고, 하얗고 까만 타일 바닥이 미끄러지듯 펼쳐진 위로 낡은 붉은색 가죽 의자가 놓인, 지극히 미국적인 레스토랑. 다이너의 기원도 미국적이다. 넓은 미국 영토를 가로지르는 도로변에 버려진 기차 한 칸을 가져다놓고 운전자와 노동자에게 싼 음식을 팔던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해가 거뭇하게 기운 저녁 8시 무렵이 돼서야 도착한 다이너의 이름은 ‘Rutherford’s 66 Family Diner’. 미국을 가로지르는 역사적인 도로 ‘루트 66’에 있으며, 가족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붉은 의자와 타일 바닥이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듯한 느낌을 주는 이곳에는 나른하게 앉아 손님을 맞이하는 청년 한 명과 지긋하게 나이 든 노부부만 있었다.

팬케이크와 치킨, 타코를 주문하고 꽤 오랜 시간 기다렸다. 묘하게 무심해 보이는 청년이 내려놓고 간 평범한 팬케이크 위로 우리 부부의 카메라가 바쁘게 오갔다. 사실 맛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만큼 평범한 맛이었다. 그러나 그 분위기, 외롭고 긴 길을 달려 도착한 다이너의 한 구석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고객들이 쌓아올린 역사가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여행 내내 아침식사로 팬케이크를 먹다 보면 물리게 된다. 집집마다 팬케이크 맛이 비슷하다 보니 심드렁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와 떠올려보면 여행을 상징하는 몇 가지 음식 중 꼭 하나, 팬케이크가 포함된다. 집에 돌아와 비슷한 구성으로 훨씬 더 맛있는 반죽을 만들어 먹어봤지만 감동은 없었다. 그 분위기를 다시 곱씹는 데 그쳤을 뿐.

가정에서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팬케이크를 굳이 찾으러 다니는 이유는 맛 때문만은 아니다. 그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 맛’이 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다른 네 곳의 팬케이크 맛집을 꼽아봤다.



버터밀크
미술학원생들을 위한 착한 가게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130 / 070-4157-1030

© 네이버블로그_jhlemon73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유명해졌지만 여전히 ‘나만 알고 싶은 맛집’이다. 손님은 많은데 가게가 비좁아 사시사철 개점 시간 전부터 줄을 서야 한다. 보통 한 시간 전부터 기다리면 문을 열자마자 먹을 수 있고, 주말 점심시간에는 두 시간 대기도 감수해야 한다. 5시 전후로 재료가 소진되면 문을 닫는다. 꿀팁 하나! 평일 오후 4시쯤에 가면 기다리지 않고도 주문할 수 있다. 가격이 저렴한 것도 장점. 삶은 감자와 베이컨, 스크램블드에그까지 나오는 버터밀크 팬케이크 세트가 8000원이 안 된다. 겨울과 봄 시즌에만 제공되는 ‘꿀딸리요’도 7000원이다. 오래 볶아 끓여 만든 양파수프는 4000원이 조금 넘는다. 원래 이 부근 미술학원 학생들이 부담 없이 한 끼를 채우길 바라는 마음에서 저렴한 가격을 책정했다고 한다. 그러다 인기를 얻으며 ‘가성비 맛집’으로 자리 잡았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리코타치즈팬케이크를 추천하는데, 부드럽고 짭짤하면서도 달콤하다. 정기 휴일은 수요일이다.



내사랑
촉촉한 수플레팬케이크가 생각날 때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2길 37 / 070-8248-3752

© 네이버블로그_david0302
한적한 골목에 자리 잡은 매우 작은 가게다. 의자도 여덟 개밖에 없는 데다 벽을 둘러싸고 테이블이 놓여 있어 오래 앉아 대화를 나눌 만한 장소는 아니다. 그러나 수플레팬케이크 전문점인 데다 다양한 방식으로 팬케이크를 변주해 내면서 서서히 방문객이 늘고 있다. 수플레팬케이크는 달걀흰자를 여러 번 휘저어 만들어낸 머랭 반죽을 밀가루 반죽에 섞어 높이 부풀린 팬케이크다. 이곳 수플레팬케이크는 식감이 특히 좋다. 촉촉한 반죽이 묻어 나올 듯 부드러운데, 조리사들이 수시로 반죽의 온도를 체크한다. 오리지널 수플레팬케이크를 추천하지만, 크림브륄레나 초코벨벳같이 달달한 맛을 곁들인 팬케이크도 함께 시켜봐도 좋다. 설탕 시럽을 불에 그을려 카라멜라이징한 크림브륄레팬케이크는 레몬 크림향이 느끼함을 없애준다. 초코벨벳의 진득한 초코크림은 바나나를 곁들여 먹기에 좋다. 매월 휴무일이 바뀌기 때문에 인스타그램을 통해 영업일을 확인하고 가자. 지하철역에서 좀 걸어야 하고, 언덕길이어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오리지널팬케이크하우스
미 서부에서 왔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153 / 02-795-7481

© 네이버블로그_qnfnqnqn13
반죽을 납작하게 구워 시럽을 뿌려 먹는 지금의 팬케이크는 미국식 아침식사를 상징하는 음식 중 하나다. 1953년 미국 서부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는 ‘오리지널팬케이크하우스’가 한국에 첫 해외 분점을 냈다. 이태원에 있는 이 가게는 입구부터 미국적 분위기의 인테리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메뉴는 다양하다. 오믈렛이나 다른 달걀 요리를 시키면 팬케이크 세 장이 함께 나오는데 양도 푸짐하다. 우유에서 지방을 제거한 부분이 버터밀크인데, 이곳 팬케이크는 버터밀크와 자체 방식으로 숙성한 감자 전분을 사용한다. 메이플 시럽은 잔뜩 뿌려 먹는 것이 좋다. 시럽이 다 떨어지면 다시 채워준다. 보통은 팬케이크에 오믈렛 같은 요리를 곁들여 먹는다. 재료가 푸짐하게 들어가는 오믈렛은 식감이 워낙 부드러워 달걀 반죽이 흘러내릴 정도다. 미국식 레스토랑이라 양이 많다. 신사점과 이태원점 두 곳이 있으며, 이태원점은 주차비가 좀 더 비싸다.



이니스프리 그린카페
화장품숍에서 팬케이크를?
서울 중구 명동길 13 / 02-776-0116

© 스팀잇@jioni
요즘은 화장품 가게에서도 팬케이크를 판다. 고객들이 오랜 시간 머물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직접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매장 내 카페들은 비싸지 않은 가격에 꽤 훌륭한 품질의 음식을 제공한다. 국내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에서 만드는 ‘이니스프리 그린카페’의 핫케이크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 중구 명동 한복판에 자리 잡은 이 카페는 관광객도 많아 짐을 보관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화장품을 구입한 후 사람들이 향하는 곳은 매장 2층과 3층에 이어 마련된 카페 공간.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수플레핫케이크다. 팬케이크, 핫케이크는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음식이다. 밀가루와 달걀이 주 재료인 팬케이크는 잘못 만들면 달걀과 밀가루 풋비린내가 난다. 그러나 이곳 수플레팬케이크는 누구나 부드럽게 먹을 만하다. 간단한 제철 과일과 함께 제공돼 가벼운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 다만 주문 후 만들기 때문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자. 친구들과 함께 느긋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 202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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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계익구   ( 2020-04-03 )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1
속지말자 맛집선전 물리치자 거짓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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