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통의 보통 사람들 #5

어떤 임원

글 : 김보통 

일로 만난 사람이 서로의 속내를 이야기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일이 끝남과 함께 끊어질 연이라는 걸 잘 알기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스스럼없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차피 다시 볼 일 없는 사람이니,
계속 마주할 주위 사람들에게는 꺼내지 못하는 말을 풀어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된 사람이 있고, 되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몇 주간 협의한 끝에 결국 일을 진행하지 않기로 한 담당자가 말했습니다.
그녀는 한 회사의 임원이었습니다.


별 상관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회사 생활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인정받기 위해 악바리처럼 살지도 않았습니다. 언제나 남들보다 두각을 드러내긴 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입사할 때는 물론, 첫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새로운 회사로 옮겼을 때 역시 모두에게 쉽게 인정받았습니다.
매번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런 저를 부러워했습니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진 않았습니다.
주어진 일에 충실할 뿐인데 그 충실함의 기준이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달랐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출근길에 퇴근을 바라는 사람이 있고, 월요일부터 금요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데,
저는 그저 맡은 일을 어떻게 하면 빨리 끝내버릴 수 있을까 하는 것에만 집중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결과가 항상 최고였던 건 아닙니다. 다만 언제나 빠르게 처리했습니다.
아침에 부탁받은 일은 점심이 되기 전에 끝냈습니다.
서투른 부분도 있었지만 그런 점을 지적받으면 수정해 다시 신속하게 보고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빠르게 시작해야 하는 일에 많이 투입됐습니다.
중간에 보고해야 할 단계들도 많이 건너뛰게 됐습니다.
점점 더 특수한 조직에서 일을 하게 됐고, 정신을 차려 보니 더 이상 누가 일을 주는 것이 아닌,
제가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위치가 됐습니다.
역시나 늘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제게 기대하는 것은 성공이 아닌 빠른 실행과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어
금세 수정해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실패를 찾아내는 일이었습니다.
좋게 말하면 선발대, 나쁘게 말하면 지뢰 처리반이 된 것이죠.
그와 별개로 사람들은 저를 부러워합니다. 남들이 볼 때는 인정받고 능력 있는 사람처럼 보일 겁니다.
어디든 명함을 꺼내면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은 철도 기관사였습니다.
모두가 현실적으로 생각하라며 말렸고,
저 역시 쉽게 단념해 벌써 20여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건만
아직도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 바다로 향하는 영동선의 풍경을 기관석에서 바라보고 싶습니다.
막상 되고 보면 별것 없어 후회스러울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되지 못한 사람으로 남은 삶을 살아가야 할 거라 생각하면,
어쩌면 저는 정작 중요한 무언가에서 실패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시작하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점이 아쉬울 뿐입니다.
  • 2020년 03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