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슬의 커피코피해피 #3

뜨거운 안녕

글 : 강이슬 

초등학교 수련회에서 ‘안녕하세요’를 금지당했다. 수련회 조교 선생님이 말하길 ‘안녕하세요’는 우리나라가 가난할 적, 사람들이 밤새 죽는 일이 흔해서 생긴 인사라고 했다. 그날 처음 마주친 사람에게 지난밤 별일 없었느냐고, 가족 중 누가 죽지는 않았느냐고 안부를 묻는 데서 시작한 ‘안녕하세요’는 따라서 재수 없는 인사라고 했다. 우리는 이틀 동안(선생님 말에 따르면) 재수 없는 ‘안녕하세요’ 대신 ‘반갑습니다’나 ‘좋은 아침입니다’로 인사해야 했다.

“반갑습니다.”

이튿날 아침 세수하러 가는 길에 마주친 수련회 조교 선생님에게 배꼽 손을 하고 허리 숙여 인사하면서 하나도 반갑지 않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안녕하시느냐고 묻고 싶었다. 지난밤 우리가 떠드는 소리에 잠을 설쳤을 조교 선생님은 오늘 아침 안녕하시느냐고.

“좋은 아침이야.”

전날 나와 다른 방에 배정됐던 단짝 친구에게 인사를 하면서 속상하다는 말을 삼켰다. 옆에 누워 밤이 새도록 수다를 떨자던 우리 계획이 틀어졌는데 간밤, 너는 괜찮았느냐고, 그러니까 안녕한 거냐고 묻고 싶었다.


‘안녕하세요’는 정말 재수 없는 인사?

조식을 먹는 자리에서는 앞에 앉은 친구가 무심결에 ‘안녕하세요’를 말했다가 조교 선생님에게 걸려 오리걸음을 한 얘기를 했다. 부아가 치밀었다. 친구에게 “너의 허벅지는 안녕하니?”라고 조교 선생님도 들을 수 있을 만큼 큰소리로 묻고 싶었지만 용기가 모자라 밥과 함께 삼켰다.

우리에게서 ‘안녕하세요’를 앗아간 조교 선생님은 심지어 두 번 인사하는 것도 금지했다. 아침에 만나서 한 번 인사를 했으면 두 번째 마주쳤을 때는 목례만 해도 충분하기 때문이랬다. 두 번 이상 마주친 선생님에게 아무 말 없이 목례를 할 때는 세상에서 제일 건방진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아침에 본 친구를 또 마주칠 때면 반가운 마음에 ‘안녕’이라고 큰소리로 인사하고 싶었지만 별수 없이 눈빛만 주고받아야 했다. 차라리 모든 사람들을 하루에 딱 한 번씩만 마주치고 싶었다. 그러나 ‘안녕하세요’가 금지된 이틀은 끔찍하게 길었고 활동 반경도 평소보다 좁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죄진 것마냥 주위를 살피며 작은 소리로 인사하거나 일부러 못 본 체를 했다.

복도에서 마주친 담임 선생님에게 목례를 했다. 선생님은 무심결에 ‘안녕’이라고 말하곤 아차 하는 표정으로 주위를 살폈다. 선생님에게 감히 목례만 한 사실이 죄스러워서 이유를 구구절절 덧붙였다. 선생님도 우리가 ‘안녕하세요’를 금지당하던 현장에 함께 있었기 때문에 다 알고 있으니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안녕하세요’가 정말로 그렇게 재수 없는 인사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당신도 잘 몰랐던 사실이라고 했다. 나는 잔뜩 비꼬는 목소리로 물었다.

“쌤, ‘안녕하세요’가 왜 나쁜지 모르겠어요. 안부를 물을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좋지 않은 날씨에 반갑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뭐라고 인사를 해야 해요?”

선생님은 난감한 얼굴로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했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분한 표정으로 ‘여기는 대한민국인데요!’라고 말하려다 속으로 삼켰다.


인사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갑고 좋은 아침!

수련회를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간 등교 첫날, 우리는 어떤 해방감을 느끼며 예전처럼 큰소리로 ‘안녕’과 ‘안녕하세요’를 말했다. 전과 조금 달라진 것은 인사 뒤에 이유를 붙인다는 점이었다.

“안녕! 아, 내가 안녕이라고 말한 이유는 간밤에 네가 아프지 않았는지 궁금해서야.”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 제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 이유는 지난밤 선생님께서 악몽을 꾸진 않으셨는지 걱정이 돼서 그랬어요!”

너나 할 것 없이 ‘안녕’ 뒤에 바쁘게 설명을 덧붙이면서 우리는 웃었다. 마음 놓고 ‘안녕’을 말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비로소 반갑고 드디어 좋은 아침이었다. 수련회의 목적대로 몸과 마음이 더 단단해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2박 3일 동안 하도 많은 말들을 꼭꼭 씹어 삼켰기 때문인지, 우리는 서로를 수련회에 가기 전보다 조금 더 자랐다고 느꼈다.

글쓴이 강이슬은 〈SNL 코리아〉 〈인생술집〉 〈놀라운 토요일〉 등 TV 프로그램에서 근면하게 일하며 소소하게 버는 방송작가다.
제6회 카카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안 느끼한 산문집》으로 대상을 받고 출판 계약을 하며 난생처음 갑이 됐다. 술과 개와 밤을 좋아하고 욕을 잘하지만 착하다.
어제도 오늘도 가난했고 내일도 가난하겠지만 가난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가지고 있다.
  • 2020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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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무름아빠   ( 2020-03-22 )    수정   삭제 찬성 : 5 반대 : 0
참으로 역설적이라고 여겨집니다.
 예전, 그러니까 1970년 대 이전에는 마을에서 아침에 어른을 만나면 '진지 잡수셨습니까?'
 하고 인사를 했었습니다. 물론 그때에는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먹는 문제가 심각할 때였었지요.
 그 후 알게 모르게 인사법이 '안녕하셨습니까? 안녕하세요?' 로 바뀌었는데, 어느 누가 사람들이 많이 죽어 죽지않고 안녕하냐고 물어보는 말이라고 궤변을 늘어놨는지....
 참으로 고운 우리 말을 훼손하고 폄하하려는 억지 같군요.
 서글픔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운 말이라 여기는 우리의 말에 억지 이유를 붙이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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