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농부

OMG 팜마켓 최린 대표

정장 입은 샐러드 농부

글·사진 : 서경리 기자

평택 통복시장. 바글바글 붐비는 시장통에 청년 농부가 운영하는 샐러드 가게가 있다. 별다른 조리 없이 채소를 듬뿍 담아 파는데, 맛이 기똥차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샐러드용 채소는 안성에서 직접 농사지은 작물로, 매일 아침 갓 따온 것이다. 인근 지역 농부들의 농작물로 직접 조리하거나, 이들의 상품을 매장에서 팔기도 한다. 건강한 먹거리를 만드는 OMG 팜마켓 최린 대표를 만났다.
네 평(13㎡) 남짓한 자그마한 매장. 간단한 요리가 가능한 주방과 커다란 손님용 테이블 하나가 전부인 이곳에 매일 열댓 명의 손님이 줄을 서서 샐러드를 사간다. 고정 메뉴는 리코타치즈샐러드와 파인애플새우샐러드, 차돌박이와 단호박샐러드 등 이 전부. 제철 채소나 손님들의 입맛과 요청에 따라 메뉴는 수시로 바뀐다. 메뉴판도 없다. 샐러드 레시피가 담긴 책자에서 손님들이 고른 메뉴를 즉석에서 만들어준다. 레시피보다 자신 있는 건 채소의 맛과 신선도다. 채소 위에 올리는 토핑은 통복시장 상인들의 재료만 쓴다. 소스는 줄이고 최대한 신선한 채소의 맛을 살려내는 게 이곳 샐러드의 핵심. 제철 채소로 녹즙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직접 키운 작물을 가공해 판매, 서비스까지 하는 농부는 흔치 않아요. 평택에 샐러드 가게가 서너 군데 있었는데, 살아남은 곳은 저뿐이에요.”

최 대표는 농사짓는 셰프로서 긍지가 대단해 보였다. 단골손님들은 자부심의 원천이 된다. 원재료에 대한 자신이 있어 손님을 맞을 때도 당당하다. 그는 “손님이 오는 것도 손님이 오지 않는 것도 모두 내 탓”이라고 말한다.

최린 대표는 명함에 ‘농부’나 ‘셰프’, 혹은 ‘대표’라는 호칭 대신 ‘농업연구원’이라고 쓴다.

“저는 머리를 쓰는 농업경영인이 되고 싶어요. 흔히 농사는 몸을 쓴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농업 환경이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판로를 늘 고민해야 합니다. 농업을 연구하는 자세로 기초를 튼튼하게 다지며 농부의 길을 가고 싶습니다.”


러시아에 한국의 농업 기술 전파


최린 대표가 농업경영인을 꿈꾼 건 꽤 오래전이다.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한 말이 계기가 됐다.

“아버지는 ‘농업이 미래를 바꿀 것’이라며 농부의 길을 권하셨어요. 농업이 모든 산업의 기본이고, 식량 문제가 미래에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될 거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죠. 어린 나이였지만 귀에 쏙 박혔습니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농대에 진학한 그는 대학 3학년 때 전공을 살려 농업 컨설팅 회사에 들어갔다. 국내에서 2년 동안 전국을 돌며 농업 기술을 보급했고, 이후 러시아로 건너가 고려인들을 상대로 한국의 선진 농업 기술을 전파하는 농업연구원으로 7년을 지냈다. 한국에 들어온 건 2016년. 1년의 안식년을 얻어 한국에 돌아온 그는 우연히 찾은 귀농·귀촌 박람회에서 창농 프로그램 ‘팜셰어’를 알게 됐다.


경기도가 운영하는 창농 팜셰어는 귀농·귀촌을 꿈꾸는 예비 농업인들에게 농업 교육과 기술 지도를 해주고, 작물 재배와 판매, 마케팅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무상으로 공공 임대 농장을 제공하고 작물 재배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지원해 예비 농업인들이 농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다. 공공 임대 농장은 한경대학교와 농협대학교에 조성돼 있다.

“러시아에 살면서도 내 농장, 내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거든요. 3년 동안 무상으로 농장을 제공해준다고 하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죠. 1년간 농사를 지어보니 재밌더군요. 연구원 일을 그만두고 한국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그는 안성의 임대 농장 50평(165㎡) 남짓한 비닐하우스에서 적근대와 로메인, 케일, 치커리 등 쌈채소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작물에 대해 고심하다가 수확이 빠르고 병충해에 강한 잎채소 위주로 선정했다. 처음에는 채소를 매일 수확해서 팔 계획이었지만, 신선한 채소를 굳이 멀리까지 포장해서 팔아야 하는지 고민이 됐다. 그러던 중 안성과 가까운 평택에서 ‘청년 상인’ 모집 공고를 보게 됐고, ‘탄소 제로’를 실현하기 위한 팜마켓을 구상했다.

최린 대표는 그동안 배운 농업 경영 지식을 바탕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세웠다. CI와 브랜드 BI, 홍보 마케팅 방안까지 차근차근 준비해 2017년 6월, OMG 마켓의 문을 열었다. OMG는 ‘Oh My Greenhouse’의 약자다. ‘총각네 야채가게’처럼 농장에서 키운 채소를 팔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2년 만에 흑자 전환


농사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동안 쌓아온 기술을 그대로 옮기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했고, 농업 관련 지식과 전수 경험도 풍부했지만, 예측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속속 터져나왔다. 한 해는 병충해가 전체에 번져 통째로 뽑아낸 적도 있고, 욕심을 갖고 한 가지 작물만 심었다가 수확량을 감당하지 못해 고생한 적도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농사지은 첫해 겨울, 비닐하우스가 무너졌다. 갑작스럽게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강풍이 불어 하우스가 찢어진 것이다.

“새벽에는 괜찮았는데 저녁에 가보니 난리가 났더라고요. 하우스는 찢어지고, 수경 재배하던 채소는 다 얼고 물탱크까지도 얼었어요. 3개월 동안 가게 문을 닫고 복구 작업에만 힘썼습니다.”

다시 가게 문을 열고 2년 동안은 적자로 보냈다. 가겟세를 제때 내지 못해 용역 일로 돈을 벌어 메우기도 했다. 그저 버티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언 땅에서 혹독한 시련을 견뎌낸 지 2년 만에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한 해를 버티고 나니 단골이 늘었고, 하루 평균 20인분의 샐러드가 꾸준히 팔려 나갔다. 많이 벌 때는 7~8000원짜리 샐러드를 팔아 하루 30만 원가량을 벌기도 했다.

그의 노력은 각종 수상으로도 이어졌다. 농업진흥원 창업아이디어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전국 청년 농업인을 대표해 문재인 대통령과의 농업인 간담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내가 정장을 입는 이유

© 최린
최린 대표는 농사를 지을 때도 회사에 다닐 때처럼 항상 정장을 입는다. 수경 재배를 하다 보니 흙을 만질 일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농장에 갔다가 바로 가게 문을 열어야 해서 옷 하나도 가볍게 입을 수가 없다. “농장에 있어도 깔끔하게 입고 있으면 대하는 게 다르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장 입고 농장을 오가니 사람들이 독특하게 봐요. 농업인이라고 해서 후줄근하게 다닐 필요는 없잖아요. 외국에서는 농부도 존중받는 직업인데 한국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농부에 대한 인식을 바꿔주고 싶어요. 젊은 사람은 농사도 이렇게 깔끔하게 짓는다고요.”

그는 새벽에 안성의 농장에 나가 채소를 수확하고 평택 샐러드 가게로 바로 출근한다. 농사일을 시작한 이래 단 하루도 거른 적 없다. 팜마켓의 한쪽 벽면에는 언제 어떤 작물이 나오는지 보기 쉽게 달력에 표기돼 있다. 단골들은 자신이 원하는 채소가 나오는 시기를 체크해뒀다가 요리를 주문하기도 한다.

“매일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농장으로 가요. 해가 길어지는 여름이면 새벽 4시에 일어나고요. 그날 먹을 채소는 무조건 아침에 따요. 채소는 햇볕을 받는 순간 신선도가 확 떨어지거든요. 맛이 써지죠. 일찍 일어나야 순하고 달면서 맛있는 채소를 수확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쉬는 날은, 해가 안 뜨는 날? 해가 안 뜨는 날은 없잖아요. 쉰 적이 없다는 말이에요. 2월에 씨를 심어 3, 4월부터 수확합니다. 농한기인 1월에는 주로 농업 관련 수업을 듣고요.”

© 최린
농부에게 중요한 건 판로다. 얼마나 농사지어 얼마만큼 팔지, 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는 매해 계획을 세워 농작물 재배 양을 조절하고 판로를 고심한다.

OMG 팜마켓에는 종종 창업을 꿈꾸는 예비 농업인들이 상담차 찾아온다. 그는 청년 농업인들을 위한 농업 경영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종종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가게로 찾아오는데, 그들에게 늘 ‘성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회사 생활은 짬밥으로 굴러가는 면이 있지만, 농업은 그렇지 않아요. 성실하지 않으면 매일 자라는 잡초와 벌레를 감당 못 해요. 열심히 공부하고 매일 준비해야 해요. 도피성으로 농업을 택했다면, 잘못된 선택이에요. 도시 생활보다 더 힘든 게 귀농·귀촌이에요.”

요즘 최린 대표의 고민은 사업 확장이다. 수원이나 일산, 동탄, 서울 등 다섯 군데 후보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샐러드 가게를 프랜차이즈로 내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청년 농업인이 경작한 농작물을 가공해 판매하는 레스토랑을 열어 ‘농업계의 백종원’이 되는 게 그의 꿈이다. 이를 위해 지금은 스마트팜 농장을 조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제 나이에 비해 경험치는 누구보다 높다고 자부해요. 농업의 본질로 돌아가 매일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최선을 다하자, 이것이 제 농업 경영 철학입니다.”
  • 2020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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