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부부가 예술가에게 보내는 편지 (2)

프랑수아즈 사강!

‘슬픔이여, 안녕’ 하고 슬픔을 맞이하는 당신

당신의 조숙함은 엄청난 독서량, 자기 파괴에의 열망,
방종에 가까운 자유, 쾌락에의 탐닉… 등으로 드러났어요.
당신은 문학, 그 무모하고 덧없는 것에 맹렬했어요.
이 맹렬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요?
그것은 운명이었을까요?
장석주

사람들은 때로 분노나 억울함, 열패감 따위를 슬픔이라 착각하며 살지요.
하지만 슬픔의 정수 같은 것, 그것은 태연하게 잃어버리고,
탈탈 잃은 후 말간 얼굴로 아침을 맞이해본 사람이 손에 쥐는 거죠.
종국에 지는 사람들이요.
당신의 첫 소설 제목처럼 ‘슬픔이여, 안녕’ 하고, 슬픔을 맞이하는 사람들.
박연준
장석주 | 인생의 무거움과 가벼움

인생의 무게란 얼마나 될까요? 그 무게는 골루아즈 담배 한 대의 위안, 혹은 아침 식사를 대신한 블랙커피 한 잔의 따스함과 맞먹지 않을까요? 당신은 인생의 통속들, 혹은 생에의 파릇한 의지와 열망을 좀먹는 회색빛 환멸과 피로감에 진저리 치며 거기서 도망가려고 ‘자기 파괴’에 골몰했을까요? 코카인 흡입과 소지로 기소되어 법정에 선 당신이 한 명언,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에 나는 압도되었지요. 당신이 삶을 망가뜨리는 데 그토록 열심이었던 것은 자기 생에 대한 권리 행사였던 셈이지요.

프랑수아즈 사강(1935~2004), 당신은 종일 독서와 글쓰기에 몰입하던 소녀였지요. 10대 후반에 카페와 클럽을 드나들고, 흡연과 알코올, 마약을 경험하지요. 소르본대학 입시에 낙방한 뒤 파리의 한 방에 틀어박혀 써낸 첫 소설로 문단에 입성한 당신은 조숙한 천재였어요. 누군가는 당신이 ‘병적인 허기증 환자’였다고 말합니다. 그 허기증을 채울 수단으로 약물, 알코올, 속도, 우정, 도박 따위가 절대로 필요했다는 거죠. 당신은 코카인, 위스키, 쿨 담배, 독서, 글쓰기, 친구들, 카지노, 과도한 속도 등에 중독되었어요. 누군가는 당신이 ‘존재론적 약물 중독증’이라고 말했어요. 당신은 밋밋한 삶이 아니라 온몸의 신경세포가 각성된 상태로 열락(悅樂)에 탐닉했던 것이지요.

당신의 본명은 ‘프랑수아즈 쿠아레’. ‘사강’이란 필명은 프루스트의 한 소설에서 빌려온 것으로 압니다. 필명은 민낯을 숨기기에 좋은, 면책에 대한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가면이지요. 아버지 피에르 쿠아레는 프랑스 소도시에서 사업을 하는 부르주아였어요. 당신은 유복한 청소년기를 보내며 14세 때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을 접하고, 랭보의 시, 알베르 카뮈와 프루스트의 소설에 빠져 문학의 길로 들어섰지요. 당신의 조숙함은 엄청난 독서량, 자기 파괴에의 열망, 방종에 가까운 자유, 쾌락에의 탐닉… 등으로 드러났어요. 당신은 문학, 그 무모하고 덧없는 것에 맹렬했어요.
이 맹렬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요?
그것은 운명이었을까요?

당신의 인생에서 18세의 여름은 결코 잊을 수 없겠지요. 당신은 아침에 일어나 복숭아를 먹고, 오전 바다에 나가 해수욕을 하고, 오후 2시에는 안락의자나 소파에서 평생에 걸친 취미였던 독서에 몰두하고, 저녁이면 친구들과 룰렛 게임을 하며 보냈지요. 잔혹할 만큼 명석하고 제멋대로인 당신은 바닷가 휴양지의 아파트에서 무료함을 견디려고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채 탐욕스럽게 책을 읽어치웠지요. 당신은 스탕달을 독파하고, 플로베르, 포크너, 헤밍웨이, 카뮈, 피츠제럴드, 앙드레 지드, 마르셀 프루스트 등에 열광했지요. 당신은 놀라운 조숙함으로 ‘글을 쓰는 행복, 유희의 실행’이 뭔지를 알아차렸던 것이지요.

파리로 돌아온 늦여름 어느 날, 소르본대학에서 만난 친구에게 고백합니다.

“나 말이야, 얼마 전에 장편소설 한 편을 끝마쳤어.”

18세 여름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밝고 선명한 녹색 혹은 짙은 초록색 나무들 아래로 뻗은 인적 없는 파리의 대로…. 당신은 주프루아 거리의 빵집에 가서 크루아상 두 개를 삽니다. 돌아오는 길에 크루아상을 조금씩 뜯어 먹었지요.
그 대로에서 텅 빈 버스 한 대와 면도를 하지 않은 독신 남자 한 명을 만납니다. 그해 여름, 당신은 작은 파란색 수첩에 첫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6주 뒤엔 초고를 완성하고 직접 타이핑을 합니다.

1954년에 《슬픔이여 안녕》을 출간했지요. 발칙한 소녀의 거침없는 연애와 애정 행각을 발랄하고 나른하게 묘사한 188쪽에 불과한 첫 장편소설이 일으킨 충격과 파장은 ‘소동’이라고 부를 만했습니다. ‘매혹적인 작은 악마’ ‘명석한 잔혹함’을 지닌 작가라는 평가를 얻은 당신의 첫 소설은 9월에 4만 5천 부, 12월에는 20만 부를 넘어섰지요. 불과 19세 나이에 써낸 신랄하고 감미로운 청춘의 문체로 거둔 문학적 성공은 기적과 다를 바 없는 사건이었어요. 《슬픔이여 안녕》에서 보여준 연애와 관능에 도취하는 솔직함, 그 자유분방한 태도에 깃든 활력과 경쾌함은 전후(戰後) 프랑스 사회를 짓누른 억압과 금기, 눅진한 음울함 따위를 떨쳐내는 데 보탬이 되었겠지요.

당신은 출판사에서 받은 계약금으로 재규어 자동차를 구입합니다. 그렇게 이른 나이에 거머쥔 명성과 엄청난 인세 수입은 인생을 망치는 압도적인 불행의 전조가 아니었을까요? 당신의 그 뒤 어지러운 행적들, 즉 연애, 섹스, 코카인, 카페인, 도박, 과속 운전에 대한 중독들은 널리 알려진 바입니다.

당신과 나는 일찍이 문학의 세례를 받고, 이 하염없는 것에 인생이란 판돈을 걸었다는 점에서 닮았지요. 나는 17세 때 정규 교육 과정에서 이탈해 거리로 나섰어요. 거리란 한 점의 온정이나 신변 보호도 없이 고립무원의 처지로 추락하는 장소, 비정한 약육강식만이 절대의 법으로 군림하는 제도권 바깥 세계를 통칭합니다. 20세 청년은 말라르메와 폴 발레리, 막스 자코브와 자크 프레베르 등의 번역 시집을 표지가 닳도록 읽고, 백수로 떠돌며 우정과 바다와 시를 동경하며 시립도서관의 참고열람실과 어둑한 음악감상실을 은신처로 삼았지요. 거리의 구두수선공이 되거나 가족 회사의 경리직원으로 늙기에는 그는 젊고 야심이 컸겠지요. 하지만 하필이면 왜 문학이었을까요? 문학이란 환(幻)을 빚는 것. 그것은 행복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런 점에서 문학은 무용하겠지요. 당신은 말합니다. “행복이란, 건강한 체력과 두려움 없이 잠드는 것, 그리고 조바심 없이 깨어나는 것에서 오는 기쁨을 말한다”라고.

당신은 화려한 명성과 억만장자라는 위세 그리고 위스키, 파티, 스포츠카, 사치스런 낭비로 촘촘히 채운 사교생활을 등진 채로 쇠락의 길을 걷습니다. 말년에 당신이 이룬 모든 걸 다 잃고, 남은 것은 카지노에 진 빚, 세무당국의 국세 독촉장…. 당신 곁에 들끓던 숱한 나쁜 남자들, 출판업자, 모리배들, 마약 밀매상 들은 다 떨어져나가고 당신은 고독에 유폐당하지요.

“1998년 이후 나는 옷도, 안식처도, 탁자도, 의자도 없다. 친구들의 자비로만 살아간다.”

당신은 모르핀으로 잠들고 코카인으로 깨어났지요. 당신이 덧없는 인생에서 깨달은 것은 “시간과 사랑을 붙잡으려고 애쓰지 말아야 하듯이, 태양도 인생도 붙잡으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사강,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는 것! 누가 시간과 사랑을 붙잡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누구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 애쓰다가 우리는 한생을 다 보냅니다.

부디, 평안하시길.

장석주
전업 작가. 파주에 살며, 음악과 산책을 좋아한다. 주로 글을 쓰거나 인문학 강연을 한다.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철학자의 사물들》 《이상과 모던뽀이들》 《마흔의 서재》 《일상의 인문학》 《호젓한 시간의 만에서》 등과, 아내인 박연준 시인과 함께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 보오》를 썼다.



박연준 | 욕심 없이 열렬히, 잃는다는 것

이런 문장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당신의 문장입니다.

“수표가 꽃처럼 만발하던 봄이었다.”1)

제가 당신에게 반한 순간은 여러 번 있지만,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완전히 넘어갔습니다(knockdown). 오해하지 마세요. 당신이 돈을 잘 벌어서가 아니에요.
돈을 잘 버는 사람은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가요?
그보다 저는, 당신의 표현력에 반했습니다. 세상에 자신이 벌어들이는 돈을 만발한 봄꽃으로 비유하는 사람도 있구나! 저 문장에는 이런 게 내포되어 있습니다. 돈에 대한 거리 감각, 긍정적 태도(열등감이나 우월의식 없이!), 귀족성, 태연함 등이 들어 있습니다. 게다가 돈에 대한 주인의식도 없지요. 아무튼 수표가 꽃처럼 만발했다던 봄날, 당신은 그 돈으로 경주마 한 마리를 사지요.
그다음은… 음, 말하지 맙시다.

잃는 것! 열렬히 잃어버리는 것, 그것은 당신이 가장 잘하는 일이었지요. 얻는 것(버는 것)만큼이나. 내 관심은 당신의 무모함이나 어리석음, 모험심 따위가 아닙니다. 위험 속으로의 투신이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는 당신의 자세에 관심이 있어요(저는 ‘자세’에 관심이 많은 부류입니다). 어마어마한 것을 지속적으로 잃으면서,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기! 그것은 지적인 사람 그리고 욕심이 없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당신이 도박에 빠져 있던 숱한 나날. 사람들은 당신이 한탕주의에 빠진 욕심 많은 작가, 어리석은 구제불능이라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거예요(당신은 구제불능이긴 했으니까). 그러나 저는 당신의 말에 다시 주목합니다. 《텔레라마》의 기자 미셀 가지에게 털어놓은 당신의 말을 인용해볼게요.

“잃고 있을 때, 나는 찰나의 순간 속에서 작은 창문 하나가 있고 희미한 불이 밝혀진, 그리고 채워넣어야 할 전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작은 방 안에 있는 내 모습을 봐요. 나는 혹여 올 수도 있는 파산에 대해 매우 소설적이고 문학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지요.” 2)

오지 않았지만 ‘올 수도 있는’ 파산. 그것을 직관하는 사람, 알면서 가는 사람. 보통 사람들은 현실이라는 문제에 대비 태세를 취하며 살아갑니다. ‘사건’ 이전과 이후를 분석해 불행이 두 번은 닥치지 못하도록 주의하지요. 건강한 사람들, 조바심 내는 사람들, 행복을 위해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사람들, 겁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반면 당신은 위기의 상황에서, 현재 상태와 닥칠 미래의 문제를 대단히 ‘문학적’으로 직시해요. 관조하죠. 카메라 앞에 선 감독처럼 조망해요. 자기 처지를 ‘객관화’하는 당신의 능력. 전 재산을 잃고 있는 자신을, 벼랑 끝으로 달려가는 자신을 바라봅니다. 바라본다는 것의 의미를 안다면, 당신의 재능이 어떤 형상을 띠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맞아요, 작가에겐 ‘재능’이라 볼 수 있는 태도예요. 당신은 불행 앞에서 불행보다 더 어리석게 행동함으로써 불행을 질리게 하는 유형이에요.

제 유일한 불행은 당신처럼, ‘잃기에 능한’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겁니다. 늘 뭔가 대단히 크게 잃은 적이 있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요. 잃은 후, 의연하게 다시 걷는 사람이요. 작아진 사람, 다시 행동하는 사람, 어리석음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끝내 화를 낼 수 없어요. 어리석음을 위한 그들의 의지, 순수함 때문에 기가 질려요. 무엇도 잃은 적 없는 사람, 양지에 서 있는 사람, 뼛속까지 엘리트, 칭송만 받는 사람, 힘과 권력을 놓은 적 없는 사람을 저는……, 싫어합니다. 잠시 망설인 이유는, 그들에 대한 제 미움이 합당한가 생각해보았기 때문입니다. 싫은 걸 어떻게 하나요.

저는 꺾여본 나무를 좋아해요. 망가질 가능성이 농후한 자들. 그들의 위태로움과 의연함, 삶에 대한 사랑, 목마름 그리고 슬픔을 아낍니다. 그들은 진짜 슬픔이 뭔지 알아요. 사람들은 때로 분노나 억울함, 열패감 따위를 슬픔이라 착각하며 살지요. 하지만 슬픔의 정수 같은 것, 그것은 태연하게 잃어버리고, 탈탈 잃은 후 말간 얼굴로 아침을 맞이해본 사람이 손에 쥐는 거죠. 종국에 지는 사람들이요. 당신의 첫 소설 제목처럼 ‘슬픔이여, 안녕’ 하고, 슬픔을 맞이하는 사람들. 피츠제럴드에 대해 당신이 쓴 문장, 기억하나요?

“사람들은 그에 대해 경박하다고 했다, 마치 행복이란 것이 경박할 수 있는 것처럼. 무감각하다고 했다, 마치 알코올 중독이 무감각할 수 있는 것처럼. 무력하다고 했다, 마치 작가가 실력이 없을 수 있는 것처럼. 옹졸하다고 했다, 마치 재능이 옹졸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러나 사실, 피츠제럴드에게는 결점이 없었다. 자기중심적이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그랬던 만큼 자신의 삶에 열중했다. 자신의 주인공들에게 그랬던 만큼 자신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민감했다. 그는 명예가 행복의 눈부신 상복(喪服)이길 원치 않았으며, 다만 행복의 반향이길 원했던 것이다.” 3)

사람들은 남의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습니다. 그래봐야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일 뿐인데요. 피츠제럴드를 위한 변명이기도, 삶에 대한 자기 확신이기도 한 당신의 문장! 당신의 ‘미친 재능’을 좀 보세요. “명예가 행복의 눈부신 상복이길 원치 않았으며, 다만 행복의 반향이길 원했다니”! 성공이나 명예, 그런 건 당신이 열렬히 추구해본 적 없는 거지요. 아이러니하게도 그것들이 당신을 종종 쫓아다녔지만요.

당신은 훌륭하지 않았어요. 세상엔 훌륭한 것들이 끝도 없이 나오고, 그게 얼마나 피곤한지 당신만이 아실 이. 한국의 옛 시인 중 김영랑이 쓴 이런 시구가 있어요.

“내 마음을 아실 이 / 내 혼자 마음을 날 같이 아실 이.”

소리 내보면 불어만큼, 아름답답니다.
내 마음을 아실 이, 사강.

싸 바(ça va)!

박연준
파주에 살며, 일주일에 세 번 발레를 배운다. 창문, 숲, 기러기를 좋아한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이 있고, 산문집 《소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등을 썼다.

1) 《봉주르 뉴욕》, 프랑수아즈 사강, 학고재, 114쪽.
2) 《사강 탐구하기》, 마리 도미니크 르리에브르, 소담출판사, 125쪽.
3) 《리틀 블랙 드레스》, 프랑수아즈 사강, 열화당, 185쪽.
  • 2020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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