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통의 보통 사람들 #4

문학 소녀였던 붕어빵 아주머니

글 : 김보통 

춥지 않은 겨울입니다.
큰맘 먹고 산 롱패딩을 몇 번 입어보지 못했습니다.
눈이 내리질 않으니 쌓인 눈 위를 살금살금 걷던 사람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습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얗게 뿜어져 나오는 김조차 예년만 못합니다.
새해가 됐으나 지난가을이 계속 이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 어딘가 뜨뜻미지근한 풍경 속에서 붕어빵을 구워 파는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평소 붕어빵을 좋아하지 않지만 괜히 반가워 다가가니
아주머니가 들고 있던 《약해지지 마》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붕어빵을 하나 산 뒤 마침 손님도 없어 보여 슬그머니 말을 걸었습니다.

“책 재미있나요?”


재미는 모르겠고 심심해서 읽는 거지요.
백 살이 다 된 할머니가 쓴 시집인데 읽고 있으면 이런 것도 시가 되는구나 싶어 지루하지는 않거든요.
원래는 핸드폰을 많이 봤는데 그것만 보고 있으면
자꾸만 마음이 시끄러워져서 얼마 전부터 책을 읽어요.
손님이 많지 않아 공치는 날도 ‘책이라도 읽었으니 됐지’싶어 괜찮은 것 같아요.

학생 때는 글을 곧잘 썼어요. 독서반을 하며 글짓기 대회에도 나가 상도 받고 그랬지요.
백일장 같은 데서 쓴 시가 뽑혀 학교 복도에 걸리기도 했고,
졸업 문집에는 수필도 하나 썼지요.
여건만 됐다면 관련 학과로 진학해 작가를 꿈꿨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어디 그게 뜻대로 되나요. 하고 싶은 걸 하며 산다는 건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옛날 얘기는 할 게 없어요. 힘들지 않게 산 사람이 있었나요.
우리 때는 당장 굶지 않기 위해 살았어요. 먼 미래를 준비한다는 건 꿈같은 얘기였지요.
오늘을 살아내야 내일도 살 수 있었으니까요.
아랫돌을 빼다 윗돌로 쓰는 꼴이지만 그것 말고 다른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살다 보니 어느새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아 길렀지만 어느 하나 마음먹고 한 일이 없어요.
살다 보니, 살다 보니 어쩌다 이렇게 됐지요.

정말 살다 보니예요. 왜 이렇게 됐을까라고 생각한 적도 없이 그저 이렇게 됐어요.
우리 애는 그래요. 그렇게 생각 없이 살았기 때문에 아직도 엄마가 붕어빵을 구워야 하는 거라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지 않아서 벌을 받는 거라고.
그런데 사실 저는 억울함이 없어요. 특별히 괴롭다거나 힘들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세상이 좋아졌다지만 정말 좋아졌는지는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서로가 얼마나 잘사는지 못사는지 알 길이 없었어요.
주변 사람들이 다들 비슷비슷하니 모두가 이렇게 사는구나 하며 하루하루를 살았지요.
그런데 요즘은 핸드폰만 보면 다들 어떻게 사는지 살펴볼 수가 있어서
자꾸만 비교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시집을 쓴 할머니는 말해요. “못한다고 주눅 들지 마. 나도 아흔여섯 해 동안 못 한 일들이 산더미야.”
딱히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인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열심히 살았고, 살다 보니 이렇게 된 거니까요.

요즘은 다시 글을 좀 써볼까 해요.
누구한테 보여주려거나, 이 할머니처럼 책으로 내는 걸 바라는 건 아니에요.
남이 어떻게 사나 기웃거리기보다는 나를 좀 더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에요.
남편한테는 보여줄 수 있겠지요. 어쨌거나 지난 삶 동안 항상 같이 살아온 동료니까요.
  • 2020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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