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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1박 2일 출장 일기

뉴욕 변호사의 엑스팻 생활기
엑스팻(Expat)이란 외국에 장기 체류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엑스팻으로 반평생을 살아온 필자 이철재 변호사가 뉴욕에서의 엑스팻 생활을 풀어나가며 그곳의 일상 모습 혹은 관광객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곳들을 소개한다.
아침 7시 기차를 타고 맨해튼으로 향했다. 미국의 기차는 상당히 후졌다. 서울과 부산 거리의 시라큐스-맨해튼을 가는 데 여섯 시간이나 걸린다. 새마을호보다 더 느리다. 게다가 단선 철도가 많아 가다 서다를 유난히 반복하는 날은 여섯 시간을 훌쩍 넘길 때도 있다.

이렇게 후진 기차지만 그래도 내가 비행기보다 기차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 출발 두 시간 전까지 공항에 도착해야 하는 비행기 여행과는 달리 기차는 도착 5분 전에 승강장으로 올라가 기다리다 타면 된다. 가는 동안 넓은 공간 안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컴퓨터 꺼내놓고 일하고, 책도 읽다가 한숨 자면 지루한 줄 모르고 도착한다. 그것도 시내 한복판에 도착한다. 공항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40~50분, 길 막히면 1박 2일 걸려 시내로 들어가는 비행기 여행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편리하다.


알곤퀸 원탁의 멤버들, 《뉴요커》 창간에 일조

프렌치프레스에 4분간 우렸다가 보온병에 담아 온 코스타리카 싱글 오리진 커피가 바닥날 즈음 종착역 뉴욕시에 도착했다.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호기심에 여태 묵어본 적이 없는 알곤퀸(Algonquin) 호텔에 예약을 했다. 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44가에 있다.

알곤퀸 호텔을 예약한 데는 이유가 있다. 1902년에 문을 연 유서 깊은 호텔로 현재는 뉴욕시 사적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알곤퀸이란 이름은 이 호텔 동네가 흔히 ‘뉴욕 알곤퀸’이라 불리는 원주민(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살았던 곳이어서 붙인 것인데, 사실은 조금 잘못된 이름이다. 현재 호텔이 있는 맨해튼과 롱아일랜드 일대에 살던 원주민들은 알곤퀸이 아니라 알곤퀴언(Algonquian)이다.

이 호텔의 전설적 소유주이자 매니저 프랭크 케이스는 이곳을 찾는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점심 식사비를 깎아주고 특별히 간식도 제공했다. 프랭크 케이스의 비호하에 모였던 초창기 멤버들을 ‘알곤퀸 원탁의 멤버들’이라 부른다. 이들 중 시인이자 소설가 도로시 파커 등은 한 세대 뒤 미국의 대표적 작가인 F. 스콧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에 영향을 줬다. 해럴드 로스라는 멤버는 유명한 종합 주간지 《뉴요커》를 창간했다. 《뉴요커》는 지금도 미국 내에서 명망 높은 주간지로 문화, 정치, 레스토랑 평론부터 창작 문학 작품을 싣는다. 나도 《뉴요커》의 열혈 구독자 중 한 명이다.

방에 짐을 풀고 곧장 호텔을 나섰다. 이번 여행의 주요 목적인 업무상 회의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회의 장소가 설렁탕집 감미옥이었다. 회의 상대는 영국 출신의 G인데, 그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도 하다. 감미옥에 들어서니 G가 이미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녹두빈대떡 하나를 나눠 먹고 각자 설렁탕 한 그릇씩 먹었다.

처음 뉴욕시로 이사 왔을 때 브로드웨이와 32가가 만나는 초입에 한국상업은행 뉴욕 지점이 있었다. 그 옆으로 강서회관, 뉴욕곰탕 등이 있었고, 맞은편에 한인이 운영하는 호텔과 감미옥이 붙어 있었다. 그때는 상업은행이 뉴욕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부자 나라가 된 것 같고 기분이 우쭐해졌다.

조국이 가난하던 시절 우리에게 작은 자부심을 안겨주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 잊게 해주던 한인타운은 이제 불야성을 이루며 뉴욕시의 관광 명소가 됐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임대료가 올라가 뉴욕곰탕, 강서회관 그리고 34가에 있던 우촌 등 초창기 식당들은 모두 폐업했다. 감미옥만이 아직 남아 있는데, 장소를 몇 번 옮기고 한때 문을 닫았다가 현대식으로 꾸며 다시 열었다. 매번 맨해튼에 올 때마다 문 닫은 감미옥을 발견할까 봐 조마조마하다.


먼 시간 여행을 다녀온 듯

호텔방에 올라오니 취기가 돌며 참았던 졸음이 마구 쏟아졌다. 침대에 쓰러져 한 두어 시간 잤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아침까지 자고 싶었지만 중요한 일정이 한 가지 더 남아 있었다. 뉴욕을 방문 중인 귀한 손님을 만나는 것이다. 어린 시절 내게 바이올린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이다.

선생님 부부가 머무는 호텔로 가 와인을 함께하며 새벽 1시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선생님에게 처음 바이올린 배우기 시작했을 때, 난 초등학교 5학년이고, 선생님과 사모님은 20대의 캠퍼스 커플 출신 신혼부부였다. 그 시절 이야기가 고스란히 다시 나왔다.

호텔로 돌아오니 1시 반이었다. 120년 된 호텔의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이제 선생님 부부는 손자가 넷이나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됐고, 나는 눈이 침침해지는 나이가 됐다. 상업은행은 은행 자체가 없어졌고, 뉴욕곰탕도 온데간데없이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세월이 언제 이렇게 흘렀을까. 언제 우리 부모님이 늘상 하던 말이 내 입에서 절로 튀어나오는 나이가 됐을까. ‘새벽부터 기차 타고 맨해튼에 도착해 발품 팔며 다닌 거리보다 훨씬 더 먼 시간 여행을 다녀온 것 같다’고 생각하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 2020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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