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부부가 예술가에게 보내는 편지 (1)

천재 작곡가 에릭 사티!

27년간의 고독 속에서, 840번 서성이면서, 당신은 불행했나요?

“고독이란 천재 예술가들의 내실(內室) 같은 것이지요. 지구 위의 아주 작은 방! 어둡고 음습한 방, 몸을 벌레처럼 둥글게 말고 웅크려 숨을 수 있는 방. 그렇습니다, 예술가들에겐 제 예술을 빚을 그런 창조의 방이 필요한 법이지요. 당신은 그 무인도처럼 황량한 방에서 27년 동안 벌레처럼 살며 생계를 위해 샹송을 작곡하거나 실험적인 음악을 빚었지요. 오늘은 당신의 선물 같은 ‘사라방드’ ‘짐노페디’ ‘그노시엔’ 같은 곡을 듣겠습니다.”
장석주

“매일, 쓸데없이, 열렬히, 시를 쓸 때, 저는 당신의 ‘선율’을 좋아했습니다. 내 귀를 거슬리게 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소리였거든요. 시의 리듬에 근접한 음악. 원래 시가 음악과 한패잖아요? 당신의 음악엔 묘한 힘이 있어요. ‘힘없이 힘 있는’ 걸음, 목적 없이 나아가는 걸음, 반복되는 걸음, 발자국이 사라지는 걸음. 고양이처럼 무심히, 돌고 도는 걸음 말이지요.”
박연준
© 셔터스톡
장석주 | 에릭 사티의 ‘고독 그 자체였던 방’

음악이 없는 삶은 상상하지 못합니다. 그런 실낙원의 삶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아요. 음악은 나의 불꽃 애인! 숱한 전위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천재 작곡가 에릭 사티(1866~1925)!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주차 경비원이나 방향제 영업사원이 되지 않고, 동사와 명사를 주로 쓰되 부사와 형용사에는 인색한 시를 쓴 나와는 달리, 당신은 해운 중개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도보 여행자나 극지 탐험가는 되지 못한 채 생애 대부분을 피아노를 치고 작곡을 하며 살았지요. 당신이 기숙학교의 외로운 소년이었다면, 나는 실업계 고등학교의 외톨이였습니다. 우리는 고독 속에서 온전한 사람들이었지요. 고독이라는 궁극의 진리 속에서 기쁨은 충분했습니다. 우리는 채석장 근처에서 산 적은 없지만 자기 자신으로 충분했다는 점에서, 어쩐지 이란성 쌍둥이처럼 꽤나 닮았어요.

당신이 죽은 지 100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엉뚱하고 익살스러운 사티, 카바레에서 피아노를 치고 몽마르트르 술집들을 순례하던 술꾼 사티, 신비주의자 사티, 고독하고 가난한 사티…. 내게 당신은 언제나 12월의 사티였어요. “나는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왔다”는 말로 나를 놀라게 한 음악가, 당신은 과도한 음주가 원인이 된 간경화로 성요셉병원에서 아내도 아이도 없이 쓸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카바레 ‘흑묘(黑猫)’의 피아니스트였던 당신과 나는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어요. 그랬으니 봉두난발에 펠트 모자, 코에 작고 동그란 안경을 걸친 기묘한 모습으로 파리 몽마르트르 일대를 취한 채 돌아다녔다는 당신을 그저 상상 속에서만 그려볼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는 겨울입니다. 우울입니다. 동천(冬天)에 빗금을 그으며 나는 쇠기러기 떼 찬 서릿발 묻은 발처럼 내 영혼이 식은 적은 없습니다만 겨울의 우리는 가난하고 쓸쓸합니다. 우리는 진흙으로 빚은 듯 겨울 저녁이 올 때 갓길의 불행을 껴안고 영원히 떠돌겠지요. 천 송이의 장미, 상냥한 유모, 화초를 키우는 소녀, 오류가 없는 삶, 홍옥(紅玉)인 듯 빛나는 기쁨, 잘 익은 토마토, 아침식사, 모닥불, 따스한 배춧국, 당나귀 방울 소리가 들리는 작은 식당 그리고 여기 멀쩡한 영혼은 없습니다. 살을 에는 찬바람이 방랑자같이 떠도는 동아시아의 겨울에는 어쩐지 “이가 아픈 꾀꼬리같이” 어느 한구석에 불편을 지닌 영혼들뿐이지요. 이 불만과 불편의 겨울을 나기 위한 양식으로 당신의 음악을 찾아냅니다.

당신은 노르망디 옹플뢰르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불과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잃고 외롭고 반항적이고 게으른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아버지가 새 아내를 맞자 열세 살인 당신은 혼자 파리로 나와 파리음악원에 들어갑니다. 음악원에서 피아노 운지법과 화성학을 공부했겠지요. 친구 한 명도 없이 국립도서관을 드나들며 플로베르 소설을 탐독하고, 바흐, 쇼팽, 슈만의 음악에 심취했다는 당신의 내면 생활에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당신은 심오한 독창성을 발휘한 음악 말고 무엇을 잘했나요? 노동과 여가시간은 충분했나요? 당신의 식성은 까다로웠나요?

당신은 불행하고 고독했나요? 차가운 겨울 저녁 파리의 카바레와 술집을 전전한 것은 그 불행과 고독을 달래기 위함이었나요? 고독은 고독으로만 극복할 수 있고, 불행은 불행에 대한 내구력을 키움으로써만 벗어날 수 있어요. 감히 당신이 겪은 고독의 깊이, 불행의 상처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파리 교외 3층 건물에 마련한 거처에서 27년을 살았어요. 당신의 방을 찾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지요. 고장 난 피아노 한 대와 방치된 잡동사니로 가득 찬 먼지들의 방에서 당신은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 방은 당신만의 고독한 영지(領地)였겠지요. 아마 당신은 ‘커다란 녹색 눈을 가진 작고 슬픈 소녀처럼’ 찾아온 가난과 고독을 기꺼이 벗으로 품었겠지요. 한때 당신은 ‘가난 씨!’라고 불리기도 했지요.

고독이란 무엇인가요? 고독이란 도피와 일탈의 한 형식, 칩거를 통해 궁극의 안녕을 누리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 혹은 개인이 세계를 향한 정신적 저항의 한 방식이겠지요. 하지만 ‘한 마리 개를 위한 물렁물렁한 진짜 전주곡’ 같은 음악을 작곡하려고 기꺼이 고독을 받아들이거나, 잉크가 아니라 피를 찍어 단 한 편의 시를 쓰려고 고투하고 멸종 직전의 생물 종처럼 살며, 고독을 궁극의 승리로 여기는 이들은 더는 존재하지 않아요. 고독이란 천재 예술가들의 내실(內室) 같은 것이지요. 지구 위의 아주 작은 방! 어둡고 음습한 방, 몸을 벌레처럼 둥글게 말고 웅크려 숨을 수 있는 방. 그렇습니다, 예술가들에겐 제 예술을 빚을 그런 창조의 방이 필요한 법이지요. 당신은 그 무인도처럼 황량한 방에서 27년 동안 벌레처럼 살며 생계를 위해 샹송을 작곡하거나 실험적인 음악을 빚었지요. 오늘은 당신의 선물 같은 ‘사라방드’ ‘짐노페디’ ‘그노시엔’ 같은 곡을 듣겠습니다. 나는 아주 가끔씩만 당신의 음악을 듣습니다.

냉기와 밤을 견디며 기어코 살아낸 생이란 건 저 너머로의 발걸음! 당신이 그랬듯이 혼자인 건 나의 존재방식! 내가 아닌 것은 내가 아닌 거고, 우리는 저마다 자기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내가 그러한 사람이라는 것. 혼자일 때만 내가 원치 않는 그 무엇이 되지 않고, 오롯하게 나로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당신 영혼의 유적지였던 파리 근교의 작은 방을 떠올립니다. 그 방에 누구도 들이지 않고 몽상가로 혼자 살 때 당신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음악의 미래였어요. 오늘밤은 당신의 음악과 자발적 고독을 기리기 위해 동편 하늘을 덮는 검은 구름 같은 시를 쓰겠습니다.

장석주
전업 작가. 파주에 살며, 음악과 산책을 좋아한다. 주로 글을 쓰거나 인문학 강연을 한다.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철학자의 사물들》 《이상과 모던뽀이들》 《마흔의 서재》 《일상의 인문학》 《호젓한 시간의 만에서》 등과, 아내인 박연준 시인과 함께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 보오》를 썼다.



박연준 | 에릭 사티의 ‘선율과 걸음걸이’

카페 ‘검은 고양이’에서 연주를 마치고, 피아노에서 떨어져 나온 당신을 상상합니다. 몇 개의 불빛이 흔들리는 밤거리를 걷는 사람. 당신의 걸음걸이를 상상해봅니다. 어디로 갈 건가요? 당신의 피로와 추위, 혼자된 영혼을 데리고. 당신은 꽁다리에(그런 게 있다면) 시를 묻히고 다니는 사람.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칭송하거나 혐오하는데, 당신의 경우 후자일 때가 많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때로 어떤 예술가에게 세상은 유독 혹독해지죠.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할게요.

스물아홉 때 〈산책〉이란 제목으로 시를 한 편 썼어요. 부제를 ‘에릭 사티의 4분음표 걸음으로’라고 붙인 시지요. 그때 저는 당신의 선율을, 음악의 걸음걸이를 주목했습니다. 시의 갈비뼈를 빼서 음악을 지휘하는 당신의 주법을 알아보았어요. 시와 음악은 같은 음계를 사용해요. 같은 오선지에서 뛰놀고, 같은 감각회로를 갖지요. 나는 언어에 선율을, 당신은 선율에 언어를 입힌다고 생각합니다. 과장이 아니라, 진심으로요.

그때 나는 바퀴벌레가 출몰하는 방에서, 혼자 귀신처럼 서성이곤 했어요. ‘도무지 물기가 생길 일 없는 싱크대’가 달린 원룸에 혼자 살던 때입니다. 그 방엔 대부분 나와 ‘시’ 둘만 거주했습니다. 어둑하고 신산한, 음기가 넘치던 방이었어요. 슬픔만으로, 뭐든 키울 수 있을 것 같던 때였습니다.

매일, 쓸데없이, 열렬히, 시를 쓸 때, 저는 당신의 ‘선율’을 좋아했습니다. 내 귀를 거슬리게 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소리였거든요. 시의 리듬에 근접한 음악. 원래 시가 음악과 한패잖아요? 당신의 음악엔 묘한 힘이 있어요. ‘힘없이 힘 있는’ 걸음, 목적 없이 나아가는 걸음, 반복되는 걸음, 발자국이 사라지는 걸음. 고양이처럼 무심히, 돌고 도는 걸음 말이지요.

어둠 속에 숨어서 딱정벌레들은 더욱 딱딱해지고
햇빛은 수줍은 올챙이처럼 떼지어 도망다닌다
840번을 반복해도 나는 변하지 않을 테지만
잠을 토닥이느라 베개도 지쳤겠지만
거울 속엔 저렇게 눈이 많이 내린다
29년째 얼굴을 찡그리느라 근육을 혹사시켰어
음악은 쉬고 싶을 거야
새벽 4시는 숨죽인 꽃처럼 아름다울까?
-
졸시, 〈산책〉 중에서


당신은 ‘세 개의 짐노페디(Trois Gymnopédies)’ 중 1번은 ‘느리고 비통하게’, 2번은 ‘느리고 슬프게’, 3번은 ‘느리고 장중하게’ 연주하도록 주문했죠? 세 가지 형식이 어떻게 다른지, 그 미세한 차이를 알아요. 그 차이가 얼마나 중요한지도요. 비통은 슬픔보다 발이 무겁죠. 슬픔은 장중함보다 선이 길고, 종종 위로 솟아야 하고, 무게 중심이 약간 빨리 이동해야 하고요. 장중함은 나체가 아니죠. 무엇이든, 얇은 거라도 걸친 채 발을 끌듯 걸어야 하죠. 그 얇은 외투가 당신의 음악이겠죠. 어쨌든 ‘비감(悲感)’은 당신의 음악에서 공통분모예요. 그런데 이 비감이 쓰고 있는 모자가 바로 ‘명랑’이에요. 당신의 음악은 슬픈 가운데 명랑해요. 사실 이 점 때문에 당신 음악에 끌렸던 것 같습니다. 제 시를 읽고, 눈치 챘겠지만 ‘840번’이란 숫자는 당신의 숫자입니다. ‘벡사시옹(vexation, 짜증)’이란 곡을 작곡한 당신은 이런 주문을 달아놓았지요.

“연주자에게, 이 동기를 840회 연속으로 연주하시오. 미리 준비를 하고 절대적인 침묵 속에서 미동도 없이 연주하시오.”

우스워라! 840회 반복한다면, 연주 시간이 스무 시간도 넘는다 하더군요. 그래서 당신은 연주자에게 ‘미리 준비’를 하라고 한 거군요! 저는 저 자신을 840번 연주해본 적 있어요. 반복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반복은 서성임이에요. 반복은 스윙(그네)이고, 반복은 리듬이고, 반복은 걸음걸이지요. 반복은 지옥이고, 반복은 강조입니다. 반복은 걱정이고, 반복은 대체 불가능이고, 반복은 반복 자체입니다. 반복은 변주를 향하고, 이 미세한 틀어짐이 균형과 색깔을 불러와요.

당신이 왜 840번을 반복해 연주하라 요청했는지, 저는 정확히 이해해요. 그래야만 하니까요. 다 다른 반복! 다 다른 반복! 다 다른 반복!

어젯밤 두 편의 시를 썼습니다. 그중 한 편의 제목은 ‘음악의 말’인데, 첫 문장을 말해줄게요(첫 문장이 전부니까요).

“벼락처럼 빠른 걸 주운 사람? 주운 사람?”

저는 당신이 무덤에 누워 눈을 감은 채, 나직이 대답하는 상상을 합니다. ‘나’라고. 음악은 ‘흐를 때도 있지만 고여 있을 때도, 앉아 있을 때도, 싸우고 있을 때도’ 있어요. 그리고 서성일 때도 있고요. 음악이 서성일 때, 그때가 좋아요.

말하고 나니, 기도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는 뭘까요. 어떤 대화는 기도를 상회하죠.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 이 말을 840번 반복하시오! 이렇게 요청합니다.

평안하시길.

박연준
파주에 살며, 일주일에 세 번 발레를 배운다. 창문, 숲, 기러기를 좋아한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이 있고, 산문집 《소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등을 썼다.
  • 2020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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