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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라단조 Op.125

알 수 없는 인생에 대처하는 법

조현영의 보통 사람을 위한 클래식
세상의 모든 클래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렵거나 지루하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딴 나라 이야기는 절대 사절! 무대에서는 피아니스트지만 이곳에서는 피아노 치는 옆집 언니, 아는 동생, 클래식 큐레이터로 다가갈 예정이다. 클래식으로 당신의 일상이 예술이 되는 마법을 일으킨다.
언제나 과거는 그리운 시간일까요? 독일에서 공부하던 그 시절에는 힘들다고만 느꼈는데 돌이켜보니 인상 깊었던 순간도 많았습니다. 특히 라인강의 실베스터 불꽃놀이는 잊을 수 없습니다. 달력 마지막 장인 12월이 되니 더욱 그 시절 그 음악이 생각납니다.

‘실베스터(Silvester)’는 우리나라의 섣달그믐에 해당하는 12월 31일입니다. 교황 ‘실베스터 1세’의 이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는데, 12월 31일이 교황의 성명 축일이자 사망일이라서 그렇게 불리기 시작했답니다. 독일에서는 그날 밤 12시가 되면 모든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폭죽을 가지고 나와서 새해 소원을 빌며 터뜨립니다. 제가 있었던 쾰른의 라인강은 폭죽을 터뜨리기에 아주 인기 있는 장소입니다. 폭죽과 함께 시에서 터뜨리는 불꽃 또한 볼만한 광경을 연출합니다. 하늘에서 오색의 불꽃과 폭죽이 터지면 사람들은 모두 같은 멜로디를 부르며 서로 새해를 축하합니다. 그때 흐르는 음악이 바로 베토벤의 〈합창, Choral〉입니다. 아직도 쾰른을 생각하면 라인강에서 들었던 그 멜로디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라단조 Op.125야말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아는 명곡 중의 명곡입니다. 세상에서 단 하나의 클래식을 고르라면 선택될 곡이지요. 왜 사람들은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베토벤을 노래할까요?


운명을 받아들이고, 음악으로 승화하다

음악의 성인 베토벤에게 예술가의 삶은 운명이었습니다. 예술가로서 뭐든 다 될 것 같았지만 그에겐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바로 청각 상실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입니다. 음악을 누구보다도 좋아했고, 음악이 삶의 전부였던 베토벤은 자식 같은 자신의 음악들을 평생 들으며 살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지요. 급기야 귀가 들리지 않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서른두 살의 나이에 자살을 계획합니다.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는 이때 작성된 겁니다. 하지만 유서를 쓰고 나서 마음을 고쳐먹은 그는 이후 25년을 운명과 싸워 이깁니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음악으로 승화한 것입니다.

서양 음악사에서 교향곡이라는 장르에 베토벤이 남긴 업적은 가히 위대하고 또 위대합니다. 일단 연주 시간이 1시간 20분 정도로 매우 깁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미남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CD 길이를 정할 때, 베토벤의 〈합창〉을 하나의 CD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모든 면에서 새로운 기준이자 혁신이었습니다. 1시간 20분이라는 전체 곡의 길이를 정하는 것도, 기악 음악인 교향곡에 인간의 음성으로 네 명의 독창자와 합창이 들어가는 것도, 그렇게 대규모 편성으로 악기를 구성하는 것도. 게다가 이 음악은 배경음악으로 흘려듣기엔 담겨 있는 내용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감동적인 곡이죠. 웬만한 음악 애호가가 아니고서는 한자리에서 〈합창〉 전곡을 듣는 이도 많지 않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을 듣기 위해선 약속도, 바쁜 마음도 모두 정리하고 그를 느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음악 그 이상의 의미

베토벤은 영화, 소설, 그림 등 다양한 장르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특히 영화 〈카핑 베토벤〉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합창〉은 압권입니다. 자신이 작곡한 위대한 교향곡 9번을 지휘하는 것도, 그 음악이 연주되는 것도, 연주 후 사람들이 박수로 환호하는 것도 그는 들을 수 없습니다. 베토벤은 제자이자 악보를 대신 그려주는 카피리스트 안나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연주를 지휘하고 모든 소리를 그저 진동으로 느낄 뿐입니다. 〈합창〉 교향곡은 보통의 교향곡처럼 처음부터 멜로디가 바로 나오지 않습니다. 1악장의 불안하고도 오묘한 시작, 대부분의 2악장과는 비교될 정도로 갑자기 소리가 커지는 음량, 3악장의 느리고 여유 있는 아다지오, 4악장에서는 인류를 향한 사랑과 환희가 한꺼번에 울려 퍼집니다.

해마다 연말이면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에 음을 입힌 〈합창〉 4악장 〈환희의 송가〉가 많은 곳에서 들려옵니다. 너무도 빤한 연주 프로그램이지만 합창을 듣지 않고 새해를 맞이하는 건 어쩐지 이상합니다. 저무는 한 해와 다가올 새해를 기대하며 우리는 그렇게 희망을 노래합니다. 20년 전 라인강에서나 지금이나 또 다가올 20년 뒤에도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은 항상 제게 희망으로 들릴 것입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아무도 알 수 없는 인생에서 베토벤만큼이나 성실히 임할 수 있도록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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