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기의 슬기로운 퇴사생활 (19)

퇴사하면 불안하지 않느냐고 묻는 당신에게

글 : 이슬기 

액션건축가의 말
불안을 감지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내일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생활이 불안하진 않아?”

퇴사 후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그런데 나는 불안하기 때문에 지금의 삶을 선택했고, 미래에 안정적이고 싶어 현재를 연습하고 있다. 어디에 소속되지 않고도, 스스로의 삶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든 직업으로 만들어낼 수 있도록. 어떤 장소에서든 노트북 하나로 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돈이라는 것에 휘둘리기보다 컨트롤할 수 있도록. 내 삶에 어떤 상황이 도래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그에 적절한 반응을 할 수 있도록 훈련 중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아오른다. 그 순간이 되기 전에는 ‘위험’을 인지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반복된 역사를 통해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위기 상황이 되면, 국가도 회사도, 개인을 책임져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IMF 때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평범한 한 가정이 얼마나 힘들어질 수 있는지를. 그래서인지 나는 사회와 산업 구조의 변화 그리고 국가의 고용보호지수에 굉장히 예민하다. 나를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회사를 다니는 5년 동안 세 번의 구조조정을 만났다. 눈 깜빡하는 사이에 바로 옆자리에서 일하던 대리님이, 차장님이 사라졌는데, 문제가 되는 일은 하나도 벌어지지 않았다. 회사의 시스템과 매뉴얼이 잘 갖춰져 있던 덕분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 내 미래가 회사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시키는 일을 하는 데 익숙한 그리고 반복된 일에 숙련된 ‘대체 가능한 회색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던 사실은, 평생을 하나의 일에만 수련해 장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하나둘씩, AI(인공지능)에 자신의 자리를 내줬다는 점이다. 바둑 세계 랭킹 4위의 이세돌도, 1위 커제도 모두 구글이 만든 알파고에 패했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AI 워렌이 전문 애널리스트보다 빠르게 분석 결과와 유망 종목까지 제시해주고, 일본에서는 스시 장인을 대신해 로봇이 초밥을 만든다는데, 나는 그게 무엇이든 로봇보다 잘 만들 자신도, 더 빠르게 배울 자신도 없었다. 앞으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똑같은 일을 잘해서는, 이미 ‘무료에 가까워진 노동력의 가치’를 ‘한 사람의 생계를 책임질 만큼의 돈’으로 환산해줄 ‘회사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대표라도 한 번 투자하면 24시간 일에 집중하면서 툴툴거리지 않는 AI나 로봇을 사용할 테니까 말이다.

인공지능이 천천히 개발된다고 해도, 과거에 영광을 누렸던 기업들이 자신의 시장 지분을 점차 빼앗기는 것이 보이는데, 가라앉는 배에 계속 타고 있는 것도 불안했다. 자본이 많아야 시작할 수 있는 숙박 비즈니스는 심지어 호텔을 소유하지도 않은 에어비앤비에게 전 세계 시장을 빼앗겼고, 진입 장벽이 높았던 국내 금융 비즈니스조차 30대 치과의사가 만든 토스 애플리케이션이 은행 지점 하나 없이 시장을 늘려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새로 시장을 점령한 회사의 직원 수’다. 시장이 새로 생기면, 직장인들은 다른 곳으로 갈아타면 되지만 이제는 자리가 없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2012년 세계적인 필름 제조업체였던 코닥의 부도 당시 근로자 수가 14만 5000명이었다. 그런데 같은 해 10억 달러, 한화로 1조 원이 넘는 돈에 페이스북으로 인수된 소셜네트워킹서비스 기업, 인스타그램의 직원 수는 고작 열세 명이었다. 앞으로 특별히 필요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경력이 오래됐다고 해도 받아줄 곳이 많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아니, 경력이 제로가 되는 세상이 곧 도래할 거다. (내 이야기가 아니다. 빅데이터 전문가인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의 말이다.)

그러므로 오로지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회사 없이도 살아남기 위해 퇴사를 선택했다. 100명의 사람이 하던 일을 하나의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된 미래, 그리하여 사무실도, 화이트칼라도 필요가 없어진 훗날에 무엇을 해야 ‘안전할지’ 미리 준비하고 싶었다.

내가 지금까지 찾은 방법은 이렇다.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을,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의 리스트를 찾은 후, 굳이 로봇이 하지 않을 일을 선택하거나, 조금 더 로봇이 습득하기 어려운 일을 선택해 비즈니스를 만든다. 이 일의 장점은, 누구나 시작할 수 있고, 초기 자본이 들지 않으며, 하고 있는 동안 나를 100%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과정이 굉장히 만족스럽다. 나는 이것을 마이크로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라고 이름 지었다!

글쓴이 이슬기는 한때 회사원이었다. 지금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일 년에 두세 달쯤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며 사업가, 작가, 여행가, 교육가로 활동하고 있다. 인생을 무대로 평범한 사람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삶의 방법을 연구하고, 공유하는 것을 사랑하며 워라밸 연구소 ‘액션 랩’을 운영 중이다. 《퇴사를 준비하는 나에게》 《댄싱 위드 파파》를 썼다.
  •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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