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스포츠 에이전트 - 이예랑 리코스포츠에이전시 대표

김현수, 박병호, 강정호, 양의지 선수의 보이지 않는 손

글 : 선수현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 사진제공 : 리코스포츠에이전시 

2019 KBO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선수들은 막간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반면 스포츠 에이전트들은 이제부터 분주해진다. 연봉 협상, FA 협상, 후원 계약 등이 주로 이때 이뤄진다. 그들의 시즌이 시작됐다.
유니폼, 사인볼, 피규어 등이 사무실에 가득하다. 리코스포츠에이전시 이예랑 대표의 포트폴리오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한눈에 봐도 쟁쟁한 이력이지만 불과 5년 전만 해도 텅 빈 곳이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그가 열정 하나로 부딪히고 깨지며 이룬 성과다. 현재 리코스포츠에이전시에는 야구, 축구, 골프, 리듬체조, 쇼트트랙, e스포츠 등 종목의 80여 명 선수들이 소속돼 있다. 그중에서 이 대표는 야구를 전담하고 있다.

인터뷰 직전에도 선수 한 명이 다녀갔다고 했다. 이 대표는 선수를 위해 50여 장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 선수에 대한 객관적 자료를 모으고, 지표를 바탕으로 미래를 제시했다. 솔직한 평가에 선수도 만족해하며 돌아갔다.

“에이전트는 매력적인 일이에요.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그 분야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한다는 게 참 뿌듯하죠. 국가대표 선발 기간 때면 저까지 가슴 설레요. 현실은 힘들지만 그들이 잘하면 제가 뛰지 않아도 자랑스럽고 감동이 있어요.”

이예랑 대표는 교육, 컨설팅 사업과 함께 아나운서, 라디오 DJ로 방송 진행 경력이 있다. 에이전트가 되기로 결심한 건 평소 친분이 있던 야구선수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운동만 해서 그런지 선수들은 간단한 컴퓨터 프로그램 사용이나 종합소득세 신고조차 어려워했다.

하지만 막상 에어전트 일을 하려고 하니,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야 할지 막막했다. 워낙 생소한 일이라 알려줄 사람도 마땅히 없었다. 무작정 덤비는 수밖에. 이 대표는 2013년 메이저리그 윈터미팅을 찾았다. 매년 12월 열리는 윈터미팅은 미국 야구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트레이드, 자유계약선수(FA) 영입 등을 진행한다. 백인 남성이 주를 이루는 그곳에 젊은 동양 여성의 등장은 이례적이었다.

무작정 찾아간 곳에서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고작 얼굴 도장 찍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윈터미팅이 열리는 호텔 로비에서 홀로 명함을 돌리고, SNS로 야구 관계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대담하고 저돌적인 그의 행동에 혹자는 혀를 내둘렀지만 차츰 효과가 나타났다. ‘코리안 걸, 이예랑’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생겼다.


양의지 선수, 4년간 125억 계약 성사까지

메이저리그야구선수협회(MLBPA) 방문했을 때 관계자들과 촬영한 사진.
2015년 리코스포츠에이전시 소속 김현수 선수가 첫 FA를 맞아 해외 진출을 타진할 때였다. 김현수 선수는 독특했다. 경력도 없고 스포츠 종사자도 아닌 이 대표를 믿고 선임했다. 그 믿음에 보답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길은 참 막막했다. 이 대표는 김현수 선수의 시합을 모두 찾아다니며 만나는 외국인마다 말을 걸었다. 행여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일까 봐. 나중에 알고 보니 로컬 스카우트는 한국인도 많았다.

그는 두려울 게 없었다. 선수와 감독이 땀 흘리며 내야를 책임진다면, 에이전트는 외야에서 백방으로 뛰는 게 당연했다. 그해 김현수 선수는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이에 더해 마이너리그 거부 조항까지 얻어냈다. 김현수 선수 외에도 박병호, 강정호 등도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결과적으로는 성과가 아쉽지만 이 대표는 아직 다양한 기회가 있다고 믿는다. 야구는 9회 말까지 알 수 없는 법이니까.

지난해 체결한 양의지 선수의 협상은 특히 더 신경을 기울인 사례다. 에이전트가 공식화되고 처음으로 시도한 FA 협상이라 에이전트 역할의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었고, 또 힘든 포지션인 포수에게 힘도 실어주고 싶었다. 그 결과 양의지 선수는 4년간 총 125억 원에 NC와 계약을 체결했다. 포수로서 국내 최고 금액이자, FA 역대 두 번째 몸값이다.

리코스포츠에이전시 소속 박병호(좌), 김현수(우) 선수.
에이전트 중에는 선수나 스포츠 종사자 출신이 많다. 이 대표는 그들의 노하우를 따라잡기보다 스스로의 강점을 키우려 한다. 야구선수가 스파이크(야구화)를 바꾸려고 할 때 신고 뛰어본 적이 없으니 난감했지만, 이 대표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주전 선수들이 착용하는 스파이크 목록을 모두 정리한 것. 그러자 선수별 차이가 확연히 보였다. 움직임이 많은 내야수, 선수의 체격, 발등의 높이 등에 따라 사용하는 모델이 달랐다. 재질, 굵기, 두께 등 작은 것 하나가 선수들의 경기력을 좌우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이 대표는 매년 새 장비가 나오면 특성을 파악하고 있다.

“현장 야구를 선수 출신보다 더 잘 알 수는 없어요. 아무리 그 분야 전문가라 해도 선수들이 알고 겪은 걸 다 좇아갈 수는 없죠. 분석하고 협상해서 선수가 최대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일이 제 전문입니다. 국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정보를 모으는 일도 강점이고요.”

거침없는 성격과 달리 그는 언어 사용에 신중했다. 소속 선수들이 유명인이다 보니 발언 하나하나가 선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비단 이 대표만이 아니다. 직원들에게도 선수들의 일화를 가십거리로 삼지 말라고 당부한다. 관련 비밀서약서도 받는다. 이 모든 게 선수와 에이전트의 신뢰가 걸린 일이기 때문이다.

“직업윤리를 중요하게 여겨요.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윤리, 법도 있지만 직업의 테두리에서 지켜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한 사람이 윤리의식 없이 한 행동이 그 분야의 모든 사람을 욕먹게 할 수도 있어요. 또 좋은 협상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게 선수의 믿음이에요. 선수가 자신을 믿어주는 감독을 위해 뛰듯, 저는 저를 믿어주는 선수를 위해 뛰어요.”


지망생 위한 ‘응답하라 에이전트’ 운영

이재원 선수(좌)의 계약 후 SK와이번스 최창원 부회장(우)과 함께.
리코스포츠에이전시는 매년 ‘응답하라 에이전트’를 마련한다. 에이전트 지망생을 위한 정보 교류의 자리로 지금까지 네 차례 진행했다. 에이전트가 되는 길은 모호하다. 정형화된 코스는 없고 진입장벽은 높다. 이 대표는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하나하나 개척하며 터득했지만 후배 에이전트들은 시행착오를 덜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다고 했다. 11월부터 1월까지 에이전트가 한창 활동하는 시즌인 이때, 인터뷰에 응한 것도 에이전트 지망생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지망생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어떻게 에이전트가 될 수 있냐’예요. 많은 직업에 채용 과정이 있지만 에이전트는 정답이 없어요. 이 일을 꼭 하고 싶다면 스포츠 관련 어떤 직업이라도 시작하라고 말해요. 막연하지만 마케팅도 배우고 네트워크도 쌓다 보면 길이 열릴 거라고. 메이저리그 에이전트를 꿈꾼다면 영어는 필수고, 스페인어도 도움이 될 거예요.”

선수와 에이전트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다. 이 대표는 시간이 지나도 선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꼭 스포츠가 아니어도 좋다. 서로 돕고 조언해주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나누는 관계로 남고 싶다.

“선수 출신 MLB 관계자에게 밥을 먹자고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옛날 에이전트와 약속이 있다며 다른 날로 잡자고 하더라고요. 1980~90년대 뛴 선수니까 에이전트는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죠. 그런데 윈터미팅에 오면 잠도 같은 방에서 잔다고 하더라고요. 참 좋아 보였어요. 서로가 오랜 시간을 보내고 많은 걸 공유하며 잘 지내듯 저도 그러고 싶어요.”



스포츠 에이전트 | 경기장 밖에서 싸우는 조연

© 셔터스톡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다. 전 세계 스포츠팬들은 적잖은 비용을 써가면서 스포츠를 즐기고, 프로 구단은 훌륭한 선수를 영입해 승리를 쟁취하고자 한다. 스포츠 분야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커지며 연봉 협상, 광고 계약, 팀 이적, 외부 활동 등 스포츠 스타들이 점차 신경 쓸 게 많아지고 있다.

에이전트는 선수가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선수와 구단을 연결하고, 선수의 권리를 보장하는 역할을 하며, 선수가 해야 하는 경기 외적인 일을 도맡아 한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스포츠 스타의 몸값이 올라가는 데 비해 국내 스포츠 에이전트의 활동은 다소 미진한 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프로 스포츠 선수-에이전트 계약 현황’은 8월 기준 야구는 12.89%, 축구 12.3%였다.

스포츠 에이전트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분야는 야구와 축구다. 야구는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선수들 간 수차례 협의를 거쳐 2018년부터 에이전트를 허용했다. 그전까지는 비공식 대리인 신분으로 협상에 직접 참여할 수 없었다. 축구는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하에 2015년부터 라이선스 시스템을 버리고 중개인 등록 시스템을 시행하고 있다. 농구와 배구는 아직 에이전트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고 골프, 스케이팅은 에이전트 규칙이 따로 없다.


에이전트가 하는 일

스포츠 에이전트는 운동선수의 대리인이다. 가장 대표적인 일은 협상에 참여하는 것이다. 운동선수는 구단·협찬사·광고주에 비해 계약 관련 전문지식에서 열세하다. 에이전트는 선수의 객관적인 데이터를 관리해 상대측과 적정한 타협안을 찾아가며 공정한 계약을 체결한다. 그 밖에도 스케줄이나 이미지 관리, 언론 홍보, 의료·법률 서비스 등을 지원한다. 선수의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운동장비 마련, 심적 단련 등도 시행한다. 선수가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모든 조력을 다한다고 할 수 있다.


에이전트가 되려면

특별히 요구되는 전공은 없다. 계약을 대행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변호사 출신이 많은 편이다. 국내 선수의 해외 진출이 늘어나면서 에이전트에게 영어는 필수가 됐다. 종목마다 다르지만 야구, 축구 리그를 감안할 때 스페인어도 유용하다. 국내 야구는 2018년부터 에이전트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어 선수협 주관 시험을 보고 자격을 취득해야 한다. 메이저리그 에이전트는 협상 자격 유무에 따라 제너럴·리미티드 자격이 주어진다. 제너럴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자유 계약, 도핑, 서비스 등의 내용을 다룬 시험을 봐야 한다. 트레이드 시 이사비용, 아파트, 항공권 등 자잘하지만 선수의 권리와 의무에 해당하는 내용을 모두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연봉 및 처우

스포츠 에이전트의 연봉은 선수한테 달려 있다. 에이전트마다 계약 조건은 다르지만 선수의 연봉, FA 계약금, 광고 수입 등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다. KBO 권장사항은 5% 이하다. 해외 리그는 MLB 5%, NBA 4%, FIFA 10%를 최대 수수료율로 정해놓았다. 추신수 선수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연봉 가운데 에이전트 비용으로 약 5%를 지출한다고 말한 적 있다. 스포츠 스타들의 몸값이 뛸수록 소속 에이전트의 연봉도 같이 오르는 셈이다.
  •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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