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언니 은열의 회사생활 (18)

뾰족했던 나를 바꾼 한 권의 책

글 : 은열 

까칠언니의 한마디
힘들 땐 타인이 짊어진 슬픔의 무게를 떠올릴 것, 당신 말고.
“이 집 꼬막비빔밥 맛이 괜찮더라고요. 줄 안 서려면 열한 시 반엔 나와야 돼요.”

오랜만에 옆 부서 동료 두어 명과 마주 앉은 점심 식사 자리.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빵 터졌다.

“올해도 다 갔네. 그래도 10월엔 쉬는 날이 좀 있는데 11월엔 하루도 없지, 아마?”

“왜, 있잖아요, 빼빼로데이.”

언제 적 개그냐, 썰렁해 죽겠다는 야유에도 정작 ‘발언자’ 본인은 느긋했다. 그 광경을 보며 어이없어 하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다 문득 의아해졌다. ‘예전엔 이런 개그 엄청 경멸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관대해졌지?’


‘아재 개그’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매사 날이 서 있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 꽤 오래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잔뜩 긴장해 두리번거리며 사위를 살폈고, 마음먹은 대로 일이 풀리지 않거나 상대가 내 바람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덮어놓고 짜증부터 냈다. 출근길 만원 버스에서 공간 여유가 없는데 밀고 들어오는 승객 한 명과 때 아닌 신경전을 벌이다 큰 싸움을 낼 뻔한 적도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늘 조금은 울고 싶었고, 실컷 통곡이나 할 수 있게 누가 뺨이라도 흠씬 갈겨줬으면 싶은 날이 이어졌다.

당시 제일 끔찍해했던 부류가 시도 때도 없이 철 지난 유머 코드를 들이대는 이들이었다. 안건이 산더미 같은 회의 자리에서 별로 웃기지도 않은 얘길 들먹이며 이죽대는 선배들이 그렇게 한심해 보일 수 없었다. 세상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저럴 시간에 아이디어나 하나 더 내지, 싶었고 진심 ‘그게 웃겨요?’ 쏘아붙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차마 그 자리에선 말하지 못하고 뒷자리에서 고만고만한 동료들과 삼삼오오 모여 그 선배 뒷담화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바르도의 링컨》(조지 손더스 저)이란 소설을 알게 된 건 올 초였다. 당시 자주 들락거리던 SNS에서 누군가가 올린, 호평 일색의 독후감을 읽은 게 계기가 돼서 집어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제목에 등장하는 바르도(Bardo)는 죽음과 환생 사이의 어디쯤을 뜻하는 불교 용어다. 어린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오랫동안 슬퍼했다는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16대 대통령의 실화에서 소재를 가져온 이 작품엔 실제로 ‘죽었지만 죽지 못한’ 이들의 얘기가 500페이지 내내 계속된다.


모두 슬픔의 짐을 지고 노동한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감정은, 짐작했겠지만 슬픔이다.

“세상이 슬픔으로 가득하다는 사실, 모두가 어떤 슬픔의 짐을 지고 노동한다는 사실, 모두가 고난을 겪는다는, 이 세상에서 어떤 길을 택하든 모두가 고난을 겪고 있다는(아무도 만족하지 않고, 모두가 부당한 대접을 받고, 무시당하고, 간과당하고 오해받는다는) 것을 기억하려 노력해야 하고, 따라서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의 짐을 가볍게 해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 - 432p

구성도, 형식도 어지간히 난해한 소설이어서 읽느라 꽤 애를 먹었는데 희한하게 이 대목에서 시선이 멈췄다. 특히 “모두가 슬픔의 짐을 지고 노동한다”는 문장에 이르러선 맘속 깊은 곳에서 뭔가 울컥, 올라왔다. 책깨나 읽는다고 자부해온 나로서도 드물고 또 묘한 독서 경험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이후 엇비슷한 메시지에 자꾸 마음이 움직였다. 얼마 전 접한, 50년간 15만 명의 환자를 돌봤다는 팔순의 정신과 의사 이근후 박사 인터뷰 기사가 그랬다.

“살아보니 인생은 필연보다 우연에 좌우되었고 세상은 생각보다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곳이었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사소한 즐거움을 잃지 않는 한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다.”
-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조선비즈, 2019년 8월 24일



‘크고 오래가는’ 행복은 허상

태초부터 우주를 지배하는 감정은 슬픔이란 것, 비단 나뿐 아니라 세상 사람 모두가 슬픔을 ‘디폴트(default·초깃값)’로 껴안고 살아간다는 것, 바로 그 때문에 작은 행복을 찾아 나서려는 노력이 더없이 중요하다는 것. 장담하건대 이 세 가지만 잘 새겨도 삶을 대하는 태도는 퍽 달라진다. 상사의 (하나도 안 웃긴) 아재 개그에 격하게 동조하며 깔깔거리게 되고, ‘왜 저러고 살아?’ 싶던 동료의 언행 이면에 숨은 상처의 깊이도 조금씩 헤아리게 된다. 중후장대한 행복 따위의 허상을 좇지 않고 매일 소소한 즐거움을 하나둘씩 찾아 만끽할 줄도 알게 된다.

별로 대단할 게 없어 보인다고? 크게 달라진 건 없지 않느냐고? 글쎄, 내 경우 매 순간 한결 살 만해졌다. 믿기지 않는다면 속는 셈치고 한번 실천해보길. 요즘 들어 부쩍 자신의 분노조절장애 여부가 의심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글쓴이 은열은 신문사에서 일하다 뜻한 바 있어 기업으로 이직했다.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게 글쓰기인 데다 오랜 데스크 생활까지 거쳐 남의 글 들여다보고 고치는 데 이골이 났다.
어쩌면 이 땅 어딘가에 존재할, ‘논스톱 20년 차 직장인’의 내공이 궁금할 이름 모를 후배들에게 손톱만 한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다시 글 쓸 용기를 냈다.
  • 201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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