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국과수 연구원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김은미 법독성학과장

30년간 10만여 건 증거를 파헤친 베테랑

글 : 선수현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선량한 외모에 착잡한 표정.
“저는 결코 마약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덤덤히 입장을 발표하는 모습에 결백을 믿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마약 검사 결과는 양성을 가리킨다. 증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진리.
결국 그는 마약 투약 사실을 시인했다. 과학수사 앞에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잡았다, 요놈!’
“진실을 밝히는 과학의 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대표 슬로건이다. 국과수가 밝히는 진실은 뿌연 유리창 너머 존재하는 것 같다. 과학수사 기법과 기술을 통해 현장에서 증거물을 수집하고,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 그러다 보면 유리창 한 줄 한 줄이 선명해지고 창 너머 진실도 점점 또렷해진다. 진실 앞에 죄가 있으면 고개를 숙이고, 아니라면 자유를 얻는다.

국과수 법독성학과는 올해 초부터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었다. 마약 검사는 법독성학과의 주요 업무다. 박유천, 로버트 할리, 비아이, 재벌 3세 등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마약 사범의 증거물이 모두 이곳으로 전해졌을 정도다. 법독성학과가 뿌연 유리창을 닦아내자 마약 범죄가 우수수 쏟아졌다. 억울함을 호소하고 각종 꼼수로 발뺌해도 명백한 증거 앞에서는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국과수 법독성학과에 들어온 지 30년 된 김은미 과장은 기억에 남는 사건 중 하나로 박유천 마약 투약 건을 꼽았다. 그의 손을 거쳐간 사건만 10만여 건. 그럼에도 최근 발생한 이 일을 잊을 수 없는 이유는 어느 하나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유천은 마약 투약 혐의를 지목받자 기자회견을 자청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경찰은 혐의를 제기하며 마약 검사를 시행하기로 했다. 문제는 마약 검사에 주로 사용하는 모발이 잦은 염색·탈색으로 손상된 상태였고, 겨드랑이와 음부의 털 또한 모두 제모한 뒤였다는 점이다. 사건 담당 형사는 기지를 발휘해 그의 다리털을 채취했다. 박유천의 다리털 60수가량이 긴급하게 국과수로 전달됐다.

결과는 대반전. 절대 마약을 투약한 사실이 없다던 주장과 달리 검사는 양성으로 나타났다. 본인은 하지 않았다는데 증거는 다른 사실을 가리켰다. 언론은 직접 마약을 투약하지 않고도 체내에 마약이 흡입될 수 있는 가능성을 따지기 시작했다. 박유천의 체모를 분석한 동료 직원은 자신의 실험이 잘못된 건 아닌지 불안해했다. 하지만 김 과장은 동료 직원의 분석 결과와 이중삼중으로 검증하는 시스템을 믿었다. 조금 기다려보자고 했다. 며칠 뒤 판도가 뒤집혔다. 국과수 검사 결과로 압박 수사하자 결국 박유천은 필로폰을 일곱 차례 투약했다고 털어놨다. 진실을 밝히는 과학의 힘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몸에는 수많은 털이 있습니다. 모든 털을 다 제거할 수는 없죠. 마약을 투약하면 몸 어딘가에는 반드시 흔적이 남습니다. 그동안 마약을 투약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털을 밀면 걸리지 않는다는 통설이 있었는데 이 사건이 경각심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완전 범죄는 없습니다. 우리는 작은 흔적도 하나하나 찾아내 검출할 겁니다.”


마약도 트렌드가 있다


우리나라에 모발 감정이 도입된 건 1993년경이다. 그전까지는 소변 검사를 이용했다. 소변에서 마약이 검출되는 유효기간은 3~5일. 투약한 지 일주일 이상 된 약물은 모두 배설돼 소변에서 검출할 수 없었다. 모발은 달랐다.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으면 1~2년 전 투약한 마약도 검출 가능했다. 어떤 약물을 섭취하든 혈액 중에 녹아 모발로 들어간다. 소변으로만 증명하기 어려운 투약 사실이 모발에서 밝혀지며 수사에는 큰 진척이 생겼다. 덕분에 국과수 업무는 두 배로 늘었지만.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채취한 모발을 봉투에 담아 국과수로 보낸다. 겉면에는 ‘박○○, ×월 ×일 △△에서 필로폰 투약’이라고 적어둔다. 연구원은 모발을 잘라 투약 시기를 추정한다. 보통 머리카락은 한 달에 1cm씩 자라는데, 6개월 전 필로폰을 투약했다면 모근에서부터 6cm 지점에 필로폰이 남는다. 이 머리카락을 다시 작게 잘라 세척을 거쳐 24시간 동안 기계로 추출한다. 그런 다음 모발이 든 시험관을 ‘가스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기’에 넣어 분석을 진행한다. ‘억’대를 호가하는 이 기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백만분의 1그램의 약물까지도 검출한다. 연구원은 그 결과를 보고 양성·음성을 판별한다. 대개 모발 감정 시일은 10일 정도지만, 현재 검사 물량이 쌓여 있어 한 달은 소요되는 실정이다. 최종 결과는 경찰에 보내 수사에 활용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검출되는 마약류는 필로폰(메트암페타민)이다. 1980년대부터 투약 사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필로폰은 합성 마약으로 다른 마약류보다 끊기가 어렵다. 두 번째로 많은 건 대마다. 대마초는 대마식물의 잎을 말려 담배처럼 말아 피우는 것이다. 최근 기승을 부리는 액상 대마는 대마를 농축해 액체로 만들어 마약 함유량을 높인 형태다. 인삼을 뿌리로 섭취하는 것보다 농축한 액체로 더 진하게 먹는 것과 같다. 액상 대마는 전자담배 카트리지나 사탕, 초콜릿 등에 넣어 적발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마약도 트렌드가 있어요. 국과수는 트렌드를 좇아 기술, 분석법도 맞춰가며 일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이 일이 흥미로운 건 모든 게 물음표 상태라는 거예요. 과학에 근거해 분석하며 퍼즐을 맞춰가는 거죠. 저희가 검사한 결과가 수사에 실마리를 제공하면 그 보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커요. 대신 신중하고 정확해야 합니다.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으니까요.”


필요한 덕목은 정직·책임감·연민


우리나라의 과학 수사는 세계적 수준이다. 2013년 세계 최초로 프로포폴 모발 분석 기법을 개발한 게 대표적이다. 프로포폴은 일명 우유주사로 불리는 수면 마취제다. 치료 과정에서 사용해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남용 사례가 늘며 마약류로 분류됐다. 국과수도 이를 대비한 분석 방법이 필요했다. 당시 프로포폴은 소변에서 검출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김 과장과 직원들은 보다 정밀한 분석법을 찾기 위해 4개월에 걸쳐 연구에 매달렸고, 프로포폴 모발 분석법을 개발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해당 논문은 세계법독성학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경찰청 과학수사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법독성학과에 배당되는 사건은 한 해 1만여 건. 최첨단 과학수사 기법과 장비를 갖추고 있지만 인력은 태부족한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마약 사용은 꾸준히 증가했고, 2015년 마약류 사범 수는 1만 1916명을 기록해 마약 청정국 지위를 잃었다. 마약류 사범 수는 증가세에 있지만, 전국 국과수에 마약 사건을 전담하는 인력은 열다섯 명 내외에 불과하다. 열악한 근무 환경에도 국과수 연구원들은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밝히고 있다.

“국과수 연구원의 가장 필요한 덕목은 정직·책임감·연민이라고 생각합니다. 분석 결과에 따라 범죄 유무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에 실험에 임할 때 항상 정직하고 자신의 분석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하죠.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범죄자를 대할 때는 연민을 갖고 대하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국과수 연구원 | 과학적 증거로 진실을 말한다

© 셔터스톡
국립과학수사연구원(National Forensic Service)은 1955년 설립됐다. 강원 원주에 본원이 있고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 분원과 제주 출장소가 있다. 각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은 해당 지역에서 담당하는 게 원칙이지만, 사회적 반향이 크거나 복잡한 사건은 본원에 이관되기도 한다.

국과수에는 법유전자과, 법독성학과, 법화학과, 법안전과, 법심리, 디지털분석과, 교통사고분석과, 중앙법의학센터 등이 있다. 이때 ‘법’은 ‘포렌식(forensic)’으로 ‘법정의·재판의’를 의미하며, 국과수에서 일하는 연구원을 ‘법과학자’라 부른다. 경찰이 현장에서 수집한 증거물을 분석해 형사사건 재판에 이용하기 때문이다.

과학수사 장르 드라마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은 일정 부분 동경하게 만든다. 그러나 국과수의 현실은 다르다. 업무는 3D에 가깝다. 우선 어렵다(Difficult). 전공 연구는 차치하고라도 범죄가 점차 지능화·흉포화·다각화되고 있다. 현장의 증거물은 풍요롭지 않다. 피 한 방울, 머리카락 한 올인 경우도 있다. 더럽기도 하다(Dirty). 부패하고 냄새나는 증거물은 일상이다. 어디서 채취한 건지도 모르는 오염물질이 올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위험할 수밖에 없다(Dangerous). 증거물이 어떤 물질인지 감정 전까지 정체를 알 수 없다. 사건 현장에서 훼손되기 전에 증거물을 얻어야 하므로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오늘도 법과학자는 과학적 증거로 퍼즐 조각을 맞춰가며 진실을 밝히고 있다.


국과수 연구원이 하는 일

범죄 수사 및 사건·사고의 원인 규명 등에 필요한 감정을 한다. 유전자 분석, 신원 확인, 약·독물 분석, 마약류 감정, 화학물질 분석, 화재·폭발·안전사고 조사, 문서·화폐 위변조 감정, 디지털 증거물 분석, 뺑소니 차량 판별, 심리 평가, 부검·검안 등의 일을 한다. 이를 통해 용의자를 특정하거나 수사 방향을 제시하며 죄의 유무와 형량을 결정하는 데 기여한다. 형사사건과 맞닿은 일이 많아 재판장에 나서 증언하는 경우도 있다.


국과수 연구원이 되려면

국과수 연구원은 공무원 신분이다. 따라서 공무원법 제33조(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지원 가능하다. 국과수는 정기 채용이 없다. 결원이 생기면 충원하는 형태로 1년에 수차례 뽑기도 하고, 채용이 없는 해도 있다. 채용은 각 부서별로 이뤄지며 직무별로 요구하는 전공이 다르다.

- 법독성학과 : 약학, 식품학
- 법안전과 : 물리, 전기, 기계, 금속공학 등
- 법유전자과 : 생물학 기반의 전공
- 법화학과 : 화학 기반의 전공
- 법심리과 : 심리학
- 교통사고분석과 : 기계공학, 물리 등
- 디지털분석과 : 전자, 정보통신, 컴퓨터공학 등
- 법의학센터 : 의학, 영상의학, 임상병리 등


국과수 연구원이 처우

연봉은 공무원과 동일하게 호봉에 따라 산정한다. 연구원 직급은 연구사와 연구관으로 나뉜다. 연구사는 5~10년 사이의 직급으로 일반 공무원 6~7급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연구관은 경력 10년 이상이어야 하며 5급 대우를 받는다. 2019년 7급 공무원의 연봉은 2500만~3000만 원 수준이다. 의사·약사 면허를 취득한 경우 개원·개업하면 이보다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어 기대소득보다 낮은 수준의 연봉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연봉보다 직업적 소명의식에 가치를 둬야 한다.
  • 201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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