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통의 보통 사람들 #1

춤추는 밤장수

글 : 김보통 

가을 초입, 서울 강동구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지하철역에 내렸는데 시간이 좀 남더군요.
일없이 골목을 어슬렁거렸습니다.
오래된 취미입니다.

그러던 중 길가에서 춤추는 밤장수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으며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는 아저씨는 연신 “두 되박에 5000원!”이라고 외쳤습니다.
조커의 춤이 연상되었습니다. 슬그머니 다가갔습니다.

“아저씨, 제가 밤을 사드릴 테니 인터뷰 좀 하실래요?”
“무슨, 나는 인터뷰를 할 만한 인물이 못 돼.”
“저는 인터뷰를 한 번도 안 해본 분만 찾아다니고 있어요.”

이 글은, 그날그날 밤을 떼다 파는 밤장수 아저씨의 이야기입니다.



내가 처음 서울에 온 것은 40여 년 전 어느 겨울.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돈을 벌기 위해 상경했습니다.
지금이야 뉴스에 날 일이지만 당시에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위로 형제가 셋 있었는데,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짓는 큰형님을 제외하고,
아래로는 줄줄이 열일곱이면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오빠, 나중에 서울서 바나나 사와.”

아직 열 살이 안 된 막내가 짐을 싸는 제게 말했지요.
바나나가 뭔지 궁금했던 터라 추석에 내려올 적에 사오기로 약속했습니다.

서울 생활은 재미났습니다. 영등포의 한 공장에서 청소를 하며 일을 배웠습니다.
먹고 자는 것은 공장 한편에 합판으로 만든 숙소에서
비슷한 처지의 형, 동생들과 함께 해결했습니다.
끼니의 대부분은 라면이었지만 여럿이 부대껴 먹고 있노라면 마치 고향에 있는 것만 같아
외롭지 않아 좋았습니다. 원래는 야간 고등학교에 가려고 했습니다.
저처럼 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들을 위한 특별학급이 따로 있었습니다.
우리 공장에도 그렇게 학교를 다니는 동료가 몇 명 있었고요.

그런데 갑자기 공장 문을 닫았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근처 다른 공장에서 누가 일을 하다 죽었는데,
쓰면 안 되는 약물을 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일로 다른 공장까지 조사했고, 제가 다니던 곳도 비슷한 꼬투리를 잡혀
사장이 잡혀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누구 말로는 그냥 도망쳤다고도 했지만 알 길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졸지에 갈 곳이 없어졌지만 고향에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제 몫을 감당하기도 힘든 형제들에게 의지할 수도 없었습니다.
크게 상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일하다 죽지 않았으니 다행이고, 장애도 얻지 않았으니 감사한 때였습니다.

이후로도 비슷비슷했습니다. 일자리를 얻어도 오래가질 못했습니다.
사장이 돈을 떼어먹고 도망치거나 부도가 나 망했습니다.
몸이 아파 쉬려니 출근을 말라거나, 밀린 월급을 달라니 욕을 먹는 것은 부지기수였습니다.
그사이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야트막한 건물들은 어느새 으리으리한 빌딩들로 바뀌었지만
저는 여전히 볕도 들지 않는 공장과 공장 사이를 오가며 새앙쥐처럼 살았습니다.

그마저도 이제는 일이 없어 그날그날 시장에서 물건을 떼다 펼쳐놓고 이렇게 팔게 됐습니다.
가게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용달차라도 한 대 있으면 좋겠는데
평생을 뜻한 대로 된 적이 없는 인생이 이제 와서 풀릴 리가 있을까요.
잘살아보겠다고 고향을 떠났건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숱하게 많은 동료들이 다쳤고, 죽었습니다.
따지자면 저는 산전수전을 겪고도 살아남은 백전노장이니 조금 기쁘기도 합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이렇게 두 되박에 5000원 하는 밤을 팔고 있지만
절로 웃음이 나고 춤이 춰지나 봅니다.

내 이름은 알 필요가 없습니다.
불러주는 이가 없다 보니 이게 맞는지 자신이 없습니다.
나이는 환갑이 넘었을 텐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생일을 챙기지 않다 보니 내가 언제 태어났는가를 잊었습니다.
오래도록 찾지 않은 고향에는 그리운 가족들이 모여 살고 있을까요?
다들 돈 벌겠다고 나가 뿔뿔이 흩어진 채 이 서울 하늘 아래 어딘가를 헤매고 있지는 않을까요?

많은 것들을 잊었지만, 내내 잊히지 않는 것은 우리 막냇동생의 얼굴입니다.
열일곱이 되기 전에 병으로 죽은,
죽었다는 말만 들은 우리 막냇동생의 예쁘장한 얼굴만 잊지 않고 있습니다.
바나나는 아직도 사가지 못했고요.
  • 201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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