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희의 속 깊은 인터뷰

‘디렉터 파이’ 피현정

‘자기 거울을 갖는다는 것’에 대하여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만약 당신이 화장품 성분에 관심이 있다면 이 이름을 모를 리 없다.
디렉터 파이(Director pi), 본명은 피현정(48).
74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브 채널 ‘디렉터 파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뷰티계의 전설적인 인물로, 명품 브랜드 매거진 《애비뉴엘》 편집장, 《엘르》 뷰티 디렉터를 지냈다.
브랜드와 용도별 화장품이 무한 증식하는 시대, 그는 ‘꼭’ 필요한 정보를 ‘똑’ 부러지는 말투로 ‘콕’ 집어 알려준다. 선택장애 환경에 비자발적으로 내던져진 대중은 그의 똑똑한 정보에 열광한다. 그의 유튜브 채널에 달린 댓글을 보면 ‘나라를 구하기라도 한 걸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칭찬을 넘어 감사의 메시지가 넘친다. ‘착한 화장품 멘토’. 그에게 따라다니는 별명이다.

채널 운영 3년 차, 그는 세상을 바꾸고 있다. 외계어 같은 성분들, 가령 사이클로펜타실록산, 나이아신아마이드, 레티닐팔미테이트 등을 모국어처럼 말하는 그의 채널을 듣다 보면 소비자는 서서히 변해간다. 서당개 3년이라고, 유해성분을 알아보는 눈이 생긴다. 이 눈이 곧 화장품 선택의 기준이 된다. 국내 화장품 브랜드의 상당수가 디렉터 파이 채널의 영향으로 성분을 바꾸고 있다는 건 업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디렉터 파이의 비판 이후 심한 타격을 입은 한 마스크팩 회사는 아예 성분을 대대적으로 바꾸고 공장 라인까지 재정비했다.

애매한 긍정이나 하나마나 한 위로보다 똑 부러지는 까칠함이 주는 통쾌함이 있다. 용도별 상품을 수십 개 늘어놓고 ‘아쉬워요/가끔쓸템/추천템’ ‘탈락/합격/애매’를 쿨하게 규정하는 그의 채널을 보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기란, 웬만해서 쉽지 않다. 그의 기준이 곧 소비자의 선택의 기준으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탄탄한 콘텐츠의 힘이다.

반(半)백 살이 된 그가 걸어온 길을 들여다보면 세 개의 키워드가 두드러진다. ‘최초’와 ‘뷰티’ 그리고 지독한 ‘근성’. 디렉터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시절, 그는 국내 최초로 ‘뷰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명함을 스스로 달고 활동하면서 ‘최초’의 지문을 여기저기 남겨왔다. 최초의 뷰티 프로그램인 온스타일 〈겟잇뷰티〉 기획자, CC크림 최초 기획자, 최초의 뷰티 큐레이터 등. 겉으로는 달라 보이지만 결국 하나로 수렴되는 일들이다. 궁금한 게 생기면 미루지 않고 즉시 달려들어 끝까지 파고들면서,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내는 것.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피현정 대표의 사무실 겸 스튜디오 ‘브레인 파이’에서 그를 만났다. ‘디렉터 파이’ 채널에서 시작한 대화는 ‘아름다움’의 본질로 확장돼갔다. 그는 13년간 앓았던 지독한 병에 대해 털어놓았다. 원인 모를 그 병은 결국, ‘왜곡된 미에 대한 기준’ 때문이었음을, 진솔하고 담백하게 들려줬다.


생각보다 스튜디오가 작군요.

“다들 그러세요. 화면에서는 훨씬 커 보인다고요. 딱 필요한 공간만큼 있으면 되죠. 유튜브는 1인 미디어잖아요.”


도대체 준비를 얼마나 합니까?

“매주 한 개의 콘텐츠를 올리는데, 한 콘텐츠를 한 달 반 정도 준비해요. 자료가 A4 50장 정도 되죠. 서너 개의 주제를 동시에 공부합니다. 한 콘텐츠를 방송하면서, 한 달 반 후에 할 주제를 정해 자료를 모으고, 지난주에 모아둔 주제를 공부하고, 2주 전에 시작한 주제를 심화시키는 식으로요.”


A4 50장이라고요?

“네. 이것도 부족한 느낌이에요. 팩트 검증할 부분이 한둘이 아니거든요. 저도 이런 분야인 줄 모르고 시작했어요. 알았다면 제 성격에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았을지도 몰라요.(웃음) 하다 보면 발가벗겨지는 느낌이랄까요. 수십만 명의 각계각층 검증단이 있잖아요. 소비자는 물론 의사와 약사, 화장품 제조사 직원, 마케터, 화학 전공 대학원생… 게다가 국어선생님은 맞춤법을 보시죠. 단위 하나만 실수해도 신뢰가 무너집니다. 오류 없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해요. 화학, 생명공학 전공생들이 근무하는 자체 연구소도 운영합니다. 앞으로 연구원들과 다양한 활동을 선보이려 해요.”


화장품에 쓰이는 성분은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요? 한번 공부해두면 수월할 것 같습니다만.

“아니에요. 유해성분 여부를 따져서 합격, 탈락만 가리는 게 전부가 아니거든요. 립스틱의 경우, 립스틱에 어떤 성분이 들어가는지에 따라 색감과 발색이 달라져요. 요리와 비슷해요. 처음 발랐을 때는 A빨강색인데, 왜 시간이 지나면 B빨강색이 나는지를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해요. 경험, 성분, 원리를 다 알아야 합니다. 그동안 이런 부분을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거죠.”


혹자는 화학 전공이 아니라며 비판도 하죠. 화학 전공 연구원과 약사처럼 성분 전문가가 유튜브를 하면 더 잘할까요?

“지식이 많은 것과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건 달라요. 유튜브는 쌍방향 소통이 중요해요. 원하는 정보만 짧은 시간에 줄 수 있어야 하죠. 제 휴대폰에는 댓글을 캡처한 사진이 수만 장이에요. 기획용 자료들이죠. 구독자들이 무엇을 알고 싶은지를 분석해서 자료화한 후 기획에 반영해요.”


그 많은 댓글을 다 봅니까? 유튜브만 해도 한 콘텐츠에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렸던데요.

“그럼요. 거의 다 봅니다. 필요 시 답글도 달아주고요. 댓글을 슬쩍 보면 구독자의 마음이 잘 보이지 않아요. 완전히 몰입해서 봐야 해요. 대중은 다수이지만, 제가 볼 땐 한 명이거든요. 한 명의 마음을 분석해서 저 사람이 원하는 걸 반영해줘야겠다는 마음으로 봐요.”


국문학 전공이 지금 하는 일에 도움이 되나요?

“점점 인문학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요.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기술이 할 수 없는 것들이 중요해져요. 그게 인문학입니다. 어떤 면으로는 인문학이 기술을 지배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뷰티 인문학자’ ‘화장품 인문학자’라고 소개합니다. 화장품을 미와 소비의 관점에서 ‘통합적 가치관’으로 읽어내고, 시대와 세상에 영향력 있는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따라다니죠. 최초의 뷰티 프로그램으로 꼽히는 온스타일 〈겟잇뷰티〉는 특히 신선했어요.

“기자로서 글을 쓰다가 갑갑함을 느꼈어요. 지면에 갇혀 있으면서 목마름을 느꼈죠. 2005년에 매거진 편집장을 그만두고 나왔습니다. 나오긴 했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선례도 없고. 무한한 가능성만 있었어요. 꽂히는 쪽으로 실행하는 편인데, ‘온라인’에 꽂혔어요. 지면을 온라인에 옮겨보자고 생각했죠. 케이블 TV에 대한 존재감이 별로 없을 때였지만, 영상 시대가 올 거라고 내다봤습니다. 아이디어가 튀어나와서 A4 두세 장짜리 프로그램 제안서를 먼저 썼어요. 막막해하다가 〈싱글즈 인 서울〉 출연을 통해 알게 된 PD를 찾아갔고, 우여곡절 끝에 〈겟잇뷰티〉 프로그램을 선보였어요. 맨땅에 헤딩해서 투자, 기획, 진행, MC까지 맡게 된 거죠.”


실행력이 대단하군요.

“생각나면 바로 움직이는 스타일이에요.”


‘목마름’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어떤 목마름인가요?

“내가 아는 게 과연 전부인가? 내가 아는 게 과연 진짜일까? 세팅되고 정리된 자료를 보고 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과연 그럴까? 회사 측에서 정리해준 뷰티 내용이 과연 정말일까? 이런 의문들이 계속 솟아났어요. 내가 원하는 답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죠.”


조직 안에서 갈증을 채울 수는 없었나요?

“조직 안에는 질문을 해결해줄 전문가가 없었어요. 또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는 딱 알아야 하는 곳까지만 원했고요. 회사의 목적은 진리 탐구가 아니라 이윤 창출이니 그게 맞죠. 저는 더 뚫고 나가려 했기 때문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늘 만족감이 없었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 궁금한 걸 다 해봤어요. 화장품 제조부터 브랜딩, 유통, 마케팅, 판매까지 전 과정을요. 홈쇼핑 쇼호스트도 해봤죠.”


불안감을 떠안고 가보지 않은 길로 내딛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나요?

“글쎄요. 갈급인 것 같아요. 사실을 알고 싶어 하는 욕구가 아주 강해요.”


퇴사를 후회해본 적은.

“얕게는 많이 했죠. 너무 힘들었으니까. 일을 몇 배 더 해야 그만큼 벌 수 있고, 퇴근 후와 주말까지 두뇌를 풀가동해야 하거든요.”


3년 전, 디렉터 파이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음… 두 가지 차원으로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하나는 유튜브라는 채널을 공부하고 싶다는 지적 호기심, 또 하나는 그 채널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마음. 유튜브, 인스타그램 채널에서 탄생하는 인플루언서들의 세계가 궁금했어요. 한 명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따라서 대중이 움직이는 세계가 궁금하고 신기했죠. ‘나도 한번 해봐야지’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유튜브 채널을 열었어요. 콘텐츠는 줄곧 주장해오던 ‘화다, 화장품 다이어트’였고요. 과거에 비해 화장품 종류와 기능이 너무 많아서 선택장애에 놓인 소비자들에게 똑똑한 소비법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유튜브는 처음부터 잘됐나요?

“2016년 4월에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빵 터졌어요. 이후엔 휩쓸리듯 하게 됐죠.”


성격상 처음부터 치밀하게 준비했겠습니다.

“하하. 그런 건 아니었어요. 영상 촬영과 편집을 모르니까 블로그를 보면서 공부했죠. 콘셉트가 맞는 친구들을 찾으면 무작정 쪽지를 보냈고, 연락이 닿으면 만났습니다. 카페에서 만나 ‘안녕? 나는 이런 사람인데 우리 같이 일해볼래요?’ 해서 바로 다음 날 찍었어요. 저는 워낙 직관적이라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실행해요.”


전문가 집단을 찾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요.

“해봤죠. 해보니 그게 아니어서 폐기했어요. 방송계 지인들이 많아서 몇 억짜리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트까지 두고 찍어봤는데, 그건 아니었어요. CF처럼 나왔죠. 방송 프로그램 같았어요. 유튜브는 일대일이어야 한다고 봤어요. 그래서 1인 미디어 하는 친구들한테 연락했고요.”


실패한 적이 있나요?

“실패의 의미가 다른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실패는 성공을 위한 도구였어요. 제가 생각하는 실패의 의미는 사전적 의미의 실패와 달라요.”


당신이 생각하는 실패란.

“내가 원하는 걸 못 하는 것. 유튜브를 했을 때, 구독자가 많지 않았다고 해도 제 기준에서는 성공이에요. 내가 원하는 건 유튜브 공부였는데, 공부가 엄청 됐으니까요. 지난 3년 동안 논문 100편은 쓴 느낌이에요.(웃음)”


디렉터 파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뭔가요?

“과거 뷰티 기자를 할 때는 명품 브랜드와 고가의 외국 브랜드가 좋은 줄 알았어요. 성분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요약 정리돼 있는 자료를 무조건 믿었어요. 그런데 회사를 나와 화장품을 직접 만들어보니까 사실과 너무 달랐어요. 가격을 먼저 책정해놓은 후 성분을 정하고, 포장 용기를 그 수준에 맞게 만들더군요. 마케팅 위주로 정하는 거죠. 알고 나서 너무 충격이었어요. 이걸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지적 호기심에서 출발해, 사명감으로 발전했군요.

“유튜버는 사명감에서 하는 측면이 커요. 처음엔 젊은 친구들이 많이 하는데, 나까지 해야 하나, 싶은 의구심도 들었어요. 저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만들어야 했죠. 그렇지 않으면 이 일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지속할 수 없었으니까요. 거의 1년간 계속 이어갈지를 두고 고민했어요. 잎사귀 따듯 ‘한다, 안 한다’ 매일 고민했죠. 결국 하기로 한 포인트는 ‘선한 영향력’ 때문이에요. ‘내가 화장품 시장을 바꿔야겠다’ 싶었습니다.”


어떻게요?

“사람들이 브랜드와 가격을 보지 않고, 성분을 보고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성분을 보라는 건 성분 하나하나가 좋고 나쁘고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성분을 보면 원가가 보이거든요. 소비자가 합리적 선택을 하도록 돕고 싶었어요.”


거울 이야기를 해볼까요. ‘자기 거울’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더군요. 거울을 갖고 다니세요?


“요즘엔 휴대폰 셀카 기능으로 보죠.”


보면서 무슨 생각 해요?

“‘어제와 다른 나’가 됐는지. 워낙 성장 욕구가 커요. 운동이나 뭔가를 시도했을 때도 나타나는 변화를 보든지 합니다.”


‘자기 거울’이란 뭔가요?

“미의 기준은 남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거예요. 내가 나를 예뻐해야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어요. 과거에 저는 제가 싫었고 괴로웠어요. 모든 걸 남의 시선으로 봤기 때문에 불행했습니다. 폭식과 거식을 번갈아 했고, 불치병이 있었어요. 의자에 앉기만 하면 허벅지 아래쪽 고관절이 칼로 도려내듯 아팠어요. 열일곱 살 때부터 서른 살까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렸습니다. 관련 병원을 다녀봤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고, 너무 아픈데도 고칠 수가 없었죠. 저한테는 가시였어요. 신체혐오증, 강박증이었죠. 다이어트로 42~43kg을 유지했는데, 살이 쪄서 아프다고 생각한 거예요. 내가 내 몸을 증오하니까 아픈 거였죠. 더 이상 증오하지 않게 되니 신기하게도 통증이 싹 사라졌어요.”


계기가 있었나요?

“직장을 옮기면서요. 예전 직장에서는 일이 저한테 맞지 않아서 자신감이 없었어요. 사람들이 저를 싫어한다고 생각했죠. 회사를 옮기고, 뷰티 쪽을 맡으면서 일이 너무 재밌었어요. 재밌으니까 밤낮없이 빠져들고, 빠져들면서 실력이 쌓이니까 사람들이 저를 훌륭하다고 해주는 거예요. 이전까지 저는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훌륭한 사람이 됐죠. 그때부터 아프지 않았어요.”


자존감 회복이 약이었군요.

“그렇죠. 과거 저는 자기 거울이 없었어요. 남들한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컸죠. 오로지 살을 빼서 사람들한테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대학생 땐 밥을 안 먹고 쥐포와 블랙커피로 살았어요. 쥐포 먹으면 살이 안 찐다는 말을 믿고, 쥐포를 100번씩 세면서 씹어 먹었어요. 일상에 낙이 없고 허무했죠. 왜곡된 자아상이 회복되면서 자존감도 회복됐고, 자기 거울을 갖게 되면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요즘엔 거울을 보면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나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요.”


언제부터요?

“마흔 넘어서요. 과거엔 남이 나를 쳐다봐줘야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튀게 하고 다녀서 쳐다본 거였어요. 이제는 내가 나를 예뻐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예쁘다는 건 의미 없어요. 나에게도, 남에게도 도움이 안 되죠.”


자기 거울을 갖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거울이란 심상(心想)이고, 심상은 삶의 기준이에요. 그 기준점은 내 안에 단단하게 존재해야 해요. 자기 거울을 갖는다는 건 단순히 외모뿐 아니라 꿈이나 미래 등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는 얘기예요. 심상을 만들어놓으면 갈랫길에서 할까 말까 망설일 때 결정도 빠를 것이고, 지치지 않을 것이고, 실패해도 실패로 보이지 않을 것이고, 꿈을 말할 수 있을 거예요. 무엇보다 행복할 수 있죠.”


피현정 대표는 한때 풀메(풀메이크업)를 안 하면 집 앞 슈퍼에도 안 나갔다. 타인의 시선을 받는 것이 사랑받는 길이라고 믿었던 그는 남에게 예뻐 보이기 위해 가꿨다. 그렇게 들인 시간이 하루 서너 시간이다. 메이크업 두 시간, 헤어 한 시간. 지금은 아니다. 수십만 명이 보는 유튜브 영상에 생얼로 등장하는 것은 예삿일이다. 올바른 클렌징을 알려주기 위해 세안의 전 과정을 공개하고, 맨얼굴로 웃고, 맨얼굴로 등장해 기초 화장법을 알려준다.

언제부턴가 그는 새해 첫날마다, 친정엄마와 나란히 누워 맨얼굴로 셀카를 찍어 SNS에 올린다. 눈은 퉁퉁 부어 있고, 안경을 쓸 때도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의 맨얼굴엔 미소가 점점 번져간다.
  • 201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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