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취향 (17) 크루아상

내 맘대로 고른 크루아상 맛집 best 4

© 셔터스톡
2017년 이른 여름, 프랑스 남부 지역을 여행했을 때의 얘기다. 시골길을 달려 프로방스의 작은 마을들만 골라 다니던 여행이었다. 숙소도 그곳에 있을 법한 돌담 세워진 작은 B&B(Bed&Breakfast)만 다녔다. 프랑스의 B&B에서 묵으면 보통 아침 식사를 제공받는데, 숙소마다 제각각의 맛을 자랑한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사실 숙소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란 것이 좀 뻔하다. 빵 몇 조각, 시리얼 조금, 과일 몇 가지가 나올 거라 생각했던 선입견은 첫날 도착한 레보 드 프로방스(Les Baux-de-Provence) 마을 산 어귀의 한 숙소에서부터 깨졌다. 이곳의 아침 식사는 특별했다. 식당에 들어서니 테이블 가득 빵이 쌓여 있었다. 버터와 달걀을 넣어 달콤한 맛이 나는 브리오슈 반죽으로 만든 식빵, 바삭하고 따뜻하게 구워진 바게트, 향신료 물씬 풍기는 빵에 가득 쌓인 크루아상까지, 과연 빵의 나라라고 할 만했다. 탁 트인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마당에 앉아 바구니에 담아 온 빵을 맛보았다. 하나하나 풍미가 가득해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을 줬지만 그중에서도 압권은 크루아상이었다. 한국에서 이만큼 버터 맛이 풍성하면서도 바삭한 크루아상을 맛본 적 있나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이후로도 빵은 여행의 훌륭한 길동무가 되어주었다. 집집마다 빵 맛이 달랐다. 어디를 가도 크루아상은 준비돼 있었지만 맛이 똑같은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자신들이 직접 굽는다며 자랑스럽게 크루아상만을 따로 내어놓기도 했다.

그렇게 각기 다른 맛의 크루아상을 매일 아침 먹다 보면 ‘나만의 크루아상 취향’도 생긴다. 한동안은 버터 풍미가 강해 입 끝에서 버터 향이 날 정도의 크루아상이 내 취향이었다. 어떤 버터를 쓰느냐에 따라 크루아상의 풍미가 달라진다는 것도 알게 됐는데 눅진한 버터가 다소 느끼한 면은 있어도 계속 뒤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 역시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한국 음식을 먹고 자란 우리에게는 뚜렷한 취향이 있다. 청국장찌개에 물은 자작하게, 김치찌개에는 참치 대신 돼지고기가 들어가야 한다는 건 나의 아주 오래된 취향이다. 먹고 자란 경험, 개인의 역사, 신체적인 특징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하나의 음식 취향을 만든다. 크루아상을 대하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취향 역시 문화적인 맥락이 있다. 버터향이 썩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풍미가 느껴지는 빵보다는 바삭한 식감의 크루아상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패스트리 빵보다는 초콜릿이며 과일 같은 첨가물을 곁들이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인의 취향에 맞는 크루아상 맛집 네 군데를 꼽아봤다.



아우어베이커리
크루아상의 변신, 누텔라바나나·더티초코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45길 10-11 / 02-545-5556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근처에 문을 연 이후 여러 곳에 지점을 둔 덩치 큰 빵집으로 성장했다. 이곳을 유명하게 만든 건 바삭한 패스트리 계열의 빵이다. 특히 식감이 남다른 크루아상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이곳 크루아상은 버터 향이 강하지 않다. 대신 식감이 좋다. 겉은 부스러질 정도로 바삭한데, 속은 매우 촉촉하다. 씹는 재미가 있을 정도다.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크루아상도 인기지만, 구매 수량을 제한할 정도로 많이 찾는 것이 누텔라바나나 크루아상이다. 누텔라 반죽과 밀가루 반죽이 겹겹이, 버터를 쌓아 만든 크루아상 안에는 달콤한 바나나가 들어 있다. 이곳 대표 메뉴는 더티초코다. 이름에 걸맞게 손과 입에 초콜릿을 묻혀가며 먹어야 하는 더티초코를 한입 베어 물면, 바삭한 식감과 달콤한 초콜릿의 풍부한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도산 본점은 늘 붐비기 때문에 줄을 서서 빵을 사야 할 때도 있다.



루엘드파리
프랑스인도 반한 맛
서울 서초구 서초중앙로 18 / 02-322-0939


이곳은 ‘프랑스 사람들도 반한 크루아상’이라는 표현이 따라다니는 곳이다. 프랑스의 크루아상과 비슷한 맛을 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의 크루아상은 대개 버터 풍미보다 식감에 신경을 쓰는 데 반해 이곳의 크루아상은 버터 풍미가 진하다. 미네랄이 함유된 물로 만든 프랑스의 빵맛을 내기 위해 감자즙을 섞기도 한다. 먼저 발효시켜 반죽에서 단맛을 내는 폴리시 공법을 사용한 크루아상은 그 자체로도 진한 풍미를 낸다. 패스트리 반죽이 매우 얇은 편인데 50겹 넘게 반죽해 쌓아 올린다. 한입 베어 물면 버터의 풍미가 진하게 올라오지만 느끼하지는 않다. 아몬드 크루아상도 인기다. 달콤한 아몬드가 크루아상 전체를 덮을 정도로 잔뜩 뿌려져 있다. 크루아상의 단맛과 아몬드의 고소한 맛이 잘 어우러져 중독성이 있다.



블랑제리코팡
이유 있는 유명세
서울 마포구 희우정로 115 / 02-326-2269


TV로 방영된 맛집 중에는 빈 수레가 요란한 집들이 종종 있지만 블랑제리코팡은 아니다. TV를 보고 찾아간 사람이든 아니든 그 맛을 인정하는 몇 안 되는 빵집이다.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다. 빵을 판매하고 고객들이 쉴 수 있는 공간보다 빵 만드는 공간이 넓어 보일 정도. 빵 만드는 과정이 다 보이는데 빵의 향기가 먹지 않고는 못 버틸 정도로 유혹적이다. 대표 메뉴는 바게트와 크루아상이다. 옅은 갈색으로 예쁘게 구워진 크루아상은 하나같이 모양이 같다. 오랜 시간 작업해온 셰프의 실력 덕이다. 크루아상의 맛과 모양, 식감이 모두 균형 잡혀 있다. 버터의 풍미가 진하지도 옅지도 않고, 패스트리의 두께도 적당하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크루아상의 종류가 많다. 인절미 크루아상이나 오징어먹물 크루아상이 특히 인기다. 체다치즈를 수북하게 올린 먹물 크루아상은 아침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다.



바켄
필링이 가득! 커스터드크림이 줄줄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28-3 /02-516-8889


프랑스의 마카롱이 한국에 들어와 ‘뚱카롱’이 된 것처럼, 한국적인 크루아상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필링이 들어간 크루아상으로 유명한 바켄이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본 크루아상은 인상적이지 않다. 쫄깃한 반죽이 식감을 더해주기는 하지만 버터나 패스트리의 풍미에서 특별함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나 여러 종류의 크루아상을 맛보면 바켄의 이름을 쉽게 기억할 수 있다. 커스터드크림 크루아상은 바켄에서 제일 유명한 빵이다. 크림이 꽉 차게 들어 있어 한입 베어 물면 입 밖으로 흘러나올 정도다. 초코 크루아상도 커스터드크림 못지않다. 뺑오쇼콜라같이 초콜릿을 둘러싼 패스트리 반죽의 고소함이 겉과 안의 초콜릿과 잘 어우러진다. 바켄의 크루아상은 마켓컬리 등의 온라인 유통업체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배달된 냉동 크루아상을 자연 해동해 오븐에서 살짝 구워 먹으면 빵집에서 먹던 맛과 별반 다르지 않다.
  •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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