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언니 은열의 회사생활 (16)

누군가의 멘토가 된다는 것

글 : 은열 

까칠언니의 한마디
이렇다 할 목표 없이 직장 생활 중이라면 ‘괜찮은 멘토 되기’에 도전해보자.
장담하건대 그 과정에서 놀랍도록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은열님, 늘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메일함에 도착해 있는 독자 H의 편지를 열어보곤 흠칫했다. ‘정말 왔네!’ 내 이메일 주소를 문의해온 독자가 있더라는 편집부의 ‘힌트’를 건네받은 지 며칠 되긴 했지만 설마설마했다. 좋으면서도 한편으로 묵직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몇 번씩 쓰고 고쳤을 게 분명한 H의 메일을 읽고 또 읽으며 답장에 담을 내용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멘토링=뒤치다꺼리’인 줄 알았던 날들

회사를 다니며 처음 누군가의 멘토 노릇을 한 건 주간지 기자가 된 지 2년 차쯤 됐을 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웬만한 언론사들은 예외 없이 대학생 인턴기자 제도를 운영했다. 기자를 꿈꾸는 대학생에게 인턴기자 도전은 신문(방송)사가 정말 평생을 걸 만한 직장인지 여부를 ‘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신문(방송)사 입장에선 ‘될성부른 떡잎’을 비교적 손쉽게 가려낼 수 있는, 승률 높은 인재 확보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최고의 ‘윈윈(win-win)’이랄까.

어느 날, 부서로 대여섯 명의 인턴기자가 배정됐다. 다른 곳에서 이미 인턴 생활을 몇 번 해봐 제법 기자 티가 나는 친구도, 신문 한 줄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게 분명해 뵈는 친구도 있었다. 인턴들을 ‘관리’하는 일은 연차가 그리 높지 않은 기자들의 몫. 내게도 두어 명의 인턴이 할당됐다. 그들이 쓰고 싶어 하는 기사 주제를 들은 후 취재 방향을 대략 정해주고, 기사 초안이 완성되면 실제 지면에 게재될 만한 수준으로 품질을 끌어올리는 게 내 임무였다.

처음엔 마냥 재밌었다. 일단 ‘메시지는 있지만 조악하고 투박한’ 글을 조금씩 다듬어 완성도를 높이는 쾌감이 상당했다. 이미 굳어버린 내 머릿속으론 도저히 떠올리기 힘든 아이템을 들고 와 “이런 건 어때요, 선배?” 하는 녀석들을 보며 적잖이 자극도 받았다. 하지만 그 흥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매주 돌아오는 마감, 내 기사 쓰는 틈틈이 인턴들 뒤치다꺼리까지 해대느라 늘 허덕였다. 그렇게 몇 달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짜증이 늘고 예민해졌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가 자라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날도 텅 빈 사무실에서 밤늦게 인턴들 원고를 마감하다 기어이 폭발했다. ‘이렇게 괴발개발 써놓으면 나더러 어쩌라고. 내 기사까지 합치면 이번 주 마감해야 하는 지면이 도대체 몇 페이지야. 고생고생해서 고쳐놔도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데!’ 일하다 말고 불쑥 화가 나 인턴 관리를 총괄하던 선배에게 휘갈기다시피 장문의 메일을 썼다. 인턴들 돌보느라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 이렇게 빛 안 나는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느냐, 계속 이런 식이면 더는 힘들어서 못 하겠다….

솔직히 그 이후 상황은 가물가물하다. 분명한 건 (내 ‘항명’이 먹히지 않았던지) 메일을 보내고도 꽤 오랫동안 인턴 기자 관리 업무를 맡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참 희한하다. 그렇게 징글징글하던 몇 년간의 경험을 온몸으로 겪어내다 보니 어느 순간 글쓰기를 겁내지 않게 됐다. 남의 글을 들여다보고 핵심 메시지를 찾아내는 일에도, 초심자의 글에서 군더더기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걷어내는 일에도 자신이 붙었다. 그리고 얼마 후 거짓말처럼 꽤 어린 나이에 편집장 자리에 올랐다. 인턴들(의 기사)과 씨름하던 시간이 편집장 업무를 해내는 데 도움이 됐느냐고? 두말하면 잔소리다.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하나의 조직을 이끌게 된 후 꽤 여기저기서 ‘멘토’로 불렸다. 대개 그 발원지는 후배 기자들이었다. 글쓰기 강연을 시작하고 나서는 청중 가운데서도 날 멘토로 삼겠다는 이가 하나둘 나왔다. 기업으로 이직한 후에도 종류는 다르지만 엇비슷한 경험이 이어졌다. 단 멘티는 매번 달랐다. 누군가는 “기자가 되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답답하다”고, 누군가는 “곧 졸업인데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일찌감치 엄마가 된 후배는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 잡는 일이 버겁다”며 괴로워했다.

예전 같으면 그런 와글거림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내 앞가림도 잘 못 하면서 오지랖 넓게 무슨…’ ‘답이 나오는 얘기도 아닌데 괜히 시간 낭비 하는 것 아냐?’ ‘아이고, 내 코가 석 자네!’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은 아니다. 내게 뭔가 물어오는 사람이면 그가 누구든 한마디 한마디 귀 기울이게 된다. 하고많은 사람 중 하필이면 날 멘토링 상대로 골라준 게 한없이 고맙고 영광스러워 최선을 다해 그의 입장을 헤아린 후 ‘나라면 이랬을 것 같다’고 성심성의껏 조언을 건넨다. 얼치기 멘토 노릇하다 생각지도 못한 역량과 맷집을 선물 받았던 ‘인턴 담당 기자’ 시절의 교훈이다.


“절 멘토로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H가 회신을 보내온 건 내가 답장을 보낸 지 불과 몇 시간 후였다. 짧은 글이지만 그중 한 표현이 유독 마음 깊숙이 와 닿았다.

“비유가 이상하지만, 숲에 갇힌 저를 드론으로 내려다보시는 느낌이랄까요.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고심하며 쓴 답장 속 진심이 온전히 전달된 것 같아 기뻤다. 굳이 표현하자면 아랫배가 간질거리며 뜨뜻한 뭔가로 채워지는 느낌이랄까.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H의 ‘무한 정진’을 기원한다. 아, 물론 다른 독자 여러분의 멘토링 신청도 대환영이다.

글쓴이 은열은 신문사에서 일하다 뜻한 바 있어 기업으로 이직했다.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게 글쓰기인 데다 오랜 데스크 생활까지 거쳐 남의 글 들여다보고 고치는 데 이골이 났다.
어쩌면 이 땅 어딘가에 존재할, ‘논스톱 20년 차 직장인’의 내공이 궁금할 이름 모를 후배들에게 손톱만 한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다시 글 쓸 용기를 냈다.
  • 201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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