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도슨트 - ‘도슨트계 유노윤호’ 정우철 도슨트

영화 같은 스토리텔링으로 관람객을 매혹합니다

글 : 선수현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베르나르 뷔페展’이 열린 예술의전당. 대중에게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작가의 전시에 평일 오전 100여 명의 관람객이 모였다. 이들은 한 사람에게 집중했다. 전시 설명을 담당하는 정우철 도슨트.
그는 작품 위주의 설명 방식에서 벗어나 그만의 스토리텔링으로 작품을 소개하는 도슨트로 유명하다.
일순 고요해졌다. 웅성거림이 사라진 전시장에 그의 목소리만 마이크로 울려 퍼졌다.

“베르나르 뷔페는 어린 시절 물감을 사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어요. 상처는 그림에 고스란히 나타나죠. 물감이 굳은 자리를 죄다 긁어놨는데, 이런 행동을 멈춘 건 아내 아나벨을 만나고 나서예요. 사랑으로 치유된 거죠. 언제부터 그림에 흠집이 사라졌는지를 염두에 두고 감상하면 재밌을 거예요.”

청중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간간히 ‘아!’ 하는 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뭐 하나 놓칠세라 청중의 시선은 손가락이 가리키는 지점을 향했다. 뒷줄 여기저기서 까치발을 드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그가 이동하자 모두가 우르르 따라 움직였다. 흡사 ‘피리 부는 사나이’를 연상케 했다.

한 시간여의 관람이 끝났다. 질문이 30분 이상 이어졌다. 일부 관람객은 눈물을 훔쳤다. 미술 전공생인 관람객 방주은(20) 씨가 말했다.

“혼자 볼 때는 그림의 긁힌 자국을 그냥 지나쳤는데, 설명을 들으며 보니 그림에 담긴 상처가 보였어요. 또 뷔페의 후반기 그림이 조금 달라 표현 기법이 바뀐 줄만 알았거든요. 그런데 파킨슨병으로 손이 떨려서 그랬대요. 혼자 감상했다면 이걸 제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기승전결 시나리오 전하는 이야기꾼


도슨트는 미술관·박물관에서 전시를 설명하는 안내인이다. 정우철 도슨트가 이 일을 시작한 건 2017년. 이번 ‘베르나르 뷔페전’까지 그가 담당한 전시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특별전’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 ‘샤갈 러브 앤 라이프전’ 등 단 세 건에 불과하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펼쳐졌다. SNS를 중심으로 “베르나르 뷔페 전시는 도슨트와 함께 관람해야 한다”는 입소문이 퍼진 것. 전시만큼 도슨트가 유명해지면서 그는 도슨트계의 샛별이 됐다.

“미술관에 온 관람객은 그림만 보게 돼요. 이 작가가 왜 유명한지, 작품이 왜 비싼지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렵죠. 도슨트는 관람객이 작품을 쉽게 감상하도록 돕는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도슨트와의 차이라면, 저는 기승전결을 갖고 하나의 스토리를 전해요. 제가 영화를 전공해서 그런지 시나리오처럼 구성하게 되더라고요.”

그가 도슨트 일을 시작한 건 우연한 기회였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영상회사에서 4년째 일하던 중 덜컥 불안해졌다. ‘인생에서 더 재밌는 일이 있으면 어떡하지?’ 이런 불안감으로 20대의 그는 사표를 던졌다. 대책 없는 퇴사였다. ‘재미있는 일’을 찾아 기웃거렸지만, 막상 할 일은 없었다. 무료한 날이 길어지면서 회사를 다닐 때보다 불안감은 더 커졌고, 급기야 우울증이 그를 집어삼켰다. 그런 아들을 지켜보는 부모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예상치 못한 불효였다.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각종 콘서트·행사·전시장 스태프를 시작했다.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일이면 뭐든 괜찮았다. 그러다 운명 같은 제안을 받았다.

“도슨트 해볼 생각 없어요?”

약속된 도슨트가 갑자기 펑크를 낸 것이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특별전’으로 도슨트에 발을 들였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20분. 첫 데뷔에서 어찌나 긴장했는지 손이 덜덜 떨렸다. 그럼에도 관람객들이 자신을 주목하는 순간, 희열을 느꼈다. 욕심이 생겼다. 퇴근하고 작품 공부에 매진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짬짬이 스피치 훈련도 했다. 걱정은 점차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6개월간의 전시가 끝날 무렵, 그는 어엿한 도슨트가 돼 있었다.

첫 번째 기회는 엉겁결에 찾아왔지만, 이후의 전시는 달랐다. ‘도슨트계 유노윤호’란 별명이 생길 정도였다. 전시 설명을 진행하는 한 시간을 위해 그는 수개월을 바쳤다. 전시 기획사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공부하고 전시 관련 책과 뉴스를 모두 탐독했다. 관람객 앞에 서기 위해 스스로 부끄럽지 않아야 했다.

그런데 베르나르 뷔페전을 앞두고는 퍽 난감했다. 국내에 알려진 정보가 많지 않아 작가에 대한 갈증이 깊었다. 작품이 전시장에 도착하는 건 전시 3일 전, 그림을 이해할 시간도 부족했다. 그는 오직 뷔페를 위해 일본행을 결심했다. 시즈오카에 개인 자산가가 조성한 뷔페 미술관을 보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뷔페의 그림을 마주했을 때의 충격이란. 강렬한 색채, 특유의 선, 임파스토(붓질을 두텁게 하는 기법), 모든 것에 압도당했다. 사진이나 책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감동이었다. 뷔페는 한순간에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4박 5일 동안 그림만 봤지만 결코 질리지 않는 시간이었다.


작가와 사랑에 빠진 도슨트

도슨트인 그에게 전시는 연애와 같다. 전시 전후로 작가에게 몇 달간 푹 빠져 지낸다. 뷔페가 첫눈에 반한 사랑이라면 샤갈은 첫사랑이다. 하루 종일 그림을 보고 설명하는 것도 모자라 쉴 때조차 샤갈의 도록을 봤다. 암울한 시대를 지나오면서도 희망을 찾고자 한 작가의 의지가 그림에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행복해서 그린 게 아니라, 불안함 속 행복을 추구하는 모습이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작가의 인생과 그림을 알수록 그의 마음속 어둠이 지워져갔다. 청춘의 불안함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가 지나온 힘든 시간조차 인생에서 필요한 과정이란 걸 깨달았다. 그림을 사랑했을 뿐인데 그 역시 치유되고 있었다.

“저는 관람객에게 작가의 인생을 소개할 뿐 그림을 분석하진 않아요. 그림을 느끼는 건 관람객에게 맡기고 싶어요. 그러다 보니 저의 도슨트 스타일을 싫어하는 관람객도 있어요. 특히 미술 전공자는 전문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맡은 전시들은 대중을 위한 거예요. 최대한 쉽게 설명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사랑에 빠진 사람이 대상을 묘사하면 그 마음은 듣는 이에게도 전달된다. 관람객은 작가와 사랑에 빠진 도슨트에게 매력을 느낄 수밖에. 정우철 도슨트는 관람객에게 받은 전시 후기를 모두 저장해뒀다. 지치고 힘들 때 꺼내볼 수 있도록. 관람객들은 그가 들려준 이야기에 “벅찬 감동을 느꼈다”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 “작가가 살아 있으면 (도슨트의 설명을)좋아했을 거다” 등 고마움을 전했다.

“저의 전시 설명을 들은 관람객이 훗날 다른 곳에서 그 그림을 마주했을 때 제 말이 같이 떠오르면 굉장히 보람 있을 것 같아요.”

베르나르 뷔페展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9월 15일까지
정우철 도슨트
평일 오전 11시 30분 / 오후 2시, 4시, 6시



도슨트 | 더 깊은 예술 세계로 안내하는 가이드


시험공부를 할 때, 혼자 할 수도 있지만 강의를 들으면서 하는 방법도 있다. 어떤 게 맞는지는 개인 취향이다. 강사는 배경, 특징, 의의 등을 설명하는데, 강사에 따라 강조하는 부분이나 내용을 풀어가는 방식이 다르다. 도슨트도 마찬가지다. 도슨트(docent)는 라틴어 ‘docere’에서 유래했다. ‘가르치다’라는 뜻이다. 관람객이 전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도슨트마다 전시를 설명하는 방식이 다른 것은 물론이다.

많은 이들이 도슨트와 큐레이터를 헷갈려한다. 큐레이터가 작품 선정, 공간 구성 등 전시를 기획한다면, 도슨트는 전시에서 작가와 작품을 소개한다. 간혹 큐레이터가 특별 도슨트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

또 한 가지, 전시장 내에서 제공하는 오디오 가이드와 도슨트의 설명 내용도 다르다. 오디오 가이드는 큐레이터나 기획사에서 작성한다. 대부분의 도슨트는 직업적 사명감으로 가급적 오디오 가이드와 같은 내용을 피하려고 한다. 전시장에 가면 도슨트를 활용하자.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작가나 작품에 대해 알고 나면 감상의 폭이 깊어진다.



도슨트가 하는 일

전시가 열리는 미술관·박물관에는 일반 관람객을 안내하는 도슨트가 있다. 도슨트는 작가, 전시 작품 등에 대해 설명하며 전시와 관람객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전시를 설명하기 위해 관련 전문 지식은 필수. 도슨트의 역량에 따라 설명의 폭과 깊이가 달라진다. 관람객의 작품 감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슨트가 되려면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지식은 미술사다. 말하는 직업이니 스피치 훈련도 필요하다. 국내에서 공인된 자격증이나 교육 과정이 별도로 있는 건 아니다. 대다수의 도슨트는 실전에서 부딪쳐가면서 경력을 쌓는다. 아트허브(www.arthub.co.kr), 네오룩(www.neolook.com) 등 미술 전문 인력 채용공고를 확인하거나 전시 기획사에 개별적으로 지원하는 방법이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도슨트 양성 교육도 참고하면 좋다. 필기시험, 작품 해설 시연을 거쳐 연 열다섯 명 내외를 선발한다.


도슨트의 연봉 및 처우

아직도 ‘도슨트’라는 직업군에 대한 인지도는 낮은 편이지만 점차 개선되는 분위기다. 도슨트는 대부분 프리랜서로 일하며, 연봉은 천차만별이다. 횟수를 기준으로 급여를 책정하는데 초보자의 경우 회당 5만 원 내외, 경력이 쌓이면 10만 원 플러스알파로 받는다. 전시 일정에 따라 한 번에 복수의 전시를 맡는 경우도 있다. 기획사에 소속돼 월급을 받는 도슨트도 있다.
  • 201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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